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회개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될까?(1)

정준모 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담임, D. Miss & Ph.D) 신학적 사색 칼럼

가 -가 +

정준모
기사입력 2019-07-12

 

 

 

 

▲  주 앞에 나와 진실한 회개가 살길이다.  ©뉴스 파워 정준모

 

서론) 회개는 한자로 [悔改], 라틴어로 [conversio], 영어 [conversion]으로 되어 있다. 이는 구약 히브리어로 길을 바꾸다”, “돌아오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sub)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신약 헬라어로 동사로 돌아오다는 에피스트레포(epistrepho)와 메타노에오(metanoeo)를 사용하고 있다. 신구약 성경에 회개와 같은 의미있는 돌아오라는 단어는 많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 말로 회개라는 단어가 약 60여회 정도 나온다. 그 중에 회개하지 아니하면이란 말씀이 10번 정도 나온다. 그 중에 요한 계시록에만 7번 등장한다. 그 예를 살펴보고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 회개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얼마나 중요하며, 회개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이다. 신앙생활의 처음과 마지막은 결국 회개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 회개하지 않으면 - 칼을 가시고 활을 당겨 놓으신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을 처벌하시기 위해 그분의 병기를 예비하시는 무장한 힘센 용사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7:12).이 말씀은 회개치 않는 악인과 죄인에게 반드시 형벌이 내려진다는 신명기 말씀의 투영이다.

 

신명기 32: 39-43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40] 이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살리라 하였노라 [41]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42] 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로다 [43]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여,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으신 큰 용사가 되신다. 그 하나님을 대적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분의 칼과 그 분의 화살을 피할 자가 없고, 반드시 심판을 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보여준 말씀이다.

 

2. 회개하지 않으면- 화를 자초하게 된다고 책망하신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그 때에 책망하시되화 있을진 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 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11:20-21).

 

예수님께서 회개치 않는 세 도성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은 예수께서 특별히 많은 권능을 베푸신 도시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많은 이적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현존을 강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 목적은 세상 나라 중심으로 살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돌아오게 하심입니다. 그러나 그 도시에 사는 자들은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기를 거절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죄악 된 삶의 방식대로 살기를 고집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회개치 아니함을 보고 책망하시며 를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장 많은 권능을 베푸신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의 죄가 심각함을 구약의 세 도시 곧 두로와 시돈과 소돔에 비교하셨습니다. ‘두로시돈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도시로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특히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 도시들이 바알 숭배를 했기 때문에 그 도시들을 책망했습니다(23; 26-28; 3:4; 1:9-10; 9:2-4). ‘소돔은 고모라와 함께 온갖 폭력과 극심한 성적 타락으로 무법천지가 되어 하나님께서 유황불을 내려 멸망시켰던 도시입니다(19). 그런데 예수님의 방문을 많이 받고 예수님의 권능을 가장 많이 경험하고 체험한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의 죄가 교만과 불신앙의 중심지였던 두로와 시돈보다 그리고 사악한 범죄가 난무했던 소돔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11: 21).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11: 23).

 

3. 회개하지 않으면-비극적 참사로 망하게 된다.

 

누가복음 13장은 개인적 죄 문제 보다 국가적 죄에 대한 주님의 회개 촉구 말씀이다. 주님은 두 가지 비극적 사건을 말씀하셨다. 그 하나는 갈릴리 사람들에 의한 제사 드리는 유대인들이 살육당하는 비극적 역사적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실로의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은 참사 사건이다. 이 둘 사건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33절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누가복음 135절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두 가지 비극적 사건을 두고, 그 사건 속에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그들의 죄 문제에 관심 가지고 있는 무리들에게 자신의 죄를 회개치 않으면, 그들도 그러한 비참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교훈하셨다. 사실, 이러한 주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외면한 유대인들에게는 A. D. 70년 로마 디도에 의해 예루살렘 성의 멸망이 도래하게 되었다.

 

만일 회개치 않으면, 망하게 되리라, 죽게 되리라는 필연성을 강조하신 주님의 음성을 심각하게 받아드리고, 개인적 죄 그리고 국가적 죄에 대하여 철저히 하나님께 회개하여야 한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예수님의 강조가 무엇인가. 망한다는 말이 무엇인가. 죽는다 말이다. 우리말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우리의 안전 불감증과 대강 대강 혹은 설렁 설렁 되는대로 적당히 살아가는 생활 태도가 인생을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한다.

 

댈러스 A. 윌라드(Dallas Albert Willard, 193594- 201358)의 저서 <마음의 혁신>(Renovation of the Heart)에서 지옥과 천국에 대하여 서술한 내용이 나온다. 그는 말하길, “지옥은 아차!’하는 간발의 실수로 가는 곳이 아니다. 인간은 털끝 하나 차이로 천국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외면하고 피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놓치는 것이다. ‘바깥 어두운 곳의 심판의 처소는 결과적으로 원하는 자가 가는 곳이다. 삶의 방향 전체가 천천히 그러나 확고부동하게 하나님과 어긋나는 쪽으로 굳어진 자가 가는 곳이 지옥이다.” 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 길에서 방향을 돌이켜서 그리스도 안으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이며 천국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나 만일 회개치 않으면 죽음의 심판과 지옥의 심판을 필연적으로 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혹시 연약하여 범죄했다면 속히 하나님 존재에 나가 회개하여야 한다. 또한 가정, 교회, 사회, 국가적으로 범죄한 일이나 재난을 당했을 때도, 요나의 경고 메시지를 받은 니느웨 백성들처럼 하나님께 나가 회개하는 길만이 살 길임을 알 수 있다.

