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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비권을 행사하는 아들

생명을 살리는 대화법(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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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식
기사입력 2013-07-23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를 둔 학부모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대화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다음 운동선수처럼 몸집이 큰 한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나는 아들놈하고 대화를 하고 싶은데 같이 앉으면 주먹부터 나갑니다. 이것을 어떻게 할까요?”
 
같이 있던 학부모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 가운데 한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힘으로 아들을 못 이겨요, 어떻게 때려요? 그래도 이기시니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맞장구를 친다. 나는 그 남자에게 물었다.
 
“왜 주먹부터 나가는 거 같아요?”
 
남자가 대답했다.
 
“대화하자고 시간을 냈는데 자식이 묵비권을 행사하잖아요?”
“묵비권이요?”
“그놈은 말을 잘 안 해요. 물어보면 뭐라고 말을 해야잖아요?”
 
남자의 말은 맞다. 사람이 물으면 당연히 대답을 해야 한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물었는데 대답을 안 하다니 그건 분명 아들의 잘못이다. 그러나 상황은 꼭 아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대답하지 않는 아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왜 말을 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할까? 내가 다시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너무 윽박지르는 거 아녜요?”
 
나는 대화하는 태도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왜냐하면 좋은 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변이 어수선하여 집중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무시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한다 생각하면 마음을 열지 않는다.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려면 그 내용을 마무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상대의 감정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남자가 대답했다.
 
“내가 그놈을 잡아 죽이기라도 한답니까? 아들인데.”
“그런데 잡아 죽일 것처럼 인상을 쓰고 마주 앉으면 나도 무서울 것 같은데요?”
“아이쿠, 왜 그러세요? 내가 몸집은 커도 마음은 소심하답니다.”
 
남자는 큰 몸집을 꼬면서 대답했다. 좌중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내가 물었다.
 
“아들과 앉아 제일 먼저 무엇을 물어봅니까?”
“… 항상 대화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니까, 우선 문제가 된 거부터 묻게 되죠. 학교나 집안에서 생긴 문제부터.”
“그래요. 나는 그 질문이 문제인 것 같은데요?”
“아니, 당연히 궁금한 것을 물어야 하고, 그놈도 그렇게 한 이유가 있을 테니 자기가 왜 그렇게 했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또 나는 그게 왜 잘못되었는지 말해야 서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남자의 논리는 정연했다. 대화의 목적이 서로 생각을 나누며 소통하여 양자 간 합의점을 찾아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는 아들의 묵비권으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성질 급한 주먹이 나올 만도 했다.
 
나는 차분하게 좌중을 돌아보며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123 대화법>을 아십니까?”
 
내 질문에 다른 학부모가 대답했다.
 
“1분간 말하고, 2분간은 들어주고, 3분간은 맞장구를 쳐라.”
“잘 아시는 군요. 이 말의 핵심이 뭘까요?”
“말은 적게 하고 많이 들으라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대화, 특히 자녀들과의 대화는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로 말하게 하고, 듣는 것입니다.”
 
그때, 다른 참석자가 말했다.
 
“말을 해야 듣죠.”
“그렇습니다. 그게 기술입니다. 상대가 말하게 하는 것.”
 
그때 다른 사람이 물었다.
 
“말하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요?”
“마음대로 해보십시오. 용돈을 많이 줘 꼬드기든지, 아니면 평소에 신뢰를 쌓아야지요. 만나면 잔소리부터 해서 입을 닫아버리게 하지 말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모임에 참석한 모두가 내게 집중했다. 나는 그들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부모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자녀들이 다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그것을 잔소리라고 생각해 귀를 막지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자녀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다 알아듣지 못해도 스스로 입을 열어 말을 하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고,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의 수준은 그 입으로 말하는 정도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집에서 말을 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고 ‘우리 아이는 과묵해서 헛소리를 안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과묵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일 수도 있고, 대화의 진도가 맞지 않아 책망을 받지 않고 중간이나 가려고 침묵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일단 부모들 앞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면서 수다를 떨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관계에서 이따금씩 중요하고 심각한 질문으로 그 생각이 커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 한명이 물었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아이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죠?”
“하나의 팁을 준다면, 아이에게 부모가 듣고 싶은 말을 하라하지 말고,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 것, 아이가 흥미롭게 여기는 것을 질문하십시오. 어떤 운동이든지, 게임이나, 영화, 걸 그룹이나 춤 같은 거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말을 해도 잘못됐다고 바로잡으려 하지 말고 신명나게 설명하도록 부추기십시오. 맞장구를 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아빠는 나와 잘 통한다고 할 겁니다.”

대화는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말하게 하고 나는 듣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거나 어떤 조직의 보스, 혹은 가장이 되면 그 자리의 분위기를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리더는 당연히 말을 많이 하면서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듣지 않고 혼자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부하나 친구, 후배나 자녀들로 하여금 내편에서 멀어지게 하는 지름길이다.
야고보 사도는 말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여기서 듣기를 ‘속히 하라’는 말은 헬라어 ‘타퀴스’로 ‘빨리’라는 뜻과 함께 ‘준비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듣기를 ‘준비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말은 헬라어 ‘브라뒤노’로 ‘늑장을 부리다’, ‘지체하다’는 말이다. 결국 이 말씀은 “듣기는 늘 준비할 것이며, 말하기는 게으르게 늑장을 부리는 것처럼 극도로 말을 아끼라”는 말로 적용할 수 있다. 결국 ‘묵비권’을 행사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가 대답하기 쉬운 말, 자랑하고 싶은 것을 묻되, 끝까지 들어주며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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