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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고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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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민
기사입력 2018-07-04

이리 세상은 고통스러울까?

도대체 고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제부터 석가가 깨달은 거룩한 진리(사성제)번째 원리를 다루고자 한다. 이는 괴로움의 근원적인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석가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쾌락과 탐욕을 갖추고 여기 저기에 환희하며 미래의 존재를 일으키는 갈애가 있다. 그것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이다.[1]

 

사람의 다섯 가지 신체적인 감각기관(, , , , 감촉)쾌락의 유혹에 아주 쉽게 노출된다. 또한 정신 세계의 감각기관인 마음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므로 감각적인 쾌락의 유혹에 빠져서 허우적 대는 것이 불행의 근원이고 괴로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더욱 쉽게 말해 신체적인 감각기관을 통해서 어떠한 대상에 대한 정보들이 마음에 전달 되어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마음이라는 감각기관은 대상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체적인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되어지는 잘못된 정보(주관적감정이나편견)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우리는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석가의 주장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가져다주는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겪고 있는 비극의 원인은 하나님도 아니고, 마귀도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에게 온갖 고통과 윤회를 불러오는 진짜 원인은 인간 내면에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정신세계의 감각기관인 마음에 모든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석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의 다섯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과 여섯 번째인 정신의 대상,

이것들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납니다. (Stn.171)

 

어떠한 물질적 형상들(, 자동차, 남자, 여자등과 같은 사물들)대한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접촉이나 체험은 어떠한 느낌이나 감정으로서 우리의 마음에 수용되어 진다. 바로 때에 욕망의 대상이 생겨나는 것이고 이로 인해 괴로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이러한 욕망의 대상에 대한 탐욕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고통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는 이렇게 권고한다,

 

탐욕에 물들어 아름다워 보이는 인상을 회피하라.

부정한 것이라고 마음을 닦되,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켜라. (Stn.341)

 

결국 인간 내면에 있는 탐욕, 욕망, 갈애, 열망등이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비극의 실제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탐욕이 인간의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으로 간주되어진다. 놀랍게도 성경도 이러한 사실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114-15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그렇다면 탐욕, 욕심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잡아함경> 28 752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어느 부처님께서 사밧티성 제타숲 아나타핀디카동산에 계셨다.

그때 가마비구가 부처님께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탐욕이란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마비구에게 말씀하셨다.

탐욕이란, 다섯 가지 욕심을 자라게 하는 것이다. 무엇이 다섯인가.

눈으로 색을 식별할 , 사랑할 만하고 마음에 만 하고 기억할 만하다 하여 욕심을 내어 더욱 자라게 한다. 이와 같이 , , , 몸이 소리, 냄새, , 촉감을 식별할 , 사랑할 만하고 마음에 들만하고 기억할 만하다고 해서 욕심을 내어 자라게 하면이것을 탐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자체는 탐욕이 아니다. 그것을 탐하고 집착하면 그것을 탐욕이라고 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세간의 다섯 인식 대상, 그것을 애욕이라 하지 않는다.

그것을 탐하고 생각하는 , 그것이 사람의 탐욕이니라.

온갖 언제나 세상에 있으니 수행자는 탐욕을 끊어야 하리.

 

<숫타니파타>경전에서 석가는 탐욕은 크나 큰 거센 흐름으로, 열망은 흡입력으로, 집착은 혼란으로, 그리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넘기 어려운 수렁으로표현한다. (Stn.945) 이는 인간의 탐욕이 모든 고통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불교 사상의 이해>인간의 탐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욕망은 인생을 이끌어 가는 동력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인생을 지배하는 힘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욕망의 구체화라고 있다. 인간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있다. 그러나 욕망은 주인이 노예를 부리듯이 인간을 마음대로 부린다. 인간은 한없이 욕망하고 욕망때문에 끝없이 고통을 당한다. 인간은 욕망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기때문에 괴로움을 당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채워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욕망은 채워주면 채워줄수록 커질결코 충족될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다에 빠진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2]  

 

이러한 탐욕의 속성으로 인해 석가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탐하지 않은 죽지 않을 것이요

도를 잃으면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니라.

탐하지 않은 기쁨이 이르게 되고

이를 쫓아 도의 즐거움을 얻게 되느니라. (법구경 021-22)

 

탐욕에서 근심이 생기고 탐욕에서 두려움이 생긴다네.

