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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각오 신앙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

이응삼 목사(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사업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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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삼
기사입력 2019-04-18

 

▲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사업회 전 사무총장 이응삼 목사     ©뉴스파워

2년전 순교자의 발자취를 따라 소양 주기철 목사님께서 마산 문창교회 시무시절 자주 찾으시던 무학산 십자바위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험한 길은 아니지만 지금은 교통이 좋아져서 자동차로 중턱까지 이룰 수 있지만 그 시대에는 첩첩산중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당시 6살이던 3남 영해를 데리고 주 목사님이 올라오셔서 기도하셨다는 그 곳이 바로 십자바위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잘 자리를 잡아가던 부산 초량교회를 뒤로하고 마산문창교회에 부임합니다.그때 문창교회는 한창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사람들에게 바보라고 불렀습니다.

 

바보 주기철, 이런 바보가 그리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초량교회에서도 구덕산에 오르며 기도 하였던 것처럼 마산에서도 이곳 무학산을 오르며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목사님은 가는 곳마다 기도를 쉬지 아니하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그는 떠났으나 항상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옥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지금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1940년 여름 소양 주기철 목사님의 생의 마지막 설교 가운데 나타난 고난의 명상입니다.

 

오늘 우리는 75년 전에 복음을 위해 사슬에 메인 사신이 되었고 ,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고난을 받았고 결박과 환란앞에서도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일사각오의 신앙인이자 순교자인 주기철 목사님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지 7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가 주 목사님을

추모하는 것은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주 목사님이 사신 시대는 말 그대로 고난의 길, 광야의 길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치욕의 시대였으며, 변절의 시대였습니다. 일제의 가혹한 핍박과 고문이 한국교회를 향해서 체계적으로 수행되던 바로 그 역사의 현장에서 주 목사님은 사시고 버티고 당하시면서 걷다가 순교로 생을 끝낸 우리의 신앙인이셨습니다.

 

주 목사님은 1931년 경남노회의 신사참배 거부를 결의한 때로부터 1944년 순교하실 때까지 13년간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싸우는 가운데 4차례 구속을 당하셨으며, 구속 기간 동안 외로움 속에서 가혹한 심문과 갖가지 형인할 수 없는 고문을 받으셨습니다.

거친 잠자리와 배고픔, 혈육에 대한 그리움, 그 모든 것은 한 인간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주 목사님의 신앙은 바로 이 위기 촉발의 계속적인 시련과 아픔과 눈물의 삶, 거기에서 솟고 엉겨지고 굳어진, 생명의 신앙입니다.

 

주 목사님의 육신은 비록 차가운 주검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으나 이 생명의 신앙은 주 목사님의 순교로 안개와 같이 희미하고 사라지기보다 더욱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아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철저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 목사님을 우리가 잊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는 떠났으나 여전히 우리 가운데 남아 계십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로 선택된 교회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이 특별한 섭리는 토마스 목사의 1866년 대동강변에서의 순교로 시작됩니다. 27세의 젊은 피를 이 땅에 뿌림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우리 교회를 향한 계획하심은 존 로스 목사, 매킨타이어 목사와 의주청년 백홍준, 서상륜, 서경조, 이성하, 김진기, 김청송 등을 통한 1882년 우리말 성경발간과 반포로 이어졌습니다.

 

1884년 알렌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선교사로 이 땅에 발을 들이기 전 이미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하심으로 우리 교회는 세계교회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선교사 입국이전 우리말 성경의 보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의 반포가 한말 나라의 전통과 예법을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의주 감옥에서 순교한 백홍준 장로로 순교의 계보는 계속 이어집니다. 이후 국가의 비운의 역사와 함께 우리 교회의 순교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주 목사님으로 상징되는 일제시대 신사참배 반대는 일제에 대한 민족 양심의 고귀한 마지막 저항이기도 하였지만 우상 숭배를 할 수 없다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에 대한 몸 바친 충성,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사에서 세 번째 커다란 시련기에 순교자가 여럿 나온 것은 공산주의의 박해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이 시기의 순교자 중 주목사님의 일사각오 신앙, 순교의 신앙의 영향으로 사랑의 원자탄이 된 손양원 목사님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손양원 목사는 1944년 주 목사님의 순교소식을 듣고 주님, 이 부족한 종도 신앙의 진리를 굳게 지켜 주 목사님의 뒤를 따라 순교 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주 목사님의 신앙이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렇듯 우리 교회사는 때로는 전통적 가치 때문에 이교직 배척,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반대, 공산주의자들의 유물론적 혁명적 투쟁 때문에 겪어온 수난과 순교의 역사는 세계에 그 유례가 없으리만큼 통절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세계의 나라나 교회들이 다같이 우러러 보는 놀라운 교회의 발전을 한 그 저력이 다른데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이런 순교자적 신앙이 이 나라 교회에 비옥한 땅과 생명력을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입니다. 바로 순교의 역사입니다. 그 순교 역사 계보 중심에 주 목사님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죄를 통회합니다.... 환난의 날에 우리를 떠나지 마시옵소서

 

주 목사님은 19379월 산정현교회당 신축 입당 예배의 기원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1937년의 물리적 압박은 없을지 모르나 오늘 우리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교회의 순결과 본질을 지켜내고 있습니까? 경제적으로, 사상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교회는 부패했고, 이기적이며 더 이상 사회의 빛이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때 주 목사님의 질타는 우리를 향한 소리처럼 들립니다. 주 목사님의 설교는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열악한 조건에서도 순결한 믿음을 지켜내려고 몸부림쳤던 주 목사님은 영웅적인 사람도, 대답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주 목사님은 오정모 사모와의 마지막 면회 때 따스한 숭늉 한 사발을 그리워한 우리와 같은 심정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이리라는 고집스러움, 신앙의 순결을 지키고자 한 이유 때문에 죽음의 행렬에 들어선 것입니다.

 

결코 이름을 나타내려거나 보상을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고, 예수 사랑의 감격 때문에 고난의 길을 고난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뿐인 목숨을 너무나 아꼈기에 주님을 위해 바쳤을 뿐입니다.

 

주 목사님이 떠나셨으나 아직 여기 남은 이유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신앙을 지켜내고 이 나라를 하나님의 섭리 속에 계속 걸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75주기를 맞이하여 주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무서워 예수를 저버리지 마시오.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지는 죽음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그 아니 두렵습니까?

 

한번 죽어 영원한 천국의 복락이 그 아니 즐겁습니까? 이 주 목사가 죽는다고 슬퍼하지 마시오. 나는 내 주님밖에 다른 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는 살 수 없습니다.

 

더럽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고도 죽어 주님 향한 정절을 지키려 합니다. 주님을 따라는 죽음은 나의 기원입니다. 나에게는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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