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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님은 순교를 사모했다"

김명혁‧이응삼 목사, 주기철 목사 순교신앙 특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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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기사입력 2019-04-18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순교 영성을 염원하는 특별대담이 18일 오전 945분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변교회 지하 2층 비전홀에서 진행됐다.

 

김명혁 목사(전 합동신학교 교장, 강변교회 원로)와 이응삼 목사(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역임)이 주기철 목사의 순교신앙에 대해 먼저 발표를 했다. 이어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뉴스파워 대표)의 진행으로 질의 응답을 했다.

▲ 우측부터 이응삼 목사, 김명혁 목사, 김철영 목사     ©뉴스파워

  

 

김응삼 목사는 주기철 목사님은 잘 자리를 잡아가던 부산 초량교회를 뒤로하고 마산문창교회에 부임했다. 그때 문창교회는 한창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사람들에게 바보라고 불리웠다.”바보 주기철, 이런 바보가 그리운 세상이 되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주 목사님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지 7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가 그분을 추모하는 것은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주 목사님이 사신 시대는 말 그대로 고난의 길, 광야의 길이었다. 당시 한국교회의 치욕의 시대였으며, 변절의 시대였다. 일제의 가혹한 핍박과 고문이 한국교회를 향해서 체계적으로 수행되던 바로 그 역사의 현장에서 주 목사님은 사시고 버티고 당하시면서 걷다가 순교로 생을 끝낸 우리의 신앙인이셨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주 목사님은 1931년 경남노회의 신사참배 거부를 결의한 때로부터 1944년 순교하실 때까지 13년간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싸우는 가운데 4차례 구속을 당하셨으며, 구속 기간 동안 외로움 속에서 가혹한 심문과 갖가지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받으셨다.”거친 잠자리와 배고픔, 혈육에 대한 그리움, 그 모든 것은 한 인간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주 목사님의 신앙은 바로 이 위기 촉발의 계속적인 시련과 아픔과 눈물의 삶, 거기에서 솟고 엉겨지고 굳어진, 생명의 신앙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주 목사님으로 상징되는 일제시대 신사참배 반대는 일제에 대한 민족 양심의 고귀한 마지막 저항이기도 하였지만 우상 숭배를 할 수 없다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에 대한 몸 바친 충성이었다.”그리고 우리 교회사에서 세 번째 커다란 시련기에 순교자가 여럿 나온 것은 공산주의의 박해 때문이었다. 수많은 이 시기의 순교자 중 주 목사님의 일사각오 신앙, 순교의 신앙의 영향으로 사랑의 원자탄이 된 손양원 목사님을 우리는 기억한다.”고 밝혔다.

▲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사업회 전 사무총장 이응삼 목사     ©뉴스파워

 

김 목사는 손양원 목사는 1944년 주 목사님의 순교소식을 듣고 주님, 이 부족한 종도 신앙의 진리를 굳게 지켜 주 목사님의 뒤를 따라 순교 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했다. 주 목사님의 신앙이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이렇듯 우리 교회사는 때로는 전통적 가치 때문에 이교직 배척,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반대, 공산주의자들의 유물론적 혁명적 투쟁 때문에 겪어온 수난과 순교의 역사는 세계에 그 유례가 없으리만큼 통절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 세계의 나라나 교회들이 다같이 우러러 보는 놀라운 교회의 발전을 한 그 저력이 다른데 있다고 볼 수 없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이런 순교자적 신앙이 이 나라 교회에 비옥한 땅과 생명력을 남겨 놓았던 것이라며 이것이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다. 바로 순교의 역사다. 그 순교 역사 계보 중심에 주 목사님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목사는 견디기 어려운 열악한 조건에서도 순결한 믿음을 지켜내려고 몸부림쳤던 주 목사님은 영웅적인 사람도, 대답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주 목사님은 오정모 사모와의 마지막 면회 때 따스한 숭늉 한 사발을 그리워한 우리와 같은 심정의 평범한 사람이었다.”다만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이리라는 고집스러움, 신앙의 순결을 지키고자 한 이유 때문에 죽음의 행렬에 들어선 것이라고 밝혔다.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이어 김명혁 목사가 발표를 했다. 김 목사는 주기철 목사님은 예수님을 닮은 하나님 중심적 목회자였다.”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로서의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었는데, 일사각오의 자세로 믿음의 길을 달려가다가 순교한 주기철 목사님이야말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하나님 중심적 목회자의 삶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주 목사님은 기도와 말씀의 사람이었다.”주 목사님의 부산 초량교회의 목회는 기도와 설교에 주력한 목회였는데 그의 설교는 기도의 동산에서 영근 설교였다. 주 목사님은 구덕산에 올라가 종종 철야 기도를 했다. 그는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준비한 메시지를 놓고 특별 기도를 하며 지냈고 설교 원고를 작성하다가도 가끔 산에 올라갔다.”고 말했다.