탐욕하던 바를 없애게 되면 무엇이 걱정되고 무엇인들 두렵겠는가? (법구경 216)

 

감각적 쾌락은 다양하고 달콤하고 즐거우니,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마음을 혼란시킨다. 욕망의 가닥들에서 이러한 위험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Stn.50)

 

하지만 이러한 탐욕조차도 고통을 일으키는 번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탐욕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주목되어 진다는 것이다. 고통의 원인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주요한 원인으로 인식될 뿐이다. 알고보면 탐욕조차도 어떠한 원인에 의해 조건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탐욕은 감수(느낌)에서 비롯되고, 감수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접촉에서 비롯된다. 이에 대해 석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들은 욕망을 인연으로 하고,

세상에서 탐욕도 욕망을 인연으로 일어납니다. (Stn.865)

세상에서 쾌락과 불쾌라고 부르는 , 그것에 의해서 욕망이 일어납니다. (Stn.867)

쾌락과 불쾌는 접촉을 인연으로 일어납니다. 접촉이 없을 때에는 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Stn.870)

명색 (정신, 신체적과정)조건으로 접촉이 일어납니다.

소유는 욕망에 의해서 생겨납니다. 욕망이 없을 때는 나의 없으며,

물질적 형상이 소멸했을 때에 접촉도 없어지고 맙니다. (Stn.872)

 

결과적으로 우리가 갖고 싶어하는 물질적 대상에 대한 인식이나 판단이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탐심이 사라진다. 이러한 탐심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각능력이 사라져야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각능력은 어디서 올까? 바로 다섯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다. 결국은 우리의 신체적인 감각기관을 통제할 때에 비로소 탐심을 제거할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에 대해 석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각에 대한 지각도 여의고, 지각에 대한 잘못된 지각도 여의고,

지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각이 소멸된 것도 아닌,

이러한 상태에 도달한 님에게 물질적 형상이 소멸합니다.

왜냐하면, 지각을 조건으로 희론적 개념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Stn.874)

 

그러므로 고통과 번뇌에서 자유로워진 행복한 삶을 살기원한다면 우리는 석가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석가는 말한다, 눈으로 탐내지 말아야 하고, 저속한 이야기에서 귀를 멀리해야 하고, 맛에 탐착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것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Stn.922)

 

궁극적으로 괴로움의 원인을 조건 발생적인 원리(연기법)분석하자면, 무명 혹은 무지가 바로 모든 고통의 첫 번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명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증일아함경> 46 49-5경에서 석가는 이렇게 답한다,

 

무명이란 무엇인가. 괴로움을 모르고 괴로움의 집기, 괴로움의 멸함, 괴로움의 멸함에 이르는 길을 모르는 것이다. 이것을 무명이라고 한다.

 

석가가 주장하는 사성제의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물질적 형상에 사로 잡혀서 산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소유하고 싶은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무지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사로잡히게 된다. 만일 우리의 감각기관이 보여주고 들려주고 느껴진 대로 어떠한 물질적 형상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우리는 욕망의 늪에서 빠져나올 없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애착은 집착으로 이어진다. 결국은 이러한 집착으로 인해 우리 마음은 혼란스러워지고 괴로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는 이렇게 말한다,

 

일반 사람들이 갖는 세속적인 것이 어떠한 것이든,

현명한 님은 모든 것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그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환호하지 않아 집착하는 일이 없는데,

무엇을 집착할 것입니까? (Stn.897)

 

석가에 의하면, 탐욕이나 집착은 바로 무지에서 생겨난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인생은 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영원히 존재할 것으로 생각되는 자아나 영혼은 없을 뿐만 아니라 신이나 사후세계조차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탐욕에 사로잡혀서 집착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의 영혼이나 소유물을 계속해서 유지할 있는 사후세계가 존재하지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석가가 말하는 최고의 경지는 바로 무지를 벗어나 지혜를 깨우치는 것이다. 여기서 지혜는 바로 아무 것도 없는 상태(Stn.976)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이는 여섯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얻게 되는 지식이나 정보를 비우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주관적으로 그려놓은 어떠한 대상에 대한 이미지나 견해를 제거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돈이 최고다. 돈이면 된다는 생각들이다. 아니면 예쁜 여자나 잘생긴 남자와 살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집이나 멋있는 자동차를 사면 너무나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도 아주 좋은 예들이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없는 상태는 세상이나 인생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버리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정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안에 숨어있는 감각적 욕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사물에 대한 소유욕이나 집착도 저절로 없어지게 된다. 결국 최고의 경지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슬픔도 걱정도 괴로움도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살아서 세상에서 열반을 성취하게 된다. 석가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자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한다,

 

성자의 삶을 사는 님은 진실을 떠나지 않고, 거룩한 님은 단단한 위에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참으로 고요한 님이라 불립니다.

