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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예배의날

“섬김과 봉사의 삶”(막10:45)

김명혁 목사(한복협 회장), 순천 원산교회 설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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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기사입력 2013-07-18

저는 제가 개척해서 29년 동안 목회하던 강변교회에서 5년 6개월 전인 2008년 1월 13일에 은퇴한 후 그 다음 주일부터 매 주일 100명 이하의, 대부분의 경우 50명 이하의,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며 설교하고 있는데 오늘은 100명 이상 되는 순천 원산교회에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일 예배를 제직과 교사의 헌신 예배로 드린다는 말을 이영수 목사님으로부터 듣고 오늘 아침 “섬김과 봉사의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도 중요하고 예배도 중요하고 성경공부도 중요하고 전도도 중요하고 목회도 중요하고 교회 성장도 중요하고 선교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있어서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섬김과 봉사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섬기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막10:45). 예수님께서는 섬기시기 위해서 봉사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보고 서로 발을 씻기는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사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병자들과 모든 죄인들을 긍휼과 용서와 사랑으로 섬기시는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다음부터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산다고 고백했습니다.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롬1:9).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롬15:25). 그리고 제물 되는 섬김과 봉사와 희생의 삶이 너무너무 귀중하고 기쁜 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2:17).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고후12:15).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예배 드리면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사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답고 더 축복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집사의 직분은 구제를 힘쓰는 섬김과 봉사의 직분입니다. “집사” 즉 “deacon” 이라는 말의 뜻은 “섬김” 또는 “봉사”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들은 구제를 힘쓰고 섬김과 봉사의 사역을 하기 위해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행6:3). 여기 “이 일”이란 구제와 섬김과 봉사의 일입니다. 목사와 장로와 교사의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28).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엡4:11,12). 성경에 권사라는 말은 없지만 권사의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권사에 비할 수 있는 “참 과부”의 직분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참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딤전5:9,10). 집사와 목사와 장로와 교사와 권사와 신자는 모두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베푸는 “섬김과 봉사의 삶”이 얼마나 귀중한 삶인지에 대해서 예수님의 삶과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사셨고 “섬김과 봉사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섬김과 봉사의 삶”과 “섬김과 봉사의 죽음”이라고 요약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복음주의 지도자 존 스토트 박사님이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가장 잘 요약해서 묘사하는 성경 구절이 막10:45 이라고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님은 “섬김의 삶”을 사셨고 “섬김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섬기러 왔노라” 라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친히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주 받은 문둥병자 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면서 섬기셨고, 열병으로 앓아 누운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만지시면서 섬기셨고, 두 소경의 눈을 만지시면서 섬기셨고, 각색 병자들 위에 손을 얹고 병을 고치시면서 저들을 섬기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제자들을 섬기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그리고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낮아져서 섬기는 자가 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4-27).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낮아져야 하고 착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자리와 높은 지위를 붙잡고 있는 사람은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자기 주장과 자기 고집이 강한 사람은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과 권위를 버리시고 친히 낮아지셨고 착해지셨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착해지심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신데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착해지셨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행10:38). 착한 일을 행하려면 두루 다녀야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은 경상도를 떠나 전라도로 가셨고,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은 평양을 떠나 제주도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노와 절망 가운데서 살아가던 한 여인에게 착한 일을 행하시기 위해 사마리아의 수가성으로 일부러 찾아가시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섬김과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섬김과 봉사의 삶”과 “섬김과 봉사의 죽음”이었습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도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았고 “섬김과 봉사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래 교만과 위선과 분노와 증오와 정죄의 극치로 달리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낮아짐과 섬김의 사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는 마음과 영혼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롬1:9). 사도 바울은 기근을 당하고 있는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서 구제 헌금을 모아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롬15:25). 그리고 자기 자신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대신 “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롬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빌1:1). 사도 바울은 주님의 종이 된 이후 자기의 의지와 계획과 기질과 취미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았고 주님의 의지와 계획과 지시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마게도냐로 가라고 하면 마게도냐로 갔고 로마로 가라고 하면 로마로 갔습니다. 이방인 교회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라고 하면 이방인 교회를 위해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방의 교회들을 위해서 매를 맞으라고 하면 매를 맞았고, 풍랑의 위험을 당하라고 하면 풍랑의 위험을 당했고, 순교의 죽음을 죽으라고 하면 순교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과 이방인 교회를 섬기면서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피를 흘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기까지 했습니다. 섬기면 섬길수록 원망과 불평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생기고 기쁨이 또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고후12:10).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사도 바울은 진정한 기쁨이 소유나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주님 섬김과 성도들 섬김에서 오는 것을 발견하며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편지를 쓸 때마다 섬김과 봉사의 삶이 너무너무 귀중한 것을 지적하면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라고 권면하며 분부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 전하는 자로, 목사와 교사로 세우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심이라고 사도 바울이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섬김과 봉사를 귀중하게 여기면서 칭찬하고 또 칭찬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1-5). 그리고 자기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봉사 위에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려도 기뻐하고 또 기뻐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2:17,18). 사도 바울은 결국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 땅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사랑과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다가 “섬김과 봉사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셋째로, 빌립보 교회의 설립자인 루디아도 사도 바울을 따라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루디아는 평범한 여자였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옷감 장사를 하던 평범한 여자였습니다. 본래 고향은 두아디라였는데 옷감 장사를 더 잘 하기 위해서 두아디라를 떠나 마게도냐의 한 도시인 빌립보에 와서 살면서 자주 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루디아는 고향을 떠나 외국에 와서 자주색 옷감 장사를 하면서도 신앙생활과 기도 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6:13에 보면 루디아가 빌립보에 와서 살면서도 안식일에 몇몇 여자들과 함께 빌립보 강변에 모여서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행16:14은 루디아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물론 사도행전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또는 ‘경외’하는 사람이란 말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고 믿음의 길로 조금 들어 온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믿음의 길로 조금 들어 온 루디아를 귀하게 보시고 빌립보와 마게도냐와 유럽 복음화의 선구자가 될 사람으로 지목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로 하여금 마게도냐의 빌립보로 가게 하셨고 거기서 루디아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섬세하고 오묘하고 놀랍습니다.

