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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 제닝스의 퀴어신학은 하나님을 음란한 잡신으로 전락시켰다"

샬롬나비, "최근 방한 테오도르 제닝스의 퀴어신학은 이단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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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기사입력 2018-10-01

 

샬롬나비(상임대표 김영한 박사)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강연한 테오도르 제닝스의 퀴어신학은 이단신학이라며 한국의 교공교단들이 이단신학으로 결의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샬롬나비는 1일 발표한 논평에서 이같이 밝히고 그는 지난 20188월 다시 한국을 방문하여 동성애 퀴어신학을 강연하여 동성애 급진적 신학을 한국교회와 신학계에 퍼트리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     ©뉴스파워

 

 이어 제닝스는 그의 스승 토마스 알타이저(Th. Altizer)보다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는데, 그는 한때 존재했던 하나님께서 더 이상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가 소멸할 세속사회가 도래할 것이며, 바로 이런 연유에서 기독교 이후의 신학’(Post-Christian Theology)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공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우리가 특별히 제닝스를 위험인물로 주목하여 비판하는 이유는, 그가 동성애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퀴어신학을 확산시킴으로써 인류 문명사에 암울한 기운을 드리우기 때문이라며 퀴어신학은 생소하고 괴이한 대상인 동성애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비정상적인 동성혼을 정상화하는 데 소기의 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퀴어신학은 신학이라 명명하기엔 너무 불경하고 부적절할 정도로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제닝스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음란한 잡신으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하고 그동안 기독교계에서 제닝스의 신성모독적인 성경해석과 건전한 기독교 윤리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에 대해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었지만, 그가 공개석상에서 기독교의 소멸기독교 이후의 신학을 공언하는 현 상황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최근 한국 방문하여 강연한 테오도르 제닝스의 퀴어신학 논평서전문.

 

테오도르 제닝스의 퀴어신학은 예수를 동성애자로 보고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이단신학이다.

한국교회 공교단들은 테오로드 제닝스의 동성애 퀴어신학을 이단으로 결의해야 한다.

 

20세기 중반 서구세계에서는 기독교가 쇠퇴할 거라는 예단 속에서 사신 신학’(Death of God Theology)이라는 극단적인 신학 사조가 출현하여 공교회와 기독교신앙을 위협하였다. 반세기 지나 이 예단은 빗나갔고 기독교 복음은 서구세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 비()서구세계에서 부흥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사신 신학의 토대에서 신학수업을 받은 한 신학자가 전개한 신학이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데, 바로 미국 시카고 신대 교수요 신부(神父)인 테오도르 제닝스(T. W. Jennings)의 퀴어신학(queer theology)이다.

 

그는 지난 20188월 다시 한국을 방문하여 동성애 퀴어신학을 강연하여 동성애 급진적 신학을 한국교회와 신학계에 퍼트리고 있다. 제닝스는 그의 스승 토마스 알타이저(Th. Altizer)보다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는데, 그는 한때 존재했던 하나님께서 더 이상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가 소멸할 세속사회가 도래할 것이며, 바로 이런 연유에서 기독교 이후의 신학’(Post-Christian Theology)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샬롬나비는 그가 주장하는 동성애 퀴어신학의 내용과 이단적인 정체성을 밝히고자 한다.

 

1. 한국교회는 동성애를 성경적이라 하는 퀴어신학에 대해 이단결의하여 혼란을 막아내어야 한다.

