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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의 순교 영성을 염원하며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전 합동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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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기사입력 2019-04-18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와 말씀과 섬김과 순교의 영성을 염원하며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주기철 목사님은 18971125일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 복부리에서 주현성씨의 43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일제가 웅천에 침략해올 것을 우려했던 주기철 목사님 일가의 어른인 주기효는 민족 수난을 극복하기 위해선 힘을 길러야 한다면서 이곳에 1906년 개통학교를 세웠는데 어린 소년 기철은 이 학교에 입학하여 투철한 민족정신과 민족애를 키웠습니다. 이즈음 그의 맏형인 주기원은 이곳에 웅천교회를 세워 목회활동을 시작했는데 어린 소년 기철은 이 교회에 열심히 다녀서 소년 목사라는 칭호를 듣기도 했습니다. 개통학교 7년 과정을 마칠 무렵, 그는 당시 부산에서 우연히 춘원 이광수의 애국 강연을 듣고 감동을 받아 이승훈 선생이 세운 평북 정주의 오산 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1919년 기미년 31일 전국에 독립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질 무렵 부흥사 김익두 목사님이 마산 교회에 와서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성신을 받으라라는 그의 외침에 큰 감동을 받은 주기철은 1921년 평양 신학교에 입학하여 1925년에 졸업했습니다. 그는 평양 신학교 19회 졸업생으로 30세 때 목사로 안수 받았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1926-1931년까지 6년 동안 초량교회에서 사역하며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그 기간에 진주 성경 학교와 경남 성경 학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의 일을 겸했습니다. 19317월 주기철 목사님은 임지를 마산 문창교회로 옮겼는데 거기서도 6년간 목회하며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목회 성공자로서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사경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가 가는 곳곳마다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평양 산정현 교회는 길선주 목사님의 뒤를 이어 한국 교회를 이끌고 갈 지도자로 주기철 목사님을 담임 목사로 청빙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19367월 하순 평양 산정현 교회로 부임하여 1937년에 교회당을 신축하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본이 발악하던 1930년대에 일어나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이에 대항해서 싸우며 한국 교회를 지킨 신앙의 용사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 참배를 선봉에 서서 반대하다가 193828일 경찰에 1차 검속되었다가 27일만에 석방되었고, 19388월 제 27회 장로회 총회를 전후하여 2차 검속되어 6개월간 대구 경찰서에 수감되어 있다가 19392월 석방되었으며, 193983차 검속되었다가 9개월 후인 1940420일 석방되었고, 19409월 다시 4차 검속되어 평양 경찰서와 형무소에서 4년간 옥중 생활을 하다가 1944421일 밤 930분 경 49세를 일기로 순교의 제물이 되어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제 주기철 목사의 삶과 사역의 특징들을 살펴봅니다.

 

첫째로, 주기철 목사님은 예수님을 닮은 하나님 중심적 목회자였습니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로서의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었는데, 일사각오의 자세로 믿음의 길을 달려가다가 순교한 주기철 목사님이야말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하나님 중심적 목회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삶에는 예수님의 삶과 비슷한 모습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시고 헌신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던 것처럼, 주기철 목사님도 하나님께만 절대 복종하고 헌신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것처럼, 주기철 목사님도 옥중에서 갖은 고초와 순교를 당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온유하고 겸손하신 모습으로 양 무리들을 사랑하시며 희생적으로 섬기셨던 것처럼, 주기철 목사님도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목자의 성품으로 양 무리들을 사랑하며 희생적으로 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만 전파하셨던 것처럼, 주기철 목사님도 하나님의 말씀만 타협 없이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성령으로 일관되셨던 것처럼, 주기철 목사님의 생애도 성령으로 일관되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설교자요 목회자였는데 하나님 중심적 설교자요 목회자였습니다.

