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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길이, 복된 길이었습니다”

충절교회 정원섭 목사, C채널 힐링토크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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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수
기사입력 2014-07-25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존 인물로 유명한 정원섭 목사가 C채널 힐링토크 회복에 출연한다.

 

▲ 정원섭 목사     © C채널 제공

 

초등학생 강간·살인 누명을 썼던 정원섭 목사는 2011년 10월 27일 날 열린 재심 상고심에서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는 과거에 시골 동네 만홧가게 주인이었다. 그러나 1972년 9월 27일 강원 춘천시에서 벌어진 경찰관 딸 강간 살인 사건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딸이 실종된 지 14시간 만에 춘천시 우두동 논둑길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역전파출소장의 딸이 성폭행당한 뒤 목 졸려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자 내무부는 1972년 10월 10일까지 범인을 검거하라는 시한을 정해놓고 그때까지 범인을 잡지 못하면 관계자를 문책하겠다는 시한부 검거령을 내렸다. 사건의 발단은 단지 파출소장의 딸이 정 목사의 만홧가게를 자주 드나든 것뿐이었다.

 

사건 발생 직후 무더기로 잡혀온 용의자 30여 명 중 만홧가게 주인 정 목사도 있었다. 파출소장의 딸이 살해된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는 범인이 흘리고 간 15.8cm 길이의 하늘색 연필 한 자루와 머리빗 한 개였다. 경찰은 정 목사의 아들에게 연필을 보여주며 “이게 네 연필이 맞냐”고 물었다. 정 씨의 아들은 “맞다”고 답했다. 경찰은 연필을 물증으로 내세우며 정 씨를 범인으로 몰아세웠다. 결국 정 목사는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범행을 인정했다.

 

연필 한 자루만이 유일한 증거였다. 범행 현장의 최초 목격자는 1심에서 “내가 본 건 누런 빛깔의 연필”이라고 증언했다가 위증 혐의로 구속되자 하늘색 연필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듬해 3월 1심 법원은 정 목사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하고 1973년 11월 대법원도 정 씨의 유죄를 확정했다. 정 목사는 옥살이는 15년 동안 이어졌다.

 

1987년 성탄절을 하루 앞둔 12월 24일. 정 목사는 광주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성실하게 수감 생활을 하며 신앙심을 키운 정 씨는 출소 뒤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됐다. 다 잊고 용서해 보려하기도 했지만 잃어버린 명예만큼은 되찾고 싶었다.

 

무죄를 확신한 변호인들은 1999년 11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동아일보도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힘을 쏟았다. 3개월 동안 1000페이지가 넘는 사건기록을 바탕으로 강원 춘천시 홍천군, 충남 천안시 등 전국 각지에서 사건 피해자의 부검의, 수사 경찰 등 증인들을 인터뷰했다. 동네 사람들에게선 “협박에 못 이겨 거짓진술을 했다” 등 기록에 적힌 것과 다른 진술이 쏟아졌다.

 

정 목사는 재심을 청구했지만 서울고법은 2001년 10월 “증인들이 진술을 번복한 내용을 믿기 힘들다”는 이유로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정 목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요청하고 나섰다. 위원회는 경찰이 고문과 가혹행위를 하고 증거를 조작했다는 흔적을 발견하고 사건 1심을 선고한 춘천지법에 재심을 권고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7년 만에 법원은 정 목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년 뒤 대법원도 정 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증거 부족과 강압에 의한 허위 진술 때문이었다. 누명을 벗은 정 목사는 경찰이 저지른 고문, 회유, 협박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경찰 간부 딸을 살해한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정 목사의 기막힌 사연은 주인공이 경찰총수의 딸을 살해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하는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로 쓰였다.

 

정원섭 목사의 힐링 스토리는 오는 7월 28일 월요일 밤 11시에 C채널 힐링토크 회복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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