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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예배의날

"성경해석은 실천적 적용 되어야"

『이해와 설교를 위한 고린도후서 주석』펴낸 조석민 교수(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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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숙
기사입력 2016-10-08

 

▲ 조석민 교수(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와 『이해와 설교를 위한 고린도후서 주석』 

 

 

성서 본문에 기초하지 않은 신학 이론, 세상과 단절된 성서 해석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선명한 복음은 책상 근처에만 머물지 않고 각 사람의 마음에 날카롭게 파고들어 그리스도의 삶을 전하는데 손과 발을 움직이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힘찬 걸음을 내딛게 한다.”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와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조석민 교수의 말이다. 조 교수의 강의는 성서를 해석한 후 그 내용이 어떻게 현실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명쾌하고 분명하게 제시해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작 요한복음 새관점에 이은 또 다른 책 이해와 설교를 위한 고린도후서 주석이 이레서원에서 출간됐다는 반가운 소식에 7일 오후 3, 경기도 고양시 소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에서 조석민 교수를 만나 책에 대한 궁금증을 들었다.

 

▲  10월 7일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MA 강의실에서 요한복음을 강의하고 있는 조석민 교수     © 뉴스파워 윤지숙

 

독자들에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 교회개혁실천연대 전문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가족으로는 아내와 외동딸이 있습니다. 총신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를 받은 후에, 영국으로 건너가 University of Gloucestershire (BA), Trinity Theological College (ADPS)에서 공부했습니다. University of Bristol (MA, PhD)에서 <요한복음의 선지자 기독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NIGTC(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누가복음 WBC(Word Biblical Commentary) 를 쓰신 성경주석가 존 놀란드(John Nolland) 교수의 제자입니다.

 

! 왜 고린도전서가 아닌 고린도후서가 먼저지?’라는 생각이 드는 데요이해와 설교를 위한 고린도후서 주석을 먼저 집필하게 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쓰는 데는 얼마나 걸리셨는지요?

책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공개강좌를 하면서였습니다. 공개강좌에 참석한 학생들의 요청도 있었고, 10여년 고린도전후서를 강의하면서 고린도후서 주석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책을 써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직접 원고를 쓴 시간은 강의 시간과 비례하지만 실제로 책 출간을 위해 원고를 다듬은 기간은 약 10개월 정도 소요됐습니다.

 

주석서가 너무 심풀하면 전문성이 떨어지고, 전문성에 치중하면 독자들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책이 될 수 있는데, 교수님이 쓰신 고린도후서주석는 어느 쪽을 염두에 두셨습니까?

심플한 쪽에 가깝습니다. 첫째는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의 설교를 도우려는 목적, 둘째는 함께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려는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는 전체 13장이지만 방대한 분량의 주석서로 출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은 고린도후서라는 정원의 나무 한 그루 즉 한 절 한 절,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주석이라기보다는 전체 숲을 보도록 의도했습니다. 분량을 고려해서 300페이지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고린도후서가 다루고 있는 중요한 핵심들과 고린도서신의 통일성, 6:14-7:1의 신학적 논쟁 등의 이슈들을 일목요연하게 쉽게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서의 뚜렷한 차이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에 대한 교인들의 질문에 대한 바울의 목회적, 신학적 답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추천서라든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변호가 중점이 됩니다.

 

고린도후서의 전체구조를 스물 두개의 주제로 묶으신 점이 매우 독특합니다. 이유가 있으신가요?

