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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원리주의와 지하드(2)

FIM선교회 대표 유해석 선교사 (전 총신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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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석
기사입력 2014-10-24

3. 원리주의 운동의 역사

  정치적 세력으로서의 이슬람 원리주의는 무함마드가 메디나(Medina)로 이주하면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무함마드 사후에도 이슬람 안에서 쇄신과 개혁, 개선을 외치는 운동은 지속적으로 일어났는데 이러한 운동들이 비록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라 할지라도 대개 종교적 대의를 앞세우며 전개되었다. 주동자들은 대의명분의 원천을 꾸란과 예언자의 순나(Sunnah, 무함마드의 관행)에 두었으며, 그 궁극적 목표는 ‘순수 이슬람의 회귀’이고 ‘올바른 이슬람의 부활’이라고 주장하였다. 정치적 세력으로서의 이슬람 원리주의는 무함마드 사후에 4대 칼리프(caliph)의 암살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 정화운동으로서의 원리주의는 9세기에 시작되었다. 

1) 9세기의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

  9세기 초에 아흐마드 이븐 한발(Ahmad ibn Hanbal, 780-855)이 수피즘의 이단성을 지적하면서 이슬람 정화운동이 있었다. 무함마드에 의하여 이슬람 공동체가 형성된 이후 이슬람 대정복기를 거쳐 광활한 영토의 대제국이 형성되자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인도 등 정복지의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융합되어 피정복지에 뿌리를 내리면서 이슬람 공동체는 정치, 종교, 사회의 여러 면에서 복잡한 문제들로 인해 이슬람 신학의 정립이 불가피한 과제로 제기되었다. 외래 학문과 사상, 제도의 유입과 혼합으로 새로운 종교적, 철학적 담론이 일고 특히 외래사상의 공격에 직면해서는 이슬람을 방어하고 옹호해야하는 종교적, 논리적 설명과 구체적인 논증을 제시할 필요에 부응하여 사변신학파인 무으타질라파(Mu'tazilah)가 이성과 유추, 은유적 해석의 방법으로 경전 『꾸란』을 재해석하고, ‘꾸란창조설’을 주장하였다. 이에 이븐 한발은 이성과 철학사상에 근거한 무으타질라파의 교의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단정하고, ‘꾸란영원설’을 고수하며 사변신학을 고수, 이에 부정하는 행위를 악으로 간주하였다.

  이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운동이 살라피 운동(al-salafiyya)이다. 살라피 운동은 꾸란과 예언자 순나를 원문 그대로 이해하고 결코 은유적 해석을 하지 않으며, 이슬람 초기 시대의 살라프(salaf, 선조)들이 남긴 관행을 그대로 쫓자는 운동이었다. 살라프들은 꾸란이 계시되고 예언자 순나가 만들어 지는 것을 직접 보거나 전해들은 사람들로 꾸란과 순나의 가르침을 첨삭 없이 순수하게 실행했던 사람들로 인식되어 이들이 남긴 관행들도 어느 시대의 무슬림이건 꾸란과 순나 다음으로 누구나 존경하고 쫓아야 할 이슬람의 근원적인 지침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슬람의 원초적인 부활을 외치며 꾸란과 순나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러한 원리는 18세기와 19세기를 걸쳐서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븐 한발의 사상은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의 기초가 되었다

2) 18세기 원리주의 운동

  18세기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은 그 이전까지의 이슬람 팽창정책이 심각하게 쇠퇴하면서 무너진 서구에 대한 이슬람의 우월감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질문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 아라비아반도는 이슬람이 시작된 지역이라는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에서 밀려나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었다. 구심점을 잃은 이슬람사회는 점차 신앙심을 잃어 타락하고 부패한 사회로 인식되어, 종교적, 사회적 정화가 요구되었다. 쇠퇴해가는 이슬람 사회의 회복을 위하여 이슬람 신학자였던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비(Muhammad Ibn abd al-whhab, 1703-1792)는 지역 족장인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Muhammad Ibn Saud, ?-1765)와 동맹을 맺어 종교-정치 운동인 와하브주의(Wahhabism)을 창시했다.

