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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귀환 역사 I: 에스라서 2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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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기사입력 2019-10-17

 

통독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신구약을 통으로 읽는 것이다. 이 메모는 신구약 1,189장을 4장씩 묶어서 298회분을 게재 할 예정이다. 매 성경 모두(冒頭)에 필요한 연대나 자료를 제시하여 성경 읽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매 장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성경 메모는 단락 별로 제시하였고 지방이나 성읍과 일부분이지만 인명은 간단한 각주로 처리하였다. 본문과 대조하여 읽기 바란다. 단락별로 필요한 경우 적용과 기도를 넣었다. 이 메모에서는 논쟁이나 비판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의 흐름, 맥락, 요의, 함의,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정리 등을 기술하였고 가능한 간단히 처리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적색으로 된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각주(脚註)이다. 성경은 우리의 맛있는 양식이며,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 진다.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     © 김정권

 

 

                    에스라서 2-5장 메모

 

 

 

 

<2 > 바빌로니아 포수에서 1차로 귀환한 사람들

 

[귀환자들과 그 지도자들](2:1, 2)

 

  538B.C1차 귀환이 이루어진다. 이들은 포수되어 간 지 70년 만에 귀향이다. 물론 이들은 예루살렘을 위시한 유다 전역 자신들의 연고지로 돌아갔을 것이다. 1차 귀환 시 지도자는 스룹바벨, 예수아, 느헤미야, 스라야, 르엘라야, 모르드개, 빌산, 미스발, 비그왜, 르훔과 바아나 등 10명이다.

 

[가계별 귀환 평민의 수](2:3-19; 7:6-73 참조)

 

  17개 가문에서 15,509명이 귀환하였다. 그 가계와 그에 속한 평민의 수를 본문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지역별 평민의 수](2:20-35)

 

16지역에서 8,635명이 귀환했다.

 

[가계별 제사장들] (2:36-39)

 

  제사장 4개 가문(여다야, 임멜, 바스훌, 하림)에서 4,289명이 귀환 하였다.

 

[가계별로 귀환한 레위인의 수](2:40-42)

 

  레위인의 3개 가문(레위자손; 예수아와 갓미엘 가계, 노래하는 사람; 아삽 자손의 가계, 문지기; 문지기 살룸, 아델, 달문,악굽, 하디다, 소배 등의 가계)에서 341명이 귀환하였다.

 

[느디님 사람들](2:43-54)

 

  느디님 사람은 이방인들이었다. 이방인으로 유다의 종이 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 규례를 지키며 포수 귀환 대열에 참여하였다. 35개 가문의 자손들이고 그 수는 솔로몬의 신하와 합하여 392명이었다.

 

* 느디님(Nethinim) 사람들은 제사장과 레위인 수하에서 성소의 잡일을 한사람들이다.

기브온 사람이나 잡혀 온 사람들일 것이다(대상9:2; 2:34; 7:43; 31:30, 47; 9:27; 8:20).

 

[솔로몬 신하의 자손](2:55-58)

 

  솔로몬 신하의 자손이란 가나안 원주민 중, 종으로 지내던 사람들이며 이들이 귀환 후 성전건축에 기술자로 일했을 것으로 본다.

 

[소속 불명의 귀환자들] (2:59-63)

 

  소속이 불명확한 사람들도 귀환 대열에 참여했으나 이들은 공적 지위를 얻는 데는 문제가 제기 된 사람들이다. 포수생활 중 그 족보가 불분명해진 레위인인 것 같다. 이들의 수는 모두 652명이었다.

 

[1차 귀환자 총수] (2:64)

 

  1차 귀환자 총수는 42,360명이었다. 이 숫자는 에스라(42,360), 느헤미야서(31,089) 그리고 외경인 에스드라 I (32,600)가 모두 다르다. 또한, 서론 연대기 끝 부분에 제시된 1-3차 포로 귀환수와 대비해 보면 또 다르다. 이런 오차는 이 기록이 전사될 때 또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성경학자들의 깊은 연구를 요구한다.

 

[기타 및 성전 헌금과 거주 상황](2:65-70)

 

  기타 남종과 여종이 7,337명이었고 노래하는 사람이 200명이며 성전 건축을 위한 헌금을 드리고 각기 자기 성읍에 거주하게 되었다.

 

* 다릭(drachmas)은 고대 페르시아 화폐로서 금화로 활과 창이 부조되어있다. 8.4g이다.

61,000다릭은 512.4kg이다.

* 마네(minas)60세켈, 1달란트는 60 마네였다. 므나와 같은 의미이다. 무게로 마네는 570g이다.

5,000마네는 2,850kg이다.

