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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꾸러기' 윤남중 목사님을 추모하며

고인이 마지막 1년 간 출석했던 용인새순교회 방승용 담임목사가 쓴 추모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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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용
기사입력 2019-07-18

 이 글은 용인새순교회 방승용 목사가 지난 12일 소천한 고 윤남중 목사(새순교회 설립자 겸 원로목사, 전 기아대책 회장)를 추모한 글이다. 고 윤남중 목사는 지난 1년 동안 용인새순교회 주일예배에 출석했으며, 지난 1290세 일기로 하나님의 영원한 품에 안식했다.-뉴스파워-

지난 12일 새벽 세상을 떠나 영원한 하늘나라로 이사하신 윤남중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 대 초반이었습니다. 답답한 교실에서의 만남은 그다지 좋은 추억을 만들어 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 새순교회의 부목사로 섬기게 되면서 목사님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윤목사님은 원로목사이셨고 담임목사는 현재의 차종율목사님이셨습니다.

▲ 용인새순교회 성도들과 예배 후 윤남중 목사     © 용인새순교회 제공

  

종암동에서 방배동으로 이사 한 후 첫 예배를 잊을 수 없습니다. 수요일 밤 예배였는데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택에서 나와 두 아들과 함께 예배당에 갔을 때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요예배가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있었지만 밤 예배에 참석한 인원이 이전 교회의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에 아이들이 다시 종암동으로 이사 가자고 생떼를 부렸습니다. 그렇게 방배동의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햇수로 9년 동안 새순교회를 섬긴 후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돌아보니 만약 내가 종암동에서 부목사 생활을 하였더라면 현재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종암동보다 좋았다는 말이고 새순교회에서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새순교회의 부목사로 있을 때에 윤목사님에 대한 두 가지의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국가조찬기도회와 관계된 일 때문이고 둘째는 목회학 강의를 시작해 놓으시고 갑자기 사라진 일 때문이었습니다. 가끔 명절이 되면 찾아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해 답을 얻기 위해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늘 빙그레 다정하게 웃으시며 반겨 맞아주시는 모습을 두고 여쭈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주일마다 윤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년 봄에 윤목사님은 제가 섬기는 용인새순교회에 출석하셨습니다. 그동안 윤목사님은 성은주 목사님이 사역하시는 교회를 출석하시고 안창욱 목사님이 섬기시는 보광교회와 농촌목회 연구회를 섬기셨습니다. 이제 안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성목사님도 고창으로 내려가시게 되어 윤목사님은 용인새순교회로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고창으로 내려가신 성목사님도 용인새순교회의 성도가 되어 이 주에 한 번 교회 출석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윤목사님과 저는 매 주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 수가 거의 없는 조용한 분이셨습니다. 말을 잃어버린 분처럼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배가 진행되면 그 누구보다도 힘차게 찬송을 부르시던 분이셨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분이셨기에 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예배당에 나오셔서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배가 진행 되는 중 481장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때 저물어서 날이 어두니...” 그 다음부터 윤목사님은 엉엉 우셨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는 원래 울보가 하나 있었는데 그날부터 울보가 둘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원래 있던 울보는 기도를 시켜 놓으면 처음에는 침착하게 기도하다 나중에는 흑흑 울며 기도하는 천사 같은 권사님입니다. 아무튼 그 날 윤목사님 울보와 천사 울보가 같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다음 주일에 또 윤목사님은 우셨습니다. 주기도문송이 시작되면 우셨고 찬송이 진행 될 때에도 우셨고 제가 설교 할 때에도 종종 우셨습니다. 그는 거의 매 주일 우는 울보였습니다. 오죽하면 어느 날 아이 둘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저 할아버지는 왜! 예배 때에 우세요?” “! 하나님께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너무 좋으셔서 그래. 또 나이가 드셔서 다음 주에 같이 예배드릴 수 없을 지도 모르니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하셔서 그러는 것 같아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 용인새순교회 성도들과 함께한 윤남중 목사     © 용인새순교회

  

윤목사님이 용인새순교회에 처음 나오시고 귀가 하시는 날 목사님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다음 주에 못 올지도 몰라.” 차량으로 목사님을 모시고 다니는 임준태집사님이 옆에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건강하게 잘 지내시면 다음 주에 모시러 가겠습니다.” 저도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저를 다음 주에 못 보실 수도 있어요.” 그러자 씨 익 웃으시며 차를 타고 귀가 하셨습니다.

 

그렇게 매 주일마다 윤목사님은 나 다음 주에 못 올지 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은 그 말이 장난 끼가 넘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응수하였습니다. “목사님 오늘 제게 테러를 가하셨습니다.” 또 어느 날은 종말론적인 삶을 사시는 신앙인의 고백으로 들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수줍어하며 미안해하는 소년이 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러다가 금 년 4월부터는 그 말씀대로 교회에 본격적으로 나오시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장난 끼가 넘치는 분이자 종말론적인 삶을 사신 소년 같은 분이셨습니다.