  이 운동의 추종자들은 이 운동이 선지자 무함마드의 지도 아래 7세기에 이슬람의 시작을 재현한 것이라고 믿었고 이 믿음 안에서 아라비아 반도의 종족들을 통일하였다. 비록 이 운동은 오스만 터키 제국에 의해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사우드가의 자손인 압둘 라지즈 이븐 사우드(Abdulaziz ibn Saud, 1876-1953)에 의하여 오늘 날의 사우디아라비아를 건설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비의 이름을 딴 와하브표 이슬람의 비전은 사우디 정부의 중요 상품이 되었고, 정치적 종교적 정당화의 근원이 되었다. 와하비 운동이란 이슬람 수니파(Sunni) 지도자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의 정신을 따르는 것을 말하며, 와하비를 따르는 원리주의자를 와하비(Wahhabiyya), 그 가르침을 와하비즘(Wahabism)이라고 한다. 그것은 엄격하고 금욕적인 신앙으로서 꾸란, 선지자 무함마드의 순나, 그리고 알라의 절대적 유일성에 대하여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강조한다. 와하비의 추종자들은 다른 종족들과 무슬림 공동체들을 다신론자나 우상숭배자로 비난했다. 와하브주의자들의 눈에 비이슬람적 행동으로 인식되는 모든 것은 불신앙(kufr, 쿠프르)으로 여겼으며 이는 지하드를 통해 없애야 했다. 따라서 지하드, 즉 거룩한 전쟁은 불신자들과 싸워서 참된 이슬람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필수사항이었다. 한 예로 이븐 사우드는 1802년에 수니파 군대를 형성하여 시아파의 성지인 이라크의 카발라(Karbala)를 점령하였고, 약 2천 명에 이르는 시아파(Shi'ite) 주민을 처형하였으며 이맘 후세인(Imam Hussein)을 기리는 성지를 파괴하였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이때부터 더욱 심화되었다. 와하비 사상은 한정적인 시각과 보수적인 경향, 과격한 행동과 무력적 방법, 불관용, 지나친 배타주의로 그 한계를 나타내었다. 와하비 운동과 견줄만한 운동이 리비아에서 무함마드 빈 알리 사누이(Muhammad b. Ali al-Sanusi, 1787-1859)에 의하여 일어난 사누이 운동이 있다. 그는 이슬람국가 건설과 이슬람 전파를 목적으로 수피식 종단인 ‘자위야’를 설립하여 예배처소, 선교센터, 사회개혁 및 복지센터로 활용하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자위야‘는 기마술 및 전투기술을 익히는 훈련장이기도 하였다. 사누이의 가르침의 중심은 살라피아적 삶으로 돌아가는 것과 지하드 사상이었다. 또한 영국 식민지하에 있었던 수단에서 마흐디아 운동이 일어났었다. 마흐디아 운동은 무함마드 아흐마드(Muhammad Ahmad, 1844-1855)가 부패한 사회를 변화시켜 진정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려는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슬람 공동체에 대한 불신자들의 공격과 배교행위에 대한 방어차원으로서, 방어적 지하드 개념을 가지고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이슬람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투쟁을 정당화시켰다. 이러한 운동의 공통점은 무슬림 지배층에 대한 반발, 집권 세력의 진압으로 실패, 서구를 접한 적 없이 자생적으로 발생한 운동, 이교도와 외래의 관행들에 대한 이슬람 정화에 목적을 두었다.

  이러한 운동 가운데 와하비 운동은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운동이라는 점에서 현대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의 기원이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슬람 원리주의는 두 가지 경향을 띠고 있다. 첫째, 이슬람 내에 늘 있어왔던 자기 정화 운동이다. 둘째는 외부의 위협에 대한 결집의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 날은 후자의 경향이 강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전자가 우세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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