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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국교가 된다면

<초대교회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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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
기사입력 2005-09-14


신앙의 자유를 얻은 313년 이후 기독교는 굉장한 변화를 경험한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국가의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지였다. 전에는 신자가 되려면 여러 면에서 대단한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독교인이 되는 게 모든 면에서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황제를 포함한 국가를 지배하는 인물들 거의가 다 공개적으로 예배에 참석하였다. 성직자는 가장 존경과 우대를 받는 지위가 된다. 그리고 교회는 고대 세계를 지배하던 가장 강한 제국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전과는 너무도 다른 상황이었다. 신자들의 생각이나 예배나 삶은 박해의 불 속을 지나온 과거의 신자들과 큰 차이가 있었다. 가장 변화가 심했던 것은 무엇보다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였다. 국가의 보호를 받는 대신 협조하고 눈치를 본다. 예배나 행정이나 신자의 삶도 전혀 다른 면모가 나타난다.

교회의 변화

313년 이전의 교회는 여러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교리, 권징, 예배, 교회 기구 등이다. 국가는 교회와 아무 연관이 없었다. 아니 국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언제 이상한 명령을 내릴지 몰랐다. 하지만 콘스탄틴 이후에 사정은 너무도 달라진다.

초기에 로마 신의 종교가 제국을 연합시키는 원동력이었던 것처럼 이제는 기독교가 그 역할을 하였다. 이전 황제들이 로마 신의 전당을 세웠던 것처럼 이제는 황제가 교회를 세워주었다. 로마 신의 사제들이 봉급을 받았던 것처럼 이제는 교회의 성직자들이 그러하였다. 성직자들은 세금이 면제되었다. 그러므로 많은 부자들이 세금을 면제 받으려고 성직자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부자들이 성직에 들어오는 것을 금할 정도가 된다.
 
교회는 정부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고 사람들의 유산도 받았다. 그래서 땅이나 집이나 재산이 생겼다. 차츰 유럽 땅은 중세 후반부에 보면 거의 절반까지 교회 것이 되어 간다. 감독들은 신자들 간의 송사를 교회 법정에서 해결할 권리를 가지게 된다. 세속 법정에서도 범법인들을 중재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왕들이나 영주들까지도 중재할 수 있었다.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악습을 고치도록 법을 제정하게 압력을 넣을 수 있었다.

이러한 엄청난 특권은 교회를 세속적으로 변질시킨다. 전에 할 수 없던 일들을 이제는 손쉽게 해낸다. 그러면서 여러 유혹 앞에 노출된다. 국가 정치가 교회에 들어오고 교회는 국가의 정치에 말려든다. 교회 건물은 왕궁처럼, 그리고 예배는 대관식처럼 화려해진다. 신자들은 순전히 이름뿐이었다. 전처럼 희생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은커녕 시간도 내지 않았다. 사실 교회는 이들의 희생이나 도움이 필요 없었다. 필요한 것은 국가에서 주어졌고 스스로 부자였기에 다 해결할 수 있었다. 권세와 영광만이 있을 뿐이었다.

황제들은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것이 데오도시우스(378~395) 시기에 절정에 달한다. 381년 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교회 회의를 소집한다. 여기서 이교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다. 이리하여 이제 기독교는 국교가 되고 다른 종교를 박해하는 입장이 된다.

교회의 예배

콘스탄틴 이후 교회 생활은 예배에서부터 변화를 가져온다. 박해받던 시기에 신앙의 강조점은 내면적이고 영적이었다. 거의 300년간 교회는 아름답고 비싼 건물을 세울 수 없었다. 그럴 재산도 기술도 없었다. 예배는 언제나 단순 소박했지만 영적이고 힘이 있었다.

이제 교회는 비싼 건물을 여러 도시에 세우게 되었다. 콘스탄틴과 그의 모친은 가장 비싼 교회당을 로마에 건축하였다. 전 세계에서 각종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동원되었고, 가구와 성전 기물들이 화려함을 자랑하였다. 교회 건축은 당시 최고 첨단 수준이 되었다. 신앙을 외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음악과 미술과 여러 기술들이 동원되었다. 모든 의식은 눈과 귀와 상상력에 호소하였다. 상한 심령의 통회와 두려움 속에 드리던 예배는 차츰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것으로 바뀌어 갔다. 예배자는 의식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교회 절기도 복잡해졌다. 본래 중요한 절기는 성탄절, 부활절, 오순절이었다. 이제는 4주전부터 성탄절을, 6주전부터 부활절을 축하했다. 오순절도 강화되어 표현되었다. 그리고 각종의 절기들이 첨가되었다.
 
