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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귀환 역사 II: 느헤미야 1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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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기사입력 2019-10-24

 

  통독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신구약을 통으로 읽는 것이다. 이 메모는 신구약 1,189장을 4장씩 묶어서 298회분을 게재 할 예정이다. 매 성경 모두(冒頭)에 필요한 연대나 자료를 제시하여 성경 읽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매 장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성경 메모는 단락 별로 제시하였고 지방이나 성읍과 일부분이지만 인명은 간단한 각주로 처리하였다. 본문과 대조하여 읽기 바란다. 단락별로 필요한 경우 적용과 기도를 넣었다. 이 메모에서는 논쟁이나 비판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의 흐름, 맥락, 요의, 함의,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정리 등을 기술하였고 가능한 간단히 처리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적색으로 된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각주(脚註)이다. 성경은 우리의 맛있는 양식이며,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 진다.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 성경 통독 가이드 104는 에스라서 10장을 먼저 게재하고 그 다음에 느헤미야서 서두자료와 1-3장을 게재합니다.

 

 

▲     © 김정권

 

                       에스라서 10장 메모

 

 

<10 > 이방 아내와 그 소생들의 추방

 

[에스라에게 이방 여인과 그 자녀를 내보낼 것을 제안한 스가냐] (10:1-5)

 

  성전 앞에서 엎드려 우는 에스라에게 스가냐가 그들을 내보내기로 하나님 앞에 서약하고 율법대로 행하자고 제안한다. 에스라는 이에 일어나 레위인과 제사장에게 서약시키고 일을 추진한다.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스가냐 같은 사람도 필요하고 옆에서 동의해주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모든 일에 도움이 필요하다.

 

[이방 아내와 그 소생의 추방 결의] (10:6-12)

 

  유다와 베냐민의 대표들이 모여서 이 일을 의논한 모양이다. 920일 성전 앞 광장에 모여서 논의를 했는데 큰비가 내렸는가 보다. 에스라가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회중이 그리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이방 여자와 결혼한 남자들 조사] (10:13-17)

 

  방백들을 세우고 이방 여인에게 장가든 자들은 모두 방백 앞에 나오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 일을 반대한 자가 생겼다. 즉 요나단과 야스야 이다. 이들을 므술람과 삽브대가 도왔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선조들 가운데 이방 여인과 결혼한 예가 많다. 요셉은 이집트 여자 아스낫(41:45), 모세는 미디안 여인 십보라(2:21)가 있다. 이들은 율법 이전에 이루어진 결혼이고 율법이 있었던 후에도 보아스는 모압 여인 룻(4:13)도 있다. 그러나 에스라 당시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이 이방 우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조사는 유대 종교력 101일 시작해서 다음 해 11일 끝냈다(16, 17). 이 조사는 3개월이 걸렸다. 그 총수는 112명이었다.

 

[이방 여자와 결혼한 남자들: 제사장](10:18-22)

 

  종교적 책임이 중대한 제사장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제사장은 전체 수의 약 15%에 해당함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수이다. 계수된 자는 모두 17명이다. 이들은 모두 속건제를 드려 죄 사함을 받았다.

 

[이방 여자와 결혼한 남자들: 레위 인] (10:23)

 

  레위 인으로 이방여인과 결혼한 사람은 6명이었다.

 

[이방 여자와 결혼한 남자들: 노래하는 자와 문지기](10:24)

 

  노래하는 자 1, 문지기 중에는 3명이었다.

 

[이방 여자와 결혼한 남자들: 이스라엘 백성](10:25-44)

 

  일반백성 중에는 36, 족속 가운데 10 족속만 이방 여인과 통혼하였다. 이들의 수는 85명이었다.   

 

 

 

                          느헤미야서 
                   느헤미야서의 서두(序頭) 자료

                             느헤미야서의 개요

 

  느헤미야서의 기록목적은 포수 생활에서 회복된 후에 이스라엘에 지속해서 임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면서 그분의 구속 사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느헤미야서의 특징은 1. 에스라에서 영적인 문제를 많이 다루었는데 비하면 본서는 사실적 문제를 많이 언급하고 있다.

  2.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바빌로니아 포수-귀환으로 남은 자들에게 이스라엘 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세우고 민족적 부흥을 위해 온 힘(渾身)을 다하는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도 같은 사역자였다.

  3. 1:1-7:73까지는 1인칭을 사용하여 기술했으나, 8:1-12:26 사이에서 3인칭으로 기술하고 느12:27부터는 다시 1인칭을 사용하여 기술한다.

