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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김준곤 목사 9주기 추모식 열려

박용규 교수(총신대 신대원 역사신학) 추모강연...22명 대학생에게 장학금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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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영
기사입력 2018-10-05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모토로 성시화운동과 민족복음화운동 그리고 세계 선교의 새 역사를 열었던 유성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 9주기 추모식이 서울 종로구 부암동 CCC 본부 브라잇채플에서 열렸다.

▲ 고 유성 김준곤 목사 9주기 추모식이 열렸다.맨 앞줄 우측에서부터 박성민 목사, 김윤희 박사, 박용규 교수     © 뉴스파워

 

 

김장생 목사(CCC GSM 팀장)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식은 허효주 순장(CCC 전국부총순장, 고려대)의 대표기도, 최요한 순장(CCC 전국 총순장, 연세대)의 성경봉독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윤승록 목사(아시아리더십파운데이션 대표)가 시편 3312절을 본문으로 나의 스승 김곤 목사님을 추모하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윤 목사는 대학 3학년 때 처음 서울 정동빌딩에서 열린 수련회에서 김준곤 목사님의 메시지를 들었다. 요한복음을 본문으로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 생애에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없는 예수님에 대한 생생한 말씀을 전해주셨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정동빌딩에서 열리는 겨울수련회에 참석했다. 그들이 예수를 영접했고, 한 명은 목회자로, 한 명은 교장으로 은퇴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고 우리 학과 26명 중 13명이 제가 전해준 4영리로 예수를 영접했다.”김준곤 목사님은 평생 학원 전도자로 삶을 바치셨다.”고 말했다.

 

윤 목사는 목사님은 간결하면서도 깊은 체험이 있는 성경강해를 하셨다.”때로는 사자처럼 외치면서도 낭만적이고 문학적인 언어수사가 한국의 젊은이들과 성도들을 매료시킨 위대한 설교자이자 문학가였다.”고 말했다.

 

또한 목사님은 모일 때마다 설교 말미에 헌신의 삶, 민족복음화에 헌신하도록 하셨고, ‘80세게복음화 때는 10만 명을 세계 선교에 헌신하도록 하셨다.”김 목사님이 쓰신 [예수칼럼]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켰다.”고 밝혔다

 

윤 목사는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지도교수였던 박성록 장로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김준곤 목사님이 1960년대 초에 설교 중에 공산주의의 가을이 올 것이며 소련이 붕괴할 것이고, 중공의 문이 열릴 것이다. 중공에 선교사를 보내야 한다는 말씀하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윤 목사는 김준곤 목사님은 유머가 많으셨다.”지리산 등반 등을 하실 때 김준곤 목사님께서 제일 앞장서서 가시면서 침묵으로 기도를 하면서 올랐다.”고 회고하면서 돌아볼 때 김준곤 목사님은 개인적인 정이 많으셨고, 굉장히 따뜻한 분이셨다. 그리고 삶이 소박하셨다.”고 말했다.

▲ 윤승록 목사가 김준곤 목사 9주기 추모식에서 추모 설교를 하고 있다.     © 뉴스파워

 

윤 목사는 김 목사님께서 저에게 주신 편지들 중에 평생 전도자로 사시오라는 내용도 있다.” 김 목사님은 또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김 목사님은 간사님 19명과 40일 금식기도회를 하셨는데, 36일 째 때 당시 대학 4학년이었는데 전국에서 500명의 대학생들이 정동빌딩에 모였다. 당시는 금식수련회가 없었던 때였다. 목사님은 늘 기도를 하셨고, 기도를 강조하셨다.”고 밝혔다.

 

윤 목사는 김 목사님과 30년 넘게 간사로 살아왔는데, 어떤 정치가든 누구든 간에 개인에 대해 비방하거나 험담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개인에 대해서는 끝까지 묻어두셨다.”고 말했다.

 

윤 목사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나를 키운 8할은 바람이었다.”는 시구(詩句)를 인용하면서 전도자로 살아온 제 삶의 8할은 김준곤 목사님으로부터 배운 것이었다.”남은 생애도 전도자로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추모영상 상영에 이어 참석자들이 고인의 기도와 눈물과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비전이 담긴 그리스도의 계절을 합창했다.

 

이어 박성민 목사(한국CCC 대표)22명의 대학생에게 유성 김준곤 목사 장학금을 전달했다. 전국 지구에서 추천을 받은 유성 김준곤 목사 장학금수여자는 김승현(수원), 김예지(대전), 김지환(성남), 김지현(포항), 김혜진(영주), 박소희(부천), 박예영(목포), 이다연(안동), 이수진(청주), 이주한(부산), 임하은(제주), 이현승(광주), 장송익(순천), 장시온(제천), 전희진(평안), 정용훈(진주), 최주은(수원), 한주영(공주), 허양수(창원), 홍석현(용인), 새터민, 이주학(공주-교육자선교회) 등이다.

▲ 고 유성 김준곤 목사 장학금을 전달하는 박성민 목사(한국CCC 대표)     © 뉴스파워

 

 

추모강연은 대중전도와 민족복음화운동이라는 주제로 박용규 교수(총신대 신대원 역사신학)가 담당했다.

