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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돼지 상관성 그리고 돼지저금통

[희망알럼] 돈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습관에서 행복을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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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기사입력 2018-09-29

중국인 식당이나 중국인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자가 거꾸로 써있는 글입니다. 그것은 복은 하늘에서 '내려와야' 하고 하늘에서 '내린다'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복을 받기 원합니다. 복은 행복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복을 ''으로 생각합니다. 재산이 늘고 사업이 잘 되는 것을 복으로 봅니다. 그것은 복의 일부입니다. 복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은 '=행복'이라는 등식으로 설명되어야 합니다. 돈이 많다고 절대적으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돈이 없는 사람은 복이 없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돈이 조금 적지만 행복한 사람이 있고, 돈이 많지만 불행한 사람도 많습니다. 돈과 행복은 절대화된 상관관계가 아닙니다.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돈이 적어 밥을 나눠 먹어야 하지만, 웃음을 반찬으로 나누는 가정은 복 받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돈이 많이 고기가 진하게 있지만, 싸움과 다툼으로 밥상을 대하는 사람은 복 없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순식간에 일확천금이 들어오는 것은 복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 95% 이상이 불행해졌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돈을 다스리지 못하고 끌려 다녔기 때문입니다. 돈이 내린 결정이 가정을 갈라놓고, 인간관계를 망치고, 방탕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죽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진정한 복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이며, '행복'입니다. 복은 행복을 대변해야 합니다.

 

행복을 대변하는 복으로서의 돈은 열심히 땀 흘려서 모은 것이어야 합니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가정을 세우고, 사업을 하고, 자신을 가꾸고, 부족한 이웃을 돌볼 때 진정한 가치로서의 돈이 사용된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모았다가 이롭게 쓰는 것을 배운 아이가 건전한 돈의 가치관을 갖게 됩니다. 모으는 것과 쓰는 것이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 돼지는 두얼굴의 이미지를 가진다.     © 나관호

 

 

돼지는 두 얼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돼지해가 되면 유난히 돈에 관한 얘기가 많이 회자됩니다. '황금돼지' 운운하며 '부자 만들기'가 이슈화 되곤 합니다. 그러나 돼지는 부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탐욕과 게으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돼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돼지꿈', '돼지 저금통' 등 빼고는 대부분 부정적입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속담, 흔히 뚱뚱한 사람을 보고 '뚱돼지'라고도 하며, 귀엽게 '꽃돼지'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돼지가 부의 상징처럼 인식된 것은 돼지는 신화에서 신통력을 지닌 동물이거나 제사의 희생제물, 집안의 재물신을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화에서는 돼지가 탐욕스러운 지하국의 괴물로 등장합니다. 속담에서는 대부분 탐욕스럽고 더럽고 게으르며 우둔한 동물로 묘사되는 동물이 돼지입니다. 돼지의 탐욕스러운 성정 즉, 욕심, 지저분함, 돼지의 목청, 어리석음, 게으른 성격을 비유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러한 부정적 관념은 유대인과 이슬람교도, 성서에서는 종교적 금기, 악마의 의도와 유혹의 상징으로까지 진전됩니다. 그래서 이슬람과 유대교에서는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보아 금기시하며 돼지고기를 식용하지 않습니다.

 

그럼, 돼지저금통의 유래는 무엇일까요? 돼지저금통의 정확한 유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유럽에서 돼지저금통이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piggy bank(돼지저금통)'라는 말의 어원이 유럽에서 나왔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중세시대 유럽인들은 'pygg'라고 불리는 점토(clay)로 만든 목이 달린 병에 소금, 돈과 같은 것을 저장했습니다.

 

아마도 18세기 당시에 'pygg'와 돼지를 뜻하는 'pig'가 유사한 발음으로 들렸기 때문에 도공이 잘못 알아듣고 'pygg bank'가 아닌 돼지 형태의 'pig bank'를 만든 것이 돼지 저금통의 시초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주문자가 'pygg'라는 점토로 만든 저금통을 원했는데 도공이 돼지 형태의 저금통을 만든 데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pygg bank''pig bank'를 거쳐 돼지 저금통을 뜻하는 'piggy bank'로 어원이 변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1500년대에 만들어진 돼지 저금통이 실제한다는 사실이다. 이 돼지저금통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발견됐습니다. 결론은 돼지저금통의 정확한 유래는 여전히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돼지저금통(piggy bank)이라는 말이 오렌지색 점토(orange clay)의 일종인 'pygg'에서 나온 것만은 확실한 사실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다른 견해는 미국의 윌버 이야기입니다. 미국 캔자스주의 작은 마을에 채프먼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의 아들 윌버가 자신에게 용돈을 준 탄넬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희 마을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많아요. 저는 아저씨가 준 3달러로 새끼돼지를 사서 키우려고 합니다. 이 돼지를 팔아 한센병환자 가족들을 도우려고 합니다.>

 

소년은 열심히 돼지를 키웠습니다. 마을의 꼬마들도 관심을 갖고 함께 돼지를 키웠습니다. 새끼돼지 '페트'는 살이 포동포동 올랐습니다. 소년은 이듬해 돼지를 팔아 한센병 환자 가족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한 신문에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돼지저금통을 만들어 이웃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돼지저금통입니다. 그때부터 소년들은 군것질할 돈을 아껴 저금통에 넣었고, 이 돈을 한센병환자의 구제에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일확천금보다 돼지저금통에 쌓여가는 순박한 돈을 모아봅시다. 돼지가 주는 부유함이 있다면 돼지저금통에 쌓아가는 기쁨에서 행복을 찾고, 반대로 돼지가 주는 욕심이 생긴다면 그것도 돼지 저금통이 주는 '하나씩 모으라'는 순박함으로 마음을 바꿔보면 좋을 것입니다.

 

나는 어린 시절 돼지 저금통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사주신 이순신 장군 저금통을 사용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 친구인 영화배우 김진규 아저씨가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영화에 출연하고,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돼지저금통이든 이순신장군저금통이든 물질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큰 인생교훈이 될 것입니다.

 

성경 속에도 돼지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후서 2:22)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레위기 11:3, 7)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사야 66:17)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밝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태복음 7:6)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후서 2:20-22)

 

돼지는 몸이 뚱뚱하고 다부지며 털은 거칠고 뻣뻣합니다. 또한 눈이 작아 앞을 잘 볼 수 없지만 후각이 예민해 먹이를 잘 찾습니다. 돼지는 가죽이 두껍고 몸을 식힐 수 있는 땀샘이 없기 때문에 몸을 식히기 위해 진흙탕에 자주 뒹굽니다.

 

돼지는 깨끗한 동물이기는 하나 씻었다가 다시 진흙탕에 뒹구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베드로후서 220~21절에 보면 예수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 다시 그중에 얽매이거나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사람을 개나 돼지로 표현됐습니다. 이것은 진리의 말씀을 받고도 다시 그 말씀이 귀한 줄 모르고 버리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신앙인들은 이를 경계 삼아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았다면 다시 세상의 더러움에 얽매이거나 말씀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리의 말씀을 아는 자의 행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나관호 목사 (치매가족 멘토, 칼럼니스트, 문화평론가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소장/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미래목회포럼정책자문위원/ 한국교회언론회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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