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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기 II: 사무엘하(2)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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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기사입력 2019-06-20

통독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신구약을 통으로 읽는 것이다. 이 메모는 신구약 1,189장을 4장씩 묶어서 298회분을 게재 할 예정이다. 매 성경 모두에 필요한 연대나 자료를 제시하여 성경 읽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매 장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성경 메모는 단락 별로 제시하였고 지방이나 성읍과 일부분이지만 인명은 간단한 각주로 처리하였다. 본문과 대조하여 읽기 바란다. 단락별로 필요한 경우 적용과 기도를 넣었다. 이 메모에서는 논쟁이나 비판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의 흐름, 맥락, 요의, 함의,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정리 등을 기술하였고 가능한 간단히 처리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적색으로 된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각주(脚註)이다. 성경은 우리의 맛있는 양식이며,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 진다.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     © 김정권



                     
사무엘 하 2-5장 메모

 

 

<2 > 유다와 이스라엘의 내전: 기브온 전투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다.] (삼하2:1-7)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은 시글락에 잠시 더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이때 많은 용사가 몰려와서(대상12:16-18, 20, 21)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다윗은 먼저 여호와께 유다로 돌아갈까? 물었다. 하나님은 헤브론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의 가족들도 그곳에서 살게 하고 유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기름 붓고 왕으로 삼았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거주하며 제단을 쌓았던 곳이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묘가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의 시체를 장례 지냈음을 듣고 그들을 칭찬하고 자신이 유다의 왕이 되었음을 알렸다. 1010B.C.일인데 이때 다윗은 십이지파의 왕이 된 것이 아니고 유다 지파 사람들만이 기름을 부었다. 그러면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가 참여했을 것이다. 나머지 지파는 아직 다윗에게 승복하지 않았다.

 

적용: 다윗은 자신의 진로를 하나님께 물어서 결정한다. 신중한 처사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실을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그 길이 시온의 대로로 연결된다.

기도: 비록 어려운 길이 앞에 놓여 있더라도 기도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한다.

 

* 헤브론(Hebron) 가나안에서 가장 오래된 성읍이고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의 묘가 있는 곳이며 예루살렘 남남서 쪽 30km 지점에 있다.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이고

현재 이름은 엘칼릴(el-Khalil)이다(23:2-20; 13:22; 10:1-37; 삼하2:1-3; 15:7-10).

* 길르앗 야베스(Jabesh-gilead) 그냥 야베스라고도 부른다. 벧산에서 동남쪽 16km 지점,

요단강 동쪽에 위치한 성읍으로 요단강 동편 북부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다.

사사 시대 베냐민 지파 척결에 참가하지 않아서 멸절의 위기에 봉착하기도 한다(21:8-12).

왕국 초기에 암몬의 침략에서 구해준(삼상11:1-11) 사울에 대해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벧산에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신을 수습해주었다(삼상31:11-13).

 

[이스라엘의 왕이 되 이스보셋] (삼하2:8-11)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사울의 군대장이었던 아브넬이 사울의 4째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요단강 동쪽 압복강 중류에 있는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그를 왕으로 세웠다(1005B.C.). 삼하2:10, 112년간 왕이었고, 다윗은 76개월이라 설명한 것을 보면 다윗이 왕이 된 지 5년 반 뒤에 왕이 된 것 같다. 유다 지파 외에 지파는 다윗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던 것 같다. 다윗의 블레셋에 거주 한 일 등이 의심의 대상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오늘의 행동이 미래에 미칠 영향까지 생각해 두어야 한다.

 

* 길르앗(gilead) 요단 동편 르우벤, 므낫세 반지파의 땅을 이른다. 요단 동편의 아르무크 강과

아르논 강 사이에 비옥한 평원이다. 이 지방에 성읍으로는 길르앗 라못, 길르앗 야베스, 숙곳,

마하나임, 미스바, 거라사 등이 있다. 이곳은 목초지로 유명하다(대상5:16; 7:14).

