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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설교] 민족의 예수 혁명론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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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기사입력 2019-10-09

첫째, 우리는 혁명의 열풍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혁명과 격변의 소용돌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국가, 어느 민족, 어느 사회, 어느 인간의 영역도 뿌리째 흔들리고, 격변과 도전과 혁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 안전지대는 한 곳도 없습니다.

▲ 엑스플로 '74대회 당시 메시지 전하는 김준곤 목사     ©뉴스파워

혁명이란 이름이 근대사에서 선전 포고처럼 터진 대포적인 사건은 프랑스혁명과 소련의 마르크스주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혁명이란 서서히 개혁되고 점진적으로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화산처럼 폭발하고 전염병처럼 번집니다. 그것은 광풍이요 방화요 흥수요 발광이고, 죽이거나 죽을 수밖에 없는 피와 생사의 필연성을 가진, 외인과 내인을 내포하고 있는 질적 변화 운동입니다.

이러한 정치․경제․사회적 혁명 사건을 둑이 무너지는 일에 비유한다면, 그 둑이 무너지기 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구멍을 내는 자가 있습니다. 또한 큰 산을 불태우는 일에 비유한다면, 그 산에 불을 지르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칼 마르크스가 그 구멍을 낸 자이고 그 불을 지른 자입니다. 니체가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권력에로의 의지라고 선언했을 때 그것은 히틀러 사건에 불을 지른 것이며, 심리학자 프로이드가 인간은 근본적으로 성적인 것이라고 선언했을 때 그것은 섹스 시대를 계시하여 현대인의 심리학적 구조에 섹스 바이러스를 전염시킨 것입니다.

‘인간은 허무다’, ‘무목적이다’라고 프랑스의 까뮈나 사르트르가 염불처럼 푸념을 할 때 허무의 망령은 온 세계의 정신계를 휩쓸었고, 신은 죽었다고 일부 신학자들이 구호를 외칠 때 데모 군중을 선동해서 비신앙화미로의 혁명적 좌경화 파동이 세계를 휩쓸게 만들었습니다.

 
현대를 휩쓴 심각한 사상적 혁명의 에토스(Ethos)와 파토스(Pathos),그리고 그의 에너지는 무엇입니까? 마르크스 공산주의의 발광의 악령, 니체의 초인의 영, 프로이드의 섹스의 영과 그 정신 분석학적 공헌을 존경하나 그 결과로 생긴 영적 영향력, 그리고 근대 무신론적 실존주와자들의 허무의 망령, 더 나아가서 살신의 배교의 마령(馬鈴), 전령(傳令)은 모두 의식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에 대한 반항과 부정에서 그 활력소를 구하는 기독교의 기생아이며, 본질에 있어서는 신학적인 것입니다.

▲ 2006년 2월 15일 서울성시화운동 헌신예배에 앞서 외환은행 본점에서 서울영락교회까지 거리캠페인을 했다. 성시화운동 총재 김준곤 목사가 맨 앞장을 섰다.     ©뉴스파워



이 거대한 혁명의 영적 저류에는 절대적 신이나 권위에서의 해방과 자유를 갈구하는 충동과 그 절대 자유, 해방 이후에 오는 허탈과 발광, 그리고 동시에 절대에로의 귀의를 다시 갈망하는 강렬한 경향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거대한 망령인 혁명의 힘은 인간의 마음이 뿌리박고 살던 것들을 모조리 홍수처럼 휩쓸어 가고 어떤 체계나 권위도 뿌리째 흔들리고 아무런 대안이 없다 하더라도, 설혹 그 결과가 죽음이라 하더라도 모조리 파괴해 버리고만 싶어 합니다. 분노와 부정과 회의의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한편 꿈속의 망령처럼 떠도는 거리의 군중이 있습니다. 엑스플로 ’74와 같은 무수한 사상과 선동의 전시장을 구경하면서도 그들 자신은 그 어느 것에도 머물러 있지 못하는 관람객입니다.

그들은 한 소대의 기마병이 질풍처럼 몰아치면 포성에 놀란 들소 떼처럼 몰아치는 방향으로 쫓겨 갈 것입니다. 이 다수의 관람객들을 백 가지 광대놀이로 끌어들이는 곳이 신흥 종교들입니다.


