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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예수님 행적과 강화(2)

2019년 고난주간 묵상 자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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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기사입력 2019-03-06

                고난주간 예수님 행적과 강화  

                        2019년 고난주간 묵상 자료(2)

                                    김 정 권 *

                 

▲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 김정권

 

고난주간 묵상자료 활용 가이드: 이 묵상자료는 201948일 월요일부터 시작해서 421일 부활주일까지 14일간 묵상하는 것으로 구성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에 관한 자료를 먼저 제시하여 참고하도록 하였고
, 고난주간 전의 묵상(4/8-4/13)과 고난주간 묵상(4/14-4/20) 그리고 부활주일 묵상(4/21)으로 구성하였다. 고난주간 전의 묵상은 고난주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하였고, 고난주간과 부활주일 묵상은 사건이 일어난 요일에 맞추었다.

그래서 고난주간 제3일 화요일은 예수님 강화, 논쟁, 예언, 교훈과 사건 등 13건이나 되어 상당히 길므로 제4일 수요일 묵상자료와 묵상의 양을 조정하기 바란다. 묵상에는 어떤 원리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묵상하는 사람에 따라서 주시는 바 은혜대로 기도하면서 주님의 구원역사를 음미해 가기 바란다.

이 묵상자료는 3부분으로 나누어 게재 할 것이며 첫째부분은 고난주간 자료와 고난주간 전의 묵상(4/84/13), 둘째부분은 고난주간 묵상자료 중 일요일수요일(4/144/17), 셋째부분은 목요일부활주일(4.184/21) 묵상자료를 게재하려 한다.

 

감 사:이 묵상자료 구성에 조언을 주신 미국 Springs, Co., 말씀제일교회 정준모 목사, News Power 대표 김철영 목사, 대구 침산제일교회 지웅재 목사, 남해 동천교회 정규채 목사, 창녕 고암교회 최성석 목사, 진주 반성교회 박경일 목사, 예천 하리제일교회 김명규 목사께 감사드린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김정권 장로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침산제일교회 원로장로, 대구대학교 명예교수이다.

 

 

  

                          3. 고난주간 묵상(2019) 1

                             기간: 2019414()-17()

 

1) 고난주간 제1일 일요일: 종려주일

 

    2019414() 묵상 자료

 

    오늘의 찬송: 339(통일 365; 내 주님 지신 십자가)

 

  예수님 이동경로 베다니, 벳바게 ⟶ ② 예루살렘 입성 ⟶ ① 베다니로 돌아오심

 

▲ 종려주일 예수님 예루살렘에서 행적     © 김정권

  

     (1) 영광의 예루살렘 입성    

 

    성경: 21:1-11; 11:1-11; 19:28-44; 12:12-19

 

  예수님은 고난주간을 당하여 베다니와 벳바게로 내려오셨다. 베다니에서 안식일을 지키신 주님은 다음날(일요일) 벳바게에 제자들을 보내시어 어린 나귀 새끼를 끌어오게 하셨다. 그리고 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었다. 이는 스가랴에 의해 예언된 바이다(9:9).

어린 나귀 새끼는 사람을 태울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이 나귀는 곧 바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메시아를 모시고 올라간다. 그렇다 주님은 훈련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다. 그의 손에 잡히면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도 아주 잘 쓰임을 받게 된다.

예수님에 대한 백성의 기대는 로마를 제압하는 지상 국가를 건설할 메시아의 입성으로 믿어서 그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그 길을 열었다. 그러나 주님은 백성의 기대와는 다른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셨다.

 

묵상: 1.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에 나귀새끼를 타신 뜻은 무엇일까?

       2. 왜 백성들이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을 호산나로 환영했을까?