* 아술(Ashurites) 이스라엘 북부 지방 거민(居民)이고 그술 사람’, ‘아셀 족속으로도

번역된다(삼하2:9).

 

[다윗과 이스보셋의 전쟁] (삼하2:12-17)

 

이스보셋이 마하나임에서 왕이 된 뒤 두 세력 간에는 불가피한 한판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데리고 기브온으로 나아오고 다윗과 요압 등 그 심복들이 나아가서 대치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아브넬이 패하였다.

 

* 마하나임(Mahanaim) “두 진영”, “두 때란 뜻으로 요단 동쪽 압복강변 길르앗 지방의 성읍이며

야곱이 여기서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 곳이다(32:2).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잠시 수도로

삼은 곳이다(삼하2:8, 12, 29). 다윗이 압살롬을 피하여 도피한 성읍이다(삼하17:24; 27:17).

* 기브온(Gibeon) 팔레스타인 중부에 산악지대에 위치한 성읍이며 예루살렘 북서쪽 약 9.6km

지점에 해발 760m 구릉 위에 세워진 성읍이다. 기브온 주민이 교묘하게 여호수아를 속여

이스라엘과 화친한다(9:3-27).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970년경 B.C.) 하나님을 만난 곳이다 (왕상3:4-15). 현재 엘지브마을로 알려져있다. 주변에 그일라, 브에롯, 기랏여아림 등 성읍을

거느렸었다.

 

[아브넬, 요압 동생 아사헬을 살해] (삼하2:18-23)

 

전쟁 중에 아브넬이 패주하는 것을 보고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뒤쫓았으나 아브넬의 창에 죽게 된다.

 

[아브넬의 휴전 제안](삼하2:24-29)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세워 왕을 만들었고 오늘은 적장으로 대결하게 되지만 무모한 피를 흘리지 말자고 제안하여 요압이 이에 응하고 회군하게 된다.

 

* 여기서 아라바를 지났다는 것은 요단 계곡을 지났다는 의미이다.

 

[기브온 전투의 결과](삼하2:30-32)

 

이 전투의 전과는 아브넬 쪽에서 360명이 전사했고 다윗 쪽에서 20명이 전사하였다.

 

 

<3 > 다윗 집의 흥왕(興旺)

 

[흥하는 다윗의 집, ()하는 사울의 집] (삼하3:1)

 

하나님이 이미 왕권을 다윗에게 넘기셨다. 당연히 다윗의 집이 강성하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차이는 믿음이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고, 사울은 믿음이 없는 불순종의 사람이다.

 

[다윗의 아들들] (삼하3:2-5)

 

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 반 동안 왕으로 다스리는 동안에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았다. 예루살렘 33년 통치기간에 13명의 아들을 더 낳았으니 모두 19명이다. 헤브론에서 낳은 6명의 아들이 어머니가 모두 다르다. 1. 암논(아히노암 소생), 2. 길르압(아비가일 소생), 3. 압살롬(마아가 소생), 4. 아도니야(학깃 소생), 5. 스바냐(아비달 소생), 6. 이드르암(에글라 소생) 등이다.

 

[이스보셋을 배반한 아브넬] (삼하3:6-21)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반목하게 되고 아브넬이 다윗을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웠으며 다윗에 의해 블레셋을 정복할 인물로 하나님이 세우셨음을 인정하고 다윗에게 단(이스라엘의 북쪽 끝)에서부터 브엘세바(남쪽 끝) 즉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제안하여 다윗의 동의를 얻었다. 늦었지만 아브넬의 회심은 하나님의 인도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한 데서 나온 행동이다. 아브넬이 헤브론에 사자를 보내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약속하고 허락을 받아오게 했다. 그리고 직접 종자를 데리고 다윗에게 나아가서 통일 왕국을 허락받는다.

 

* 바후림(Bahurim) 예루살렘 북쪽 1.5km 지점의 감람산 북쪽이다(삼하3:16).

