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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의 로마에서 쓰는 이야기] 사랑

수도사 아벨라르(Abelard1079-1142)와 엘로이즈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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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기사입력 2019-04-01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감미로운 단어는 사랑이라는 명사일 것이다. 사랑은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남녀 간에 일어나는 애틋한 마음이다. 이 시대는 사랑이라는 감정도 타산적으로 반응하지 옛날처럼 사랑하나만을 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 만큼 삶이 힘들기 때문이리라.

▲ 한평우 목사     ©뉴스파워

 

 

구라파에서는 요즈음 젊은이들 중에 비슷한 상대를 찾기보다 나이차이가 많아도 재력 있는 상대를 선호한다고 한다. 3-40년 차이가 난다해도 재력만 있다면 OK. 그런 할아버지를 잘 만나면 그가 들어놓은 연금의 70%를 죽는 순간까지 받게 되니 그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방불한 일이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이 본다면 혀를 찰 일이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사랑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아름다운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소문에 의하면 성 프란시스와 클라라는 연모하는 관계이었다고 한다. 20대에 만났고 성프란시스에 의해 수녀가 되었고 사역지도 같은 아시시이었으니 말이다.

 

병약했던 프랜시스는 늘 돌봄을 필요로 했는데 그런 사실을 아는 클라라는 자신이 운영하는 수녀원에 와서 건강을 추스르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러나 강론을 위한 방문 외에는 결코 가지 않았다고 한다. 속내를 알 수 없으나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게 여겨진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사랑을 추구한 중세의 탁월한 수도사가 있었다.

그는 아벨라르(Abelard1079-1142)와 엘로이즈(Heloise 1100-1163)이다. 아벨라르는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다. 결코 어떤 사람과 논쟁해도 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전 구라파에서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는데 어느 때는 5천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로 근세철학, 논리학, 언어학, 신학에 그의 이름이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다.

 

역사가 호이징가는 그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창조적인 자로 12세기가 낳은 대 학자라고 칭했다. 1117년에는 교황과 추기경 19,50명 이상의 주교와 대 주교가 한꺼번에 그의 강의를 들었다. 30대 중반에 학문적으로 최고의 자리인 노트르담 성당학교의 강사가 되어 15년 동안 강의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재기 발랄한 소녀가 그에게 나타났는데 그녀의 이름이 엘로이즈이었다. 명석하고 아름다운 그녀를 같은 성당의 참사인 삼촌이 아벨라르에게 조카의 가정교사를 부탁했다. 엘로이즈도 앞날이 촉망되는 대단한 재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벨라르는 39살이었고, 엘로이즈는 16살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장벽을 허물어버리는 법이다.

엘로이즈는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 아벨라르를 향한 존경심이 사랑으로 변했고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의 번쩍이는 천재성과 깊이를 알 수 없어 빠져버리고 싶은 해맑은 눈, 그 눈을 바라보다가 마음이 노도와 같은 파도가 일어나게 되었다. 저들은 공부는 뒷전이고 사랑하는 일로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훗날 아벨라르의 고백록에서 책은 펼쳐져있지만 철학공부보다 사랑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수없이 오갔으며 학문에 관한 것보다 입맞춤이 더 많았네. 손은 계속 그녀의 가슴을 오르내렸고.

 

1년 동안 계속된 사랑은 아이를 임신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당시 이런 일은 매장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당시 신학자는 철저하게 독신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비밀리에 결혼 했고 아이까지 낳았다. 아벨라르의 앞날을 위해 엘로이즈는 무섭게 반대하였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누구보다 분노한 사람은 바로 삼촌이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고 흥분한 삼촌은 종을 시켜 자고 있는 아벨라르의 성기를 잘라버렸다. 레위기에서는 남자의 성기에 문제가 있으면 제사장은 물론이고 성막 봉사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니 아벨라르의 정신적 고통은 대단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각각 수도원에 들어갔다. 엘로이즈는 한 남자에게 품었던 사랑을 하나님께 돌리고 이제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편지의 왕래는 지속했다.

 

아벨라르는 맨손으로 파라클레 수도원을 일구었고 엘로이즈 역시 수도원을 운영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수도원이 망하게 되자 아벨라르는 자신의 수도원을 그녀에게 넘겨주고 수도원을 위해 모금까지 했다. 이 두 사람의 로맨스는 온 구라파 청소년들의 사랑의 노랫말이 되었다. 우리나라 성 춘향처럼.

 

아벨라르는 죽기 얼마 전에 이단의 판정을 받았다. 비록 형은 집행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누구보다도 엘로이즈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아벨라르가 63세에 세상을 떠나자, 뜨겁게 사랑했던 엘로이즈가 원장으로 있는 수도원에 무덤을 쓰도록 했다. 엘로이즈의 강력한 요청으로.

 

그 후 엘로이즈도 신기하게 63세에 세상을 떠나자 두 사람을 합장했다. 죽어서라도 못 다한 사랑을 나누도록 말이다.

 

그녀는 이런 시를 남겼다.

 

나는 가혹한 운명을 당신과 함께 모두 견디어 냈습니다.

청하오니 이제 당신과 함께 잠들게 하소서.

빛이 있는 쪽을 향하게 하시며 영혼을 자유롭게 하여 주소서.“

 

1792년 파라클레 수도원이 해체되어 1817년 두 사람을 페르라세즈 공동묘지에 나란히 묻어주었다. 그토록 가슴절절하게 사랑했던 두 사람은 비로소 안식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겨우 1년 동안이었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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