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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자의 사명과 역할 -발제에 대한 응답

한복협 5월 월례회, 발제에 대한 인석순 목사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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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순
기사입력 2011-05-18

 
 
 
임석순 목사/한국중앙교회
 
 
  세분의 발제자께서 오늘의 현실에 당면한 문제점에 대하여 동일하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세 분 모두 갈등과 분쟁의 심각성과 동시에 한국교회의 문제가 여기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화해자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여러 좋은 방향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이철 목사님께서는 긴급대안에 대하여 중재제도와 같은 좋은 시스템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김성영 교수께서도 소송중단이나 구체적 훈련시스템 구축에 관하여서 오직 예수 안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복음중심의 사명과 섬김과 봉사정신으로 희생을 각오해야한다는 대안을 주셨습니다.
 
  허문영 평화 한국 상임대표께서는 실제 우리의 현실 문제인 남북의 갈등을 우리의 과제로 말씀하시면서 문제의원인과 대안을 예수 안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기도와 전문성 창출 균형실천자등을 제시하시고 평화통일 5단계 대안을 말씀하시고 6월13-7.3일까지 회개 용서 화해를 위하여 실천의 장을 열어 기도회로 출발하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복음주의 협의회에서 화해자의 사명과 역할에 대하여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자에 보면 교회들마저도 화해하기를 포기한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이런 제목조차도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민한다고 하는데도 솔직히 이 문제를 단순히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하고 그저 설득하는 정도로 비추어질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교회마저도 저주거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발표를 들으면서 이렇게 화해자가 없는 때에 진정으로 화해하는 자가 되어야 할 사명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또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겠다는 각오도 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단과 교계 국가 남북문제 등 온 사회의 갈등에서 우리는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갈등의 근원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해서입니다.
 
왜 우리에게는 갈등이 있습니까?

교계의 갈등과 국제 사회의 갈등, 남북의 갈등이 있습니까?

중재가 없어서인가요?

시스템의 문제인가요?

훈련의 문제인가요?

정치적인문제인가요?

경제적인문제인가요?

사회적인 문제인가요?
 
  아닙니다. 단 한 가지 때문입니다. 이 문제 앞에서 우리는 신학으로서의 인간론만이 아닌 실제 인간의 죄성을 철저히 깨닫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즉 오늘 이 사회는 어떤 문제점이 문제가 아니라 죄악으로 가득 차 있음이 문제입니다. 인간의 정욕, 이기심, 욕망, 자기 인기, 교만, 명예욕, 오류, 의심 등 개인이든 교회든 국가든 모두가 이러한 죄로 인하여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이 있을 때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피하려 할 것이 아니라 이 죄의 문제를 직시하여야 합니다. 죄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우리 안에 일어나야 거기서부터 해결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을 제쳐놓고 다른 곳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모두가 핑계일 뿐입니다. 딱 한가지입니다. 각자의 마음의 뿌리입니다. 갈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순간 화해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죄의 문제를 잊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 인간들이 십자가를 지게 했지만 인간의 죄성을 아셨던 주님은 그들을 원망하거나 갈등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나님! 저들이 알지 못해서 그러니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스테반 집사 역시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갈등하지 않았던 것은 인간들의 죄를 보았을 때 화해자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히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남북의 문제도, 교회의 문제도, 국가의 갈등도 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죄의 문제를 바로 볼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오염된 샘물을 고쳐보려고 화학약품을 넣고 애를 써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샘물은 좋아지지가 않았습니다. 원인은 그 샘의 근원, 즉 샘물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화해에 대한 많은 제안들을 했지만 제가 어린 시절에 화학약품으로 샘물을 고치려했던 것과 같지는 않은 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 한국이 통일이 된다고 해도 열광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화해를 통한 통일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북한과 이렇게 갈등이 계속 되는 것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됨을 드러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기 때문입니다. 남북한의 문제는 서로의 탓을 하면서 세월을 보낼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세상 사람들, 정치인들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며 나서야 할 것입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은 화해자를 보내셨고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화해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화해자를 통해 화해가 이뤄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집니다. 이 사명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이 볼 때 ‘평화주의자’를 초월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불리워져야 합니다.
 
  평화(화해)를 사랑하는 사람은 안일한 사람이 아닙니다. 갈등을 피하는 비겁한 사람도 아닙니다. 화평을 위하여 잠시 동안만 갈등을 유보시키는 종류의 화해자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화해를 사랑하는 사람은 새로운 마음을 갖는 사람입니다. 즉 옛사람은 사라지고 오직 새사람입니다. 화해자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와 똑같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아무도 질수 없습니다. 그 십자가는 오직 주님만이 질 수 있는 십자가, 즉 인류를 구원하는 십자가입니
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만의 십자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즉 화해자에게는 자아, 자기유익은 없습니다. 자신의 명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어떤 자리에 서야 할지 등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자기의 역할만을 할 뿐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화해를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즉 예수님에게만 관심을 갖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된다면 자신은 낮아져도 상관이 없습니다. 악행과 불의를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 영광만 드러나면 됩니다. 평화는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설득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별별 노력을 다하여 교회를 부흥시키려 해도 교회는 부흥되지 않습니다. 추락된 기독교의 명예를 회복하려고 애를 써도 소용없습니다. 오직 화해를 사랑하는 사람이 일어날 때 기독교는 회복되고 교회는 부흥됩니다. 왜냐하면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안합니다. 여기 복음주의 협의회부터 화해를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 그리고 이곳에서부터 화해를 사랑하는 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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