 

 

<3 > 귀환 백성이 드린 번제와 스룹바벨의 성전 건축

 

[여호와께 드린 번제(燔祭)](3:1-7)

 

  이들이 돌아와서 3개월 후에 솔로몬 성전 마당에 번제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7월에 초막절을 지킨다. 71일은 나팔을 불어 모이는 나팔 절이 있고(23:24), 10일은 속죄일(23:27; 29:7)이고 15일은 3대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로 22일에 끝이 난다. 예수아와 스룹바벨은 이 절기를 지키기로 한다. 아직 귀향(歸鄕) ()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모두 모이는 이 행사(行事)야 말로 귀향해서 부족한 자존감도 드높이고 주변 적에 대해 두려움을 떨쳐 버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7월의 대 집회를 통해서 동질성의 회복과 하나님께 귀의하는 결단을 보임으로 자신감을 갔게 되고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 71일은 나팔절로 이스라엘의 신년(新年)을 알리는 양각 나팔을 부는 절기이다.

 

[성전 건축의 시작](3:8-13)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일어나 성전공사를 시작하고 례위 인들로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성전 기초를 놓을 때 제사장들이 예복을 입고 나팔을 불고 제금(提琴)을 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그러나 나이 들어 옛 성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그 화려한 성전은 무너져 없어지고 지금 두려움 가운데 이 초라한 성전을 짓는 초석을 놓는다. 그러나 젊은 백성들은 찬양을 드려 울음소리와 섞여서 두 소리가 분별 되지 않았다. 솔로몬 성전-스룹바벨 성전-헤롯 성전, 이렇게 예수 때까지 3개의 성전이 있었다. 스룹바벨의 성전은 헤롯 성전이 지어질 때 완전히 재건축되어 대치되었다. 그 후 헤롯 성전은 70 A.D.에 로마 티투스 장군의 공격으로 완전히 무너진다.

 

적용: 예루살렘성전은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아름다운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 거기서 예배드리는 백성의 심령 안에 계시고

   역사하신다. 범죄 한 백성에게서 성전은 순간적으로 사라지게 됨을 이 세 성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기도: 나의 심령이 주안에서 항상 깨끗한 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실 것을 구하자.

 

 

<4 > 사마리아 세력의 성전(聖典)과 성벽(城壁) 공사 방해

 

* 에스라서 4장의 내용은 복잡하다. 고래스 대왕(559 B.C.-530 B.C.), 캄비세스(530B.C.-522B.C.),

다리오 왕(522B.C.-486B.C.) 때 있었던 성전 공사의 사건과 아하수에로 왕(486B.C.-465B.C.)

아닥사스다 왕(465B.C.-424B.C.) 때 예루살렘 성벽 공사 사건이 섞여서 다루어지고 있다.

4:1-5, 24은 성전공사에 관한 기록이고 스4:6-23은 예수살렘 성벽 공사에 관한 기록이다.

따라서 스4:6-23은 삽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스룹바벨 성전은 536B.C 에 시작되어 6년간 공사하다가 대적들의 방해로 530B.C 공사가 중단

되었다가 10년 뒤인 520B.C.에 재개되고 516B.C. 완공 된다. 솔로몬성전이 586B.C. 불타고

70년 후에 일이다.

* 성전공사와 성벽공사는 페르시아 제국 고레스 대왕 때부터 아닥사스다 왕 때 까지 계속되어왔고 그 중심에 사마리아 세력이 항상 개제되어 있었다. 성벽공사 중단은 아닥사스다 왕 때 있었고

에스라 예루살렘 귀국 후의 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포로 2차 귀환 후 3차 귀환전의

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에스라서의 기록연대가 458B.C. 부터 444B.C. 사이로 보기 때문에

느헤미야 성벽공사를 다룬 것은 아니다.

* 아닥사스다 왕(465B.C.-424B.C.) 이 성벽공사 중단 명령을 내렸으니 이는 스룹바벬 성전이

완공되고 51년 이상 뒤의 일이다. 따라서 에스라총독시절에 성벽공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에스라는 대학자이고 기록의 착오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에스라서 1-6장 사이에 스룹바벨

성전의 건축역사를 다루는데 4장에서 사마리아세력의 방해와 성전 건축 중단을 다루면서

4:6-23에서 사마리아세력이 성벽공사도 방해한 일을 부각하여 사마리아세력의 적대적 행위가

계속되어 왔음을 강조했다고 보면 어떨까?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사람들](4:1-5)

 

  사마리아에서 온 사람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 및 시리아(아람) 사람들로 아시리아의 정책적 이민자들이었다. 이들은 자기들의 신도 섬기고 하나님도 토속 신으로 섬기는 종교적 혼합주의 자들이었다. 이들이 예루살렘 성전 짓는 일에 동참하자고 나선 것이다. 이는 일을 방해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관리를 매수하고 캄비세스 2(Cambyses II 530B.C.-522B.C.)에게 고발장을 보내 왕으로 일을 중단하도록 하는 술책을 썼다. 그래서 에스라는 이들을 대적이라 부르게 되었다.