 

둘째로, 주기철 목사님은 기도와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부산 초량교회의 목회는 기도와 설교에 주력한 목회였는데 그의 설교는 기도의 동산에서 영근 설교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구덕산에 올라가 종종 철야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준비한 메시지를 놓고 특별 기도를 하며 지냈고 설교 원고를 작성하다가도 가끔 산에 올라갔습니다. “주 목사는 비상한 고심과 정성으로 설교 원고를 작성했다. 산에 가서 철야 기도를 하고 이슬에 젖은 몸으로 새벽에 집으로 돌아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민경배, 순교자 주기철 목사p. 89). 주기철 목사님의 마산 문창교회의 목회도 기도와 설교에 주력한 목회였습니다. 무학산에서 기도를 하다가 축축하게 밤이슬에 젖어서 내려오는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무학산에는 주 목사가 오르내리는 길이 빤질 하게 닦아지게 되었다주 목사의 설교의 하나하나는 모두가 피땀 나는 기도와 체험의 소산으로 이룩된 공든 탑 아닌 것이 없었다.”(김충남,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생애p. 157). 주기철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새벽 기도를 권면하면서 새벽 시간은 은혜가 많은 시간입니다라고 자주 말씀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한 번도 새벽 기도를 빼먹는 일이 없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마지막 목회였던 평양 산정현 교회의 목회도 일사 각오의 기도와 설교에 주력한 목회였습니다. 주 목사님은 19367월 하순 평양 산정현 교회에 부임한 후 흐트러진 신앙의 분위기를 기도와 성경으로 일신하므로 산정현 교회의 교인들은 영적으로 모두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주 목사님은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항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할 것을 작정하고 기도와 목회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결연한 충성과 헌신의 자세로 강단에 나설 때마다 주 목사님은 태도에는 무슨 광채라도 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산정현 교회는 주기철 목사님 취임 후 현저히 부흥했다고 김인서 장로가 그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면서 교회가 더워지고 교인이 증가하는 비방을 주 목사에게 찾아보니 기도와 전도와 설교였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신사 참배의 강요가 더 심해지자 19386월 주기철 목사님은 김화식 목사 이유택 목사와 함께 묘향산에 들어가 10일간 기도했는데 5일간은 금식을 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다 넘어진 한국 교회를 홀로 버티어 세우기 위해 죽음의 준비를 하면서 비장한 각오를 다짐했습니다. 피와 땀나는 기도로 밤을 새우는 일도 있었습니다. 주 목사님은 기도하는 마음속에 여러 가지 계시의 광선이 비쳐 들어옴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산에서 기도에 열중하는 가운데 무아지경에 들어가서 불 솟듯이 때로는 마음속에서 기도가 강물처럼 흘러나옴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너무나 감격에 휩싸여서 30분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다른 말은 없이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란 말만 되풀이해서 부를 때도 있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193882차 검속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석방되어 19392월 첫 주일 아침 평양역에 도착했습니다. 그 길로 주 목사님은 교회로 달려가서 성전에 엎디어서 기도하는 동안에 한국 교회를 위해서 자기 자신이 저 나라에 가서도 기도를 계속하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결심을 가다듬고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주 목사님은 마5:11-12과 롬 8:18, 31-39을 봉독한 후 다섯 종목의 나의 기도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다섯 가지 종목의 기도 제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2) 장기간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 3) 노모와 처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4) 의에 살고 의에 죽도록 하여 주옵소서 5)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목회는 일사 각오의 기도와 설교를 삶과 죽음으로 나타내 보여준 삶과 죽음의 목회였습니다. 그의 기도와 설교 그리고 그의 삶과 죽음으로 인하여 한국 교회의 남은 자들은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주기철 목사님은 성령으로 기도하고 설교한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기도와 설교에 주력하되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설교한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주 목사님은 성신과 기도라는 설교에서 성신의 도움을 받아야만 바로 기도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성신은 바로 기도의 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성신을 받으라라는 설교에서 신자가 성령을 받아야만 주님 말씀대로 행할 수도 있고, 설교나 전도를 할 수도 있고, 환난 날에 승리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강단에 서서 설교할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고 평양 경찰서 유치장에서 고문을 받고 있을 때도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성신을 받으라라는 설교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신은 지금도 신자에게 충만하시고 교회 안에서 역사하신다. 성신을 받으면 각양 은혜를 받는 중에 특히 예수님의 교훈을 실천하고 전도하여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며 모든 환난에서 이기는 것이다. 주님 명하신 대로 행하려면 성신을 받아야 한다. 성신 받지 못한 사람은 예배당에까지 나올 수는 있으나 예수님의 교훈을 실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려면 성신을 받아야 한다. 전도란 한갓 사람에게 윤리도덕을 가르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요, 악신 마귀를 따라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니 사람의 재주로 못하고 성신의 권능으로 하는 것이다. 악한 날에 승리하려면 성신을 받아야 한다. ‘악한 날이란 주님 재림 때뿐 아니라 최종 말일이 오기 전에도 악한 날에 성신으로 무장하여야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성신을 받아야 까부는 환난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1020년을 예수를 믿노라 하여도 성신을 받지 못하고 사람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면 지옥에 갈 것이니 그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깨어 기도하여 성신을 받으라. 악한 시험을 이기라. 성신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말 충만하게 합소서.”