이제 퀴어신학의 이단 결의 문제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특별히미래 세대대학생 세대에서 동성애 옹호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상당수 크리스천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시대의 흐름에 함몰되어 동성애 포용에 앞장서는 상황이어서 한국교회는 퀴어신학의 이단성에 대해 다양한 연구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 신학계에서 일어난 친()동성애적인 일련의 행보들은 퀴어신학의 폐해로부터 한국교회의 예비 성직자들을 보호해야 할 당위적 과제와 책임을 한국교회에 부과하는데, 들은 마땅히 올바른 신학교육을 받아서 인류 문명사적 위기에 봉착한 이 시대를 하나님의 진리의 영으로 선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위중한 시대적 책임을 짊어진 한국교회는 의에 살고 의에 죽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일념으로 헌신하는 가운데 여러 전문가들과 연합하여 다각도로 치밀하고 지혜롭게 대처함으로써, 대내적으론 퀴어신학을 이단으로 결의하는 한편으로, 대외적으론 동성혼 합법화를 반드시 막아내야 할 것이다. 지난 9얼 총회에서예장통합, 백석, 합신 교단이 동성애 퀴어신학을 이단으로 결의한 것은 바른 결정이다.

 

2. 제닝스는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퀴어신학의 진원지 역할을 하는 위험인물이다.

우리가 특별히 제닝스를 위험인물로 주목하여 비판하는 이유는, 그가 동성애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퀴어신학을 확산시킴으로써 인류 문명사에 암울한 기운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제닝스는 현재 논의되는 퀴어신학의 중요한 화두가 거의 그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늘날 퀴어신학의 선봉에 서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퀴어신학이란 정통신학에서 낯설고 이상한 것, 괴기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테마를 신학의 중심에 내세우는 신학 사조인데, 여기서 낯설고 이상한 것은 동성애를 전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즉 퀴어신학은 생소하고 괴이한 대상인 동성애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비정상적인 동성혼을 정상화하는 데 소기의 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퀴어신학은 신학이라 명명하기엔 너무 불경하고 부적절할 정도로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3. 제닝스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음란한 잡신으로 전락시킨다.

그동안 기독교계에서 제닝스의 신성모독적인 성경해석과 건전한 기독교 윤리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에 대해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었지만, 그가 공개석상에서 기독교의 소멸기독교 이후의 신학을 공언하는 현 상황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특히 제닝스 신학의 이단성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모든 이단들과 유사하게 제닝스는 성경구절들을 자신의 주장에 꿰어 맞추어 자의적이고 임의대로 억지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제닝스의 퀴어신학이 다른 이단들보다 죄질이 훨씬 더 악한 것은 성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음란한 인간의 말로 치환시킬 뿐만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음란한 잡신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거룩보다 쾌락, 성결보다 방종을 선택한 퀴어신학자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족쇄처럼 부담스런 존재이기에 이들이 기독교가 사라질 그 이후를 동경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수순인 듯하다.


4. 제닝스는 예수가 결혼 및 가족적 가치를 폄하하고 성규범을 괘념치 않는 방종을 가르쳤다 본다.

제닝스는 동성애에 대한 이성애자들의 혐오를 비판하는 강도보다 훨씬 더 강한 어조로 이성애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는데, 특히 성애와 생식(출산)을 관련시키는 이성애 중심주의가 전통 기독교적 성윤리라는 괴물을 만들었다면서 이것이 동성애 혐오의 뿌리라고 역설한다. 그는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미화하는 만큼 이성애에 기반한 결혼과 가족제도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냄으로써 결혼과 가족적 가치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제닝스는 복음서에 나타난 역사적 예수가 명백히 성적인 비규정성에 크게 문제가 없었던 사람, 곧 성적으로 부정한 행위에 의해 전혀 충격을 받지 않았던 사람이라면서 비윤리적인 성일탈에 개의치 말고 살 것을 넌지시 암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제닝스가 결혼 및 가족적 가치를 폄하하고 성규범을 괘념치 않는 비윤리적인 방종은 성경에 기반한 기독교적 윤리관에 전적으로 배치되는데, 왜냐하면 성경이 독려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족생활 중심의 성규범과 성결함이기 때문이다.


5. 제닝스는 게이적 성경읽기를 통해 우정을 동성애로 왜곡한다.