둘째, 섹스 혁명은 영적 동기에서 나타납니다. 섹스 시대의 묵시록적 예언자 프로이드는 생명력이란 곧 섹스라고 하는 방정식으로 풀이를 했습니다. 섹스는 신화되고 있습니다. 섹스는 얼굴 없는 밤의 신입니다.

섹스는 인간을 미치게 하는 더러운 귀신입니다. 섹스는 전쟁과 살인의 신이기도 합니다. 섹스는 도덕에서, 인격에서, 신에게서, 모든 책임에서, 순간에서 영원을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섹스는 망각시키는 신입니다. 인간을 잠시 해방시키고 모든 불안을 망각과 감미로운 황홀의 세계로 감싸 버립니다.

섹스는 모든 것을 불사르는 불입니다. 섹스는 크리스천이 성령에 취하듯이, 공산주의자가 마르크스의피의 영에 취하듯이 섹스의 영에 취하게 합니다. 섹스는 그 인격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날 때, 야수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악마성이 되고 그것이 타락하면 꺼지지 않는 연옥의 허무의 풀무 불에 죽지 못하는 버러지가 핍니다. 사디즘(sadism)이나 매조키즘(masochism) 등의 변태성의 근원 동기는 영적인 데가 있습니다.


인간의 에로스의 갈증과 비극은 그의 영혼이 참 하나님을 상실한 좌절과 죄책과 불안과 공허와 공포에서 옵니다. 그 의식은 의식의 깊고 깊은, 무의식보다 깊은 영혼의 뿌리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움이요, 기다림으로, 외로움이요, 목마름입니다. 목이 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이 영적 갈증의 심리적 변태 투사 행위입니다. 누구에겐가 무엇에겐가  송두리채로, 몸채로, 산 채로 불살라 바치고 싶고, 전체를 절대적으로 소유하고 또 소유되고 싶다는 상대적인 것의 절대화인 것입니다.
 
권력의 섹스화, 소유의 섹스화, 예술의 섹스화, 모든 열망의 섹스화를 추구하는 시대는 음행의 포도주, 저주의 포도주에 취한 시대입니다. 술에 만취되었을 때 그 취행이 야수처럼 광포해지는 형도 있고 혼자 울고 더욱 우수에 잠기는 사람이 있듯이, 섹스가 발광하여 악마적 공산주의도 되고 히틀러가 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히피도 되고 신흥 종교도 되고 니체처럼 중상 입은 사자처럼 부재의 신 의식 속에서, ‘알 수 없는 신이여, 내 영혼의 약탈자여, 내 최후의 고등이여, 행복이여.’ 라고 부르다가 미치기도 합니다.

인간 의식과 영혼이 깊이를 모를 심층의 차원에서 인간이 그의 생명이요, 전부요, 호흡이요, 심장이 되어 버리고 하·나님을 상실해 버린 후로는 인간은 부단히 우상과 대용품을 만듭니다. 절대화시키고 미치고 취하고 죽고 죽이는 우상을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섹스에도, 공산주의적 절대에도, 그리고 허무라는 신에게도 종말과 권태는 왔습니다.


인간 실존은 섹스에도 보복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이 죽었다고 선언함과 아울러 섹스도 죽었다고 선언하고 무신도 허무도 어떤 절대도 모조리 죽이는 25시의 시대, 소위 제3 종족이 지구상에 탄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3D문화 시대가 왔습니다. Drug(환각제), Dream(환상), Drum(북)과 또 Depersonalization(비인격화), Demoralization(비도덕화), Despiritualization(비종교화)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일본 등지의 풍요 사회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무책임, 무기력, 무관심의 3무주의가 유행되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신앙도 무신앙도 아닌 괴색의 망령들입니다.

구미 사회에서는 정신병이 국민 병의 제1위 병이 되고 있고 범죄율은 날로 높아가고 살인과 자살자와 주정뱅이와 마약 중독자와 허무주의 인구와 정신적 히피가 흑사병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셋째, 혁명의 영은 성령님이시며 혁명은 소수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혁명은 사상보다 깊고, 그 개념은 정치나 경재나 문화보다 짙은 것입니다. 혁명의 불, 혁명의 피, 혁명의 에너지, 혁명의 대상, 혁명의 에토스와 혁명의 파토스, 그런 낱말의 어느 것도 제가 생각하는 혁명의 개념을 포현하기에는 부적당합니다.

