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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역사적 배경과 산타클로스의 유래

정은표 목사(<개혁신앙> 발행인, 전 아이다호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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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기사입력 2019-12-12

 

▲   "성탄의 문화는 과연 성경적인가? " 정은표 목사의 옥고를 싣는다  ©  뉴스파워 정준모



 

크리스마스성경적?


정 은표 목사(합신 졸, 은퇴 목사. 개혁신학 편집자, LA 거주)

어린 시절 해마다 연말이 닥아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선물을 기다리게 했던 성탄절(聖誕節)또는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 하는 절기는 명절 아닌 명절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선 국교도 아니고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종교 행사를 어째서 국가 공휴일로 지정했는지 시비 거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기독교 교인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성스러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어째서 상업적인 행사인 양 떠들썩하게 치러져야 하는지 불만을 품고 크리스마스 본래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자고 역설(力說)하기도 한다.


1. 성탄절의 역사적 배

- 예수 탄생 이후 300년간 박해받았던 기독교 -



오늘날 성탄절(聖誕節)을 의미하는 크리스마스(Christmas)는 본래 그리스도의 미사(Christes maesse)에서 유래한 말로 기독교의 축일(祝日)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예수가 1225일에 탄생했다는 근거는 성경을 비롯한 어디에도 없다.

신학자들은 물론 역사학자들도 이날이 그리스도교의 축일이 아니라 로마의 이교도(異敎徒)축제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고 있는데 다만 로마 역사 기록)에 따르면 기독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주후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역사적 계기를 보면 기독교는 초대교회 때부터 300여 년 동안 말할 수 없는 불같은 시련과 핍박을 받았는데 이런 기독교가 갑자기 자유롭게 신앙생활 하도록 공인(公認)된 것은 주후 3132월 콘스탄티누스 1(Flavius Valerius Aurelius Constantinus, 272-337)가 반포한 밀라노칙령(313, Edict of Milan)을 통해서였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50년간 18명의 황제가 교체되었던 극심한 혼란을 끝내기 위해 방대한 로마제국을 네 명의 황제들에게 분할(分割)하여 통치하도록 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244-311)황제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 헬레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은 신자가 아니었으나 기독교에 대해 관용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의 전임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과거 로마의 영광을 복원하기 위해 로마의 전통적인 다신교(多神敎)를 숭배했고 기독교를 박해했다. 그러함에도 기독교는 이미 제국의 하층민들뿐만 아니라 귀족, 학자, 군인 등 지배층에까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제국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제국을 분할 해 네 명의 황제가 통치하게 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퇴위하자 네 황제는 서로 단일 황제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콘스탄티누스의 가장 강력한 숙적이었던 막센티우스(Marcus Aurelius Valerius Maxentius, 278?-312)와 결전을 앞둔 콘스탄티누스는 3121028일 정오의 태양 위에 빛나는 십자가가 나타났고 그 십자가에는 이것으로 이겨라!”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방패의 환영(幻影)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는지 아니면 후세에 만들어진 전설인지에 대해선 누구도 알 수 없으나 이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는 명확하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 세력의 지지를 얻어 막센티우스의 군대를 물리쳤고 서로마 전체를 지배하는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제는 즉위 직후 밀라노칙령을 내려 로마제국 내에서 종교의 자유를 승인함으로 기독교에 대한 핍박을 종식 시켰다.

역사학자 존 노리치(John Julius Norwich, 1929-2018)비잔티움 연대(A Short History of Byzantium, 1997)에서 역사상 그 어느 지배자도, 알렉산드로스도, 앨프레드도, 샤를마뉴도, 예카테리나도, 프리드리히도, 그레고리우스도, 콘스탄티누스만큼 대제(大帝, Great)라는 칭호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인물은 없다.”라고 평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탁월한 정복 전쟁을 했거나 뛰어난 통치술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公認)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한 것이었다.


2. 크리스마스의 역사적 유

- 이교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날에서 출발한 크리스마스 -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 탄생 이후 300여 년간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십자가형에 처해 지거나 산채로 불에 태워지고 사자 밥으로 던져지는 등 모진 박해와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이때 전통적으로 여러 신()을 숭배하던 로마제국의 사제(司祭)들은 그리스도교 박해에 앞장섰는데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자 이번엔 그 반대의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기독교 초기 때는 어떤 이유나 목적에 관계가 없이 전쟁은 원칙적으로 죄악(Evil Sin)이라 하여 전쟁에 반대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보여준 비폭력, 무저항, 사랑, 희생의 정신으로 상징되는 종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 후부터 전쟁에 관한 교리에 변화가 생겼다.