제닝스의 퀴어신학적 대표 저작은 예수가 사랑한 남자(Man Jesus Loved, 2003)인데, 한마디로 게이적 성경 읽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제닝스는 성경 안에 동성애자들이 많다고 유추하면서 그 사례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먼저 다윗과 요나단(삼상 18:1, 20:20; 삼하 1:26)의 애정관계를 위시하여 다윗과 사울(삼상 16:21)의 관계 역시 연인관계로 추정하면서(요나단-다윗-사울의 삼각관계), 룻과 나오미(4:16)의 관계를 문학작품에 최초로 등장한 레즈비언 로맨스로 상정하며, 다니엘과 환관장(1)도 동성애 관계였을 가능성을 언급한다. 또한 예수께 병든 하인을 고쳐달라고 청원했던 백부장과 종(8:5-13)의 관계 역시 동성애 관계라고 주장한다. 제닝스는 우정과 동성애 사이를 구분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친밀한 관계로 서술되는 동성 간의 이야기를 모두 동성애로 간주하는 경향이다.


6. 제닝스는 심지어 예수를 동성애자로 해석하는 신성모독을 자행하고 있다.

참람하게도 제닝스는 예수 그리스도마저 동성애자로 해석함으로써 거룩한 신성을 모독하는데, 특히 예수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의 사이가 동성애 관계였을 개연성을 제기한다. 요한이 예수의 가슴에 안겨 누워있는 육체적 친밀함에서 평범한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니라, 동성 간에 육체관계를 나누는 모습이 엿보인다는 것이다(13:21-26). 더 나아가 제닝스는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 옷을 벗은 상태였고 제자들은 그의 무릎에 눕거나 가슴에 닿을 정도로 바짝 기대었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성애적 사랑의 관계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은 예수가 여자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닝스의 성경해석을 보면서 절감하는 것은, 음란의 영에 사로잡혀 음란의 프레임에 갇힌 상태에서 성경을 해석하니까 모든 것을 음란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다.


7. 제닝스는 동성애자를 정죄하는 성경 구절을 왜곡하는 해석을 하고 있다.

제닝스는 성경의 인물들을 동성애자로 간주하는 한편으로, 명백히 동성애를 죄악으로 단정한 성경구절들에 대해선 왜곡된 해석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구약과 신약에는 동성애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구절들(18:22; 20:13; 22:5; 1:26-27; 고전 6:9-10; 딤전 1:10)과 함께 전통적으로 문맥상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으로 보이는 성구들(19:5; 19:22; 1:7)도 있는데, 그는 이 구절들을 그동안 보수주의 성경학자들이 잘못 해석하면서 동성애를 단죄했다고 지적한다. 즉 동성애를 죄악으로 정죄하고(동성애 혐오적) 이성애를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바라보는(이성애 중심적) 기독교의 전통적 관점이 성경을 왜곡했다고 비판한다.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입장을 정리하면서 제닝스는 다수의 성경 텍스트들이 오히려 동성애적 관계와 행위를 긍정함은 물론 찬양까지 한다고 억지주장을 하면서 동성애라는 것이 저주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며, 심지어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이라고 결론짓는다.


8. 성경을 왜곡하여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제닝스의 퀴어신학은 이단 사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위 성구들에 대해 제닝스가 해석한 내용들을 살펴보노라면, 대단히 어리석은 궤변과 비논리적인 억지주장에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되는데, 즉 그는 성경 전체를 문맥에 따라 읽으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도 막무가내로 왜곡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특히 소돔과 고모라 사건(19:1-11)이 명약관화하게 동성애와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적으로 부정하는데, 즉 이 사건이 약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집단적 강간을 저지르려는 불법을 지적한 것일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류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어 왔다고 역공격하는 식이다. 과거엔 동성애자들이 자연적 순리에 위배되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행동을 은폐하기에 급급했지만, 제닝스는 이미 공공연하게 드러난 동성애자들의 비윤리적 행태보다 이성애자들의 혐오가 훨씬 더 심각하다면서 비난의 화살을 오히려 이성애자들에게 돌림으로써 논점을 흩트리기도/흐리기도 한다. 한국교회와 신학교는 평신도들을 바르게 지도하기 위하여 제닝스의 퀴어신학이 이단사상이라고 결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8101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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