 

특히 주 목사님의 마지막 목회였던 평양 산정현 교회의 목회도 일사 각오의 기도와 설교에 주력한 목회였다.”주 목사님은 19367월 하순 평양 산정현 교회에 부임한 후 흐트러진 신앙의 분위기를 기도와 성경으로 일신하므로 산정현 교회의 교인들은 영적으로 모두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주 목사님은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항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할 것을 작정하고 기도와 목회에 전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김명혁 목사는 주기철 목사님은 성령으로 기도하고 설교한 성령의 사람이었다.”주 목사님은 성신과 기도라는 설교에서 성신의 도움을 받아야만 바로 기도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성신은 바로 기도의 신이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한 주 목사님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긴 겸손하고 소박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일사 각오의 충성과 헌신에서는 사자같이 단호하고 강했으나, 목양지의 성도들에 대해서는 비둘기같이 순수하고 부드러웠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우리들은 기도와 말씀과 섬김과 순교의 영성을 몸에 지니고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며 순교의 피를 흘리시고 그리고 성도들과 자기를 박해하는 원수들에게까지 한없는 용서와 사랑과 섬김을 베풀다가 주님 품으로 돌아가신 주 목사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하며 주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지극한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표한다.”고 밝혔다.

▲ 김명혁 목사(좌)와 이응삼 목사     ©뉴스파워

 

이어 질의 응답이 진행됐다.

 

김철영 목사는 한국 대표적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 신앙과 순교의 영성에 대해 잘 들었다. 순교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이응삼 목사는 순교라는 단어가 남발되고 있다.”수련회 갔다가 사고를 당해도 순교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순교는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이 기본. 첫째로 복음을 전하다가, 두 번째로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세 번째로 그 분의 삶이 주기철 목사님처럼 영육 간에 누구나 존경하는 것까지 겸비해야 한다.”그렇게 사는 분이 스데반 집사였다. 그리고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의 삶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순교자로 기리고 신앙의 모본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영 목사는 순교와 순직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가 순교자 개념 정리가 잘 안 되고 있다.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한국 교회 순교자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를 물었다.

 

이응삼 목사는 전체적 확인은 어렵다. 일제 강점기나 6.25 때 집단적으로 당했기 때문에. 1-3천명 정도로 본다.”타민족보다 동족에게 죽임을 당한 경우가 많다. 스데반 집사도 그렇고, 6.25 때도 이념 때문에 대규모 순교를 당했다.”고 말했다.

 

김철영 목사는 교회사 속에서 주기철 목사 같은 대표적인 순교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를 꼽을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김명혁 목사는 스데반 집사 말씀하셨고, 150년에 서머나 교회에서 불에 타 순교한 초대교부 폴리캅을 들 수 있다. 그 분들은 순교를 사모했다. 그분들은 가난을 나의 일터로, 고난을 나의 스승으로, 죽음을 나의 애처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주기철 목사님은 순교를 바라셨다. 할 수 없이 그렇게 당한 게 아니라 죽기를 바랐다.”손양원 목사님이 순고하셨을 때 정양순 사모님이 시신 앞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 소원대로 됐군요.’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스데반 집사가 기뻐하면서 순교했듯, 폴리캅도 날 순교자 삼으십니까라고 했다. 초대 교부 터툴리안은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다. 로마 시대에 많은 순교자가 생겼다. 그 덕분에 교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명혁 목사는 한국도 토마스 선교사가 없었다면 이기풍 목사님이 없었다.”복음을 위해 십자가를 사랑하면서 죽기를 소원하며 달려갔던 신앙의 선배들이 얼마나 귀중한가.”라고 며 순교신앙을 한국교회가 계승할 것을 강조했다.

