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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귀환 역사 I: 에스라서 3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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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기사입력 2019-10-21

 

  통독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신구약을 통으로 읽는 것이다. 이 메모는 신구약 1,189장을 4장씩 묶어서 298회분을 게재 할 예정이다. 매 성경 모두(冒頭)에 필요한 연대나 자료를 제시하여 성경 읽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매 장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성경 메모는 단락 별로 제시하였고 지방이나 성읍과 일부분이지만 인명은 간단한 각주로 처리하였다. 본문과 대조하여 읽기 바란다. 단락별로 필요한 경우 적용과 기도를 넣었다. 이 메모에서는 논쟁이나 비판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의 흐름, 맥락, 요의, 함의,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정리 등을 기술하였고 가능한 간단히 처리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적색으로 된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각주(脚註)이다. 성경은 우리의 맛있는 양식이며,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 진다.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     © 김정권

 

 

                      에스라서 6-9장 메모

 

<6 > 다리오 왕의 성전(聖殿) 공사 재개하라는 조서

 

[고레스의 조서와 다리오 왕의 명령](6:1-12)

 

  다리오는 초대왕인 고레스 칙령을 확인하고 그 칙령을 존중할 뿐 아니라 유프라테스 강 서쪽 총독인 닷드네에게 그 경비를 지불 하고, 도와주고,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을 주고 또 소제에 필요한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구대로 주라고 하였다. 사람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두려움은 선()을 이루지 못한다. 학개와 스가랴의 질책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담대히 나선 것은 이처럼 다리오의 조서로 연계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고 우리 삶에서도 이와 같은 모델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다.

 

[성전 봉헌](6:13-18)

 

  다리오의 조서는 닷드네에 의해 신속히 이루어지고 학개와 스가랴의 권고를 따라서 행함으로 성전 건축이 잘 이루어졌다. 다리오. 2(520B.C.)에 재개된 공사가 6(516B.C.)에 완공되었다. 성전 완공과 봉헌식을 드리는 백성들은 얼마나 감격했겠는가? 수소 100마리와 숫양 200마리와 어린 양 400마리를 드리고 또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숫염소 12마리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렸다. 솔로몬이 성전 봉헌 할 때 드린 제물은 수소 22,000마리, 120,000마리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한가? 그러나 귀향 민에게 있어 이런 제물은 솔로몬의 제물에 못지않은 의미가 있다. 제사장 24 반열을 따라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 학개는 520B.C.9-12월 짧은 기간 사역하였고 다음 스가랴가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다.

* 다리오 왕 6년 아달(Adar)3일은 유다 종교력으로 516B.C. 12(태양력 2, 3) 3일이다.

솔로몬 성전이 불탄 것은 586B.C.57일이다.

 

[성전 봉헌에 이어 드려진 유월절] (6:19-22)

 

  귀환 백성이 성전을 재건하고 다음 달 114(유대력, 유대력은 음력이며 태양력으로는 3, 4월이 된다.) 하나님 앞에서 유월절을 지키고 15일부터 7일간 무교절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이런 데 있다. 그들은 3대 절기를 지켜야 하고 율법과 규례를 지켜 하나님께 순종하는 종족이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국가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의 정체성도 이런 데서 찾을 수 있다.

 

 

<7 > 예루살렘에 귀환한 율법학자 에스라

 

[에스라의 가계(家系)](7:1-5)

 

  에스라의 가계를 보면 아론 엘르아살 비느하스 아비수아 북기 웃시엘 스라히야 므라욧 아사랴 아마랴 아히둡 사독 살룸 힐기야 아사랴 스라야 에스라인데 이를 통해 보면 에스라는 아론의 16대손이며 사독의 자손이다. 전통적 제사장 가계이며 이는 학자이고 특히 율법에 정통하여 왕의 자문역도 했던 것 같다.

 

* 아닥사스다(Artaxerxes king of Persia)465B.C.-424B.C.에 재위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 (7:6-10)

 

  아닥사스다 I(465B.C.-424B.C.) 7(458B.C.) 2차 귀환 시 에스라는 귀향한다. 그는 율법학자이고 서기관이고 지혜 자였다. 왕에게 가장 신임을 받는 자였다. 귀환과정의 어려움이나 그 과정을 본문에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 일행은 464B.C.11일에 출발하여 51일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동행자들은 제사장, 레위인들, 노래하는 사람들, 문지기, 느디님 사람들이었다. 에스라는 고국에 돌아와서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례와 구례를 가르치고자 하였다. 배워야 개혁이 기능하다. 배우고 깨닫고 변하여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7:11-23)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를 하늘의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라고 표현한다. 왕의 인정이다. 그가 왕의 조서를 받는 사람이다. 모든 유프라테스 강 서쪽 지방 관리는 에스라를 돕고, 요구사항은 들어 주고 왕실에서 은금을 가져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하였으며, 유프라테스 강 서쪽 관리들은 에스라에게 은은 100달란트까지, 밀은 100고르 까지, 포도주는 100밧까지, 기름도 100밧까지 주고 소금은 정량 없이 주라 하였다.

 

* 달란트(talent)34kg, 3,000 세겔이다(왕상16:24).

* (bath)22(왕상7:26). 고르(kor, 호멜)220(45:14).

* (bath)22(왕상7:26). 고르(kor, 호멜)220(45:14).

