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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숭실 재건 추진하겠다"

한목협 전국수련회에서 황준성 숭실대 총장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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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기사입력 2018-07-03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이성구 목사) 20회 전국수련회가 3일 오전 1030분 서울 동작구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 김덕윤예배홀에서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평화시대와 한국교회를 주제로 열렸다.
▲ 축사를 전하고 있는 황준성 숭실대 총장     © 뉴스파워

축사를 전한 숭실대 황준성 총장은 "평양숭실재건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평양숭실을 재건하겠다."고 밝혔다. 황 총장은 "과거 평양숭실 부지에는 러시아 대사관이 들어서 있다."며 "3만5천평의 부지에 평양숭실을 재건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숭실대학교는 18971010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배위량(裵緯良, W. M. Baird)이 평안남도 평양 신양리에 있던 자택에서 13명의 학생을 데리고 학당을 개설한 것이 그 시초이다. 1901년에 선교사 소안론(蘇安論)의 기금으로 한식 기와로 된 2층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고, 당시 한문 교사였던 박자중(朴子重)에 의해 숭실학당(崇實學堂)으로 명명되었다.

 

그 뒤 교육열의 고조로 고등교육의 필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19069월 대학부를 설치하고 중학부는 숭실중학교, 대학부는 숭실대학이라 명하였다. 1906년 감리교 선교부가 대학 운용에 참가하면서 합성숭실대학(Union Christian College)으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2명의 학생이 입학하여 1908년 대학부 제1회 졸업생 2명을 배출하였고, 1910년에는 재학생 수가 54명으로 증가되었다.

 

1912년 숭실대학으로 조선총독부의 정식 인가를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이 되었으나, 1925년 일제의 전문학교규칙에 의하여 4년제 문과만으로 편성된 숭실전문학교로 개편되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 계속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함에 따라 평양의 숭실전문학교·숭실중학교·숭의고등여학교 등 3()의 학교가 폐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사회 각계에서 이들 학교의 존속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무산되어, 19383월 마지막 졸업생 443명을 배출하고 숭실중학교 및 숭의고등여학교와 함께 자진 폐교하였다.

 

그 뒤 광복과 함께 졸업생을 중심으로 학교의 재건을 추진, 195312월 숭실대학 재건 기성회가 결성된 데 이어 숭실대학재단 이사회가 조직되어 19544월 설립인가를 받고 이듬해 510일 영락교회의 부속건물을 임시교사로 해서 폐교된 지 16년 만에 다시 개교하였다.

 

초대 학장에 한경직(韓景職)이 취임하였으며, 영어영문학과·철학과·사학과·법학과·경제학과 등 5개 학과를 설치하였다. 19576월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현재의 위치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고, 1959년 경영학과, 1960년 기독교교육학과, 1961년 농촌사회학과를 신설하였다.

▲ 숭실재건자이자 초대 학장을 역임한 한경직 목사 기념사진 및 유언     © 뉴스파워

 

▲ 숭실대 한경직기념관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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