 

    2) 고난주간 제2일 월요일

 

     2019415일 묵상 자료

 

    오늘의 찬송: 150(통일 135; 갈보리산 위에)

 

예수님 이동경로: 베다니 ⟶ ③ 예루살렘 성전 ⟶ ① 베다니로 돌아오심

 

▲ 고난주간 제2일 월요일 예루살렘에서 예수님 행적     © 김정권


     (2) 성전을 깨끗하게 하심

 

   성경: 21:12-17; 11:15-19; 19:45-48; 2:13-22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제일 먼저 행하신 일은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일이 있었다(2:12-25). 예수님 당시 부패의 상징인 성전에서 타락 행위는 이스라엘 전체의 타락상을 잘 보여준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권위를 모르는 바 아니나 예수야 말로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인정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이 성전 정결케 하신 이유는 예레미야의 메시지처럼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7:11)이고 장사하는 집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따르며 호산나를 외치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는가? 라고 힐문하는 것은 예수를 참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시편기자가 예언한 것(8:2)이다. 형식화된 그들의 삶으로서는 메시아를 인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없었다. 예수님은 매일 가르치시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죽이려 모의하고 기회를 찾고 있었다.

 

묵상: 1. 예수님 공생애 시작과 고난 주간 첫날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뜻은 무엇일까?

       2. 성전정결과 세상 권력이나 기득권자들과의 갈등은 무엇이었을까?

       3. 오늘 교회는 교권과 금권으로부터 깨끗한가?

 

    (3) 무화과나무가 마르다.

 

   성경: 21:18-22; 11:12-14, 19-26

 

이 단락의 내용을 병행 성경인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함께 보면 예수님이 월요일 아침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서 무화과를 저주하셨고 그 마른 것은 다음날 화요일 에 확인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날에 일어난 일을 마태는 하나로 묶어서 기술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진 제자들에게 믿음으로 행하라고 하신다. 아마 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형식주의에 빠져 있는 자들 즉 열매는 없고 껍데기만 화려한 율법주의자들을 은유했을 것이다.

 

묵상: 1. 열매 없는 과실수는 어떤 것이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       2. 나는 어떤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가?

 

    3) 고난주간 제3일 화요일

 

     2019416일 묵상 자료

 

고난주간 화요일은 예루살렘 성전 강화, 감람산 강화로 아주 많은 담론과, 강화와

행적이 있었다.

   관련 성경: 21:23-26:16; 11:27-14:11 ; 20:1-22:6; 11:45-53

 

   오늘의 찬송: 144(통일 144; 예수 나를 위하여)

 

     예수님 이동경로: 베다니 ⟶ ② 예루살렘 성전 ⟶ ④ 감람산 ⟶① 베다니

 

▲ 고난주간 제3일 화요일 예수님 예루살렘에서 행적     © 김정권

 

     (4) 논쟁: 예수의 권위에 대한

 

      성경: 21:23-27; 11:27-33; 20:1-8

 

고난주간 화요일에 일이다. 예수의 권위를 두고 말하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의 행함이 어떤 권위에서 나오는가? 묻고 예수님은 반문과 예문을 통해 설명하셨다. 말장난은 항상 올무로 예수님을 잡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의 지혜 있는 대답은 제사장들과 장로들로 더 논쟁할 수 없도록 하였다.

 

묵상: 1. 예수님의 권위는 어디서부터일까?

 

    (5) 강화: 비유; 포도원 농부

 

   성경: 20:9-19; 21:33-46; 12:1-12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계속하여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다. 그들은 예수를 잡고자 하였다. 주인의 종을 죽이고 쫓아 보내고 주인의 아들을 죽인 자들이 결코 포도원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들은 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예수가 자기들을 가리킴을 알고 예수를 잡아 죽이고자 한다. 그들은 회개 보다는 예수를 죽일 모의를 하게 된다. 악은 또 다른 악을 낳게 된다. 악행은 결코 중단하지 않는다.

 

묵상: 1. 포도원 비유에서 제사장, 서기관과 장로는 어떤 점에서 농부와 일치할까?

.       2. 우리의 삶은 이 농부와 무엇이 달라야 할까?