 

넷째로, 주기철 목사님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긴 겸손하고 소박한 사람이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하나님께 대한 일사 각오의 충성과 헌신에서는 사자같이 단호하고 강했으나, 목양지의 성도들에 대해서는 비둘기같이 순수하고 부드러웠습니다. 김충남 목사는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의 주기철 목사님의 목회를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교역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주 목사의 단호한 태도와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교역으로 인해서 그 동안 이지러지기 시작한 영적 상처가 낫고 다시 건전한 교회 질서가 잡히기 시작했다.” 주기철 목사님은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소박한 사람으로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웠습니다. 순수한 사랑과 섬김의 사람이었습니다. 고등계 형사들까지도 그의 사랑과 섬기의 인격에 감동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부산 초량교회를 시무할 때 어느 날 경관 정복을 입은 순사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그에게 복음을 가르치며 그를 위해서 성심 성의껏 기도했습니다. 그 김석진이라는 순사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으며 나중에는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개인 접촉의 방식으로 예수님을 믿고 목사나 교육자가 된 사람들이 다수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사람에 대한 정도 많았습니다. 마산 문창교회에서 목회할 때 사모님 안갑수 여사가 병으로 죽었는데 그 때 주기철 목사님은 방성 통곡하며 슬퍼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분쟁으로 상처 입은 마산의 문창교회를 기도와 말씀, 사랑의 섬김과 그리고 그의 관후하고 온유한 인격으로 치료하고 부흥 발전시켰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마산 문창교회에서 목회할 때 이웃 성결교회와 친밀한 교제를 유지했고 심지어는 문창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독립교회와도 친밀한 교제를 증진시켰는데 독립 교회와의 제직 연합 간친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민경배 교수는 주기철 목사님에게 정신의 높이와 심령의 광활함을 본다고 지적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평양 경찰서와 형무소에서 옥중 생활을 할 때 같은 방의 동료들에게는 물론 자기를 고문하던 형사들에게까지 온유한 사랑과 섬김으로 대하므로 그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곤 했습니다. 공산당 주영하도 주 목사님만은 존경했습니다. “주 목사는 주먹밥 한 개도 반만 먹고 배고프다는 같은 감방에 있는 자에게 나눠주는 것은 보통으로 하는 일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랑엔 불량배들마저 그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지는 신적 권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김충남,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생애p. 234).

우리들은 기도와 말씀과 섬김과 순교의 영성을 몸에 지니고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며 순교의 피를 흘리시고 그리고 성도들과 자기를 박해하는 원수들에게까지 한 없는 용서와 사랑과 섬김을 베풀다가 주님 품으로 돌아가신 주기철 목사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하며 주기철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지극한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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