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도전받아야할 아브라함의 믿음

정준모 목사(로키산 자락에서 “말씀 속에 행복”을 느끼며)-【히브리서 11장 믿음장 강해(5)】

가 -가 +

정준모
기사입력 2019-11-05

히브리서 11장 믿음장 강해(5)도전받아야할 아브라함의 믿음

 

 

▲  믿음의 산에 오르자. 선진들이 정복한 믿음의 최고봉의 영적 등반가가 되자   ©뉴스 파워 정준모

 

 

믿음은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11:8-10)

 

 

요즈음 미국에서는 스포츠 경기로 온 TV가 뜨겁습니다. 정치에 실망한 민중들은 스포츠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많은 민중들은 경기장에서 혹은 TV를 통하여 축구, 야구, 농구, 테니스, 골프 등 자신의 취미와 관심에 대한 경기 관람에 전력투구를 합니다. 반면, 선수들은 자기 자신의 명예와 트로피를 위해서 열심히 경기에 임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속한 팀과 응원하는 자들을 의식하면서 승리를 위하여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는 것을 봅니다.

 

신앙 생활하는 것도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12장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을 경기장에서 경주하는 경기에 비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 역시 우리 주님과 앞서간 성도들과 또한 우리를 지켜보는 수많은 성도들 앞에서 신앙과 인생을 경주하는 자들입니다. 믿음 장에 나온 경주자들은 모두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여 경기 주최자 되신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자들이었습니다.

.

11장의 예배라는 경기에 가인과 아벨의 경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녹과 그 시대 사람들의 경주와 노아와 그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의 경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는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경주와 에서와 야곱의 경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는 모세와 애굽 왕 바로와의 경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서에는 다윗과 사울의 경주와 엘리야와 아합 왕의 경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는 바울과 로마 제국과의 경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성도 또한 매 순간 경주를 하는 자들입니다. 항상 신앙과 불신앙의 마음의 경기장과 공동체의 경기장, 삶의 매 순간의 현장 그리고 교회를 섬기는 모든 과정 속에서 경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족장들이 믿음의 경기장에서 어떻게 승리하고 믿음의 삶을 살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족장들이 살아갔던 삶의 모습이 모세 오경 중 첫 번 째 성경인 창세기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경은 영어로 “Pentateuch”이다. 이것은 헬라어로 다섯이라 불리우는 “Penta”와 두루마리 책이란 뜻을 가진 “Teuchos"에서 유래되어 다섯 두루마리로 된 책이란 뜻을 가졌습니다.

 

곧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입니다. 히브리어로 오경을 ”Torah"라고 부르는데 흔히 율법혹은 율법서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율법은 단순히 법(Law)이란 뜻보다 가르침(Teaching, Instruction)이란 뜻이 더 가깝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율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삶의 규범으로 주신 것입니다.

 

또한 오경은 창조의 역사와 이스라엘 족장의 역사와 출애굽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경은 인류 역사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가를 보여주는 구원역사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구원역사의 첫 성경인 창세기는 노아 홍수 이전과 이후의 두 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는 인류의 첫 조상으로 아담과 그 후예들을 소개하고 있고 홍수 이후에는 믿음의 첫 조상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인 족장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본론은 아브라함의 역사로부터 시작되며 창세기 4분의 3에 해당되는 창세기 12장부터 50장까지는 그들의 자손들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아브라함을 중심하여 그 자손 이삭, 야곱, 요셉 등을 믿음의 족장이라고 부릅니다.

 

족장들의 믿음은 순종, 인내, 소망, 헌신, 상속이라는 함축적인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헌신하였습니다. 결과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적 유산을 상속받았습니다.

 

오늘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이런 영적 특성들이 있는가? 어떤 면에서 내가 약한가? 이것을 통해 내 믿음의 연약과 부족임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족장들이 순종, 인내, 소망, 헌신의 삶을 살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적 축복들을 상속받은 것을 볼 때 그들의 삶이 오늘 우리의 삶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합;.

