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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는 신앙생활의 첫 관문

임석순 목사(한국중앙교회), 특별대담 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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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순
기사입력 2019-10-17

 *이 글은 10월 17일 오전 10시 강변교회에서 열린 "회개와 참회의 영성을 염원하며" 특별대담 발표문이다.  

▲ 임석순 목사     ©뉴스파워

 

 

회개는 하나님을 향한 생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단회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참회는 구원 받은 자가 말씀을 기준삼아 날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자리까지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와 참회는 윤리적 단어가 아닙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볼 수없는 죽었던 자에게 먼저 생명을 주심으로 깨닫고 하나님을 보게 됨과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신자가 한 평생에 단 한 번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첫 관문입니다.

 

마태복음 31절의 그 때에2장과 바로 이어지는 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관해 이야기하고서 2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이후입니다. 히브리 문학에서는 새로운 장면을 시작할 때 그 때에라는 표현을 쓰는데 3장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새로운 장면이 시작된다는 뜻에서 그 때에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 새로운 시작은 세례요한의 회개하라는 외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회개는 윤리, 도덕적인 죄로부터 돌이키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죄는 하나님을 등지고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인데 그런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가능할까요? 죄인은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마치 시체를 향하여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죽은 영혼은 누구도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없이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돌아오라 말씀하셨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말라기서에서도 하나님이 끊임없이 돌아오라고 하시지만 자기 자신 외에는 보이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죄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이유도, 방법도 모릅니다. 그런 자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주님이 찾아오셔서 죽은 영혼에게 새 생명을 주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게 만드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겠다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고(4:1-6) 그가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세례요한에 대해 예언하였습니다.(40:3) 이사야서는 성경전체(66)의 축소판처럼 66장으로 되어 있는데 내용도 구약 39, 신약 27권처럼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39장까지는 죄, 심판, 재앙 등에 대한 말씀이고 40장부터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인데 여기에서 세례요한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31-3절에 이르러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외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선지자는 없을 것이며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도 끝이 났고 이제 예수님이 찾아오시니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죄를 밟고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지만 의로운 생명의 빛,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하시면 우리는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이키는 일에 쓰임 받은 선지자이기 때문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하지만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 크다고 동시에 말씀하시는데 우리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11:11) 요한은 예수님을 만나기는 했으나 십자가의 죽음은 목격하지 못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새 생명을 얻었기에 이미 회개한 자, 천국이 임한 자이니 요한보다 큰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외침은 회개했다. 천국이 임했다입니다.

 

그렇다면 찾아오신 주님을 만난 사람으로서 우리의 삶은 어떠할까요?

첫째, 삶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러기에는 세상살이가 녹록치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해도 숱한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죄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낙심하고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죽었을 때에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이시며(5:8-11) 언제나 미쁘시사 용서하시는 하나님(11:9)이십니다.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살며 지은 죄를 날마다 참회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알게 모르게) 죄과를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을 참()이라 하고, 그 죄과를 뉘우치고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회()가 합쳐서 참회라 합니다. 이렇게 항상 참회하며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보이시니 우리에게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16:11)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은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항상 기뻐하며 넉넉한 사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관용을 보이는 삶을 살아갑니다.(4:4-5)

 

둘째, 세상을 향해 내가 만난 하나님을, 복음을 전합니다. 내가 주님을 만난 자인 것을, 내게 임한 천국을 증거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복음을 전파할 때 그 복음은 설득력이 있고 그 복음을 들은 누군가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용서 할 수 있는 자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용서는 하늘의 사람이 죄악 된 이 세상 속에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세상,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세상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는 상태가 바로 용서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 하는데,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했는데...’ 이런 생각들, 자기 가 용서의 통로를 막습니다. 어떤 것도 우리의 는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 드러나는 순간 절대로 용서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용서의 통로로 쓰이는 사람은 스스로가 하늘의 사람인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내가 용서의 통로가 되는 길은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아버지 나는 철저한 죄인이었습니다. 이런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내가 새 생명을 받은 자로,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 나아가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뿐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만이 용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성령충만은 어떤 이상한 현상이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의 증거는 딱 하나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2:28)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한다는 것은 바로 하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세상 이야기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 이야기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늙은이가 꿈을 꾼다는 것 역시 하늘나라를 꿈꾸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늙으면 늙을수록 더욱 하늘나라를 꿈꾸게 됩니다. 하늘나라를 이야기하고 그 곳에 갈 것을 기다리며 기대합니다. 젊은이가 이상을 본다는 것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 ‘이상이데아입니다. 완벽한 세상, 꿈꾸는 나라를 말합니다. 감각으로 움직이고 눈에 보이는 현실이 중요한 젊은이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우리를 본향인 하늘나라에 그리고 하나님께 단단히 묶는 능력입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7:55) 스데반은 죽음 앞에서 자신이 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자신이 가게 될 본향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용서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용서의 주체가 되어 용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용서의 통로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의 힘으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로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져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인하며 용서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장차 가게 될 본향, 곧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세상 것에 얽매이지 않기에 용서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용서가 힘들다면 십자가 앞에 나아가십시오. 나를 힘들고 괴롭게 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분 내고 낙망하지 말고 본래 내가 있었던 그곳,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갈망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개한 영생의 사람으로 날마다 참회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복음을 자랑하며 용서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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