 

* 에살핫돈 왕은 아시리아 왕으로 722B.C.북조 이스라엘이 멸망한 전후 아시리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타처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BC 734년부터 669B.C.65년간 수행해 왔는데 이 일을

완성한 왕이다. 따라서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항의하는 자들은 이주한 이방 족속들이다.

 

[성벽 건축을 방해하는 사람들](4:6)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 1; Xerxes I, 486 B.C-465 B.C)때도 성벽공사 방해 공작은 계속되었다. 이 때는 이미 성전 공사는 끝난 후이고 미약하지만 성벽 공사가 진행되었던 것 같다. 사마리아 세력은 항상 유다의 저항세력으로 끊임없이 방해하였다.

 

[사마리아 장관 르흠과 서기관 심새의 고발](4:7-16)

 

  이 단락의 내용은 아닥사스다 왕(아르타크세르크세스 1; Artaxerxes I, 465 B.C.-424 B.C.) 때 일이다. 당시 사마리아 장관인 르훔과 왕의 서기관 심새가 아람어로 문서를 작성하여 고발하였으며 1. 고발 문서는 스4:7에 비슬람, 미드르닷,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작성하였다. 2. 고발 내용은 스4:11-16에 기술하는데 그 내용은 유다는 패역한 족속이며 이들의 성곽이 완성되면 왕에게서 이탈할 것이란 내용이다. 4:1-4의 단락은 성전 공사 관계이고 이 단락의 내용은 성전공사가 끝나고 예루살렘 성벽 공사에 관한 내용이다.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Artaxerxes I, 465 B.C.-424 B.C.)를 성경에서는 아닥사스다 1’(7:1)

표기 한다. 성전 건축이 중단 된 것은 530B.C. 캄비세스 2(530B.C.-523B.C.) 원년이니까

4:11의 내용은 성전과는 관계가 없고 성벽공사에 관한 것이다.

 

[아닥사스다 왕의 성벽 건축 중단 명령] (4:17-22)

 

  아닥사스다 왕(Artaxerxes I, 465 B.C.-424 B.C.)은 문서를 검토한 모양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이 건축되면 고발 내용과 같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이 내용은 530B.C. 2 성전(스룹바벨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으니까 성전공사에 관한 내용으로는 볼 수 없다. 여기서 의문점은 아닥사스다 왕은 느혜미야를 신뢰하였고 예루살렘으로 파견한 왕이다. 그런데 성벽공사를 중단 시켰다면 내러티브(narrative)의 흐름으로 보면 맞지 않고 성벽공사 중단은 느혜미야 이전 에스라 시대에 있었다고 보여 진다. 2차 포로귀환과 3차 포로귀환 사이에는 약 14년의 차이가 있으니 그 사이에 일어난 일로 볼 수 있다.

 

[성벽 건축을 중단시키는 왕의 조서의 전달](4:23)

 

  조서는 르훔과 심새에게 전달되었다. 그들은 힘으로 공사를 중단시키는데 이 스4:23이 스4:24 앞에 있어서 마치 성전공사 중단처럼 보이나 이는 별개의 역사적 사실을 설명한다. 그러나 느혜미야서 에서는 방해는 있었으나 중단된 기록은 없다.

 

[성전 건축의 재개](4:24)

 

  성전공사가 다리오 왕 2(520B.C.)까지 중단 되었다가 이때 재개된다. 이때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야한다. 그리고 성전공사가 재개되고 4년 뒤인 516B.C.에 공사가 완공된다. 솔로몬선전이 불타고 70년 뒤의 일이다. 따라서 스4:24은 스4:5 뒤에 붙여야 맞다. 그리고 5장과 연결해야 한다.

 

 

<5 > 스룹바벨의 성전 건축 재개

 

[성전 건축의 재개] (5:1-5)

 

  성전 건축이 사마리아 대적들의 방해로 중단되었다. 스룹바벨 등은 실의 했고 처음 열의는 사라졌다. 그러나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백성을 꾸짖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다시 일어나서(1:14) 성전 건축을 재개하였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런 일이 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방해로 인하여 중단되고 어떤 게기에 다시 일어서는 경우이다. 하나님은 섭리하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결코, 선한 일이 중단되도록 하시지 않는다.

 

* 페르시아 4대 왕인 다리오(522B.C.-486B.C.) 왕의 치세에 스룹바벨의 성전이 완공(516B.C.)

되었다.

 

[유부라데 강 서쪽 땅을 관할하는 총독 닷드네의 상소문](5:6-17)

 

  총독 닷드네와 그의 행정관인 스달보스네 등이 다리오 왕에게 성전 건축과 성곽 수축에 관한 글을 올린다. 높고 높으신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은 고레스 조서로 시작된 것이며 성전이 파괴된 경위와 지금 성전이 재건되는 경위를 올리고 다리오의 의견을 물었다. 방해자와 협력자는 항상 존재하며 이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가늠해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억지를 하면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어려울 때 좌절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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