서로마제국 교회에서는 상당 기간 전쟁을 악으로 간주해 왔었는데 성 아우구스티누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시대에 이르면 정당한 전쟁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병사들의 전쟁 참여와 살상(殺傷)을 수용하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교황 시대의 문을 연 그레고리 1(Pope Gregory I, 540-604)교황 때 서로마에서는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이나 이단자들을 합법적으로 기독교도로 강제 개종시켜도 된다는 이론을 채택했다.

한편 이같이 전쟁에 대한 기독교 교리의 변화가 교회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과 무관하게 기독교가 공인된 직후부터 전통적인 로마 다신교 신전과 사제들이 기독교 사제들과 기독교 신자들에 의해 공격받았고 점차 세가 위축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농경사회(農耕社會)대부분이 그러하듯 일 년의 추수(秋收)가 끝난 뒤인 1224일부터 다음 해 16일까지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이라 하여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冬至)를 기념하는 축제(祝祭)가 있었다.

지금도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반도(半島)등 겨울이 유난히 길고 혹독한 지역에서는 동지를 전후해 커다란 축제가 연이어 벌어지기도 하는데 당시 로마의 동지제(冬至祭)축제 역시 범국가적인 행사로 거대하게 치러지는 행사였다.

동지(冬至)는 낮 동안 해가 하늘에 머무는 시간이 가장 짧은 날로 이날을 기점으로 해가 점차 하지(夏至,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날)때까지 길어진다. 그런 까닭에 이날을 태양의 탄생일이자 빛의 날로 기념하고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곧 봄이 올 것을 알리는 기쁜 날이었기 때문에 농경의 신()사투르누스(Saturn)에게 경배하는 날이 1225일이었다.

한편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1:9)이라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誕生)은 곧 세상의 빛이 탄생한 것이었기 때문에 로마의 이교도들이 1225태양의 탄생일로 정한 것처럼 12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과 일치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이 이교도들의 축제를 자신들의 축제로 전환 시켜 선교를 좀 더 쉽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도들의 축제일인 이날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1225일은 단지 이교도(異敎徒)들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었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한편 로마제국의 동방 지역에서는 1225일보다 16일을 하나님이 예수의 탄생과 세례 때 나타난 날로 기념했고 예루살렘에서는 예수의 탄생만 기념했다.

그러나 주 후 4세기경에 이르면 동방교회의 대부분 점차 12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함께 기념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이러한 크리스마스를 반대하던 예루살렘 교회 역시 결국 크리스마스를 예수의 탄생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교회는 오늘날도 1225일 대신 16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념한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되었듯이 기독교 역시 동서로 분열 각각의 입장과 교리에 따라 예수 탄생일을 기념했는데 동방교회는 12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지키고 16일을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는 주의 공현대축일(주현절, 主顯節, Epiphany)로 지켰으나 서방교회에서 주의 공현대축일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날을 기념하는 축일이었다


3. 크리스마스 트리의 유래

크리스마스의 상징물 중 대표적인 크리스마스트리(Christmas Trees)관습 역시 기독교 본래의 것은 아니었다. 로마력 설날에 로마 사람들은 자기 집 안팎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하는 관습이 있었고 자녀들과 주변 이웃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나무를 신성(神聖)하게 여기는 관습은 이집트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게르만족(Germanic peoples)은 신성하다고 여기는 떡갈나무(Quercus dentata, Oak tree, 참나무, 도토리나무)에 심지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8세기경 게르만족 선교를 위해 파송된 기독교 선교사들이 떡갈나무를 신성하게 여기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 이들의 관습을 역으로 이용해 전나무(Abies holophylla, needle fir, Manchurian fir, 소나무과)를 가지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하기 시작한 것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가까운 친지와 이웃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풍습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다른 풍습들이 유례가 불분명한 것들이 많지만 카드만큼은 유례가 명확한 편인데요.