 

또한 족장들이 가졌던 것과 동일한 믿음, 동질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21세기의 믿음의 족장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의 가정들이 한 세대만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 모두가 이 시대의 믿음의 족장들의 가정이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야심에 가득 찬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믿음의 족장들이 어떠한 자세로 경주에 임하므로 승리하였는가? 등 구체적으로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나타난 믿음의 특성과 자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순종으로 경주에 임했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떼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순종은 믿음의 표현이요 믿음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믿음의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우리의 불순종은 불신의 결과이기에 항상 우리의 불순종과 불신을 회개하고 믿음으로 순종의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이 즉각 순종했다는 것을 보고 그가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쉽게 순종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어려운 여러 가지 여건, 환경, 상태, 관계들이 우리의 순종에 걸림돌이 되어 왔듯이 아브라함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믿음은 결코 심리적 자기 강화나 맹목적인 맹신이 아닙니다. 어떤 종교적 열심 내지 신비적 현상도 아닙니다. 막연한 자기 자해나 적선 행위도 아닙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인생과의 인격적 만남과 반응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분의 말씀은 명령과 약속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순종이란 반응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에 대하여 우리가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약속을 바라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성과 상식과 수준에 맞지 않는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을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명령만 내리는 것으로 끝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명령을 우리가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분명한 약속까지 보증하여 주셔서 믿음의 순종을 기꺼이 감당하도록 하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불신하고 불순종하여 믿음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하나님께서 고향을 떠나라, 친척을 떠나라고 명령하신 그 말씀은 사실 아브라함에게는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점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신앙의 결단은 자기 홀로 단독자로서 하나님 앞에서는 고독의 결단이다라는 일리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때로 자기 홀로 서기, 자신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자기 고독의 결단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여건들은 무엇이었는가? 여기에 본 메시지의 큰 방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가족 관계상 어려움이 있었습니다.고대 사회는 대가족 사회로 서로가 의지하고 서로가 힘을 모아 살았기 때문에 고향 땅, 친척을 떠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둘째로 여행상 어려움이 있었습니다.사막길에 발달된 교통 수단도 없고 안내 표지판도 지도책도 없고 휴게소도 없고 심지어 동행자도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 무조건 기약 없이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매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셋째로 언어의 문제점이 있었습니다.바벨탑 사건이후 인지라 언어가 다른 타 문화권으로 홀로 떠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가 미국 생활하면서 언어의 소통은 문제가 없으나 그들의 속어, 숙어, 관용어, 문화적 언어 등에 대해서 큰 어려움을 매번 겪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을 생각하니 그의 믿음의 도전과 담대함이 참으로 놀랍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넷째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 그냥 떠나라고만 명령하셨지 가는 방법, , 방향은 전혀 말씀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타 문화권에서 경험을 이야기를 잠시 나누겠습니다. 언제가 북경을 여행하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에서처럼 돈이 있고 영어할 줄 알면 될 것이라 단순히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미국, 캐나다, 알라스카, 하와이, 멕시코 등을 손수 운전하면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달랐습니다. 햄버거 가게인 맥도날드에서 중국인 판매원에게 햄버거를 사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같이 갔던 동료가 통역을 해주고 중국인 운전기사가 따라 다니며 안내를 해 주고 차를 태워주었기에 숙소까지 무사히 되돌아오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사실 여행하면서 혹시 길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아브라함은 어떠했겠는가?