 

박 교수는 강연에 앞서 로마서 93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시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김준곤 목사님의 삶을 함축하고 있는 말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자신이 쓴 [한국기독교회사3]의 내용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박 교수는 “1970년대만큼 한국교회 안에 민족복음화의 열기가 점증했던 적은 없는 것 같.”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한국의 거의 모든 교회들이 1973년 빌리 그래함 서울 전도대회에 동참했다.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처음으로 여의도 한 곳에 회집했으며, 영향력 있는 세계적인 부흥사이자 미국복음주의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인 빌리 그래함이 능력의 메시지를 선포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체 조직위원장을 맡은 한경직 목사, 미국CCC 창설자 빌 브라이트, 초교파 선교단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견인 역할을 한 김준곤 목사, 통역을 맡은 김장환은 빌리 그래함 서울전도대회의 성공을 견인한 주역들이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대중전도운동의 열기는 단회적으로 그치지 않았다.”“1974년 김준곤 목사가 CCC를 중심으로 한국교회를 결집하여 추진한 엑스플로 ‘74는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로 인해 촉발된 부흥의 열기를 더 한층 고조시켜 주었다. 엑스플로 ’74 개최와 CCC 활동을 통해 홍정길, 김인중, 하용조, 김지철 등이 차기 한국 교회 지도자로 준비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1997년 민족복음화대성회, 1980년 세계복음화대성회 그리고 1984년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100만 명이 넘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여의도에 모여 10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대중전도운동이 한국교회를 근대화시킨 원동력이었고, 놀라운 교회 성장의 촉매역할을 했으며, 복음주의운동을 발흥시킨 결정적인 사건이었으며, 해외선교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민족복음화 움직임은 이미 196411월부터 한국교회 안에 일고 있었다.”며 전국의 교우들에게 매일 정오에 같은 기도문을 소개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구조를 보내시고 복음을 전파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금년에 크신 은혜를 내리셔서 우리 3천만 민족이 다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천국백성이 되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우리나라가 자유와 평화와 번영과 통일의 새로운 나라가 되게 하려 주옵소서. 내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소서. 먼저 내가 참빛과 소금이 되며, 복음의 전파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박 교수는 한경직이 대회장을 맡았고, 김활란이 총무를 맡았다. 전국복음화운동은 1970년대 민족복음화운동과 대중전도운동이 중요한 토대를 구축해주었다. 또 하나의 민족복음화운동이 한국교계 한 쪽에서 일어난 김준곤이 중심이 된 CCC가 주도한 성시화운동이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엑스플로 ‘74대회 기간 매 저녁 전체집회에 거의 100만에서 160만 명의 사람들이 참가하였다.”이런 열기 때문인지 CBS, NBC, ABC를 비롯한 8개국에서 온 외국 언론 기자들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취재했다.”고 당시의 기록을 근거로 소개했다.

 

박 교수는 엑스플로 ‘74대회는 전도의 중요성, 전도의 필요성을 한국교회에 강하게 심어주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이들은 열심히 전도를 했고 실제로 많은 결실을 맺었다.”그 결과 1970년부터 1980년까지 10년 동안 8,377교회가 증가했다. 19702569549명이던 교세는 19803988006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 유성 김준곤 목사 9주기 추모식에서 추모강연을 하는 박용규 교수(총신대 신대원 역사신학)     © 뉴스파워

 

 

박 교수는 “1970년 빌리 그래함 서울대회, 1974년 엑스플로 ‘74대회, 1977 민족복음화대성회, 1980’80세계복음화대성회, 1984 한국선교 100주년대회를 거치면서 대중전도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한국교회는 평양대부흥 이후 제2의 부흥기를 맞았다.”국내외 전도운동이 이 시대만큼 활발하게 진행된 때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분명 1970년대 대중전도운동은 1903-1907년으로 특징되는 원산부흥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과 성격이 다르지만 성령의 역사인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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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김준곤 목사는 1958년 한국CCC를 설립해 대학생선교를 모토로 한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주도했다. 국회조찬기도회, 국가조찬기도회를 창설했으며, 민족복음화운동의 제3의 집단으로서의 나사렛형제들 창설, 전군신자화운동을 주도했으며, 19701231일 밤 0CBS를 통해 민족복음화운동을 선언하고 대전충무체육관에서 1만 명 민족복음화요원 훈련(1971), 한 도시를 송두리째 복음화하고 하고자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1972)를 기획하고 주도했다.

또한 323419명이 56일 동안 등록해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품고 전도훈련을 받은 엑스플로 ‘74대회, 10만명 선교사 파송 헌신을 선언, 도전한 ’80세계복음화대성회, 3000명의 대학생을 파송해 한국교회 단기선교의 시대를 연 마닐라 뉴라이프 2000대회(1990), 세계선교대회(GCOWE2, 1995)대회를 주도했다.

그리고
1999년부터는 북한의 어린이들과 주민들의 식량난을 돕기 위해 젖염소보내기운동을 전개했으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상임대표를 맡아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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