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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주인공 네빌에게 쓰는 편지

영화 <나는 전설이다>..."당신은 어둠을 밝히는 하나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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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
기사입력 2008-01-23

▲  영화 '나는 전설이다'  


로버트 네빌에게
 

로버트 네빌, 저 안나에요. 잘 지내시죠? 요즘도 가끔 dvd 가게의 검은 단발머리 여자 마네킹과 인사를 나누나요?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는 ‘제발 안녕이라 말해줘!’라고 하지 않아도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떤 박사가 만든 암 치료제가 바이러스가 되어 6억 인구의 90%가 죽고 남은 5억 8천 8백만 인구는 감염 되서 변종인류가 되고 말았던 뉴욕의 한복판, 기억하지요? 내성을 가진 1%가 모여 사는 이곳은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답니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고 신문보고, dvd도 빌리고, 월마트 할인코너에서 베이컨을 할인 판매한다는 목소리가 들리면 종종걸음도 걸어요. 또 밤에 번쩍이는 네온사인도 여전하구요. 가장 분주한 도시인 뉴욕 중심가가 도시다울 수 있던 것은 화려한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인간의 따뜻한 체온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네요. 꿈만 같죠?

2000년, 뉴스에서 암을 치유할 수 있다는 희소식이 발표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100센트 완치율에 부작용은 0%라고 확신하던 그 박사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때만 해도 불치병이라 여겨졌던 암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을 거란 핑크빛 기대에 부풀었는데, 더 이상 천국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과학이란 환상 뒤엔 엄청난 파괴와 재앙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아무도 알지 못했었죠. 그놈의 바이러스! 결국 인간은 과학이란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네요.

네빌, 그날 부두에서 당신을 만난 건 정말 기적이었어요. 그때 당신은 아내와 딸, 그리고 마지막 말동무였던 당신의 개 ‘샘’까지 잃자 부두로 달려 나갔고, 변종인간들은 기회를 노리다 당신을 습격했죠. 당신 정말 큰일 날 뻔 했어요. 내가 가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죽고 말았을 거예요
.
당신이 했던 방송은 제 귀에 아직도 생생해요. 매일같이 보내는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고독한 당신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가 되었겠죠.

'내 이름은 로버트 네빌. 뉴욕의 생존자이다. 모든 am주파수로 방송한다. 만일 누군가 살아있다면 매일 해가 가장 높이 뜬 시각. 선착장으로 와라.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지켜주겠다.'

제가 갔을 때는 해가 가장 높이 뜬 시각은 아니었지만, 그날 밤 나도 모르게 부두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이것이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네빌, 그 동안 당신이 엄청난 고통 속에 있었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변종인간들에게 습격당해 죽을 뻔 한 당신은 아끼던 베이컨을 써버렸다고 나에게 버럭 화냈어요. 기억하나요? 그리고선 혼자 있고 싶다며 감정이 북받쳐 칼을 들이댔잖아요. 또 <슈렉>의 대사를 줄줄 외우면서 ‘나도 슈렉 좋아해’ 라고 말했던 그때, 난 그 동안 당신이 혼자 너무 외롭게 지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느꼈지요. <슈렉>의 장면 중에 “나는 괴물이 아니야”라는 대사가 나의 귀에 들려 왔을 때, 당신과 내가 변종인간 앞에서 이방인이 되어 버린 상황을 표현한 듯 했어요.
 
백신 개발을 위해 가까스로 데려 온 변종인간을 놓고 수십 번 실험했었죠. 그러나 심장박동수는 여전히 하늘로 치닫고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그 좌절감이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컸겠죠.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없어 죽어가는 영혼들을 생각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당신이 백신 개발에 성공했을 때를 난 잊을 수가 없어요. 변종인간들은 실험실 유리벽을 무자비 하게 부셔대고 있었고, 당신은 그 벽을 바라보면서 멈추라고, 그리고 살려주겠다는 말만 몇 십번 반복했었죠. 금방이라도 삼켜버릴 것 같던 그들 앞에서 저와 제 아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저 두렵고 무섭기만 했어요. 나는 그저 ‘내가 가려고 하는 정착촌을 영영 보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 뿐 이었죠.
 
당신은 인간으로 돌아온 변종인간의 피를 빼 내어 내 손에 꼭 쥐어줬어요. 그리고 이 피를 가지고 어서 마을로 돌아가라고, 해가 뜨기 전엔 이 굴뚝 속에서 나오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했어요. 당신이 죽은 실험실 안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그때 당신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안나,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는 변종인간들 앞에서 난 이제야 알겠어요. 당신이 옳았어. 신은 있어. 그리고 신이 이런 일을 만들지 않았어. 우리가 만들어낸 일이지.’
 
딸 말리는 잘 있나요? 우리 아들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답니다. 말리가 세상에 있었다면 내 아들만큼 자랐을 텐데. 고흐의 ‘별이 흐르는 밤’이 걸린 벽 앞에서 밥 말리의 노래에 대해 아냐고 물었죠? 그의 노래를 들어본 적 있냐고요. 당신이 떠난 뒤, 레코드 가게를 뒤져 찾아냈어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정착촌으로 가자고 했을 때 당신은 이렇게 말했어요. ‘세상에 악한 사람은 계속 악을 행하는데 내가 멈출 수 없다’던 말리를 존경한다고. 그 이름을 따 당신의 딸의 이름도 말리가 됐다고요. 당신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저도, 제 아들도 새로 시작 된 이 땅에서 말리처럼, 당신처럼 어둠을 밝히는 하나의 불꽃이 되겠어요.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중략)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네
흔들리는 기차에서도 별은 빛나고 있었다네
(중략)트왈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네

<1888년 6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고흐의 편지 중에서 >


여기 고흐 그림속의 ‘네빌’이란 이름의 별 하나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네요. 당신은 우리의 전설입니다. 평안한 그곳에선 웃음이 가득하길···.
 

2015년 3월의 어느 날

당신을 기억하는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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