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순종하기 어려운 것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집을 떠나는 조건으로 놀라운 약속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무엇인가?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약속,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겠다는 약속,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 아브라함이 복을 빌면 그 복이 남에게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축복권에 대한 약속 등입니다. 그 약속은 분명 놀라운 것이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당장 떠나라고 하시는 것은 너무 두려웠기에 약속에 대한 감격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현실이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반신반의 내지 별로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에 자식이 전혀 없는 상황, 생물학적으로 생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떻게 큰 민족을 이루는 꿈을 꿀 수 있겠는가? 아브라함 같은 소수민족, 힘없는 백성이 어떻게 이름이 창대케 된단 말인가? 고향을 떠나면 길거리에 떠도는 거지신세가 될 판인데 어떻게 복의 근원이 되고 축복 권을 갖게 된단 말인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내 팔자에 무슨 그런 꿈같은 영화를 보리요? 하면서 냉소하고 저버릴 수도 있을만한 상황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경주에 승리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흔적이 기록된 믿음 장 히 118절에는 그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순종하였다는 말은 주동사입니다. 이것은 명령과 동시 곧 동작으로 옮겼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자마자 동시에 순종하였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떤 상황, 이해관계, 미래에 대한 염려를 계산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히 118절에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가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시니 떠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떠났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고 준비물을 갖추지 않고 미래 전개 상황을 예측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아브라함이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지 어디로 떠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경우에서 우리는 떠나지도 않으면서 어디로 떠나는 가를 하나님께 따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으며 명령에 순종을 해보지도 않고 우선 안될 이유만 내세우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실천에 옮겨 보지도 않고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님으로 빌리그래함 전도협회에서 활동하는 킴 윅스 자매의 감동적인 간증이 기억납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소경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 때 저를 인도하고 이끌어 주는 사람은 저 멀리 몇 십 미터 전방에 무엇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앞에 계단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그 옆에 흙탕물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사람의 말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으면 언제나 저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저는 믿음의 삶을 사는 성도들의 인생이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저 멀리 있는 우리의 내일을 지금 당장 알 수 없지만 나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옮기다보면 주께서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그 영광스 목적지에 도착할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부터 윤희주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월요성경공부를 14년간 다닌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저의 서재에는 상당히 많은 책들이 있지만, 저의 아내와 함께 즐겨 읽고 참고하는 책은 윤목사님의 알기쉬운 성경 강해집입니다. 일평생 성경 66권을 100권 강해집으로 완성하여 출판하셨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수많은 책을 접했지만 이 책은 저의 자녀들에게 꼭 물려줄 신앙의 참고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교회에서 윤목사님은 진정한 영적 거장이요, 복음의 기수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체험했고 목도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평생 말씀의 금광에서 복음을 캐내신 분이십니다. 진정한 한국교회의 강단을 복음으로 개혁하신 분이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주옥같은 복음이 그분의 저서 속에 담겨 있습니다. 저와 아내는 거의 매일 빠짐없이 큐티 말씀을 나누면서 한 번씩 우리 한국에 나가면 꼭 윤 목사님 뵙고 감사드리자고 하곤 합니다.” 당시 저는 윤 목사님으로부터 배운 새 찬송가 454장 찬송시를 감격 깊게 읽곤 했습니다.