루디아는 사도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빌립보 강변에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결국 섬김과 봉사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섬기고 사도 바울을 섬기고 가족을 섬기고 빌립보 사람들을 섬기고 빌립보 교회를 섬기는 섬김과 봉사의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섬김의 첫 단계는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인데, 루디아는 사도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열어 청종했습니다. 섬김의 둘째 단계는 자기와 자기 집이 모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일인데, 루디아는 자기와 자기 집이 모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섬김의 셋째 단계는 손을 열고 지갑을 열고 집을 열어서 주님의 종들을 영접하는 일인데, 루디아는 손을 열고 지갑을 열고 집을 열어서 바울과 실라와 누가를 영접했습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행16:15). 섬김의 넷째 단계는 자기 집을 완전히 열어 교회로 삼는 일인데, 루디아는 자기의 집을 완전히 열어 교회를 삼았습니다.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행16:40). 결국 루디아는 섬김과 봉사의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립보서의 두드러진 아름다운 주제가 ‘교제’와 ‘섬김’과 ‘기쁨’인데 그것은 루디아의 ‘교제’와 ‘섬김’과 ‘기쁨’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루디아는 섬김과 봉사의 삶의 모범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권사님들과 여 집사님들에게 루디아와 같은 섬김과 봉사의 사람들이 되라고 항상 권면하곤 했습니다.


넷째로, 제주도 복음화의 선구자였던 이기풍 목사님의 사모님인 윤함애 사모님도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의 복음 사역 뒤에는 윤함애 사모님의 “섬김과 봉사의 삶”이 너무너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선교는 유창한 설교나 심오한 신학강의나 놀라운 이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봉사로 이루어지는데 윤함애 사모님은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봉사로 제주도 복음화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녀는 항상 머리맡에 약 상자와 성경책을 두고 자다가도 부르면 벌떡 일어나 제주도민들을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교인들 중 누가 운명하면 항상 달려가서 시체를 목욕시키고 얼굴에 화장을 해 준 다음 손수 만든 수의를 입히고 밤새 유가족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누가 아기를 낳으면 달려가서 아기를 받아주고 산모와 아기를 돌보아주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또한 그늘진 곳에서 울고 있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의 집은 항상 아침에는 거지 떼들로 낮에는 나병 환자들로 가득 찼다고 합니다. 손이 떨어진 나환자에게는 손수 밥을 떠서 먹여주었다고 합니다. 나환자들이 돌아간 뒤에도 그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윤함에 사모님은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아오는 동안 주님께서 사모님의 가슴에 채워주시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순수한 기쁨과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함애 사모님은 이기풍 목사님과 함께 제주도의 밤 하늘을 밝게 비춘 사랑과 섬김의 밝은 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섯째로,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인 정양순 사모님도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정양순 사모님의 하나님 섬김과 남편 섬김과 나환자들 섬김은 너무너무 귀하고 아름다운 섬김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하나님을 향한 순교적 신앙을 가지게 된 데는 정양순 사모님의 기도와 격려와 섬김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여수 경찰서에 수감된 지 10개월 후 손양원 전도사는 광주 형무소로 이송되었는데 이송되던 날 정양순 사모님은 자녀들을 데리고 여수 경찰서 앞에서 잠시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 짧은 만남의 순간 정양순 사모님은 남편의 신앙을 격려하는 단 한 마디의 말을 전했을 뿐이었습니다. 그의 딸 손동희 권사님은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어머니는 성경 한 구절을 손으로 가리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보! 여기 이말 아시지요? 신사참배에 응하면 내 남편 될 자격 없습니다. 영혼 구원도 못 받습니다.' '염려 마오. 걱정 말고 기도나 해 주구려.' 형사가 걸어와 아버지를 데리고 갔다. 잠깐 동안의 상면, 그리고 또 다시 긴 이별 .... 아버지는 광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그때 어머니가 펼쳐 보인 말씀은 요한계시록 2장 10절이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때는 내 나이 어리고 생각이 짧아 그 상황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없었지만, 어른이 되어 그때 일을 찬찬히 되짚어 볼 때마다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들곤 한다." 손양원 목사님도 후에 그 사실을 자녀들에게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네 어머니 신앙이 오늘날 나를 있게 했단다. 감옥에 있을 때도 네 어머니가 신앙의 보조를 맞춰 주었기에 이기고 돌아 올 수 있었던 거야. 신앙도 손발이 맞고 호흡이 맞아야 함께 정진할 수 있는 거지. 혼자서는 어렵단다. 아무렴, 대학 열 군데 나오면 뭐해. 믿음이 중요하지."