 

    (6) 논쟁: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

 

   성경: 22:15-22; 12:13-17; 20:20-26

 

여기 등장인물은 바리새인, 헤롯당원 등이다. 이들은 예수를 올무로 잡으려고 로마에 세금(인두세) 내는 문제를 질문한다.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앗수르), 바빌로니아(바벨론), 마케도니아, 헬레니즘 국가(헬라) 등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지금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인에게 로마 지배는 긍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에게 세금을 내라하면 그들을 인정하는 것이니 백성의 감정과 장로의 유전에 위배되는 것이고 내지 말라하면 로마에 대항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로마화폐를 쓰고 있으므로 실제로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임을 이용하시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성전 세)은 하나님에게 드리라고 답하심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셨다.

 

* 데나리온(denarius)은 로마 화폐로 근로자의 하루 품삯이다(18:28), 카이시르의 화상이 부조 되어 있다.

 

묵상: 1. 사람을 딜레마(dilemma)에 빠지게 하는 사람의 심리는 어떠한 것일까?

.       2. 예수님의 대답은 어떤 점에서 절묘한 것이었을까?

 

    (7) 논쟁: 부 활

 

   성경: 22:23-33; 12:18-27; 20:27-40

 

사두개인들이 부활 후의 인간관계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스라엘은 계대결혼제도가 있다. 형이 자식이 없이 죽었을 때 그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 가야한다. 이런 식으로 한 여인이 7형제에게 시집갔다면 부활 후의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 차원(次元)이란 말이 있다.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는 차원이 다르다. 천국에서 세상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 앞에 평등한 존재들이다. 이 세상과 하늘나라는 차원을 달리하는 세계이다. 현세의 개념으로 하늘나라를 이해한다면 그 범주를 넘지 못한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묵상: 1. 사두개인들은 장로의 전승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모세오경에 부활개념은 없으니 그들도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 예언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계대결혼을 예로 들었다. 부활 후의 세계는 현세의 차원과는 어떻게

다를까?

 

    (8) 논쟁: 그리스도의 존재

 

   성경: 22:41-46; 12:35-37; 20:41-44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에 관한 논쟁을 전개하시어 바리새인들을 잠잠하게 하시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라 그의 직능 즉 기름 부어 세움을 받은 왕권, 제사장권, 선지자 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 질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존재를 부각시키신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 대답했지만 시편에서 다윗이 그를 주로 불렀으니 어찌 그 자손이 되겠는가? 반문한다. 그리스도는 육적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었으나 영적으로는 성결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그의 우편에 앉아계시는 분이다.

 

묵상: 1. 예수님의 권위는 어디서부터일까? 다윗의 후손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의미는

무엇일까?

 

    (9) 외식(外飾): 서기관과 바리새인

 

   성경: 23:1-36; 12:38-40; 11:37-54; 20:45-47

 

바리새인과 서기관(율법사)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1. 행함이 없는 말만 하는 자들이다.

2. 무거운 짐을 남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끝도 움직이지 않는 자이다.

3. 남에게 보이려고 노력하여 성경구절을 옷에 붙이고 다니는 자들이다.

4. 잔치에서 윗자리에 앉는다.

5.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는다.

6. 시장에서 문안을 받는 자들이다.

7.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다.

 

이상 7가지 일들은 모두 허구이다. 그래서 외식하는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부의 재산을 약취하는 파렴치들이다. 즉 사회 약자를 착취하는 무뢰배(武賴輩)들이다. 지도자의 타락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묵상: 1. 내용이 없는 형식은 왜 허구일까?

.       2. 형식과 형식주의는 무엇이 다를까?

     (10) 헌금: 가난한 과부의 헌금
 

   성경: 12:41-44; 21:1-4

 

헌금은 양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헌금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는 척도이다. 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측정한다. 그 양은 그가 소유한 것에 비해 얼마를 들였는가? 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이 드려도 그 비율이 낮다면 조금 드린 것이고, 가난한 자가 적게 드려도 그 비율이 높으면 많이 드린 것이다. 이 과부는 가진 것의 전체를 드렸으니 많이 드린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헌금이 그 사람의 믿음에서 나온 것인가이다. 신앙의 간증일 것이다. 아벨의 제사를 생각해 두면 좋겠다.

