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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문', 사람의 진정한 가치 알려주다

[나관호 칼럼] 신분 뛰어넘은 세종과 장영실 우정, 예수님과 내가 오버랩되어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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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기사입력 2020-01-19

조선을 다스리는 성군 세종(한석규)과 천재 발명가 장영실(최민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를 보았습니다. 허진호 감독은 조선에 시간과 하늘을 선물하고자 했던, 두 천재가 쌓아올린 진정한 우정을 작품에 담았습니다.

 

역사 속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사랑했던 성군이었습니다. 한글 창제, 천문 분야 발전을 비롯해 노비에게 휴가 100일의 주는 법까지 제정했습니다. 그럼에도 세종은 고독한 왕이었습니다. 세종이 명나라가 압박을 견디고, 간신들이 배신을 거듭하는 가운데, 관노로 태어나 종3품 대호군이 된 천재 과학자 장영실은 세종을 믿고 따랐던 충신이었습니다. 세종과 장영실은 서로에게 같은 꿈을 발견했던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세종대왕 때 백성의 40%가 노비신분이었습니다. 갑오경장 이후 조선말에는 10%만이 노예신분이었는데, 그것은 미국 선교사들의 기독교 정신, 개화사상의 원인으로 신분이 탈피된 사람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조선시대 노비의 값은 ()’보다 싼값이었습니다. 가치가 말, 노예, , 밭 순이었습니다.

 

이런 시대환경 속에서 세종과 장영실의 신분을 넘어선 친구 같은 우정은 기적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만큼 세종대왕은 사람사랑, 백성사랑, 천문사랑의 가치를 알고 있는, 신분을 넘어 품격 있는 리더십을 가진 왕이었던 것입니다. 현대 리더십이 배워야 할 품격입니다. 영화 천문친구 리더십을 가르쳐 줍니다.

 

▲ 세종과 장영실은 서로에게 같은 꿈을 발견했던 소중한 존재였고, 우정을 나눈 친구였다. (사진:영화 '천문' 중에서....한석규와 촤민식이 열연했다,)     ©나관호

 

영화 속에서 서로 옆에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 장면은 압권입니다. 세종이 별을 바라보며 무엇이 보이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장영실이 전하의 나라가 보입니다라고 답변합니다. 명장면, 명대사입니다. 지도자 세종과 그를 따르는 장영실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한 신뢰가 드러났던 장면입니다.

 

큰 오락 요소도 없고, 화려한 CG나 임팩트 강한 연출도 없는 정말 순수하게 영화의 흐름과 배우들의 연기력으로만 승부를 낸 영화입니다. 나름대로 잘 지켜진 고증과 적절한 창작이 섞인 동화 같은 사극이라고 느꼈습니다.

 

천문’(天文)에서 ’(글월 문)자는 여러 의미를 지닙니다. 글월(錯畫); 어구(語句); 글자(書契); 문채(文章); 빛나다(); 법률(); 착하다(); 아롱지다(); 현상(現象); 꾸미다(); 아름답다(); 채색(彩色); ()입니다. 그리고 상형문자로는 사람 몸에 그린 무늬를 본뜬 글자입니다. 그래서 천문’(天文)이라는 말의 의미는 깊고, 넓고, 크고, 많은 뜻을 가집니다. 마치 우주처럼.

 

천문사업은 한글 개발만큼이나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영화 천문은 세종이 높은 업적을 쌓았던 장영실을 내쳤던 배경에 대한 추측과 상상력에서 시작됐던 작품입니다. 세종이 장영실을 내관처럼 가깝게 뒀다는 기록, 자격루를 만들었을 때 기뻐했다는 기록이 실제로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 두 천재가 만나 신분을 초월하는 신뢰를 가지게 된 과정을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영화 천문속 세종은 쇠약한 임금입니다. 명나라와 간신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강대국에게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갖가지 정치적인 상황에 휘말리는 리더십을 가진 세종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역사 속 조선과 명나라 관계를 영화는 그립니다. 실제로 당시 천문의기는 현대의 핵무기와 같았습니다. 힘을 가진 강대국 황제만이 천문의기를 개발할 수 있었고, 황제가 아닌 관료들이 천문 연구를 했을 때는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세종은 우리의 천문즉 우리의 시간과 하늘을 가지고 싶었던, 홀로 서는 조선을 꿈꿨던 인물입니다.

 

세종과 장영실 사이를 설명하기 위해 감독은 정철이 썼던 서정 가사 사미인곡을 등장시켜 예로 들었습니다. ‘사미인곡에는 임금이 신하에게 보내는 절절한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장영실과 세종은 사미인곡같은 관계였습니다. 장영실에게 세종은 노비였지만 꿈을 이루게 해줬던 왕이었고 세종에게는 장영실이 친구처럼 가까웠던 관계였습니다. 서로를 이해해주고 꿈을 실현시키는 사이였습니다.

 

나는 신하와 임금이라는 신분을 넘어 우정을 쌓는 과정을 보며, 영화 상영 내내 예수님과 나, 사이를 연관시켜가슴으로 보았습니다. 신분을 뛰어 넘은 관계, 우정, 목숨을 내어 놓아도 아까워하지 않을 관계, 좋은 친구관계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과 우리의 또다른 관계를 친구로 설명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한복음 15:13-15)

 

장영실에게 세종은 노비였지만 꿈을 이루게 해줬던 왕이었고 세종에게는 장영실이 친구처럼 가까웠던 관계였습니다. 친구는 신분이 아니라 짜릿한 관계언어입니다. 이해하고, 보듬어 주고, 마음을 나누는 가까운 사이를 말합니다.

영화《천문》은 사람의 가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종에게 장영실은 노비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한 인간이라고. 그리고 관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발행인 / 말씀치유회복사역(LHRM)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칼럼니스트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전문위원 / ‘세계선교연대경기북부 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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