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의 영을 받고 마르크스주의에 미치고, 그것에 취하고 그것으로 거듭나며 그것을 위해살고 그것을 위해 죽습니다. 그 영은 분노와 파괴와 미움의 영입니다.


저는 예수 혁명의 영이 사도행전의 성령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스가랴서 4장 6절에 보면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의 영에 붙잡힌 사람들은 지상에 나타난 어떤 열정보다 열광적이고 결사적이고 불덩어리였습니다. 폭탄처럼 그 앞에서 깨지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상 최악의 상황이었던 로마 제국 치하에서도 누룩처럼 번지고 들풀처럼 번식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냐 죽음이냐 하는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인력 궤도를 탈출하려는 인공위성의 노력과 출력은 비상해야 합니다.

혁명은 궤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질을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열 두 제자를 구심점으로 하는 그들은 소수였습니다. 그들은 작은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 제국을 밑바닥까지 뒤집어엎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알 종교를 상대로 이교화 된 이스라엘 민족을 변질시키려던 엘리야 한 사람,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속한 모세 한 사람, 노아 한 사람, 히브리 종교와 민족을 낳은 아브라함 한 사람, 또 바울 한 사람, 마틴 루터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쁜 혁명을 했지만 히틀러와 마르크스와 레닌 등 역사에서 혁명과 대 변화를 일으킨 혁명적인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소수가 문제인 것입니다. 참으로 한국의 예수 혁명을 위하여 목숨을 내버리고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 300명만 있으면 한국은 반드시 기독화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사람처럼 무섭고 힘 있고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위대한 일치고 열정 없이 된 일이 없습니다. 광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최대 지성인 미시마 유게오는 자기주장을 위해 할복자살을 했습니다.

코카콜라는 수백억 병을 판매하는 사상 최대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데 그 사장은 ‘코카콜라는 나의 종교이다. 내 혈관을 흐르고 있는 것은 내 피가 아니고 코카콜라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기어이 우리 세대가 가기 전에 한국 민족을 기독화 시켜야 합니다. 반드시 기독화 된다고 믿고 기독화가 되도록 힘써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그 이하를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의 마음에나 쓰여 있습니다. 불안해하지 않고 죄책과 공포 없이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입니다.

예수는 생명입니다. 길입니다. 진리입니다. 그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 혁명의 소수는 200만 한국의 신교도 중에서도 열 번 죽기로 각오한, 보통 신도의 열도가 50도라면 5,000도가 더 되는 거듭나고 거듭난 사람이어야 합니다.

 
넷째, 사회를 고쳐야 합니까? 예수를 심어야 합니까? 사회를 고친다 해도 인간의 근본 문제는 티끌만큼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와 죽음과의 실존 거리,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와 그 자신과의 관계, 그와 그 이웃과의 관계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창녀들에게 몇 해 동안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밤에는 몸을 팔아야 하는 그 여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하며 예수를 심어 줍니다.

그는 처음부터 창녀 폐업을 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창녀가 일단 예수를 알게 된 날부터는 반드시 자기 발로 그 창녀 굴을 등지고 전도사도 되고 집사도 되고 착한 아내도 되어 재생의 길을 걷게 된다고 합니다. 그와 반대로 경찰이 억지로 잡아 수용해 두면 대부분은 다시 사창가로 되돌아간다고 합니다.

저는 한 사란한 사람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심어서 그 사람과 그 가정과 우리 민족을 혁명해아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예수를 심어야만 합니다. 역사는 숙명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사람만 있었으면 심판을 수정하실 계획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참으로 한 사람만 공의롭고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 된 사람이 있으면 이 성을 용서하겠다는 예언을 했습니다. 우리 민족, 우리나라가 사상 전례 없는 상징적인 기독교 국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뜻이며 가장 성경적입니다.


다섯째, 혁명을 위하여 마음을 키우고 믿음을 키웁시다. 사람은 꼭 된다고 믿는 대로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 역사적 사건화가 된 일이 없습니다. 마음의 평화가 없으면 가정에도 나라에도 평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마다 인간 마음은 분열되어 있고 고통 속에 산다고 합니다. 만물 중에 가장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악한데 세상이 선할 수가 있습니까? 마음의 왕국처럼 미개발 지대는 없습니다. 마음이란 지성과 감정과 의지 전체를 포함한 인격적 자아의 골심이며, 그것은 심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지적이고 문화적인 차원보다도 깊은 영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고치고 키우는 창조의 힘, 신상의 힘, 부활의 힘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한국인의 마음을 고칠 수 있는 새롭게 하는 힘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통계학적․임상학적 진리입니다.


