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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드릴 감사의 노래 (시147:1-12)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 설교 200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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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기사입력 2008-11-17

  본문 2-3절에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한 것으로 보아 시편 147편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왔을 때 지어진 시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은 “야훼를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이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1절에서도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하고, 7절에서도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하며, 12절에서도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합니다. 단지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선하고 아름답고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편은 온통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그 이유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편 147편의 기자가 내세우는 하나님찬양의 첫 번째 이유는 치유와 회복 곧 구원입니다. 시인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큰 사건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즉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그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와 무너진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고 민족공동체를 회복하게 하셔서 그들이 마음 속 깊이 입은 상처를 아물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그를 찬양해야 할 이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전지전능하심입니다. 5절을 봅니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상태에서 해방되고 잃어버린 나라로 돌아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과 민족공동체를 재건한다는 것은 그들이 눈물과 한숨 가운데 꿈꾸기는 했을지 몰라도 실제로 이루어지리라고 믿기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그것을 명한 것입니다. 페르시아 또한 이방나라인데 그 왕이 그런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일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역사의 주인이시고 만유의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이 놀라운 일이 에스라 1:1-4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모든 나라와 그 왕들의 마음까지도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하나님은 사실은 지구상의 민족과 나라들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까지도 모두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지혜와 권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기에 그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4절을 봅니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은하계에는 천억 개의 별이 있고, 알려진 천체공간에는 천만 개의 은하계가 있으며, 그 알려진 천체공간은 이론적인 우주공간의 십억 분의 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 많은 별들을 일일이 다 셀 수도 없고 그 수를 대충 짐작만 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 별들의 이름을 스무 개만 외우려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별들의 수효와 이름을 정확히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사람의 그것을 무한히 뛰어넘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정말로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런 지혜와 권능을 소유하고 있는 분이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지혜와 권능으로 당신의 백성이 치유와 회복을 얻도록 역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6절에서 말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를 찬양하는 일은 선하고 아름다우며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진정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들의 역사를 주장하시고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큰 손길에로 우리의 눈을 돌리게 한 시인은 8-9절에서는 세상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세세한 손길로 우리의 시선을 향하게 합니다: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이렇게 우리 사람들뿐 아니라 산의 풀이나 들의 짐승이나 공중의 까마귀 새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것이 다 하나님의 섬세한 돌보심의 역사로 인한 것임을 밝힌 시인은 10-11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언급합니다: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여기서 “말”은 군마를 말하며 “말의 힘”은 군사력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는 말은 전장을 달리는 병사의 다리가 튼튼하다는 뜻입니다. 강한 나라에 의해 자기 나라를 빼앗겨본 백성은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군사력을 기르고 병사들을 튼튼히 훈련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며 강조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언제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오직 그의 은혜에 의지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시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에서 이스라엘이 거둔 승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주시고 그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한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승리였음을 시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와 멀어지며 그를 의지하지 않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쓰라린 패배와 굴욕과 고통과 탄식의 세월을 살아야 했음을 시인은 상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고백적 선언이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한 데서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한결같으신 은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배은망덕과 범죄와 실수를 거듭한 이스라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는 결코 내치고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이방나라에 끌려가 오욕과 굴종의 역사를 경험한 유다 백성이 이제 해방과 국토의 회복을 얻고 새롭게 다짐해야 할 것은 힘센 말을 가지고 군사들의 다리를 억세게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것이라고 시인은 외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그것만 잘 지키면 다른 모든 문제를 다 책임지시고 해결해주실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참으로 감사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는 것입니다.

