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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선교, 자생적 신앙공동체로 시작”

이기풍 선교사가 개척했던 제주도 최초의 교회 성내교회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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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영
기사입력 2018-07-05

  

제주도 선교의 시작은 1907년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 창립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제1회 총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7(방기창, 서경조, 양전백, 한석진, 길선주, 송린서, 이기풍) 중 한 명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이기풍 목사(1865-1942)를 제1호 한국 교회 선교사로 제주에 파송하기로 결의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목사는 19082월 제주도에 도착해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 제주선교 첫열매 제주 성내교회 본당     ©뉴스 파워

 

그런데 이 목사보다 앞서 제주도에 신앙공동체가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7일과 29일 제주도 최초의 교회 성내교회를 방문했을 때 강연홍 담임목사는 이호리 신앙공동체를 소개했다.

 

강 목사에 따르면 1903년 김재원 청년이 몸이 아파서 제주도에서는 고칠 방법이 없자 그의 어머니가 그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제중원을 찾았던 것. 당시 의료선교사로 올리버 에비슨(1893-1934)을 만난 김재원은 그에게 복음을 전달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또한 그의 병명은 복막염으로 밝혀졌고, 7회에 걸친 수술 끝에 회복이 되었다.

 

김재원은 수술 후 곧 바로 내려가지 않고 2년 여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건강을 회복하면서 세례를 받고, 신앙교육을 받은 후 1905년 쪽복음 [마가복음]을 박스에 담아 고향인 제주도 이호리로 내려왔다. 제주도 최초의 세례교인이자 최초의 자생적 신앙공동체를 만든 주인공이 된 것이다.

 

김재원은 이호리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성경을 공부하면서 기독교 신앙공동체를 이끌었다. 이호리 신앙공동체를 통해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김재원은 에비슨 선교사에게

편지를 보내서 이호리 신앙공동체를 지도할 목회자를 파송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편으로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서양귀신을 들여왔다며 엄청난 핍박을 받았다. 결국 김재원은 이호리를 떠나야 했다.

 

제주도에 기독교 신앙공동체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평양신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있던 마포삼열 선교사에게 전해졌고,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회 총회에서 마포삼열의 제자인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 제1호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 조봉호 조사 순국행장비     ©뉴스 파워 소병기

 

특히 이기풍 선교사는 예수 믿기 전 평양 거리에서 마포삼열에게 돌을 던져 마포삼열의 얼굴에 흉터를 남겼던 사람이다. 나중에 이기풍 선교사가 제주도 사역이 힘들어할 때마다 마포삼열은 이기풍 목사에게 자신의 얼굴 흉터를 언급하면서 복음의 빚진 자의 삶을 살 것을 도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풍 목사는 190828일 김재원, 홍순흥, 김행권 등 성도들과 함께 향교골에서 성내교회를 시작했다. 한국 교회는 이날을 기념해 해외선교주일로 지키고 있다.

▲ 1920년대 이기풍 목사가 사용했던 강대상     © 뉴스파워

 

 

이기풍 목사는 1910년 당시 제주도에 귀향을 와있던 박영효 대담의 헌물(100)로 무과에 급제한 이들을 관리하던 출신청사를 매입해 교회당으로 사용했다. 성내교회는 아직까지 그 터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성내교회 앞 마당 한 켠에 있는 수백년된 것으로 추정되는 팽나무가 있다. 이 목사의 딸 사례가 어릴 적 그 나무에 올라가 전도하러 가신 아버지를 기다렸던 추억이 서려 있다.

▲ 이기풍 목사와 김재원 장로 공적비     © 뉴스파워

 

성내교회 기록에 의하면 1915년 성탄축하행사에 3,000 명이 회집했으며. 마가복음 1150권을 나눠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창기 무척 활발한 선교사역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191741일에는 김재원, 홍순흥 등을 장로 임직하여 제주 최초의 조직교회가 되었다. 특히 19195월에는 이 교회 조봉호 조사가 임시정부 광복군 군자금 제주지역 모금을 담당했으며, 1920428일 군자금 모금 활동이 발각되어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수감되었다가 순국했다. 당시 담임목사는 김창국 목사였다. 김 목사는 청교도 시인 김현승 시인의 부친이기도 하다.

▲ 성내교회 앞 마당에 있는 수백년 된 팽나무     © 뉴스파워

 

 

성내교회 마당 한편에는 김재원 장로와 이기풍 목사 사역 기념비와 조봉호 조사의 순국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성내교회는 1924년 제주 최초로 현재 제주동부교회 위치에 중앙유치원을 개원했다.

 

이기풍 목사는 10년 동안 제주도를 떠났다가 1927년 담임목사로 재부임해 1931년까지 시무했으며, 교회가 부흥되어 1941년 서부교회(현 성내교회)와 동부교회로 분립됐다. 1951년에는 교회를 재분리하여 한라교회’(피난민교회)를 개척했으며, 1953년 장로교의 분열로 서부교회(기장 성내교회)와 예장(성안교회, 현 예장통합)으로 분리되는 아픔을 겪었다.

▲ 1917년 최초 당회록 서문     ©뉴스파워

 

 

당시 교단 분열로 교회가 나뉘어지자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교인들이 예배 후에 서로 인사를 하지 않을 만큼 감정적 대립으로 제주도민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제주도 선교는 선교 110주년을 맞은 올해 제주 본토인 3퍼센트, 육지 이주민 6퍼센트 등 9.9퍼센트의 복음화 율에 4516만 명의 신자로 성장했다.

▲ 강연홍 목사     © 뉴스파워

 

 

또한 지난 2008년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점으로 성내교회(기장), 동부교회(기장), 성안교회(예장통합)는 매년 한 차례씩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다. 제주 선교의 뿌리 교회들이 아픈 역사를 딛고 제주 선교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9년 제22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강연홍 목사는 김재원에 의해 이호리 신앙공동체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졌고, 이후 이기풍 목사를 제주 선교사로 파송을 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한다.”제주 선교 110주년을 기념하면서 제주도 출신의 제2, 3의 김재원을 복음으로 무장시켜 제주도 선교를 위한 효과적인 사역을 진행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성내교회 1층과 2층에 전시되어 있는 성내교회 초기 사진들과 1920년 대 이기풍 목사가 사용했던 강대상을 소개하면서 제주 선교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당부했다.

▲ 1910년 박영효 대감이 100원을 헌물하여 구입하여 교회당으로 사용한 출신청.이기풍 목사와 박영효 대감     ©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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