그는 현명한 자로서 지혜에 통달하고, 가르침을 알아, 집착이 없으니,

세상에서 바르게 행동하고,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감각적 욕망을 뛰어 넘어, 극복하기 어려운 집착을 넘어선 님은

흐름을 끊어, 묶임이 없고, 슬퍼하지도 않고,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Stn.946-48)

 

명색 (정신, 신체적 과정)대해서 것이라는 것이 전혀 없고,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세상에서 잃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것이다.또는 이것이 다른 자의 것이다라는 생각이 없다면,

것이라는 없으므로, 나에게 없다.해서 슬퍼하지 않습니다. (Stn.950-51) 

 

결국 석가모니가  6년 간의 수행을 통해서 깨달은 진리는 바로 이것이다.

1.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2. 이러한 고통의 직접적인 원인은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과 집착이다.

3. 하지만 인간의 탐욕과 집착은 결국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지는 바로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무지는 만물이 변하기에 인생은 무상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무지는 또한 창조주 하나님이나 하나의 실체로서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사후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생은 단지 죽으면 끝난다는 사실에 대한 무지를 말한다.

4. 우리가 이러한 무지를 벗어나 지혜(명지)깨닫게 되면 모든 고통에서 자유롭게 된다.

명지는 석가가 깨달은 가지의 거룩한 진리를 말한다. 열반의 성취는 모든 소유욕과 더불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려는 욕심까지도 버릴 때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석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착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없는 것에 의지해 일체를 버리고 최상의 지각이 있는 해탈에 도달한 , 우바씨바여, 거기에 종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Stn.1072)

 

헤마까여, 세상에서 보거나, 듣거나, 감지하거나, 인식한 사랑스런 대상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여의면,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열반의 토대입니다. (Stn.1086)

 

불교는 고통에서 자유롭게 되는 지혜를 가르치는 종교이다. 결국 석가가 말하는 지혜를 깨달을 때에 비로소 모든 괴로움의 원인들을 제거할 있다는 것이다. 무지를 벗어날 있는 깨달음을 명지라고 말한다. 이는 열반에 이르는 비결이 바로 석가가 가르쳐주는 지혜에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석가는 말한다,

 

여러 지각에서 떠나면 속박이 없고,

지혜로서 해탈하면, 미혹이 없습니다. (Stn.847)

 

그러기에 존자 우다야는 석가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무명을 부수는 궁극의 앎에 의한 해탈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Stn.1105) 결국 석가가 깨달은 진리가 바로 무지에서 벗어날 있는 지혜라는 것이다. 수행자가 지혜를 통해서 해탈에 이르기 때문에 명지를 궁극적인 앎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정세근 교수는 불교는 이지적이고 설명적인 종교라고 말한다.[3] 문제는 이러한 석가의 깨달음만이 우리를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줄 있는 유일한 지혜라는 것이다. 석가는 말한다, 진리는 하나일 , 번째 것은 없습니다. (Stn.884)  

 

과연 석가가 말하는 해탈에 이르는 길이 유일한 길일까? 우리가 인생무상을 깨닫고 모든 소유과 탐욕을 버리면 정말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있을까? 나아가 과연 인간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탐욕과 집착을 버릴 있을까? 사실 기독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기독교와 불교는 모두 인간의 죄악성을 고발한다. 그리고 죄악성을 해결하지 못하면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죄악성을 해결하는 방법은 종교가 너무나도 다르다. 아니 정반대다.

 

석가는 인간 스스로 자신의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가르친다. 신을 포함한 어떠한 외부적인 힘도 의지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구원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죄의 문제 그리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수 자신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리하면 모든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하나는 석가의 가르침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삶을 있다면 당신은 석가가 가르치는 자력적 구원의 길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만약 당신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없다면 당신은 예수를 구원자로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자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마태복음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자야 안심하라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이 속으로 이르되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예수께서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마태복음 9:2-6)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는  죄 가운데서 허덕이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오라고 초청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자들아 내게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멍에는 쉽고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1] 붓다의 가르침고 팔정도, 67.

[2]불교사상의이해, 92.

[3]윤회와반윤회,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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