 

김철영 목사는 본인이 자원한다고 해서 순교를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박해 상황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피하지 않은 믿음의 결단이 순교적 신앙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응삼 목사는 오늘날에는 순교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 시대가 그렇게 변했기 때문이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 때처럼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지는 않는다.”그렇다면 순교신앙이란 뭘까.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는데, 소금은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이 녹아지고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요즘의 순교란 소금처럼 빛처럼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죽는 것보다도 우리가 주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 자체가 순교라고 생각한다.”많은 사람들이 빛을 잃고 맛을 잃었다. 이 어른들이 살던 시대에 비해 교회가 지도력과 존경을 잃었다. 그것을 회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 우측부터 이응삼 목사, 김명혁 목사, 김철영 목사     © 뉴스파워

  

김철영 목사는 순교 정신으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그런데 지나친 열심과 헌신으로 몸을 상하게 해서 일찍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다. 우리 몸은 주님의 성전인데 너무 과로해서 일찍 죽는 것도 지혜롭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이응삼 목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자해성의 봉사보다는 몸을 잘 관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영 목사는 손양원, 주기철, 이기풍 목사님 같은 순교신앙을 실천하셨던 분들의 삶을 보면 기도와 말씀과 성령이 충만했고, 천국에의 사모함이 강렬했기에 기꺼이 순교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같다.”오늘날 하나님과 관계와 교제보다 종교적 열심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외형에 치우치는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명혁 목사는 종교적 열심이라는 말 자체에 공감을 잘 할 수 없다.”십자가의 삶과 죽음을 너무 귀중하게 여기면 자연스럽게 순교적 신앙을 갖고 살다가 죽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꼭 목이 잘려 죽지 않아도 십자가 신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했다고 말한 것처럼 종교적 열심이라기보다 십자가 신앙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성봉 목사님은 거지로 살았다. 순교는 안 했지만 순교적 삶을 살았다. 마지막 집도 팔아 버렸다. 가난해지고 고난을 당하고 약해지고 했다.”억지로 고행주의는 아니지만 프란치스코는 가난을 애처로 고난을 스승으로 죽음을 자매라고 말했는데 그러한 삶을 고행주의라고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한경직 목사님이 프란치스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종교적 열심보다는 십자가 신앙을 가져야 한다. 약해지고 착해져야 한다.”최권능 목사님은 전도하러 가다 소똥에서 나오는 콩을 먹으면서도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희생하는 신앙, 순교적 신앙의 삶을 사셨던 분들을 바라보면서, 순교적 삶을 살면서 가난, 고난, 슬픔, 아픔 , 매맞음 등을 고린도후서 11-12장처럼 기뻐한다고 했다.”며 그러한 삶을 죽기 전에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일부러라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인디언하고 살다가 20대에 죽었던 브레이너드가 없었다면 현대 선교가 없었을 것고 말했다.

 

김철영 목사는 한국교회와 시대 상황에서 가난과 고난은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 같다. 60-70년대만 해도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은 쌀도 없이 가난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절대 빈곤의 시대가 지나갔다.”가난과 고난을 강조하는 것은 먹히지 않는데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결국 하나님 말씀에 대한 약속을 붙잡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와 교제, 기도와 성령에 붙들릴 때 가난과 고난을 이겨내고 순교적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과연 순교 신앙의 핵심인 천국에 대한 사모함을 갖고 성도들을 인도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김명혁 목사는 “80년간 고난도 없이 살고 있다. 문자적으로 선교적 죽음을 죽을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순교자들의 삶을 목사님들이 설교하면서 간증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손양원 목사님이 애양원을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우리도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 장기려 박사님, 한경직 목사님 등의 글을 읽어야 한다. 한경직 목사님도 최고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좋은 집 마다하고 남한산성 아래 조그만 집에서 평생 사셨다. 그런 분들을 자꾸 그리워하면 감동을 받게 된다. 지금은 부요한 때이지만 조금이라도 그렇게 살고자 하면 내가 은혜를 받고 옆 사람이 감동을 받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영 목사는 오늘날에 그런 목회자들이 있을까라고 질문했다.