정양순 사모님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섬긴 분이었고 남편을 섬긴 분이었고 그리고 나환자들을 섬긴 분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2주일간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9월 28일 밤 11시쯤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당하여 48세에 순교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남편의 순교 소식을 접한 정양순 사모님은 남편의 시신 앞에서 비통해 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 당신 소원대로 됐군요. 평소 주기철 목사님을 그렇게도 부러워했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생 동안 주의 일을 하게 하시고, 손양원 목사가 소원하던 순교를 허락해 주신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정양순 사모님은 마지막까지 나환자들의 친구로 살다가 1977년 11월 26일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이 있는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가 운명하기 전 가슴에 꼬깃꼬깃 간직했던 돈을 꺼내어 딸에게 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돈을 밀양교회에 전해 주어라.” 밀양교회는 건축 중에 있던 나환자 교회였습니다. 정양순 사모님은 슬픔과 아픔과 고통의 골짜기를 걸어가면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면서 하나님 섬김과 남편 섬김과 나환자 섬김의 기쁨을 누리면서 산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양순 사모님은 손양원 목사님과 함께 여수와 순천의 밤 하늘을 밝게 비춘 사랑과 섬김의 밝은 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섯째로, “작은 예수”로 살던 장기려 박사님도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 섬김과 이웃 섬김으로 한 평생을 제물로 바친 장기려 박사님은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날 새벽 1시45분 경 8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때 한국의 언론들은 그 분을 가리켜 "한국의 슈바이쳐" 또는 "살아있는 작은 예수" 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장기려 박사님의 “섬김과 봉사의 삶”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곤 합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일평생 무소유로 가난하게 사신 분이었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따뜻하게 사신 분이었고, 그리고 예수님을 섬기며 충성스럽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말 보다는 감동적인 설교 보다는 실천적인 삶이 필요한 시대인데 장기려 박사님이야말로 사랑과 섬김과 봉사의 삶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신 분이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일평생 무소유로 가난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님을 따라서 무소유와 가난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개인은 물론 교회가 물질적 부요를 탐하는 것을 죄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교회가 건물을 크게 짓는다던가 외형적 확장에 우선적인 관심을 쓰는 것은 신앙의 본질일 수가 없다고 보았고 이런 경향을 자본주의적 맘몬이즘으로 물신주의로 이해했습니다. 한국사회가 잘 살아보자고 외치고 한국교회가 외적 성장에 골몰하고 있던 때인 1975년에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밀톤의 실낙원을 읽어보면 맘몬은 고층 건물을 잘 짓고, 물질 세계의 발전을 잘 일으키는 재능이 있는 마귀로 묘사되었다. 이것을 읽은 뒤부터는 고층건물을 보면 맘몬의 힘을 연상하게 된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건물 예배당도 나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느껴지지 아니하고 사람의 예술품은 될지언정 맘몬의 재주인 듯한 느낌이 든다. 또 우리는 세상에서 권세와 지위와 명예 그리고 사업의 번영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축하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여 살던 사람들에게 내려주시는 선물이었던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맘몬과 타협해서 산 결과로 된 것이 아니었던가?”

