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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종으로 여는 축복의 길 (신 30:8-29)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 200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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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기사입력 2009-06-29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정말 행복을 느끼며, 누리며 항상 기뻐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정말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며 늘 감사하면서 말입니다.

요즘 여러분의 삶은 어떠십니까? 삶에 기쁨이 있으십니까? 삶에 감사가 넘치십니까? 하시는 모든 일이 형통하십니까? 뭔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십니까? 아니면 뭔가 답답하고 우울하고 찜찜하고 꼬이고 컴컴하십니까? 대부분 우리의 삶은 기쁨과 감사 그리고 형통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인지 아시겠습니까? 삶이 그렇게 힘들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하여도 혹시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을 안다면, 길을 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행복하게 잘 사는데도 법이 있고 식이 있고 길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옛날 동양의 선조들은 도를 닦았습니다. 서양의 선조들은 철학을 하였습니다. 동양의 선조들이 닦던 도가 바로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을 찾는 것이었고, 서양의 선조들이 하였던 철학은 행복하게 잘 사는 식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철학의 궁극적인 관심은 진리였는데 진리가 바로 삶의 이치를 뜻하는 것으로 즉 다시 말해 행복하게 잘 사는 삶의 이치와 식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길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훌륭한 일이었으나 그 길을 찾으려고 한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길은 본시 찾는 것이 아니라 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누구도 길을 묻지 않고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곳을 가려고 하면 사람은 누구나 길을 묻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찾아 오는 것입니다.

길을 물을 때 우리는 그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묻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그 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일까요? 그것은 두 말할 것 없이 그 길을 만든 사람일 것입니다. 실수하지 않고 가장 정확하게 길을 가려면 그 길을 만든 분에게 묻고 그 분이 가르쳐 주는 대로 가면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인생을 창조하셨으니 예수님이 길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신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후부터 인생관과 가치관이 달라져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과 똑 같은 인생관과 철학을 갖고 있었으나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 한 이후부터 우리의 인생관과 철학이 하나님과 달라져서 전혀 하나님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됨으로 하나님을 믿는 일이 본성적으로 어려워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불행의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배제시켜 버린 불신앙인들은 삶의 길을 하나님께 물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기와 마찬가지로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입니다. 잠시는 길이 넓어지는 것도 같고, 열리는 것도 같고, 그 때문에 잠시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그 길은 풀의 형통함과 같아서 조금만 지나면 마르고 스러지게 됩니다. 결국은 언제나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세상과 인생의 길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길을 찾고 그 길을 따라 가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신앙인들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불신앙인은 삶의 길을 하나님께 묻지 않고 스스로 찾으려고 하거나 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묻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신앙인들은 삶의 길을 하나님께 물으며 그 길을 따라 살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전자는 망해야 하고 후자는 늘 형통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고 늘 행복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삶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별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삶도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과 같이 그저 그렇고, 답답하고, 꼬이고, 묵직하고, 컴컴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일까요? 길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순종하여 갔는데도 그 길을 가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된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길이신 것은 틀림없는데, 그 길을 따라 살았다면 말씀대로 항상 기쁘고 늘 감사하고 형통하고 행복했을 터인데 듣기는 하고도 순종하지 않아서 일까요?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아마 여러분들도 인정하실겁니다. 우리가 듣기는 하면서도 순종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불순종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불순종에 있습니다. 우리가 듣기는 하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길을 찾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세상과 사람들과 함께 길을 가는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불순종의 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 갈 수록 그 불순종의 영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교사 강습회에 강사로 갔었습니다. 교사들이 많이 오셔서 첫날 집회 때에는 뒤에 서서 설교를 들은 교사들이 많았습니다. 둘째 날 집회에 총무 되시는 분께서 집회 시작 전에 앞에 나오셔서 뒤에 앉아 계시는 교사들에게 앞으로 나와서 앞자리부터 차례대로 앉아 달라고, 늦게 오시는 교사들을 위하여 뒤에 자리를 비워 달라고 여러번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교사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반복하여 광고를 하여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교사들을 보면서 저게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불순종의 영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요즘 열매나눔재단 후원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이제 한 두 주 정도 되었습니다. 재단이 어려워져서가 아니라 재단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단은 우리가 예상하고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빨리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던 성공 이상의 성공을 이루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교회가 지원하는 예산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재단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재단과 재단의 사역을 설명하고 한 달에 만 원 정도의 후원을 약속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을 이야기하고 그것으로 열매나눔 재단을 세우고, 열매나눔재단에서 탈북자를 위한 공장을 세우고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공장이 성공적으로 흑자 전환을 하여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다 감동하고 박수를 칩니다. 설교 시간에 박수를 받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위기가 너무 좋습니다. 설교하는 저도 흥분하여 소리가 조금 높아 지기도하고 말이 좀 빨라지기도 합니다. 분위기가 그 쯤 되면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교인들의 대부분이 후원자가 되어 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제일 많았을 때가 30% 정도 됩니다. 보통은 20%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거의 100%의 교인들이 공감하고 공감을 넘어 감동하고 설교 시간에 박수까지 치며 우리 교회와 재단이 하는 일에 동의하였지만 한 달에 만 원이라도 회비를 내면서 함께 참여하자는 부탁에는 정작 2 - 30% 정도 밖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정확하게 표현하면 재미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작정하신 분들의 20% 정도는 우리 직원들이 작정하신 카드를 보고 전화를 할 때 후원 회원 될 것을 사양하신다는 것입니다. 감동이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름 노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순종 연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연습하기 위하여 도구로 삼아 연습한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광고에 순종하는 연습입니다. 제가 만일 그때 그 강습회에 참석한 교사였다면 거의 틀림없이 총무의 광고에 움직였을 것입니다. 앞자리부터 앉아 달라고 하였으면 앞자리고 나갔을 것이고 한 자리에 일 곱 명씩 앉아 달라고 부탁하였으면 내 앞 자리에 몇 명이 앉았는가를 세어 보았을 것입니다. 둘째, 모금과 헌금에 순종하는 연습입니다. 제가 만일 우리 교회의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 운동과 열매나눔재단 사역과 특별히 기적으로 성공하게 된 박스 공장 이야기를 들었다면 줄을 서서라도 후원서를 작정하고 돌아갔을 겁니다. 실제로 거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후원서를 거의 작정하기 때문에 매달 제 통장에서 온라인으로 빠져 나가는 돈이 수 백 만원이 됩니다. 그런데 사는데 별로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 돈이 늘어 날 수록 제 생활은 점점 더 물질적으로도 넉넉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감사한 것은 그 넉넉해짐이 물질적인데서 끝나지 않고 영적인데 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셋째, 교통 신호등에 순종하는 연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연습을 하기 위하여 저는 빨간 불이면 서고 파란 불이면 가는 연습을 실제로 하였습니다. 그것을 생각 없이 어기게 되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순중하는 습관이 될까 싶어서였습니다.