 

  느헤미야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느헤미야가 주관하는 성벽의 재건(1:1-7:73)

  1) 느헤미야 예루살렘에 귀환(1:1-2:20)

  2) 성벽의 중수(3:1-7:4)

  3) 돌아온 백성의 계보(7:5-73)

2. 언약의 갱신(8:1-10:39)

  1) 율법의 낭독(8:1-8)

  2) 초막절을 지키는 백성들(8:13-18)

  3) 백성의 회개(9:1-38)

  4) 언약 서에 인()을 침(10:1-27)

  5) 언약에 대한 책임(10:28-39)

3. 민족의 개혁(11:1-13:31)

  1) 성읍별 거주인구의 조정(11:1-12:26)

  2) 예루살렘 성곽 봉헌식(12:27-47)

  3) 백성의 부흥운동(13:1-31)

  

                             중요 연대

 

유대의 바빌로니아 포수와 귀환

 

1차 포수 605B.C에 포수(왕하24:1-7) 되어갔다.

2차 포수 597B.C에 포수(왕하24:10-17) 되어갔다.

3차 포수 586B.C에 포수(왕하25:1-7) 되어갔다.

 

1차 귀환은 538B.C(1-6)49,897명이 귀환했다.

2차 귀환은 458B.C(7-10)1,754명이 귀환했다.

3차 귀환은 444B.C(1-13)42,360명이 귀환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자료; 톰슨II 주석성경 p. 726 하단 & 오픈 성경 p.711 하단

Thomas V. Brisco(1998). A Complete Guide to the Expansive Geography of Biblical History. Nashville, Te. p. 237

 

                    이스라엘과 페르시아제국 왕조(680 B.C.-330 B.C.)

 

680B.C.-655B.C.아케메네스(Achaemenes) 왕조의 시조 이다.

655B.C.-640B.C.테이스페스(Theispes)

640B.C.-580B.C.키루스 1(Cyrus I)

580B.C.-559B.C.캄비세스 1(Cambyses I)

559B.C.-530B.C.키루스 2(Cyrus II) 페르시아 제국의 건국자이다.

  * 성경에서는 고레스 대왕이다. 유다 포로를 1차 귀환시키고 성전

    건축을 허락한 왕이다.

538B.C 유다 포로를 1차 귀환시키고 성전 건축을 허락하다.

536B.C 유다백성 예루살렘에서 스룹바벨 성전 건축을 시작하다.

530B.C.-522B.C.캄비세스 2(Cambyses II)

530B.C. 2 성전(스룹바벨 성전) 건축이 중단되다.

522B.C.-486B.C.다리우스 1(Darius I) 490B.C.마라톤 전투에서 참패 했다.

  * 성경에서는 다리오 왕으로 표기된다.

    중단되었던 예루살렘 성전 재개를 허락한다(5:1-22).

520B.C.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로서 성전 건축을 독려하여

   제2 성전(스룹바벨 성전) 건축을 재개한다.

   페르시아 다리오 왕 2624일이다.

516B.C.2 성전(스룹바벨 성전) 건축이 끝나다. 다리오 왕 6312일이다.

   스룹바벨 성전은 516B.C.-20B.C.존속했다.

486B.C.-465B.C. 크세르크세스 1(Xerxes I) 480B.C.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했다.

  * 성경에서는 아하수에로 왕(1:1)이며 에스더가 왕비가 된다(2:12-18).

479B.C.에스더가 왕비가 된다(2:12-18).

465B.C.-424B.C.아르타크세르크세스 1(Artaxerxes I) 성경에서는 아닥사스다 1’(7:1)

458B.C.2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진다(7:1-10:44)

444B.C.3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진다(2:7-10)

424B.C. 크세르크세스 2(Xerxes II)

424B.C.-423B.C.소그디아누스(Sogdianus)

423B.C.-404B.C.다리우스 2(Darius II)

404B.C.-358B.C.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Artaxerxes II) ‘아닥사스다 2’

358B.C.-338B.C.아르타크세르크세스 3(Artaxerxes III) ‘아닥사스다 3’

338B.C.-336B.C. 아르타크세르크세스 4(Artaxerxes IV) ‘아닥사스다 4’

336B.C.-330B.C.다리우스 3(Darius III)

 

  * 왕조는 330B.C. 알렉산더 대왕에게 망하였다.

 

 

                       느혜미야서 1-3장 메모

<1 > 페르시아 수산 궁에서 느헤미야의 기도

 

[예루살렘에서 수산 궁으로 느헤미야를 찾아온 사람들](1:1-3)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가 수산 궁에 있을 때 예루살렘으로부터 하나니와 몇 사람이 느헤미야를 수산 궁으로 방문하여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의 상황을 전하여 주었다. 그 비참함과 성은 허물어지고 백성은 수모를 당하는 정황을 알려 줌으로 바빌로니아 포수에서 돌아온 제1, 2차 귀환자들의 상황을 전한다.

 

* 수산(Sousan) “백합이란 뜻이며 페르시아 만 북쪽 240km 지점 칼라강변 언덕에 위치하고

고레스 왕이 세운 제국의 3곳 수도 중 하나이다. 고레스는 겨울 궁(8:2)으로 썼고 에스더의 무대

이기도 하다(1:2). 이곳에 다리오 왕의 궁전 터와 함무라비법전이 발견되기도 했다.