 

주사랑 안에 살면 나 두렴 없으며 그 사랑 변함없어 늘 마음 편하다. 저 폭풍 몰아쳐 내 마음 떨려도 주 나의 곁에 계셔 겁 낼 것 없어라. 주 나의 목자시니 나 부족 없으며 주 인도하는 대로 늘 따라 가리라. 그 지혜 나를 깨워 내 앞길 밝히니 나 주의 길을 따라 주 앞에 살리라. 저 넓고 푸른 동산 내 앞에 열리고 그 검은 구름 걷혀 새 하늘 보인다. 끝없는 나의 소망 저 환한 생명 길 참 보배 되신 주님 늘 함께 하소서

 

이미 40여년 전 지나간 세월이지만, 저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행복하며 주님의 복음과 깊은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이 참으로 그립고 아쉽고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언제나 제 뇌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내일이 어떻게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순종이 먼저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순종은 우리가 할 일이요 내일의 걱정은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 말씀에 대한 오늘의 순종이 따를 때 내일에 대한 염려는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2.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람으로 경주에 임했습니다.

 

418절에 바울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랄 수 없는 조건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약속하시니 믿고 순종하며 나갔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바라는 것은 맹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의심하고 져버리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요 영적 졸장부며 겁쟁이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라면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는 것이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당연한 삶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들을 믿음으로 바라고 그 약속을 잡고 사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세상 사람은 세상을 잡고 살지만 믿음의 사람은 약속의 말씀을 잡고 사는 사람입니다. 불신의 사람은 자신의 지혜의 범주를 넘지 못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146편에서는 도울 힘이 없는 인생,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인생, 죽으면 그만인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천지와 바다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 항상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영원히 통치하시는 하나님, 자비와 은혜로 고아와 객과 과부와 고난 당한 자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신약의 성도들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들의 영적 조상이기에 마 11절 예수님의 영광스런 족보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그 영광의 위치에 등장합니다. 예수님도 육적으로 아브라함의 씨를 따라 나셨고 우리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절대 축복을 약속 받는 복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총신대, 백석대, 대신대, 안양대 등 신학생들을 가르친바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있어서 학점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을까? 물론 출석도 잘하고 과제물도 잘 내고 발표도 잘하고 시험도 잘 친 학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교수의 마음에 매겨지는 점수가 있습니다. 평소에 내면적으로 교수를 신뢰하며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학생입니다. 이런 학생은 비록 출석, 과제, 발표, 시험 점수가 부족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A학점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심정을 교수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모습과 형편이 비록 B 혹은 C 수준일지라도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려고 애쓸 때 하나님께서 A+를 주실 것입니다. 사실 행위로 보면 우리는 모든 F 학점을 받은 재 수강생들입니다. 우리 행위로 잘한다고 큰 소리쳐보아야 50, 51, 55, 59점 모두 F 학점 수준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장학생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행위의 성적으로는 장학생이 될 수 없지만 주님께 순종하는 믿음 때문에 주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다른 차원의 장학생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세계인 것입니다.

 

제가 한 때, 유학 했던, 남아프리카 스텔렌보쉬 지역 스텔렌보쉬라는 유명한 대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는 여러분들이 잘 아는 세계적인 조직신학 석학인 존 머리(John Murray) 박사가 1859111일에 남아 공화국에 최초로 세운 세계적인 대학교입니다. 존 머리 박사의 아버지인 앤드류 머리(Andrew Murray)는 경건한 목회자요 신학자요 선교사요 저술가입니다. 그는 기도 학교”, “겸손”, “순종이라는 등등의 영감이 넘치는 베스트 셀러를 많이 쓰신 경건한 분으로 더욱 유명합니다. 그분이 쓴 순종이란 명저에서 우리는 주를 믿는 그 때부터 모두 순종의 학교에 입학하였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남긴 바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평생을 통하여 배워야할 가장 중요한 필수 과목은 바로 순종이라는 수업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예수님도 순종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고 히 58-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순종의 학교 학생들이며 아직 그 누구도 졸업장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순종의 학교의 졸업장을 받은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천국에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주님의 순종의 학교에서 순종이라는 필수과목을 잘 배우는 영적 훈련생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의의 교사가 되시는 주님과 성령님께 온전한 순종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의 대열에 속하는 영광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총신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초등학교 교사로 6년간, 대학교 강사로 2년간 봉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2년간 벽지학교에서 근무하면서 5학년 담임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반 아이 중 정상적인 두뇌를 가지지 못한 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성적은 비록 떨어지지만 선생님의 말에 대하여는 절대 순종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성적으로 수를 받을 수 없었지만 행동발달 사항은 매우 좋다는 가를 다 준 적이 있습니다. 한번 그 학생 집을 방문하여 그의 부모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부모가 하는 말이 우리 막내는 좀 모자라지만 효자입니다 똑똑한 형들은 모두 머리가 굵어져 우리말에 불순종하고 속만 상하게 하지만 막내는 비록 성적은 낮고 부족하지만 우리의 마음에 들게 순종하고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재산의 많은 부분을 그 아이에게 줄 것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좀 부족하여도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종이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적으로는 바보가 되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 천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가라고 하시면 가고 서라고 하시면 서는 순종의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에 아브라함처럼 절대 순종하여 아브라함이 받았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토의사항 5

 

1.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경기장에서 경주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지금 나의 신앙 경주는 무엇이며, 어떻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2. 우리의 믿음의 출발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영접한 후, 나의 인생의 결단은 무엇이며, 그 어려운 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극복했습니까?

 

3.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다고 하는 대목에서 아브라함이 그 당시 바랄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4. 불신의 사람과 믿음의 사람의 차이점에 대해서 나누어 봅시다.

 

5.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보지도 않고 스스로 포기한 경우가 있었다면 나누어 봅시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뉴스파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