 

[요압, 아브넬을 살해](삼하3:22-30)

 

다윗의 군대장인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기브온 전투에서 아브넬을 추격하다가 아브넬에게 찔려 죽었다(삼하2:18-23). 요압과 아비새 두 사람은 동생의 전사에 대해 아브넬에게 원한을 품고 원수를 갚았다. 이런 행동은 소인배들의 행동이다. 또 불신앙의 행동이다. 전사자는 정당히 싸우다가 죽은 것이지 일반범죄와는 다르다. 또 지금 아브넬은 국가 대사를 협의하는 중이다. 요압은 믿음 없는 사람의 행동을 함으로 다윗의 저주를 받게 된다. 삼하329의 백탁병은 혈루(血淚) ()인 것 같다.

 

적용: 원수 갚는 행동은 믿음의 행동이 아니다. 손양온 목사는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아 믿음의 삶을 보였고 이것이 바로 의인의 행위이다.

기도: 사람을 대할 때 친소(親疎)가 없이 대하도록 믿음을 주실 것을 간절히 구한다.

 

* 시라(Sirah) 헤브론 북쪽 2.6km 지점에 있는 헤브론 땅이다(삼하3:26).

 

[아브넬의 장례] (삼하2:31-39)

 

다윗의 진정한 애가(哀歌) 즉 아브넬을 위한 애가는 심금을 울렸고 아브넬의 죽임은 다윗과 관계가 없음을 백성들이 알게 되었다. 왕으로 말릴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많이 자책하는 다윗이다. 군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경거망동은 큰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역사에도 군권 잡은 자의 반역은 흔히 볼 수 있다. 요압은 아주 좋은 환경에서 성군을 만났으나 아주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4 > 이스보셋의 살해자 바아나와 레갑의 처단

 

[아브넬의 죽음을 전해들은 이스보셋](삼하4:1-3)

 

5절 이하를 설명하기 위한 도입부이다. 아브넬의 죽은 소식이 마하나임에 전달되고 모두 놀랐다. 여기서 이스보셋의 군 지휘관 2인을 소개한다. 이들은 이스보셋과 마찬가지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인데 그 이름은 바아나와 레갑 이다. 상황이 불리하게 되니까 왕을 죽이려는 음모가 있게 된다. 결코, 선한 행동이 아니다.

 

* 브에롯(Beeroth) ‘우물들이란 뜻으로 기브온의 성읍이었으며 베냐민 지파의 땅이 되었다

(18:25; 삼하4:2). 예루살렘 북쪽 18km 지점으로 보이며 현재는 엘 비레(el-Birh)인 것 같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삼하4:4)

 

이스보셋의 이야기 중간에 므비보셋이 등장한다. 사울의 세 아들은 길보아 전투에서 죽고 또 이스보셋이 죽으면 사울의 대는 끊긴다. 여기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은 지체부자유이지만 사울의 남은 혈육이다.

 

[이스보셋을 죽인 레갑과 바아나의 처형] (삼하4:5-12)

 

레갑과 바아나 형제는 이스보셋을 죽였다. 오수(午睡 낮잠)중인 이스보셋을 찔러 죽이고 그 수급을 가지고 헤브론 다윗에게 갔다. 물론 이들 형제는 다윗 밑에서 영화를 누리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을 죽이는 불의를 행했다. 다윗은 악인을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이들 형제를 처단하고 이스보셋의 수급을 아브넬 묘소에 안장한다. 다윗의 의인됨은 이런 데서 잘 나타난다. 즉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낸 것이다.

 

* 아라바(Arabah) 넓은 지역의 명칭이다. 요단강 계곡을 지나 사해 그 남쪽의 아카바만까지

연결되는 저지대(지구대)를 이른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사해 북단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을

이른다(삼하4:7).