 

묵상: 1. 하나님이 기뻐서 받으시는 헌금은 어떤 것일까?

 

* 고드란트(kodrantes, 호리)는 로마 화폐이며 앗사리온의 1/4이다(5:26).

렙돈(lepton)은 희랍(헬라) 화폐이며 고드란트의 1/2이다(12:42; 12:59).

 

    (11) 예언: 예루살렘 성전의 훼파(毁破)

 

   성경: 24:1, 2; 13:1, 2; 21:5-9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헤롯의 성전)이 무너져 돌 위에 돌이 하나도 없을 것임을 예언하셨다. 즉 완전 파괴를 의미한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반항을 진압하려는 로마 군에 의해 70 A.D. 에 이루어졌다. 티토(Titus) 장군(후에 로마 10대 황제가 된 사람, 성경에서는 디도로 표기했다.)은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황제(네로 자살 후 3황이 있었고 그 다음 황제)의 아들로 그의 아버지의 하던 일을 이어 받아서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여 성전을 완전 불태워 버렸다. 이때 죽은 사람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특히 순례자들이 많이 죽은 것 같고, 칼에 죽은 자 보다 굶어 죽은 자가 많았다고 한다 

헤롯의 성전은 극히 아름다웠던 것 같다. 그러나 건물의 아름다움은 그 안에서 역사하는 사람들의 생명력이 뒷받침이 될 때 이다. 그 속의 인간이 썩었다면 그 건물의 의미는 상실될 것이다. 이 전쟁을 유대전쟁이라 하며 66 A.D. 에 시작되어 70 A.D. 에 끝났다. 말세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악의 무리들이 설치는 시기이다.

 

* 586 B.C. 57일 예루살렘 솔로몬의 성전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불탔다.

  70 A.D. 예루살렘의 헤롯이 지은 성전이 로마 티토 장군에 의해 불탔다.

 

묵상: 1. 헤롯 성전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다. 우리 심령 속에 이루진 성전은 영적이다.

          영적 성전이라도 어떤 경우에 무너질 수 있을 까?

 

    (12) 예언: 대 환란에 관한

 

   성경: 24:3-14; 13:3-13; 21:10-19

 

제자들은 예수님의 예언을 듣고 말세의 징조를 조용히 물었다. 예수님은 거침없이 진술하신다. 1. 전조(前兆)는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 전쟁, 민족 간, 국가 간 대립과 갈등, 지진과 기근 등이 있으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2. 말세에 환란이 시작되어 믿는 자들을 잡아가고 죽이고 예수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 식어진다. 3. 말세의 끝은 땅 끝까지 주의 복음이 전파될 때이다.

 

묵상: 1. 오늘 말세의 징조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       2. 성도는 환란이 다가올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13) 예언: 전무후무(前無後無)한 환란

 

   성경: 24:15-21; 13:14-19, 24-27; 21:20-28

 

아주 큰 환난이 와도 미혹되지 말고 굳건히 서야 한다.

1. 환란의 징조가 있을 때 물건에 집착하지 말 것, 임신한 여자와 젖먹이는 여인이 화가 있다. 안식일과 겨울에 이런 환란이 없기를 기원하라,

2. 이 환란이 얼마나 혹독한지 그 날을 감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택한 자들에게는 그 기간을 감하실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 적그리스도가 나오게 될 것인데 미혹을 받지 말 것, 난세일수록 거짓이 판친다.

3. 예수님의 재림은 순간적으로 임하신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기쁨과 환희이다. 악인들은 무저갱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예루살렘의 환난과 인자의 오심을 예언하시다. 유대전쟁은 7년에 걸쳐 진행되었고 70년에 있었던 전쟁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유대전쟁 역사를 쓴 역사가 요세프스 프라비우스의 기록에서는 10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담대히 설 것이다.

