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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지 않을 참 믿음 (눅22:24-34)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 2010-03-14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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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기사입력 2010-03-15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 중 으뜸 제자라고 여겨지던 베드로가 당신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리라고 예고하셨음을 전하는 복음서들의 기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야기는 제자들의 논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 첫 절인 24절에 보면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합니다.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눅9:46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보면 거기서도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났다.”고 했는데 그 문제를 가지고 제자들이 또 다툰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그저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열두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크냐?” 하는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그들 사이에 서열을 정하는 논쟁이 일어났음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서열논쟁은 그들이 곧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던 주님의 나라에서 누가 어떤 권좌에 오를 것인가 하는 관심에서 온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전에 제자들이 “누가 크냐?” 하는 문제로 변론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하셨습니다(눅9:47-48). 제자들이 또 다시 그 문제를 가지고 다투자 이번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냥 묵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본문 25-32절 사이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말씀은 주님의 제자들 사이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사람은 세상에서 큰 사람하고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본문 25-27절을 다시 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세상에서는 사람들을 다스리고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대접받는 사람이 큰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주님의 제자들의 세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사람은 낮은 자리에 앉고 남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더 크냐 하며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바라고 다투는 제자들의 속된 생각을 질타하신 말씀입니다.

둘째 말씀은 제자들이 주님의 고난을 함께 이겨낼 때 그들에게 주어질 더 큰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28-30절입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이라.” 하신 것은 제자들이 삼년간의 사역 속에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압력과 거부와 반대를 함께 받으며 예수님과 함께했다는 말입니다. 이때는 가룟인 유다가 이미 예수님에게서 떨어져나간 때였습니다. 나머지 열한 제자와 가룟인 유다 사이의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제자들은 다 같이 주님과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골고루 주님나라에서 함께 큰 책임을 맡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커지고 높아지려고 다툴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힐난하신 것입니다.

셋째 말씀은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리라는 개인적인 경고와 권면입니다. 본문31-32절을 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까부른다”는 것은 체로 쳐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다.”는 것은 사탄이 하나님께 예수님의 제자들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그들을 시험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말입니다. 마치 사탄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해 줄 것을 하나님께 요청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 말씀은 서로 더 크다며 더 높은 자리를 바라보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그들 모두가 사탄의 시험에 걸려들 것임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서열과 자리를 놓고 다투는 가운데서도 부동의 으뜸자리를 인정받고 있었을 베드로가 제일 먼저, 누구보다도 심하게 사탄의 시험에 걸려 넘어질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제자들이 서로 누가 더 크냐고 다툴 입장이냐고 반문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가 반응했습니다. 그는 그날 밤으로 자기 자신이 무슨 일을 할지 알지도 못한 채 결연한 태도로 대답했습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본문 33절)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본문 34절)

오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에서 누가 큰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또 큰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이고, 큰 사람은 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여 명의 직제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크다고 여기며 예수님의 최측근이 되겠다고 욕심을 부리고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큰 자가 젊은 자와 같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어디서나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은 말석에 앉든가 자리가 부족할 때는 서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큰 사람은 자기가 먼저 자리를 양보하고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상석에 앉아서 받아먹는 사람이 큰 사람이고 서서 남을 섬기는 사람은 작은 사람일지 몰라도 주님의 제자공동체에서는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겸손과 섬김이 참으로 큰 사람의 덕목이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어려움이나 손해나 위협이 오면 제일 먼저 몇 번이고 주님을 부인할 것이면서 스스로 잘났다고 여겨 더 높은 자리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는 우리는 아닌지 돌이켜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믿는다 하면서도 실족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베드로를 위시하여 주님을 부인하거나 버리고 흩어진 제자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절대로 주님을 배신하고 부인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것을 잘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탄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으며 여종이 지나가며 던진 한 마디 물음에 황급하게 주님을 부인하고 만 베드로처럼 어느 한 순간에 어처구니없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믿음임을 겸손히 인정하며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는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당신을 부인할 줄 아시고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으며 그로 하여금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도 아시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실 리 만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탄의 공격에 무방비로 내버려두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궁극적 승리를 믿어야 합니다. 날마다 실족하면서도 주님의 기도 때문에 주님에게서 완전히 떨어져나가지 않는 우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로, 주의 제자로 살고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넷째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얻는 우리의 궁극적 승리를 믿고 게으르거나 불충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닭 우는 소리에 뒤늦게 자신의 어이없는 배신을 깨닫고 심히 통곡한 베드로(눅22:61-62)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말씀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돌이켜야 하고 그 후에 감당해야할 사명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수제자가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것은 다른 제자들의 마음을 약화시키고 동요하게 만들 것이지만 그가 돌이킨 다음에는 그들의 마음을 더 강하게 하는 일뿐 아니라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성장하게 하는 데 쓰임 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개와 겸손과 충성이 참된 믿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위하여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바로 그날 밤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주님의 기도가 아무런 힘이 없었던 것이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의 기도를 외면하신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당신을 부인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당신을 세 번씩이나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일시적으로 심약해져서 그러는 것일 뿐이며 근본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믿음과 사랑은 변함없을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통째로 다 버리지 않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배신자에서 충성된 종으로 회복시켜주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신 “떨어지지 않는 믿음”이란 어떤 믿음이겠습니까? 그것은 한 번도 실족하거나 실패하지 않는 완벽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후에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주님에게서 떨어져나갈 실패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실패는 주님의 체포와 재판과 이에 이어질 고난과 죽음,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닥칠 위험에 대한 염려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 신경의 실패였지 마음으로 주님을 부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은 죄 짓지 않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떨어지지 않는 믿음”, 주님께서 인정하실 참 믿음은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믿음입니다. 실족할 줄 모르는 믿음이 참 믿음이 아니라 회개할 줄 아는 믿음이 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자기 자신의 잘못을 뻔히 알면서도 인정할 줄 모르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며 주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갈 거짓 믿음의 소유자들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죄를 낱낱이 깨달아 알 수 있는 밝은 믿음의 눈을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 모두 그동안 일삼아왔던, 사실상 주님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언행들을 철저히 통회하는 이번 사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수없이 넘어졌던 우리들이지만 그처럼 다시 일어서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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