현재는 수스이다.

* 하나니(Hanani) 느헤미야의 친동생으로 예루살렘을 다스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루살렘 상황에 대한 느헤미야의 간절한 기도] (1:4-11)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소식을 듣고 울며 슬퍼하고 금식하며 기도한다. 이 심정은 애통해 하는 심정이다. 범죄 한 백성에게는 두렵고 엄하신 하나님이며, 회개하고 돌아오는 백성에게는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며, 그에게는 긍휼을 베푸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이다. 느헤미야는 회개와 하나님의 긍휼을 간절히 구한다.

 

 

<2 >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 조사

 

[예루살렘으로 간 느헤미야](2:1-6)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을 보임으로 왕은 그에게서 느헤미야의 문제를 듣게 되고 그가 원하는 바를 허락하게 된다. 444B.C.3, 4월에 일어난 일이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이는 하나님이시고 그의 계획에 의해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그러나 에스라시대 아닥사스다 왕은 성벽공사 중단 명령을 내린 사람이다. 그러니 느헤미야는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Artaxerxes I, 465B.C.-424B.C.) 성경에서는 아닥사스다 1’(7:1)

표기한다. 458B.C.2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진다(7:1-10:44). 444B.C.3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진다 (2:7-10)

 

[바빌로니아 포로의 3차 귀환] (2:7-10)

 

444B.C.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받고 또 총독의 자격으로 공식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는 왕의 조서를 가지고 호위 군사의 도움을 받으며 유프라테스 강 서쪽 총독의 땅을 통과하여 예루살렘으로 간다. 산발랏은 페르시아(바사) 궁의 시종으로 있다가 사마리아 총독이 된 자이고 도비야는 암몬 자손으로서 종 출신이며, 산발랏의 참모였다. 이들은 느헤미야의 귀환을 우려했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성곽 수축에 필요한 목재도 허락받고 3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느헤미야의 성벽 조사](2:11-18)

 

  총독으로 부임한 느헤미야는 도착 3일 만에 성벽 붕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야간 암행으로 조사에 임한다. 왜 느헤미야는 암행으로 조사를 했으며 성벽공사를 속전속결로 했는가, 이는 고래스 왕 이후 계속된 사마리아 세력의 방해공작이 있었고 키루스 왕 때는 성전 공사가 중단되고 아닥사스다 왕 때는 성벽공사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고 느헤미야 당시도 사마리아세력은 계속 예루살렘의 성벽 공사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4:1-24 참조). 느헤미야는 철저한 계획을 세운 후에 논의하고자 하였다. 미리 논의에 부치면 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가 둘러본 성벽은 주로 성()의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힌놈의 골짜기에 있는 샘 즉 용정을 거쳐서 분문(쓰레기 처리하는 문)까지 골짜기 문에서 동남쪽 500m 지점까지를 조사했다. 그다음 방백들을 만나서 그들의 태도를 보고 왕의 뜻과 자신의 계획을 말하여 성벽을 수축하기로 한다.

 

[조소(嘲笑)하는 사람들] (2:19, 20)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조소하고 왕을 배반하려고 하느냐? 협박도 했다.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받은 일이니 상관이 없는 일이다.

 

 

<3 > 예루살렘 성벽 중수

 

[예루살렘 성벽 중수(重修)] (3:1-33)

 

  성벽 수축공사는 양문(洋門 sheep gate)에서 시작하였다.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그 형제들이 담당하였다. 성벽공사에 참여한 대표자 38(또는 지역)은 영예로운 이름으로 올랐고 이들은 가문, 거주지, 직업, 직책 등이 기록되어있다. 이 공사는 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잘 마치게 되었다. 양문은 예루살렘 북동쪽에 함메아 망대와 베데스다 연못 가까이에 위치하고 이문을 통해서 제물로 바쳐지는 동물들을 들여온다. 양문에서 공사가 시작되고 양문에서 공사가 끝난다.

 

* 어문(魚門, fish gate) 예루살렘 성 북쪽 성벽에 있는 문으로 생선 시장 근처의 문이다.

* 풀무 망대(화덕, tower of oven) 예루살렘 서쪽 성벽 위에 세워진 망대이다.

* 분문(糞門, Dung Gate) 쓰레기장이었던 흰놈의 아들 골자기로 폐기물을 내보내는 문이다.

* 샘문(Fountain Gate) 예루살렘 성벽 남동쪽에 있는 문이다.

* 마문(馬門, horse gate) 예루살렘 성전 남동쪽의 문으로 수문과 오벨성벽 북쪽에 있는 문이다.

* 양문(羊門, sheep gate) 예루살렘 성벽 북동쪽 모퉁이에 있는 문이다.

 

 

 

에스더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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