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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한평우 칼럼]어거스틴(5)-회심

로마에서 쓰는 한평우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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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기사입력 2019-10-27

                      

▲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     ©뉴스파워

유치원에서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게 되면 동시에 모든 아이들이 울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이 우는데 유독 한 아이는 울음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자의식>이 생긴 아이라고 한다. 심리적으로 그 때부터 영원을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고로 어떤 아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원의 문제를 골똘하게 생각하게 되고 어떤 아이는 늦게야 영원을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신 의식을 지니게 된다. 어거스틴은 그 이유에 대하여 인간이 언젠가 신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례로 짬뽕을 먹고 싶어 한다면 언젠가 짬뽕을 먹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신 의식에 치열하게 부딪치고 어떤 사람은 덜 고민한다.

 

밀 란에 거주하게 되던 이듬해(385)에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을 찾아왔다. 그리고 동거하는 여인을 내 보냈다. 순주가 이미 13살이 되었는데 말이다. 어머니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아내가 떠나게 될 때, 아내는 울면서 떠났다.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공헌하면서.

어거스틴은 그 후 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13살 난 소녀와 약혼하게 했다. 결혼하려면 2년을 더 기다려야 하기에 그 기간을 참지 못한 어거스틴은 또 다른 여인과 동거를 하였다. 이런 일연의 행동은 어거스틴이 정욕에 깊이 침잠되었다는 증거이었다. 고로 그에게 영적 갈등을 해결하는 문제가 가장 절실하고 중요했다.

영적갈등은 마치 터지기 직전의 화산처럼 계속 그의 마음속에서 거룩한 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정욕에서 자유하지 못했다. 그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에 빠진 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계속 듣는 중에도 마음은 요동쳤고 평정을 누리지 못했다.

 

그는 답답한 심정이었기에 암브로시우스에게 찾아가 깊은 영적 상담을 받고 싶었다. 러나 암브로시우스는 수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그를 한가롭게 만날 수 없었다. 또한 작은 틈이 있을 때는 암브로시우스는 묵상하거나 성경 읽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 일을 방해하면서 까지 그에게 다가갈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회심을 경험했다는 심플리키아누스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암브로시우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한 영적 아버지였고 암브로시우스는 그를 영적 아버지로 섬기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로마에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빅토리누스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다. 그는 대단히 박학다식한 분으로 철학자들의 책을 읽고 평가하기도 했고 많은 원로원 의원들의 스승이기도 한 분이다. 사람들은 대 학자로서 그의 뛰어난 업적을 기려 로마 광장에 그의 동상을 세워줄 정도이었다.

그는 이방 신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찬양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심플리키아누스를 통해 그는 신앙에 귀의하였고 수많은 청중 앞에서 자신이 기독교신자가 되었음을 분명하게 공포함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그런 간증을 통해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큰 충격을 받았다. 빅토리누스 같은 사람도 기독교에 귀의했다는 점은 아직도 의구심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는 어거스틴에게 확신의 자리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영적으로 자유하지 못하고 친구 알리피우스와 정원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깊은 묵상을 통해 비참하고 참담한 것들이 폭포수처럼 분출하였고 이내 회개의 심정이 되었다.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기에 알리피우스의 곁을 떠나 무화과나무 아래로 가서 하염없이 울었다. “언제까지인가요, 나의 더러움을 지금 해결하여주십시오.” 라고 부르짖으며 통곡했다.

 

그 때 옆집에서 반복하여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남자의 소리인지 여자의 소리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다. 그 소리는 집어 들고 읽으라(Tolie Lege)! 집어 들고 읽으라(Tolie Lege!)!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 알피우스가 앉아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경을 거기에 내려놓았기 때문에

 

그리고 성경을 집어 들고 폈더니 한 눈에 들어온 구절은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3-14).”

그 구절을 읽자 확신의 빛 같은 것이 내 마음에 비추었고 모든 의심은 즉시 사라졌다. 비로소 이제까지 그를 짓누르던 모든 짐은 벗겨져 버렸다. 한 순간에! 그때는 서기 386년으로 고향 칼타고를 떠나온 지 3년만이었고 그의 나이 32세 때이었다.

 

그가 경험한 놀라운 사건을 즉시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크게 기뻐하고는 내가 주님께 구한 것보다 더 큰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감격하였다. 아들이 비로소 거듭났다는 고백을 들은 어머니의 기쁨은 아들이 결혼하여 손 주를 안겨드리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거룩한 기쁨이라고 했다

교인의 정확한 분기점은 거듭남이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과 교인으로 엄격하게 구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령의 역사를 통한 거듭남, 그것을 당신은 통과하였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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