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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방철호 목사, 모든 것 주고 떠나다

조화와 부의금도 받지 않고, 시신은 전남대 의과대학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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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기사입력 2018-02-14

  

지난 12일 저녁 850, 홀연히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고 방철호 목사(1936.6.21.-2018.2.12.)행동하는 목사로 광주 교계와 시민사회의 대표적 지도자였다.

  

▲ 고 방철호 목사     ©뉴스파워

 

 

고인은 충남 부여군 장암면 석동리 630번지에서 출생했으며, 대전사범학교와 조선대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숭의중학교와 숭의실업고등학교에서 교사, 홍은공업주식회사 전무를 거쳐 서울신학대 대학원에서 목회학을 전공했다. 신학생 때인 1969년 광주광역시 주월동에 소재한 주월교회를 시무하기 시작했으며 1972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목사안수 안수를 받고 본격적인 목회사역에 헌신했다.

 

고인은 1975년 민주쟁취국민회의 광주전남집행위원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에 참여했으며 진보기독교연합기관인 광주시기독교단협의회(NCC) 회장을 2회 연임했다. 특히 19805월에는 5.18광주사태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로도 광주시기독교단협의회 총무를 8회 역임했으며, 광주광역시기독교교단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광주 교계를 이끌었다. 고인은 또한 5.18민주화운동기념사업위원회 위원과 광주광역시 사회복지협의회 회장, 광주시민사회단체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맡아 교계는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했다.

 

광주성시화운동본부 고문으로 동서화합에도 힘을 쏟았던 고인은 지난 201698일에는 국회에서 열린 지역균형발전을 국민통합 대토론회추진위원회 대표위원장을 맡아 정치권과 정부에 지역 균형 발전을 촉구하기도 했다. 

당시 지역 사무총장을 맡아 토론회를 섬겼던 김훈중 장로(광주성시화운동본부 본부장)는 "고인은 토론회 준비를 위해 손녀 대학 등록금으로 주려고 모아뒀던 500만원을 포함해 1,000만원을  내놓으셨다."며 "정말 아낌없이 내놓으신 분이셨다,"고 추모했다.

 

고인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화가로 대한민국미술인협회 회원으로 한국현대미술대상전 추천작가로 국내 개인전 20회와 스위스 프리버그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오는 222일 오후 430분에 유스퀘어 금호갤러리에서 고인의 미술품을 모아 20회 나눔을 위한 빛과 어둠 전시회를 개최한다.

 

14일 오전 10, 고인이 목회를 했고, 은퇴 후에도 계속 출석했던 주월교회(담임목사 한 호)에서 장례예식이 열렸다. 한 호 목사는 고인은 시신은 전남대 의과대학에 기증하라고 했고, 조화와 부의금도 받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 중심으로 장례를 치러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 고 방철호 목사 장례식이 고인이 사역했던 광주주월교회에서 열렸다.     © 뉴스파워

  

이날 장례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이정재 전 광주교대 총장, 고인과 50년 친구인 안영로 목사(예장통합 증경총회장), 백남선 목사(예장합동 증경총회장), 맹연환 목사(광주기독교교단협의회 증경 대표회장), 김성원 목사(광주기독교교단협의회 대표회장), 박병주 목사(광주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김진오 CBS광주본부장,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한 호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예배는 최행규 목사(기독교대한성결교회 광주지방회)가 기도했다. 최 목사는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광주를 위해 수고한 고인의 광주사랑을 기억하며,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본받기를 기원했다.

 

고인과 37년 친구인 진충섭 목사(광주기독교단협의회 증경 대표회장, 기침 증경총회장)는 요한복음 1125절을 본문으로 영원한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진 목사는 고인이 내게 장례 설교를 부탁했다.”고 밝히고 고인은 광주 도성을 바르게,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광주 교계를 훌륭하게 이끌어 오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이어 십자가 뒤에는 부활이 있다.”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사흘 뒤에는 부활의 기쁨이 있다.”며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강조했다.

 

권점용 목사(광주백운교회)의 약력소개에 이어 장여옥 장로(광주주월교회)가 조사를 했다. 장 장로는 목사님은 인권목사로 교회와 사회를 구분짓지 않으셨다. 4.19 때는 시위대를 이끄셨고, 5.18 때는 시대의 죽음을 물리치고 시민을 위해 앞장서셨다.”목사님은 건강한 사회 구현을 위해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사셨다. 그리고 청빈의 삶을 사셨다.”고 추모했다.

 

장례식은 이종필 목사(광주새한교회)의 조가, 김창옥 장로(광주주월교회) 인사, 박흥식 장로(광주주월교회)의 유족 인사, 신차범 목사(학동교회 원로)의 축도로 마쳤다. 방 목사의 친구이자 사돈인 신 목사는 월요일 오후 250분에도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내일(13) 병원에 다녀와서 점심식사를 같이하자고 했는데, 하나님이 데려가셨다.”고 말했다.

 

헌화에 이어 운구는 전남대병원으로 향했다.

 

김경천 장로(전 광주동구 국회의원, 국가조찬기도회 광주지회장)고인은 12일 오후에도 광주전남 농수산물 판촉을 위한 행사를 주도하셨다. 저녁식사 후에 몸에 이상을 느끼시고 병원에 가셔서 침대에 누우셨는데 바로 돌아가셨다.” “정말 마지막까지 광주를 위해 봉사하시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고 말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아들 방치정 목사 자부 신은아 사모, 손주 주애, 주미 딸 방신옥 권사, 와 자부 박흥식 장로, 손주 경난, 지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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