고린도후서 전체의 단락을 전체 큰 맥락에서여섯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서론(1:1-11)과 마지막 문안 인사(13:11-13)를 제외하면 첫째, 1:12-2:11의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의 관계, 둘째, 2:12-7:16의 바울의 사도직 변호, 셋째, 8:1-9:15의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문제, 넷째, 10:1-13:10의 바울의 사도직 변호와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문맥의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내용들을 다시 문맥의 주제에 맞추어 소제목 22개로 분류하였는데, 그 문맥 안에서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입니다. 단락별 22개의 주제는 연속 설교의 주제나 필요한 부분의 주제로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단락별로 주제에 따른 설교자를 위한 적용이 눈에 띄는데요.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조금이라도 본문을 깨달은 만큼 실제 삶과 연결시키려는 열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실 안에서 성경 해석이 나오고 현실 안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될 때 성경 본문의 의미는 비로소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해석과 현실에서의 실천적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성경을 해석하는 의미가 상실된다고 생각됩니다. 성경해석은 현실에서 실천적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 조석민 교수의 강의에는 본문의 석의와 실천적 적용에 대한 논의가 뒤따른다.   특히 <<요한복음 새관점>>에는 로마의 시간 대,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관점, 사마리아 종교와 문화, 메시야관 (특히 타헤브) 등은 조 교수만의 아주 독특한 시점들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현재 3판 인쇄, 증보판 재출간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 뉴스파워

 

개인이나 공동체의 큐티나눔 시간이나 개인 성경공부에 고린도후서주석을 참고하면 다른 주석들과 어떤 점에서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성경 본문 이해에 근거하여 이 책에서 제시한 각 단락의 적용 점들을 대화와 토론으로 사용하면, 글자로만 이해했던 본문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이고 풍성한 실천적인 적용 점을 얻을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고린도서신하면 혼합편지로 다른 바울 서신의 일부분이 첨가됐는가? 유실된 세 편지들과 함께 서신의 단락 간의 긴장 관계 속에 바울 단편에 대한 모방인가? 하는 통일성의 문제가 제일 먼저 제기되는데요, 교수님은 어떤 견해이신가요?

많은 학자들은 고린도후서 1-9장과 10-13장의 어조차이는 10-13장이 원래는 1-9장이 쓰이기 이전이나 이후에 기록된 별개의 서신이라고 봅니다. 일부 학자들은 8장에서 9장의 전환이 부드럽지 않으며 후대 편집자가 9장을 8장에 덧붙였다고도 합니다.

 

저는 하나의 편지(통일성)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여러 견해와 주장들을 고린도후서주석서론에서 다뤘습니다. 저는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모두 다섯 번의 편지가 오고간 것으로 이해합니다.

 

먼저 고전 5: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를 근거해서 고린도전서 이전이 편지(분실된 것으로 추정)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서신은 고린도교회에서 바울에게 보내온 편지(고전 7:1; 8:1; 12:1; 분실)로 추정됩니다. 세 번째 서신은 고린도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교인들의 질문에 바울이 목회와 신학적 권면을 담은 고린도전서입니다. 네 번째 서신은 바울의 고린도 방문 계획을 변경한 후 눈물로 쓴 편지(고후 2:3-4, 9; 7:8, 12) 또는 엄중한 편지(분실)입니다. 다섯 번째 서신은 바울과 고린도 교인간의 화해의 편지로 고린도후서입니다. 바울은 눈물의 편지이후 여행 계획 변경에 대한 설명, 자신의 사도 직분에 대해 변호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책에 도표로 넣었습니다(p.24).

 

2:14-7:42:12-13 7:5-16에 나오는 디도에 관한 바울의 설명과 바울의 마게도냐 여행 내용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2:122:13에서 바울이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갔다는 화제 전환 후 7:5에서 마게도냐에 이르렀다는 언급은 단순한 문학적 비평의 잣대로 놓으면 이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경복궁, 창경궁에 대해 이야기하다 수원성을 얘기할 수 있는 것처럼 바울은 이야기 하는 주체로서 화제 전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6:14-7:1도 쿰란 문서와의 유사성을 들어 문맥에 맞지 않으며 바울과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고린도후서에서 발견되는 하팍스 레고메나’(hapax legomena; 성서에 단 한 번만 나오는 말이란 표현)들로 바울이 저작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 단어들의 동의어들은 본문과 바울의 여러 신에서 충분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 대해서는 고린도후서 6:14-7:1의 연구: 두 가지 핵심 질문과 석의’, 신약신학저널8 (2002), 98-125.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고린도후서에는 바울의 추천서와 연보문제가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데요, 이유가 있을까요?