   시편 147편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부끄러운 과거사를 돌아보게 하며 역사와 온 우주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을 재발견하게 하고 그 앞에서 취할 바른 신앙과 삶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귀한 시편입니다. 그리고 이 시편은 오늘 우리에게도 참으로 귀하고 고마운 시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도 이스라엘이 겪었던 쓰라린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나라를 빼앗겼던 치욕과 고통의 세월을 지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도 광복의 역사와 부흥의 역사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광복과 부흥의 역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음을 믿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우주만물의 주관자이시고 모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 권능과 지혜로 이 나라를 오늘까지 인도하시고 지켜주시며 세워주시고 높여주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시편의 기자가 가장 강조하려고 한 신앙의 진리를 잘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10-11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20여 년 전 어둠 가운데 있던 우리 민족에게 복음의 빛을 던져주시고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60여 년 전부터는 정치적 광복과 함께 정부수립, 국권확립, 경제부흥, 문화발전, 국위선양이라는 빛나는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 놀라운 교회의 성장발전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역사만 생각해도 자손만대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우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 되어서 영원히 복된 삶을 소유하게 된 것, 이것보다 더 크고 감사할 제목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그 어떤 난관, 실패, 손해, 실망, 역경, 고생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비록 현재 전 세계와 함께 겪고 있는 경제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할 제목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하다가 큰 손해를 보고 실의에 빠져있을 것입니다. 주식 값이 반 토막이 났기 때문입니다. 펀드에 투자한 사람들은 더하다고 합니다. 결혼자금 마련하려던 사람들이나 집장만하려고 하던 사람들이 망연자실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전전긍긍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안 들리는 데가 없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마는 그래도 하늘나라에 쌓아둔 보화는 반 토막 나는 일 절대로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우리 각자가 처한 온갖 곤경 속에서도 감사할 제목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낙심할 필요가 없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탈장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기 전에 의사선생님으로부터 수술을 하면 당분간 굉장히 댕길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댕긴다는 것이 그저 거동하는 데 조금 불편할 것이라는 뜻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술을 하고 보니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임을 알았습니다. 댕긴다는 말은 딴 게 아니라 꼼짝달싹할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저 가만히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수술부위가 아픈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누워있자니 또 등짝이 아파왔습니다. 허리도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한 밤 중에 침대 위에 허리를 세우고 한참을 앉아서 등짝 눌리는 것과 허리 아픈 것을 해소시키려니까 또 수술부위가 눌려서 아팠습니다. 그때 새삼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지낼 뿐이라는 것입니다. 댕기지도 않고 등짝 아프지도 않고 허리 아프지도 않게 잠 주무실 수 있는 분들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배 눌려서 아프지 않은 채 안자계실 수 있는 분들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저기 온갖 주머니나 줄 주렁주렁 달고 병실 복도 왔다 갔다 할 일 없으신 분들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식은 반 토막 났어도 우리가 호흡할 공기가 반 토막 안 나고 우리가 마실 물이 반 토막 안 나고 대낮의 해가 반 토막 안 나고 우리 가족이 반 토막 안 난 것 감사합시다.

   갑자기 불어 닥친 경제위기 때문에 새 성전 건축계획에도 차질이 나지 않을까 걱정들을 많이 하실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제 교회 뒷문 바로 앞에 있는 미도파광화문건물의 일부를 사들이는 계약이 성사된 일도 감사할 일입니다. 물론 우리 교우들 가운데 이 건물을 사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계신 분들이 적지 않은 줄 압니다. 그래도 우리 당회는 우리가 계획하는 새 성전 건축을 위해서나 앞으로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나 이 건물의 절대적 필요성을 확신하고 매입을 결단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최선의 조건대로는 아니지만 금년도 평가액보다 30억 원 정도 싼 작년 평가액인 193억 원에 사기로 최종 합의를 마치고 그제 오후 두 시에 계약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되어도 측 사람들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한참 기다리고 있을 때 도착한 소식은 어떤 다른 데서 200억 원을 현찰로 주겠다며 이 건물을 자기들에게 팔라고 제안해 왔다는 것입니다. 제안 정도가 아니라 왜 더 준다는 데 안 팔려 하느냐, 무슨 흑막이 있는 것 아니냐 하면서 압박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롯데 측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간부대책회의를 하느라고 못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우리는 이 건물 매입이 물 건너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일어났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이 그까짓 몇 억 원 때문에 교회와의 합의를 깨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고 여기저기 호소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력을 다했습니다. 무엇을 했는지 지금은 밝히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피 말리는 시간이 지난 후에 예정보다 두 시간 늦게 드디어 애초 약속대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새문안교회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계약이 끝나자 개인적으로 믿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는 상대측 대표가 말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일을 해도 그 위에서 움직이는 그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기에는 이번 일은 도저히 성사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그룹회장님의 철학이 땅은 사두면 언젠가는 반드시 쓸 일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 그룹에서는 한 번 산 땅은 팔아본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 이 부동산을 매각한 것은 그룹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이 건물매입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래 새문안교회의 더 큰 발전의 위해 큰 발판을 마련해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너무나 감사할 일입니다. 여러분 이 건물매입은 새 성전 건축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또 새 성전 건축이 끝나고 10년이나 20년 후에 새문안교회가 더 발전해나가기 위한 유일한 출로입니다. 이것은 새 성전 건축과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바로 새 성전건축의 시작입니다. 이제 비로소 새 성전의 구체적인 구상과 설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일에 우리 교우들이 감사함으로 총력을 기울여 헌신하고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에게 더 큰 감사와 찬송의 제목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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