 

4. 회개하지 않으면-의로우신 심판을 받을 진노를 쌓게 된다.

 

바울은 로마서 25절에 회개하지 아니하면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쌓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2:5). 주님의 말씀, 주님의 권고나 권면을 외면하고 고집을 부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그 기회를 외면하고 만용을 부리게 되면 그 기회만큼 그 죄악과 심판은 더 무거워지고 심각하게 가중시키게 될 뿐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분의 참고 기다시는 기회를 외면할 때, 그 사악함과 그 대가는 더욱 심각하게 쌓여 지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복을 고집부리고 남용하고 악하게 반응하거나 무반응함으로 재앙을 쌓는 일이 피해야할 것이다.

 

진노의 날이 반드시 임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여기서 밝히는 그 날에’(into the day)은 헬라어로는 에이스 헤메란’(eis hemeran)이며 그 의미는 그 날을 위하여’(for the day)라는 의미이다. 회개의 기회 때,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날인, 그 날에 그 진노가 그들 머리 위로 거침없이 쏟아질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그 때가 바로 그들에게 임할 파멸들이 쌓여지고 있음을 심각하게 자각해야 한다.

 

스바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1:15). 요엘서 22절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5:18). ‘나타나는이라는 단어를 덧붙임으로써 바울은 이 진노의 날이 어떠할 것인지 넌지시 비춘다. 때가 되면 즉, 그때가 되면 주님께서 자신의 심판을 분명하게 보이실 것이다. 물론 주님께서는 날마다 이 심판에 대한 암시를 주시지만, 마지막, 심판의 날, 진노의 날에는 반드시 양과 염소가 나뉘고 알곡에서 가라지를 제거될 것이다. 그날이 되기까지 그분은 그 심판을 분명하고 충분하게 드러내는 것을 연기하고 보류하신다. 그러므로 지금은 회개의 때요, 은혜의 때임을 알고, 자신을 살펴 진노의 날을 면하여야 한다.

 

5. 회개하지 않으면 -사역자도 하나님도 슬퍼하신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두고 여전히 그들이 죄악 속에 있는 것을 안타가워 하며 목양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근수근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2:20-21).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적인 문제에 관하여 권면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하여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였지만 그의 권면은 받아들여지는 대신에 심한 반대와 사도로서 모멸감까지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범죄의 자리에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근심하고 두려워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한 만족감으로 돌아오는 대신에 근심함만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고후 2:1).

 

바울이 지적하는 고린도를 두고 그가 두려워하는 것들과 또한 현재 범죄 속에 있는 교회의 죄악들은 무엇인가?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을 때 보고 느꼈던 그들의 교회 내부적 죄악들인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다툼(quarreling)"은 고린도 교인들 각자의 생각이나 주장이 너무 세고 이를 굽히지 아니잘못된 모습들이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판단의 기준이 하나님 말씀이 아닌 자가의 생각이나 주장이 근거가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시기(jealousy)"는 남이 자신보다 잘되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남이 잘되는 것에 질투하고 남을 헐뜯고 깍아내는 못된 마음이다."분냄(anger)"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정의 차원에서 노함(wrath)이 아니다. 이는 자신의 내면 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여 터져 나오는 나쁜 성질, 쓸데없고 남에게 어려움과 고통을 주는 무익한 회를 말한다. "당짓는 것(selfishness)"은 영어 단어 ‘selfishness'로 되어 있듯이 자기중심적 이기심을 말한다. 자기의 주장과 뜻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편가르기를 하는 교회를 해악하는 일이다. "중상(slander)"은 상대방에 대하여 사실무근(事實無根)의 사건과 이기기로 사실인양 각색을 하여 상대방을 모함하거나 넘어뜨리는 일입니다. “수군수군하는 것(gossip)"은 어떤 사람의 뒤에서나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에 대하여 험담을 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게 말하는 것을 일컫든다. “거만함(conceit)”은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높이 평가하고 과시하고 뽐내고 싶은 욕망스런 태도이다.“어지러운 것(disorder)"은 교회의 규칙과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자기감정대로 무질서하게 행동하며 그로 인해 교회 공동체가 혼란스럽게 되고 어렵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 내부에 존재했던 여덟가지 악행은 오늘날 교회 안에 비일비재하고 펴져 있는 악행들이고 현실이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내면속에 있는 회개치 않는 죄악들을 지적하고 있다. 이 죄악들은 바울이 고린도전후서 및 다른 서신서에서도 강력하게 권고하고는 죄악들이다. 그것은 바로 고린도 교회 내에서 얼마간의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더러움(ἀκαθαρσία: impurity)과 음란함(πορνεία: immorality)과 호색함(ἀσέλγεια: licentiousness) 등이다. 이러한 죄악들은 철저히 회개하고 단호하게 내버려야할 더러운 죄악들이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만나게 될 때,여전히 그들이 그 죄악을 버리지 못하고 빠져 있다면 그들과 만나는 것이 근심이 되고 두렵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가 머지않아 개인의 종말과 우주의 종말이 올 때,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우리의 회개하지 않는 죄악들 때문에 주님께서 근심하시고 안타까우신 마음을 가질까 늘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될까?(2)”가 곧 연재됩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뉴스파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