4. 크리스마스 카드의 유래

1843년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에 새로 관장으로 부임한 헨리 콜 경(Sir Henry Cole, 1808-1882)은 너무 바빠서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편지 대신에 짤막한 메시지를 담은 카드를 만들게 되었는데 자신이 카드 속지에 쓸 편지를 쓰는 동안 미술가인 존 호슬리(John Callcott Horsley, 1817-1903)에게 크리스마스 풍경을 묘사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의뢰했다.이렇게 만들어진 카드를 보냈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미국에 무료 우편제도(郵便制度)가 신설된 뒤 독일에서 이민 온 루이스 프랑(Louis Prang, 1824-1909)이 미국의 크리스마스 카드 (Christmas card)산업을 일으켰는데 그는 바이에른에서 채석한 석회석을 사용하는 사치스러운 인쇄공정을 채택 그 덕분에 그림 한 장에 17가지 색을 입힐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사업은 대성공이었고 오늘날에도 크리스마스 카드는 가장 화려한 인쇄물 중 하나가 되었다.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장식물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Christmas’라고 쓴 것도 있으나 ‘X-MAS’라고 쓴 것도 있다. 크리스마스가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인 건 앞서 말했지만 ‘X-MAS’‘X’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X’는 영어 알파벧의 ‘X’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어의 그리스도(Χριστός)라는 단어의 첫 자인 크스이다. 그 뒤에 미사를 뜻하는 MAS를 붙인 것이다. 그래서 표기는 ‘X-MAS’라도 읽을 때는 크리스마스라고 읽어야 한다.


5. 크리스마스캐럴의 유래

또 크리스마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습 중 하나가 캐럴(carol, 기쁨의 노래, 축가)인데 캐럴이란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대표적이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사람들이 모여 둥글게 원 형태로 춤을 추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원무(圓舞)를 지칭하는 말 캐럴(carole)에서 유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세 후기 영국의 전통적인 노래 형식을 지칭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본래 영국의 캐럴은 절(V)이 하나의 후렴(B)과 교대하는 형식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캐럴은 모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노래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것이지만 14세기 무렵 영국에서 만들어진 캐럴들은 민중들이 만들고 부르는 종교적인 노래인 것은 맞지만 그 내용이 반드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캐럴을 지칭하는 말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 독일에선 크리스마스이브의 노래란 뜻에서 바이나흐트 리트(Weihnacht lied)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종교적인 노래로 불려지다 종교개혁 이후부터는 민중적 종교 음악이었던 캐럴이 사라지고 교회에서 정식으로 작곡된 찬송가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7세기에 영국과 스코틀랜드 등의 청교도들은 엄격한 교리 원칙에 따라 이 같은 모든 종교적인 축제를 부정했고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 역시 금지했는데 지나치게 엄격한 탓이었는지 몰라도 청교도 세력이 약해지면서 크리스마스 축제가 부활하게 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지역의 장로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는 대신 11일을 가장 큰 축제로 삼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신년예배를 드리는 것 역시 이런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만큼 크리스마스를 떠들썩한 나라도 없으나 청교도들이 처음 세웠을 무렵에는 오늘날과 같은 크리스마스는커녕 크리스마스 자체를 기념하지 않았다. 당연히 크리스마스캐럴도 없었다. 그러나 1857년경 미국의 흡킨스(John Henry Hopkins, 1792-1868, Episcopal)목사가 크리스마스캐럴을 작곡하면서부터 서서히 캐럴의 전통이 복원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캐럴은 교회에서 부를 수 있는 캐럴과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캐럴로 구분되는데 거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상업적 캐럴의 대부분은 1942년 할리우드 음악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홀리데이인(Holiday Inn)이 성공하면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들이다. 아카데미 영화주제가상을 수상(受賞)한 이 영화 속엔 우리가 잘 아는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가 수록되어 있다.

이때부터 1950년대까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Santa Claus coming to town’,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등 캐럴의 대부분이 만들어지는 캐럴의 홍수가 일어나게 되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수많은 대중가수가 캐럴을 만들어 부르나 교회에서는 이 노래들을 상업적인 캐럴이라 하여 부르지 않는다.