 

이응삼 목사는 신앙과 삶의 일치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생활 따로 신앙 따로라며 믿음 좋은 사람은 세상에서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국내 순교지를 순례하는 일들을 하는데 가장 많이 가는 곳이 문준경 전도사님 순교지인 증도다. 얼마 전 노회 목사님들 100여명이 그곳을 순례했다. 저도 10회 이상 갔지만 갈 때마다 은혜가 다르다. 하나님 말씀 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 아닐까. 믿음의 현장들을 보면서 피부로 느껴야 한다. 말로 되는 것이 아니고 가서 보여주어야 한다. 그 한 분 덕분에 지역이 복음화가 되고 예수 믿는 마을이 됐다. 신앙과 삶을 매치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철영 목사는 한국 교회 거의 대부분 목회자들은 믿음으로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서 산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일부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한 큰 교회들은 돈도 내고 사람도 동원할 수 있다 보니 영향력이 크다. 순교 신앙 이전에 한국교회에 들어온 돈이면 다 된다는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할 때 한국교회가 가난과 고난과 순교신앙의 더 열망을 갖지 않을까.”라고 질문했다.

▲ 주기철 목사가 당시 설교하고 있는 모습을 복원해 놓았다.     ©뉴스파워

 

 

이에 대해 김명혁 목사는 순교자들뿐 아니라 장기려, 한경직, 이성봉 목사님 같은 귀중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라며 문준경 전도사가 사역했던 지역도 좋고 순교자기념사업회 사역이 너무 귀중하고 목회자들이 본받아서 순교뿐 아니라 선배들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또 갑자기 순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스데반이 갑자기 순교한 것이 아니다.”사도행전을 보면 순교 이전에 설교 하는 내용이 한 장이었다. 구제도 얼마나 열심히 했나. 주기철 목사님이 낮아지고 낮아지고 낮아지길 원하니까 매를 맞아도 기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응삼 목사는 주기철 목사님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면서 기도문을 읽었다.”한국교회 기도 소리가 그쳤다. 어린 시절 삼각산에 제일 자주 갔다. 먼 이야기가 아니다. 기도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도 없이 순교 없다.”며 한국교회 안에 기도 운동이 다시 일어나기를 소망했다.

 

특히 이제는 먹고 살만 하니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지 않는다. 입시학원으로 보낸다.”순교 신앙 회복에 앞서서 기도 운동에 불이 붙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혁 목사는 “6.25 이후 이성봉 목사님은 기도에 전력하신 분이다. 김치선 목사님도 그랫다. 김치선 목사님이 산기도 하면 저도 매일 따라갔다. 선배님들이 가르쳐 주셨다.”지금이라도 기도 운동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들이 나타나서 기도와 말씀, 그리고 사랑과 섬김을 삶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고 나서 순교라고 강조했다.

 

김철영 목사는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그 분들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졌고 부족함과 실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나누다 보니 그분들을 너무 높이고 완벽하다고 칭찬하다 보니 순교는 특별한 분들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자칫 하나님만 높여야 하는데 개인적 삶을 높이게 되는 것 아닌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기본적인 말씀과 기도와 성령을 사모했던 주기철 목사님처럼 우리가 그런 삶을 살기를 힘쓸 때 여러 고난과 핍박과 순교, 목숨을 내놓을 상황이 왔을 때도 주님께 자신을 기꺼이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충성스러운 믿음의 본을 보이신 귀한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한 선배님들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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