 

묵상: 1. 환란을 이기는 힘은 무엇일까?

.      2. 환란을 이길 담대한 힘은 어디서 공급 받을 수 있을까?

 

    (14) 교훈: 무화과나무에서

 

   성경: 24:32-35; 13:28-31; 21:29-33

 

무화과나무 잎이 나오면 여름이 오는 것을 아는 것 같이 앞날의 다가올 일의 징조들을 보게 되면 예수 재림의 때도 가늠하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과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를 잘 관찰하고 숙고하면 그 때를 알게 될 것이다. 종말이 와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역사 할 것이다.

 

묵상: 1. 성경은 그 자체가 예언적 성격을 지닌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미래의 일을 알 수 있을까?

.       2. 나는 얼마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15) 교훈: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성 경: 21:34-38

 

성도에게 종말은 매일 온다. 우주적 종말, 개인적 종말, 시간의 종말이 있다. 시간의 종말이 곧 우주적 종말로 연계된다. 매 시간을 종말로 맞이하는 사람은 곧 깨어 있는 사람이다. 오늘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나를 완성하는 날이다. 오늘을 잘 살면 그 속에 내일에 대한 준비가 들어있다. 그래서 쉬지 않고 기도해야한다(살전5:17).

 

묵상: 1. 오늘은 내가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기에 가장 좋은 날인가?

.       2.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뜻이 무엇인가?

 

    (16) 음모: 예수를 죽이려는 무리

 

    성 경: 26:1-5, 14-16; 14:1, 2, 10, 11; 22:1-6; 11:45-53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설교를 마치시고 이제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다시(네 번째) 예언하신다. 가룟 유다에 의해 팔리실 것을 예언하신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 모여 예수를 죽이려고 의논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명절 즉 유월절(유대력 114, 무교절 115-21)은 피하기로 하였다. 민란을 걱정한 것이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예수를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자로 생각하고 자신들을 책망하는 것에 대해 분노했었다. 이때 유다가 마귀의 조종으로 제사장에게 예수를 넘겨주기로 하고 은을 받았다.

 

묵상: 1.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는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 후의 일이 아니라 그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의 때를 기다리셨고 그 때가 유월절 전일 돌아가시는 것이고 초실절에 부활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음모와는 다르다.

왜 예수님은 이때를 자기의 때라고 하셨을까?

.     2. 가룟 유다는 왜 선생이신 예수님을 겨우 은 30개에 팔았을까? 우리도 유다와 같은 일을 한 일은 없는가?

 
     4) 고난주간 제4일 수요일

 

      2019417일 묵상 자료

 

   오늘의 찬송: 311(통일 185; 내 너를 위하여)

 

1. 예수님의 고난 주간 제4일 수요일은 별다른 행적이 없이 베다니에 계셨던 것 같다.

2. 화요일에 참으로 많은 강화와 담론 그리고 예언을 통하여 제사장과 서기관 또 바리새인들에게 적대감이 고취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화요일 가룟 유다의 예수님을 파는 음모는 수요일에도 계속 되었을 것이다.

기득권자들은 누구인가? 성전을 중심으로 금권과 교권을 장악하려는 그들에게 예수는 가시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악의 무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메시아를 죽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3. 다음날 목요일 유월절 만찬과 잡히심, 그리고 금요일 십자가에서 죽으심 등을 생각하시면서 조용히 기도하시면서 수요일을 보내셨을 것이다.

4. 이 수요일에 제자들은 갈등했을 것이다. 지상에서 메시아 왕국을 꿈꾸어 온 제자들에게 예수의 죽음 예언은 청천벽력과 같은 좌절을 가져 왔을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수요일은 제자들에게도 무척 힘든 날이었을 것이다.

 

묵상: 1. 예수님은 수요일에 구속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셨을까?

       2. 제자들의 갈등은 무엇이었을까?

       3. 제자들은 신앙고백도 했는데 왜 바른 메시아 관을 갖지 못했을까?

       4. 나는 예수님의 메시아 관을 알고 받아드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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