 

작년 6월 중순 즈음입니다. 목사님이 제게 다음 주일이 내 아내 추모일이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날 같이 예배하자고 제게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날을 잡아 붕어찜을 잘하는 퇴촌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식사 후 네 사람이 함께 바이크를 타기도 하였답니다. 그 때는 불편하지만 조금 걸으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달은 제가 밟았지요. 그는 종종 문공순 사모님을 이야기 하시며 눈을 붉히셨습니다. 그럴 때면 제가 놀려댔지요. “목사님! 평촌에 가면 옛날 정정섭 장로님이 사시던 꿈마을 아파트 앞에 있는 세탁소 이름이 무엇인지 아세요?” “....” “모르세요?” “....” “치매가 온 것이 맞는 것 같은데 잊어버리지 마세요. 세탁소 이름이 남중이네입니다.” 이쯤 되면 크게 웃으셔야 하는 데 그는 그냥 씨 익 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 농을 깊이 하였습니다. “천하에 남중이와 공순이가 만나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는 갑돌이와 갑순이의 이야기보다 재미있습니다.” 제 기억으로 그 시점에서 약간 웃으셨던 것 같습니다. 남중은 자신을 놓아두고 먼저 멀리 이사한 공순이를 잊지 못하는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 고 윤남중 목사     ©방승용 목사 제공

 

몸 져 누우시기 전까지 그는 한 두 어 번 결석하시고 매주일 교회에 나오셔서 함께 찬양과 경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심방 중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바를 질문하였습니다. “목사님! 혹시 회고록은 준비하셨습니까?” “....” “그럼 오늘부터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목사님 말씀이 더 어눌해지기 전에 여러 가지를 기록해 놓고 싶습니다.” “사실 회고록을 썼어. M장로가 가지고 있어. 그런데...” “아 그러셨군요.” “난 이제 모든 것을 잊어버렸어요. 서운한 것도 없고 억울한 것도 없어요. 빨리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그리고는 또 울보목사는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울고 있는 목사님에게 더 이상 묻는 것은 실례가 되기에 그 날은 대화를 중단하였습니다. 나중 반복해서 지난날들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지면 상 자세히 기록할 수 없지만 퍼즐을 맞추어 보면 목사님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권력의 맛을 즐기기 위해 조찬기도회를 진행하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가 순수한 마음으로 그 일을 진행하셨다는 것을 대화 중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목회학 강의 중 사라진 역사도 알게 되었습니다. 장난꾸러기는 오해를 받고 아주 큰 어려움에 처 해 질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윤남중! 그는 유머가 넘치는 장난꾸러기였습니다. 지금도 지난날의 사진들을 보면 빙그레 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매우 순수하고 좋은 분이셨습니다.

 

재생병원에서 퇴원하시고 난 후 결석심방을 갔습니다. 침상에 누워계셨던 그는 이전보다 더욱 과묵하게 저를 맞이하셨습니다. 예배를 드리자고 하였더니 좋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 무슨 찬송을 부르시고 싶으세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먼저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도 찬송가 처음부터가 아니라 후렴부터 말입니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우리는 재빨리 윤목사님이 부르시는 찬송을 따라하였습니다. 4절까지 불렀습니다. 나중 이 찬송은 천국환송예배의 마지막 찬양이 되었습니다. 찬송이 끝 난 후 다시 물었습니다. 한 곡 더 부를 까요? 그러자 그는 또 먼저 부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되시니...”

 

윤남중! 그가 어떤 사역을 하였으며 무슨 공적을 쌓았는지 용인새순교회의 성도들은 듣기는 들었어도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인들은 기억합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예배하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종말론적인 삶을 살았고 아내를 늘 그리워한 사람이었으며 내게는 가끔 테러를 가한 장난꾸러기였습니다. “나 다음 주에 교회 못 올지도 몰라!”

 

짧은 만남이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묵직한 교훈을 제게 남겨 주셨습니다. 오늘 오전 양국주 선교사님이 저에게 방목사님이 나보다 먼저 윤남중 목사님을 만나러 가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이조크를 듣고 난 후 웃었습니다. 하지만 별세의 기쁨은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 할 수 없기에 나도 별세를 꿈꾸며 잠을 청하려고 합니다. 내일 아침 다시 깨어나겠지만 날마다 우리는 죽고 사는 것을 연습하며 살고 있습니다.

 

장난꾸러기 윤목사님! 먼저 가셨으니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이야기 거리 공순씨와 잘 준비해 주세요. 나중 뵙겠습니다. 그동안 장난꾸러기이지만 진지하고 해 맑은 순수한 소년 윤남중과 귀한 시간을 보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9717일 밤 10... 장난꾸러기 윤남중을 보고 싶어 하는 방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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