당시 고린도교회에는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왔다는사람들(대적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영 열광주의 자들로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부추기고 조정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운 사람이지만 대적자들에게 바울이 전한 복음과 사도권(11:1-6)에 대해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추천서는 고린도교인들이며, 대적자들에 대하여 11:1-12:13에서 자기자랑 즉, 바보연설(Fool’s Speech)을 하며 데메섹에서의 체험과 환상, 계시와 함께 주께서 주신 사도의 권위를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세우기 위한 자신의 사역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도로서 겪은 다양한 고난과 시련, 수치스런 경험까지도 자랑에 포함시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바울은 자신이 복음으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고린도교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간주됩니다.

 

연보문제는 바울신학을 이해하는 첩경으로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바울이 일생을 두고 벌인 가장 큰 프로젝트였습니다. 8-9장에서 깊이 있게 다뤘습니다. Betz, H.D., 2 Corinthians 8 and 9,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를 참조하시면 도움이 많이 되실 것 같습니다.

 

바울은 1-7장의 화해의 편지 이후 8-9장에서 고린도교회가 1년 전에 약속했던 연보(고전 16:1-5)를 실행에 옮기도록 권면합니다. 이 모금은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 시기(AD 41-54)에 발생한 기근으로 빌립보, 베뢰아, 데살로니가 교회 등의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는 연보입니다. 이 연보는 구제기금으로 오늘날의 헌금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고후 13:13에서 공동축도 부분의 주석은 상당히 파격적입니다.

바울의 인사는 거의 정형화 된 것이었습니다(살전 5:28; 6:18; 고전 16:23; 4:23; 25; 16:20). 오직 성령 안에서만 공동체의 모든 다양한 구성원이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목사의 축도로만 사용되지만 본래 모든 그리스도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문안 인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사는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졌을 때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우러나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상대방을 축복하고 인사를 나누는 일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진심을 담아 성삼위의 이름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려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이렇게 인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죽음과도 같은 고난의 연속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까닭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경험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죽을 육체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남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다.”(p.111)는 이 시대 고난을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많은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해석인지요? 교수님은 어떻게 고난을 이겨 가시는지요?

저는 2005년에 아들을 갑자기 하나님께 떠나보낸 경험이 있고, 2013년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너무 견디기 힘들어 2~3년 동안은 꼭 필요한 전화나 메일 답변 외에 강의 요청도 사절하고 일체 외부출입을 하지 않고 지낸 적도 있습니다.

 

때론 삶을 포기하고 싶고,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가시는 방법이 다양하시구나!’라는 것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수용하기로 한 후에 마음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하지만 아들을 먼저 보낸 일은 아직도 어제의 일로 가슴 속에 하나님께 큰 물음표 하나를 갖고 살아가고 있지요. 다만 고난 때문에 삶의 태도와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달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후의 계획들과 기도제목이 있으시다면?

고린도전서의 집필과 함께 요한복음의 새관점에 이어지는 두 번째 책과 요한복음 주석의 집필이 다음 계획입니다. 2017년에 요한복음 주석이 집필되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이 외에도 조석민 교수의 저서로는 Jesus as Prophet in th e Fourth Gospel(Sheffield Phoenix Press, 2006), 그리스도인의 세상보기(대장간, 2011), 요한복음 새관점(솔로몬, 2015)이 있다. 공저로는 복음과 정치, 안식일이냐, 주일이냐?, 세월호와 역사의 고통에 신학이 답하라(이상 대장간), 바람직한 목회자 청빙(뉴스앤조이), 교회 직제론(예영커뮤니케이션), 야고보·벧전후·유다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요한 일··삼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요한복음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이상 두란노아카데미), 주는 영이시라, 복음주의의와 한국교회(이상 합신대학원출판부) 등이 있다.

  

▲ 조석민 교수는 2016년 2학기에는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에서 TH. M과 MA 과정의 학생들에게 '요한문헌'과 세미나 과목으로는 '요한계시록을   가르치고 있다.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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