장기려 박사님은 또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따뜻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월남 후인 1951년 5월부터 부산에서 창고를 빌려 간이 병원을 설립하고 피난민들과 전상자들을 무료로 돕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복음병원의 시작이었고 나중에는 고신의료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1969년부터 8천 여명의 간질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했다고 합니다. 그는 치료비가 없어 고민하는 환자들을 몰래 밤에 병원 뒷문을 열어주면서 집으로 돌려보내기 일쑤였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의 삶의 철학은 사랑 실천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지고선이다. 사랑은 도덕의 도덕이요 생명의 생명이다. 사랑의 철학은 생명철학의 일대 혁명이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 사랑은 영원한 것, 사랑은 생명 자체이다.” 장기려 박사님은 "사랑의 통일론"을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사랑 앞에는 어떤 이념도 한낱 쓰레기일 뿐 우리는 무력도, 경제력도 아닌 오직 사랑으로 통일을 성취해야 한다." 장기려 박사님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따뜻하게 사셨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무엇보다 예수님만을 섬기면서 충성스럽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1947년 김일성 대학 의과대학 교수 겸 부속병원 외과 과장으로 부임할 때 주일에는 일할 수 없다는 조건으로 부임했고, 그 학교와 병원에서 일할 때 주일을 지키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1948년 8월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 하시던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장로로 장립 받은 후 평생 주님과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겼습니다. 그분의 삶의 모토가 "예수를 본 받고 섬기자" 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칭송을 받거나 섬김을 받기를 싫어했고 오직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섬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기 무덤에 "오직 주를 섬기고 간 사람" 이란 비문을 써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분은 "주님만을 섬기고 간 사람" 이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한 평생 사모님과 자녀들을 평양에 남겨 두고 온 슬픔과 아픔을 가슴에 간직하고 슬프게 살았지만 주님만을 충성스럽게 섬기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그리고 천국을 바라보면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물질주의와 맘모니즘으로 어두워진 한국의 밤 하늘을 밝게 비춘 또 하나의 순수한 사랑과 순수한 섬김의 밝은 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값지고 가장 귀중한 것은 부귀영화나 성공이 아닙니다. 많은 물질이나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의 세력을 과시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유명한 설교자와 유명한 목회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값지고 가장 귀중한 삶은 예수님과 사도 바울과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서 주님과 교회와 모든 사람들을 낮은 자세로 그리고 착하고 따뜻한 손길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섬김과 봉사의 삶” 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사셨고 “섬김과 봉사의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런 삶을 살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기적인고 정욕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인 죄인중의 죄인이지만 주님의 가르침과 사도 바울을 비롯한 신앙의 선배들의 “섬김과 봉사의 삶”을 본 받아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려고 애를 써 오고 있습니다. 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나눔의 손길을 펴려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1988년 여름 북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라는 나라를 찾아가서 가뭄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서 우물 10개 이상을 파주기도 했습니다. 1989년에는 방글라데시를 찾아가서 재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위해서 안과 병원을 하나 지어주기도 했고 노재인이라는 영양사 한 사람을 방글라데시에 파송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부터 홍수와 재난으로 고통 당하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서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의 결핵환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1999년경부터 불쌍한 연변의 조선족 고아 어린이들 170 여명을 돕는 일을 지난 13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2005년 12월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서 재난과 가난으로 고통 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하나 지어주고 준공식을 거행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0년 8월 27일에는 5개 종단 대표 9명과 함께 밀가루 300톤을 13대의 대형 트럭에 싣고 황해도 개성에 가서 그곳 민화협 대표들에게 전달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부어주셔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게 하시고 “섬김과 봉사의 기쁨”을 누리며 살다가 “섬김과 봉사의 죽음”을 죽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부음을 날마다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낮아져야 하고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착해져야 하고 따뜻해 져야 하고 부드러워져야 할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손을 열고 지갑을 열고 집을 열고 자기 자신을 내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눈물을 지니고 함께 울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추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섬김과 봉사의 삶”을 바로 살려면 하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처럼 손양원 목사님처럼 장기려 박사님처럼 하늘에 있는 아버지 집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순수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사랑과 은혜를 부어주셔야 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셔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게 하시고 “섬김과 봉사의 기쁨”을 누리며 살다가 “섬김과 봉사의 죽음”의 죽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 프랜시스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여 나를 섬김의 도구로 써 주소서.” “주여 나를 봉사의 도구로 써 주소서.”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은 “섬김과 봉사”의 도구로 살다가 “섬김과 봉사”의 도구로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은 “섬김과 봉사”의 도구로 살다가 “섬김과 봉사”의 도구로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에게도 그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514장(새459장) “누가 주를 따라 섬기려는가” 1절을 두 번 부르겠습니다. 

 
 
*김명혁 목사(한복협 회장), 순천 원산교회 설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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