 

 

<5 > 다윗 왕의 예루살렘(다윗 성)으로 수도 천도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 (삼하5:1-5)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등극했고 76개월을 다스린 다음 온 이스라엘 지파가 다 모여 헤브론에서 그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었다.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서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이 당시 예루살렘에는 여부스 족이 살고 있었다. 가나안 7 족속 중 하나다. 여호수아 때 다 내어 쫓았으면 간단한 것이나 지금은 다윗이 개척해야 할 땅이다. 1003B.C.예루살렘을 개척했고 970B.C. 까지 여기서 다스렸다.

 

[다윗의 예루살렘 점령과 성 구축] (삼하5:6-12)

 

새 왕국은 새로운 수도로 천도함으로 새로운 기운을 진작(振作)하고 정치, 군사, 문화, 경제의 새로운 축을 건설할 필요가 있었다. 예루살렘 성은 천연요새로서 주변에 깊은 골자기가 있고 수원(水源)이 좋으며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위치한 땅이다. 여부스 족이 다윗에게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한 말도 이런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부스 족이 만들어 놓은 지하통로(수로 水路)는 기혼 샘에서 실로암 연못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윗은 세밀한 지형정찰을 통하여 이 길을 발견하고 이리로 올라가서 성을 점령하였다. 두로 왕이 목재, 석재, 목수 등을 보내주어 다윗의 집을 지었다. 하나님이 다윗을 높이신 것이다.

 

* 밀로(Millo) 다윗성 동쪽 기드론 골짜기 쪽으로 가파른 언덕에 위에 세워진 여브스 테라스(the

Jebusite terrace)로 보는 사람이 많다(삼하5:9; 대상11:8).

*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연안 북쪽의 페니키아 도시국가로 블레셋을 자주 지원하였다.

 

[다윗의 아들과 딸들] (삼하5:13-16)

 

다윗은 헤브론에서 아들 6명을 낳았다(삼하3:2-5)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는 기간에 13명의 아들을 낳았다. 본문에서는 11명의 아들을 소개하고 있다. 즉 삼무아, 소밥, 나단, 솔로몬, 입할, 엘리수아, 네벡, 야비아, 엘리사마, 엘랴다, 엘리벨렛 등이다.

 

[블레셋을 이기는 다윗] (삼하5:17-21)

 

이 전투는 삼하5:6-12에 있었던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바로 뒤에 일어난 전쟁이다. 삼하5:11-16 기록보다 앞선 사건이다.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이 침공하였다. 먼저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다. 다윗이 믿음 위에 굳건히 섰을 때에는 항상 하나님께 먼저 물었다. 하나님이 블레셋을 다윗에게 넘기셨음을 응답으로 주셨다. 다윗은 영적 예언을 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길보아 전투에서 수치를 설욕할 수 있는 전투였다. 하나님이 블레셋을 흩으셨다.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둔다. 르바임 골자기는 길이가 5km, 넓이가 3km쯤 되는 골짜기이니 이에 가득 메웠다는 것은 상당수의 군인이 침공했음을 말한다.

 

* 르바임(Rephaim) “거인의 골짜기라는 뜻으로 골자기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하고 길이

5km, 넓이 약 3km로 블레셋과 전쟁이 자주 있던 곳(삼하5:17-25; 대상11:15)이다.

* 바알 브라심(Baal-perazim) “바알을 쳐부순 곳이란 뜻으로 예루살렘 근처의 르바임 골자기를

이른다. 다윗이 이곳에서 블레셋을 물리쳤다(삼하5:20; 대상14:11).

 

[2차 르바임 전투](삼하5:22-25)

 

1차전에서 패배한 블레셋이 다시 침공했다. 또 블레셋은 르바임 골짜기에 모였다. 하나님은 전략까지 이스라엘에 일러 주시어 그들을 대파하였다.

 

* 게바(Geba) 예루살렘 북쪽 9km, 믹마스 서남쪽 3km 지점으로 오늘 예바(Jeba)로 추정되며

베냐민 지파의 제사장 성읍이었다.

* 게셀(Gazer) 예루살렘 서북서쪽으로 32km 지점의 성읍이다.

라기스와 벧호론에 가까운 곳이다(10:33;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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