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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톡독 가이드] 지혜서(I): 욥기(6)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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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기사입력 2019-12-02

지혜서 I: 욥기 6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115

 

통독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신구약을 통으로 읽는 것이다. 이 메모는 신구약 1,189장을 4장씩 묶어서 298회분을 게재 할 예정이다. 매 성경 모두(冒頭)에 필요한 연대나 자료를 제시하여 성경 읽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매 장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성경 메모는 단락 별로 제시하였고 지방이나 성읍과 일부분이지만 인명은 간단한 각주로 처리하였다. 본문과 대조하여 읽기 바란다. 단락별로 필요한 경우 적용과 기도를 넣었다. 이 메모에서는 논쟁이나 비판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의 흐름, 맥락, 요의, 함의,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정리 등을 기술하였고 가능한 간단히 처리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적색으로 된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각주(脚註)이다. 성경은 우리의 맛있는 양식이며,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 진다.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     © 김정권


                    
욥 기 21-24장 메모

 

 

<21 > 소발의 2차 발언에 대한 욥의 답변

 

[악인이 흥하고 잘되기도 하는 세상] (21:1-16)

 

  욥은 여기서 3 친구들의 발언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반론한다. 먼저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모르는 악인도 잘되고 번영하며 그들의 자녀가 춤추는 복을 누린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이 잘되는 것은 =의 등식이 아님을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와 그에 부응한 화와 복을 주신 다는 것은 단순논리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화와 복은 영적이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욥의 생각](21:17-26)

 

  악인이 비록 흥한다 해도 결국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악인의 잘됨을 그의 선으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 결국, 악인의 죄과는 기록되어 있고 그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게 된다. 이 세상에서 잘되고 복되게 살아도, 고통 가운데 죽어도 죽은 후로는 흙으로 돌아가며 매한가지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영생이 있다.

 

[헛것을 말하는 욥의 친구들](21:27-34)

 

  욥은 그의 친구들은 오로지 욥을 해하려는 사람이며, 거짓을 행하는 자들이라 규정한다. 오히려 욥은 친구들의 헛된 논쟁은 사람을 괴롭게 하고 무너뜨리려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누구를 돕고 위로한다는 것을 잘 분석해보면 그 당사자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대부분 자기 뜻과 이익을 추구하며, 자신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욥의 친구들은 자신들은 의인, 욥은 악인이라는 입장에서 계속 논쟁을 해 온 것이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의 3차 발언과 욥의 답변(22:1-42:6)

 

<22 > 엘리바스의 3차 발언

 

[엘리바스의 욥에 대한 비방과 욥의 죄과] (22:1-11)

 

  엘리바스는 욥이 경건 때문에 시험을 받느냐? 네 악이 정말 크다. 6절에서 9절 사이에 악의 종류를 나열하여 마치 욥이 이런 죄과를 저질러서 고난이 왔다는 논리를 전계 한다. 그러나 논리 전개로서는 부적격하고 억지로 뒤집어씌우는 것 같은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욥의 죄과로 거론하는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 엘리바스는 욥이 당하는 고난을 보니 이런 죄과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가정을 했을 것이다. 엘리바스 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어떤 사람이 병들고, 실패하고, 사고가 나고, 사업이 망하고 나면 무슨 죄과로 그리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한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 엘리바스(욥의 친구): 우스(에돔) 땅의 데만 사람이다.

           데만 지방은 현자가 많이 나온 곳이라 한다(49:7).

    주장: 욥의 재난이 욥의 죄로 인했다고 보고, 회개를 촉구한다.

 

[하나님에 대한 신비주의](22:12-20)

 

  엘리바스는 신비주의적 하나님의 형상을 논한다. 하나님의 진정한 권능을 이해한 것이 아니다. 욥은 하나님의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자신이 고난을 겪는다고 생각한다(21:7). 이런 욥의 입장을 엘리바스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르고 계실 이가 있느냐? 욥이 죄인이어서 이런 고난이 왔다는 결론이다.

 

[회개하여 하나님과 화해하기를 바라는 엘리바스] (22:21-30)

 

  하나님과의 화해는 인간의 당위이다. 그러나 엘리바스가 욥에게 권하는 내용은 조금 입장을 달리 이해해야 한다. 욥이 죄인이니까. 회개와 화해가 결부된다. 죄 없는 인간이 없으니까 누구나 회개는 하여야 한다. 엘리바스가 6절에서 9절까지 죄의 항목을 나열하며 욥이 범했다고 가정하며 욥의 회개와 화해를 촉구하는 것이니까 엘리바스는 전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다.

 

* 오빌(Ophir) “비옥한 땅이란 뜻으로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아프리카, 인도, 아라비아의

  어느 곳 이라 본다. 그러나 최상의 금을 생산하는 곳(대상29:4; 22:24; 28:16; 45:9; 13:12)

  이다.

 

 

<23 > 엘리바스 3차 발언에 대한 욥의 답변(1)

 

[하나님을 의뢰하나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욥](23:1-9)

 

  욥은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여도 그를 뵈올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다 이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고 측량하기 어렵다. 다만 믿음의 사람에게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높은 차원의 영적 각성과 오묘한 세계에 대한 비밀을 터득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다.

 

[욥의 확신] (23:10-17)

 

  지금 이 과정은 자신을 단련시키시는 과정임을 확신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순금같이 되어 나올 것이다. ! 이 확신은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욥의 확신은 점차 분명해져 간다. 사람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16절 하나님이 마음을 약하게 하시어 전능자를 두렵게 하셨다는 말은 그에게 믿음을 잃었다는 말이다. 욥 친구들의 논리는 혼잡해지고 욥의 논리전개는 믿음에 점차 접근해 간다.

 

 

<24 > 엘리바스 3차 발언에 대한 욥의 답변(2)

 

[불의 한자들을 심판하시는 날은 언제인가?](24:1-12)

 

  이 세상은 불의로 가득 차 있다. 땅의 경계표를 옮겨서 남의 재물을 탈취하는 자, 고아와 과부의 재물을 빼앗는 자,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 옷을 벗겨 가는 자, 죽어가는 자가 신음을 하게 버려두는 사회 이런 불의를 하나님이 모른 체하신다고 욥은 언제 이들에게 심판의 날이 오겠는가? 탄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인생은 이 모든 것이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하나님은 공의를 이루신다(벧후3:9-13). 성도는 이런 현상적 일로 좌절하고 마음 상하면 아니 된다. 더 적극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광명을 거부하는 자들](24:13-17)

 

  광명은 진리일 것이다. 주 예수께로부터 나오는 세상의 빛을 배반하는 자들은 밝음에 거 할 수가 없다. 가난한 자를 죽이고, 도둑질하며, 간음하는 패역한 무리다. 이들은 어둠을 좋아하고 밝음을 싫어하는 무리다. 왜 정의를 싫어하는가? 그들이 어둠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악인의 종말](24:18-25)

 

  악인은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잘되는 것 같이 보이나 결국은 패망하고, 높아진 것 같으나 곧 낮아질 것이다. 불의 한자가 잘된다고 좋아하지 말라, 그들은 베어진 풀과 같이 곧 시들어 말라 버릴 것이다. 욥은 왜 이런 변론을 전개하는가?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퍼부은 악인으로의 낙인은 잘못된 처사이며 진정 악인이라면 그 결과가 이렇게 될 것이라는 역설이다. 이를 통해서 욥의 정당성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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