일요일을 휴일로 지정하는 법도 정부로부터 공포되었다. 그러나 토요일에 예배하다가 일요일로 예배 날을 바꾼 것은 아니다. 이것은 안식교의 맹랑한 주장이다. 교회 시초부터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한 주간의 첫 날을 예배한 것이다. 콘스탄틴은 321년 '태양의 날'에 관공서가 쉴 것을 명한다. '주일'이나 '안식일'이라 하지 않은 것은 제국 내 불신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배려였다.

주일 예배는 두 부분이었다. 앞부분은 요리문답을 포함해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예배이고 뒷부분은 성찬식이었다. 앞부분이 끝나면 성찬을 받을 사람들 외에는 모두 해산하였다. 6세기부터는 금지된 자를 제외한 모두가 성찬에 참여하고, 예배는 미사라고 불리게 된다. 성찬과 세례에 5세기 경에는 견진과 안수가 첨가되었다. 후에는 결혼, 고해, 종부 등이 덧붙여진다. 종부는 '기름 바른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예식이 거룩한 것은 틀림없으나 차츰 의미보다는 외형적인 의식으로 흘렀다. 그것을 실천함으로 은혜가 오는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12세기에는 이것들이 정식으로 은혜의 방편으로 선포된다. 고해하면 용서받는가? 주가 죄의 대가로 죽어 주셨음을 믿고 회개해야만 용서가 된다. 주의 희생을 재현하는 미사에 참여하면 구원에 가까워지는가? 십자가 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이 경배하는 것이다.

성자의 유물

일반 신자로서 가장 큰 문제는 성경에 대한 무지였다. 예배 시간에 복음서나 서신들이 잘 읽혀졌다. 시편은 노래로 불려졌다. 때때로 예언서도 읽혀졌다. 그러나 일반 신자들은 라틴어로 읽는 것을 이해 못했다. 집에서 읽을 성경도 없었다. 차츰 미신과 가까워졌다.

초창기부터 사도나 순교자들,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은 절대적이었다. 그 중에도 베드로, 바울, 스데반, 마리아, 세례요한은 대표적이었다. 차츰 신자들은 이들에게도 중재해 달라고 기도하게 된다. 이런 미신적인 일이 점점 보편적으로 되어 간다. 4세기 말이 되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모든 성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가 된다. '주의 어머니'는 5세기 경에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녀는 죄 없는 이로서 '천국의 여왕'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보다 더 많이 기도의 대상이 되어갔다. 마리아는 사랑과 자비가 한량없는 분으로 하늘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 예수가 안 들어줄 부탁은 없었다.

성일, 성자, 순교자, 유물의 숭배, 순례와 성소들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성자나 순교자들은 굉장한 힘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들의 하는 일과 능력은 같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서나 숭배되었다. 한 지역에 국한된 인물도 있었고, 세계적인 인물도 있었다. 매일의 날짜들은 성자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도록 이름이 적혀 나왔다. 점점 이름이 많아져서 하루에도 여러 이름이 달력에 오른다. 이런 식으로 이교의 미신은 기독교에 들어왔다. 주로 유골인 성자의 유물은 신비한 능력이 있어 지닌 사람을 보호한다고 믿어지게 된다.

유물숭배와 함께 보편화된 것은 성지순례였다. 주가 살고 죽으신 장소를 찾는 것은 유익하다. 신앙의 도움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보다는 그렇게 함으로써 공적을 쌓으려는 것이었다. 자기 노력이 구원에 도움이 되고, 그 장소의 신비한 힘이 복 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렇게 초대 교회 전반부와 후반부는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믿어도 하나님이 계시해준 법대로 안 하면 참으로 믿는 게 아니다. 종교심이 미신과 합쳐 중세로 이어지는 신앙이 만들어져 갔다. 국가가 모든 국민을 신자로 만들었지만 소수만이 참 신자였을 뿐이었다.

* 김기홍 목사-아름다운교회 담임, 복음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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