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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한 문명 속에 던져진 하이테크 인간

<영화평> 존 바프르 감독의 <아이언 맨(Iron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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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철
기사입력 2008-05-06





▲ 아이언맨 스틸 컷 장면     © 정원철
헐리웃에서 드디어 트랜스포머에 이은 또 다른 실사로봇인 아이언맨을 탄생시켰다.

지난달 30일에 개봉된 존 파브로 감독의 ‘아이언맨'(iron man)은 그 출발이 솔직히 실사라고 하기엔 깡통로봇으로 무언가 미미하나 나중에는 최첨단 하이테크 티타늄로봇으로 깜짝 탈바꿈하게 된다.

그러나 그 배경이 무장단체 테러리스트와의 결투를 벌이는 낙후된 제3세계일 때는 왠지 미개한 문명속에 생뚱맞게 던져진 최첨단무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언맨이 테러리스트들을 무찌르고 원주민들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 정의로웠지만 어찌 보면 애초에 승패가 너무도 뻔한 싸움이었다. 거기에 환호하기엔 무언가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후 아이언맨에 필적하는 또 다른 (악당)아이언맨의 등장으로 이제는 하이테크와 하이테크의 만남이라는 대등한 게임이 펼쳐진다.


물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주인공에 대항하는 또 다른 강력한 무엇인가가 탄생한다는 것은 헐리웃 영화의 유사스토리이지만 이들이 있어 어쨌든 영화는 흥미와 긴장감을 불어넣어 준다.

그리고 아이언맨 속에는 귀중한 교훈 또한 빠지지 않고 들어 있다. 주인공 토니(로버트 다니어 주니어 분)와 노(老) 박사가 테러리스트들에 납치돼 강제 무기개발을 하며 드디어 초기 아이언맨을 탄생시켜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박사는 결국 자신을 희생하며 주인공을 무사히 보내게 된다. 자신의 생명의 대가로 다른 이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이는 주인공이 결국 과거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난민들을 구출하는 장면으로 이어지게 되고 자신의 목숨이 위태위태해 지는 고비까지 넘기며 악당 아이언맨과 결투를 벌이고 승리를 얻게 만든다.

이제 평화주의자이자 수퍼 히어로로 변화된 토니를 옆에서 항상 지켜보아 왔던 비서 버지니아(기네스 펠트로 분)는 토니의 목숨을 건 위험한 싸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때 토니는 명대사를 내뱉는다. “그래야 과거의 내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어” 결국 버지니아도 이러한 토니의 마음을 끝까지 함께하게 된다.

이번 영화 ‘아이언맨’을 보며 필자의 머릿속 기억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중학생 시절 필자는 ‘인간 로켓티어’라는 영화를 보며 엄청난 설레임과 흥분됨을 느꼈다. 인간이 하늘을 나는 설정이 너무 멋지고 장면장면들이 당시 사춘기 필자에게 너무나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었다.

당시 인간로켓티어는 일종의 로켓을 등에 지고 가면을 쓴 채 하늘을 나는 설정으로 돼 있었다. 그러다 17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아이언맨’을 통해 이제는 팔과 다리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초음속으로 날아다니는 21세기의 최첨단 하이테크 인간을 만나게 된 것이다. 거기다가 에니메이션 기법이나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로봇이 아닌 실사를 통한 영웅의 탄생은 사춘기의 감격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트랜스포머와 이번 아이언맨 사이에 상영됐던 우리 나라의 영화 ‘로버트 태권브이’에 대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스토리의 빈약함 때문이었을까? 에니메이션이라는 한계때문이었을까? 그다지 대중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내년에 실사영화를 통해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니 이에 관심이 쏠린다. 물론 애국주의 마케팅은 지양해야될 거 같다.

다시 아이언맨 이야기로 돌아가 아이언맨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주인공 토니는 전쟁무기판매사 ceo이자 천재 과학자다. 그는 신개발 무기들을 전 세계에 판매하며 그것들로 또 다른 국익을 창출한다는 논리로 살아왔지만 실상 그 첨단무기들은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키고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결국 자신이 그러한 처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탄생시킨 아이언맨은 결국 주인공이 그동안 개발해 왔던 첨단 무기의 ‘융합체’라 할 수 있다. 이제 주인공은 그것을 통해 인류를 지키고자 한다. 한순간에 인류의 적이 인류의 수퍼영웅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악당 아이언맨의 등장은 결국 첨단 이기가 지니고 있는 이면의 부정적인 파괴력과 인류에 대한 경각심을 나타내 준다. 결국 문명의 이기라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평화를 위한 휴머니즘적 도구일 때 비로소 안전해 지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우리 주위에서 인류사회와 최첨단 국가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인공적인 것들이 생산되지만 과연 그러한 것들이 인간애를 얼마나 담보해 주고 있느냐를 유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며 결국  그것들이 우리 인간이 보다 잘 살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이 사회가 돌아가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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