5. 산타클로스의 유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전설과 산타클로스(Santa Claus)라는 이름은 대개 3세기경 소아시아에서 선행으로 유명한 성 니콜라오(Saint Nicholas)주교(主敎)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타클로스 전설은 12세기 프랑스의 수녀들이 성 니콜라오 축일 전날인 125일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유럽의 로마가톨릭 국가들에서는 성인의 축일인 126일에 가족 중 한 명이 성 니콜라오의 분장을 하고 나타나 착한 어린이를 칭찬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17세기쯤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선을 베푸는 사람을 성 니콜라오라고 부르면서 그 네덜란드어 발음이 그대로 영어가 되었고, 19세기경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오늘날 산타클로스로 불리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아버지(Father Christmas)라고 불렸으며, 지금도 영어권 밖의 지역에서는 그렇게 부르는 곳이 많다.(https://namu.wiki/산타클로스) 그렇지만 어째서 빈민구제에 앞장섰던 성 니콜라우스가 빨간 옷의 뚱뚱보 할아버지로 변신 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산타클로스의 탄생과 키즈 마케팅(Kids Marketing): 마케팅 전문가들은 코카콜라 CEO 로버트 우드러프(Robert W. Woodruff, 1889-1985)가 청소년들이 미래의 새로운 소비자이며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는 점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코카콜라의 경영자였던 로버트 우드러프는 광고담당자들에게 코카콜라가 뭔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하며 코카콜라를 통해 이상적인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라고 다그쳤는데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코카콜라는 단순한 탄산음료가 아니라 꿈과 환상의 아이디어를 파는 드림 웨어(dream ware)여야 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가장 미국적이며 세계적인 이미지로서의 산타클로스였ek.

1931년 코카콜라가 붉은색 산타 복장을 한 뚱뚱한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산타클로스는 구세주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코카콜라는 상업용 일러스트 전문 화가였던 선드블롬(Haddon Sundblom, 1899-1976)에게 코카콜라를 위한 산타클로스를 그려달라고 의뢰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오늘날 성탄절의 대명사가 된 산타클로스이다.

이처럼 코카콜라에 의해 재탄생한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 레드(Coca-Cola Red)빛깔인 붉은 색 외투에 흰색 털을 단 옷을 입었고 종교적인 인상 대신 풍성한 흰 수염에 얼굴 가득 홍조를 띤 인자한 할아버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선드블롬이 탄생시킨 산타는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뒤 휴식을 위해 코카콜라를 마셨고 착한 어린이들은 산타가 선물을 넣어주는 양말 속에 감사한 마음으로 코카콜라를 담아두었다.

전통적으로 탄산음료의 비수기인 겨울철 매출 증진을 위해 구상된 코카콜라의 판촉 전략은 전 세계의 크리스마스 문화와 풍경을 변화시켰다. 어린이들은 종종 뚱뚱한 산타가 어떻게 굴뚝을 타고 내려와 자신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지 궁금하게 여기는데 사실 뚱뚱한 산타가 어떻게 굴뚝을 통과해서 내려와 선물을 주고 갈 수 있는지 그 비법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나 그가 왜 그렇게 뚱뚱해졌는지는 누구나 알 수 있다. 바로 코카콜라를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결론

오늘날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에 대해 또 아기 예수가 실제로 1225일에 탄생하셨는지 아닌지 그날을 밝히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즉 하나님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이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일 년 중 어느 날이었는가 하는 것은 부수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아기 예수의 탄생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과 생명이 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고 스스로 본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 해 주시기 위해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인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분의 삶을 올바르게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정은표 목사

 

1972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졸업(B.E.)

1980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신학원(원장 박윤선) 수료

1983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합동신학원(원장 박윤선) 졸업(M.Div.)

1984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강남노회 목사 안수

1980~ 1983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서울 충현교회(김창인 목사) 전도사

1983~ 1984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서울 충현교회(김창인 목사) 강도사

1984년 도미 LA 라성빌라델비아교회(조천일 목사) 교육목사 부임

1985~ 1991년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로렌하이장로교회 개척 시무

1996~ 2000년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카마리오장로교회 개척 시무

2001~ 2011년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아이다호한인장로교회 부임 시무

2012년 정년 은퇴,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남가주노회 회원

2013~ 현재 빛과 소금 미디어설립, ‘진리의 등대창간

2014~ 현재 201912(통권 84)부터 제호를 개혁신앙으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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