청년들의 마음이 너무도 옹졸합니다.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역사를 고쳐 놓고 남북통일을 이룩하며 기어이 예수 혁명을 내가 하겠다는 큰마음, 큰 믿음을 가집시다. 그 마음을 키웁시다.

인간에게 펜이나 종이같이 중성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악인의 손에 들려지면 살인적인 기사를 쓸 수도 있고 성자의 손에 들려지면 인류 구원의 기도문이 쓰여 질 수 있습니다. 믿는 대로 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비전은 아무리 커도 너무 큰 것은 없는 것입니다.

 
여섯째, 어떤 방법으로 민족의 예수 혁명을 이룩할 것입니까? 사도행전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깊게 넓게 침투하는 것입니다. 전도와 성령과 기도와  말씀과 사랑과 믿음의 방법입니다. 지극히 낡고 원시적이지만 최대 최고의 방법입니다. 참으로 예수 믿는 인구를 늘리는 길입니다. 그리스도 인구를 생산하고 생육하고 번식시키고 땅에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기독화를 위해 옥토가 있습니다. 그것은 5만 9천 개의 농촌 자연 부락입니다. 학생과 청년들과 평신도들이 집약적 훈련을 받아서 마을에서 마을로 사랑방에 앉아서 혹은 개인 집에서 들녘에서 두 사람씩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도시의 청년들은 이기주의이고 비판적이며 행동이 없으나 이들이 믿으면 밭을 갈고 나무를 심듯이 예수를 생활화하고 행동화할 것입니다.


농촌의 인구가 전 인구의 55퍼센트이고 그 중 60퍼센트의 10대 소년소녀들은 중학교를 못 갑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수가 아직도 1만 2천 개 밖에 안 되는데 교회 이전의 교회, 사랑방 속의 교회가 5만개 이상 더 서야 하고, 몰몬교도처럼 전도요원이 10만 명은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은 6,000개의 초등학교, 1,600개의 중학교, 850개의 고등학교, 21개의 종합 대학, 46개의 단과 대학, 22개의 초급 대학, 22개의 간호 대학, 15개의 교육 대학, 그리고 2개의 특별시를 포함한 32개 도시, 140개의 군, 91개의 읍, 1,350개의 면, 3만 1천 3백여 개의 리와 동, 5만 5천여 개의 자연 부락과 약 5만 개의 주요 기관에 예수의 스파이처럼 한사람씩이라도 예수의 증인인 침투해 있으면 좋겠습니다.

10만의 나환자 세계, 수만 명의 지수, 어부들, 노동자들, 빈민굴 모두가 우리의 선교의 황금 어장입니다. 대한민국이 기독화 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수 혁명화 될 때 비로소 남북통일도 오고 민족의 입체적 구원과 통일도 올 것으로 믿습니다.


에스겔 37장의 비전을 우리 민족의 신생과 부활의 비전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수락하고 강조하고 선언하고 싶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창조와 신생과 부활을 믿는 신앙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전을 과거사의 죽은 패턴에서만 구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유일하고 새로운 패턴에서 확신을 전제해야 할 것입니다.
 
일곱째, 그러면 어디서 혁명을 시작할 것입니까?  혁명은 불과 같습니다. 불덩어리만 불을 붙일 수 있습니다. 댐의 물이 수원의 높이 이상 오르지 못함같이 혁명의 열도와 혁명의 순도와 혁명의 농도는 혁명하는 사람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유는 유를 낳습니다. 예수 혁명의 최초의 대상은 나 자신이고 그 다음은 내 곁에 있는 사람이며, 혁명의 가장 뜻 깊은 시간은 현재 내가 처한 시간이며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혁명의 최초 최고의 행동은 내가 예수화 되는 것이며 나의 예수화의 순도와 열도가 우리들의 예수 혁명의 열도와 농도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의 <한국 기독화 요원 훈련 강습회 메시지>를 <CCC편지> 1970년 10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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