부족하지만 순종을 연습하다가 순종이 조금씩, 조금씩 몸에 배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조금 부담스럽고 이해가 안 될 때에도 그냥 순종하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제 삶에서 답답하고 꼬이고 바닥이 나는 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의 일이든, 가정의 일이든, 자녀의 일이든 경제적인 일이든 모든 일이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제 힘과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성공을 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아침에 눈만뜨면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거의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아직 조금 부족하지만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 거의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제가 쉬지 않고 기도한다면 혹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 제가 새벽기도파도 아니고 철야기도파도 아니라는 것을 교인들의 대부분이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상태인 것은 거의 틀림없습니다. 제 의식과 무의식속에서 거의 한 시간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모든 생각과 의식과 판단은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 상태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생명과 복 그리고 사망과 화의 길을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로 순종하여 가면 생명과 복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불순종하면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라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 하리라> (신30: 15-20) 아멘.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순종으로 여는 축복의 길>일라고 정하였습니다. 순종은 축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고 여러 매체를 통하여 제 설교를 들으시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순종을 연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몸에는 연습하지도 길들여져 있는 불순종이 배어 있습니다.

불순종의 영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깨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순종은 쉽지 않습니다. 불순종의 영을 가진 우리들에게 순종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생각처럼 힘들거나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불순종의 영이 우리를 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거운 것이다. 힘든 것이다. 불가능한 것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다가는 바보가 되고 망하고 결국은 실패하게 될 것이다.’라고 속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도 가지고 와서 우링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1-14) 아멘.

순종하기 전까지는 어렵지만 막상 순종을 결심하고 순종해보면 생각처럼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금 힘들게 순종해 보면 반드시 그 순종에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집니다. 그 순종에 약속된 축복의 맛을 보게 되면 점점 더 순종의 길은 쉬워 집니다. 찬송가 중에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줍소서.>

저는 이 찬송의 가사가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이 가사가 이해가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순종이 축복을 여는 길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교우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소산을 많게 하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루어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과거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다가 받고 있는 복을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일은 하나님의 축복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식을 고집하다가 세상 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하기도 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와 같은 생각과 결정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보시고 성경에 약속하신 생명과 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을 연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광고에도 순종하고, 조금은 부담스러운 이런저런 헌금과 모금에도 순종해 보시고, 하다못해 교통신호등까지도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연습을 통하여 우리 몸 속에 숨어 배어 있는 불순종의 영을 쫓아 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도 늘 순종하는 삶을 살아 오늘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모든 축복의 증인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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