 

[에스라에게 위임된 왕의 면세권과 재판권](7:24-26)

 

  왕은 에스라에게 면세권과 재판권을 주어 예루살렘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였다.

 

[에스라의 여호와 송축] (7:27, 28)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하신 하나님, 은혜를 얻게 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우두머리들과 같이 올라가게 하신 하나님을 송축한다.

 

 

<8 > 에스라와 2차 귀환 백성의 예루살렘 도착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2차 귀환한 백성들] (8:1-14)

 

  이스라엘의 제2차 귀환은 457B.C. 경 이루어졌다. 이때 에스라와 같이 귀환한 유다 자손은 1차 귀환한 백성의 수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이다. 남자만 1,725명이니까 그 가족을 쳐도 1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아니한다. 열두지파의 가계별 인원수가 아니라 유명 가계를 중심으로 한 수로서 유다 왕족에 관련된 가계가 중심이 되었다. 대표적 지도자는 에스라, 게르솜, 다니엘, 핫두스, 스가랴 등을 들 수 있고 가계의 대표로 그 가족을 대동한 가계가 12 가계이다.

 

[레위 사람을 찾는 에스라] (8:15-20)

 

  에스라는 아하와(바빌로니아의 강) 강가에서 3일간 장막을 치고 머물렀는데 이때 나온 사람들은 주로 유다 지파 사람이고 레위 인들이 없었다. 그래서 에스라는 족장과 지혜 자를 가시바 지방으로 파견하여 성전에서 수종들 레위 인을 데려오게 하였다. 하나님의 인도로 레위인 38명과 성전에서 섬길 느디님 사람 220명을 데려오게 되었다. 합계가 258명으로 유다 족속과 합하면 1,725(이 숫자는 정확하지 않다) 이다.

 

* 가시뱌(Casiphia) 가시바 지방은 훗날 파르티아 왕국의 수도가 된 티그리스 강가에 위치한

크테시폰(Ctesiphon)으로 이곳에 레위 인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다(8:15-20).

 

[금식하며 간절히 구하는 에스라](8:21-23)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그 험난한 길을 가는 길이 하나님의 인도로 가기를 간절히 구하였다. 왕에게 인도하는 군대를 요구하지 않은 것은 언약의 민족으로서 오로지 하나님에게 의지한다는 결연한 자세이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무슨 일이나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고 그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적용: 세상의 힘(권력, , 명예, 학력 등)을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께 의뢰하는 삶을

살도록 한다.

기도: 순수한 신앙과 하나님으로만 즐거워하게 되기를 간절히 구하자.

 

[성전에 바친 예물] (8:24-30)

 

  에스라는 대제사장 즉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의 형제 열 명을 따로 세우고 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 골방에 가져다 보관할 예물을 맡겼다. 그 예물은 은이 650달란트, 은그릇이 100달란트, 금이 100달란트, 금잔이 20개로 그 무게는 1,000다릭 또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 놋그릇이 두 개다.

 

* 달란트는 34kg이며 650달란트는 22,100kg(22100),

100달란트는 3,400kg(3400)이다.

* 다릭(drachmas)은 고대 페르시아 화폐로서 금화로 활과 창이 부조되어있다. 8.4g이다.

 

[에스라, 예루살렘에 도착] (8:31-36)

 

  에스라예루살렘에 도착하여 3일간 휴식을 한 다음 성전에 드릴 예물을 모두 확인하고 제사장들에게 인도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린다. 십이지 파를 상징하여 12마리의 수송아지와 숫양이 96마리, 어린양이 77마리(?), 속죄제 염소 12마리를 여호와께 번제로 드렸다. 에스라는 모든 계산을 분명히 하고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려 속죄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

 

 

<9 > 에스라의 회개기도; 백성들의 이방 여인과 결혼

 

[귀환한 이스라엘인의 이방인 결혼과 회개] (9:1-4)

 

  1차 귀환과 2차 귀환 사이는 약 80여 년이 된다. 이때 특출한 지도자 없이 지냈고 따라서 영적 해이가 심해졌다. 행정은 페르시아 관리가 담당했으나 세금 징수가 중심이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귀환한 백성이 가나안 지방, 암몬과 모압, 이집트, 아모리 족속의 딸들을 아내로 또 며느리로 맞는 일에 방백과 고관이 앞을 선 것이다. 귀환한 지도자들에게 선민의식의 부족과 율법에 대한 인식이 부재했다는 의미이다. 바빌로니아로 포수가 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인간의 양면성이라 할 수 있다. 귀환한 백성들과 그 지도자의 범죄는 에스라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인간의 죄에 대한 무감각이 문제이다.

 

* 538B.C. 에 바빌로니아 포수생활에서 1차 귀환; 458 B.C. 2차 귀환했다.

 

[에스라의 회개기도](9:5-15)

 

에스라는 민족적 죄를 걸머지고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올린다. 가나안 땅은 음행으로 더러워진 땅이며 이 땅의 여인과 혼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이미 가나안 정복 시 내려진 것이다. 이방 여인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우상이 문제이다. 그들이 시집올 때 그 우상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보다 벌을 가볍게 주시는 분이어서 포수생활에서도 남기어 두시고 지금 귀향하게 하셨는데 여기서도 범죄 하니 어찌 하나님께 얼굴을 들고 회개를 하겠는가? 죄 때문에 바빌로니아 포수가 되었는데 거기서 풀려나와서 또 죄를 짓는다면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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