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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승리 찬양〛의 분석과 신학적 해석

-계19:1-10 중심으로 -정준모 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Ph. D & D.M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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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기사입력 2019-11-24

▲ 십자가     ©김진홍 목사

 

서 론: 문제 제기와 연구 목적

 

요한계시록은 신약 성서 해석의 역사에서 가장 복잡하고 독특하다. 신약 성서 가장 논쟁이 많으며, 가장 다양한 해석들이 제기된다.신약 정경 중에서 요한 계시록은 초대교회의 격렬한 논쟁을 거친 후에 정경으로 받아졌다.

 

특별히 계시록 후반에 기록된 바벨론 환상에 대한 구조, 해석, 신학적 논쟁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다. 일곱째 대접 재앙에서 바벨론 멸망에 대한 도입문을 제시하고(16:19-21) 난 후, 17-18장에서 본격적으로 바벨론 멸망에 관한 내용을 다루게 된다.

 

요한계시록 19:1-10은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 승리에 대한 찬양이다. 이는 17-18장에서 언급되었던 바벨론의 환상, 천사의 해석, 바벨론 멸망 예고,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 이후 어린 양의 최후 승리의 찬양에 대한 분석과 해석을 중심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I. 요한 계시록 191-10절 개요

 

 

요한계시록 19장은 11장과 여러 면에서 유사한 병행을 이룬다. 큰 이것은 일종의 반복이론(recapitulation theory)으로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191-10절을 분석하여 다음과 같다. 첫째, 1-5절은 바벨론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진실성과 정당성, 둘째, 6-10절은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대한 찬양 등이다. 이를 보다 더 상세하게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A) 하나님의 심판의 진실성과 정당성에 대한 찬양(19:1-5)

(a) 하늘에 있는 큰 무리들의 찬양(19:1-3)

(b)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의 찬양(19:4)

(c) 보좌로부터의 음성이 성도들에게 찬양을 요청함(19:5)

 

(B) 하나님의 통치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대한 찬양(19:6-10)

(a)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찬양(19:6)

(b)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대한 찬양(19:7-8)

(c) 천사의 기록 명령(19:9-10)

 

본문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하여 17-18장을 새로운 단락이라는 해석 입장과 연속된 단락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연속성으로 보는 견해가 타당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찬양의 주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18:20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18:9-24에서 바벨론의 패망을 슬퍼하는 세 집단들(왕들, 상인들, 뱃사람들)과 대조하면서 19:1-8에는 세 집단(하늘의 허다한 무리,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 많은 물소리와 큰 우렛소리를 가진 허다한 무리)의 찬양이 제시되고 있다. 셋째, 무엇보다도 17:1-19:10의 구조와 21:9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II. 하늘에 있는 큰 무리들의 찬양(1-3)

 

이 일 후에라는 표현은 17-18장에서 언급되었던 바벨론의 멸망이 마무리가 되고, 19장부터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19:1-1017-18장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8:20에서 바벨론의 심판에 대하여 기뻐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1-5절은 이러한 요청에 대한 반응이라 볼 수 있다.

 

하늘에 허다한 무리가 큰 음성으로 할렐루야하며 바벨론을 멸망시킨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찬양한다. 여기에서 하늘에 있는 허다한 무리는 하늘에 있는 승리한 성도(triumphant)이며, 7:9-10에서 언급된 승리한 교회(the church triumphant)를 의미한다.

 

구원과 영광과 능력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성도들의 피를 신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구원은 개인적 차원의 구원을 넘어 하나님의 전반적인 구속 계획의 완성을 의미하며, ‘영광과 능력은 이러한 장엄한 구원을 이루면서 나타나는 위엄과 힘을 의미한다.

 

2절은 18장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바벨론 심판이 1절에서 승리한 천상의 교회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근거가 됨을 밝혀준다.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음녀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참되고 의롭고(true and righteous), 종들의 피를 음녀에게 갚아주셨기 때문이다. 참되고 의로운 하나님의 속성은 15:316:7에서 묘사된 바 있다. 음녀 바벨론은 음행으로 땅을 더럽혔다. 본문에서 음행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종들의 피를 흘린 것으로 묘사되었다.

 

결국 큰 음녀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원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 할 수 있다(18:20 참조). 천상의 허다한 무리는 다시금 할렐루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두 번째 할렐루야는 단순한 찬양의 반복이 아니라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 언급된 그 연기그녀의 연기로 음녀 바벨론이 불에 타 멸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연기는 영원한 심판의 불로 인한 연기를 말한다(14:11; 19:20; 20:10, 14, 15; 34:10 참조).159) 따라서 음녀 바벨론이 불에 타는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그녀의 멸망이 영원한 것이며, 그녀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18:21 참조).

 

1-3절에서 언급된 천상의 허다한 무리들의 찬양의 모습은 6-8절에서 언급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대한 찬양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한 점과 대비되는 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J. P. Ruiz는 다음과 같이 두 단락을 비교한다.

 

 

구 분

1-3

6-8

찬양의 형식

할렐루야

할렐루야

찬양에 대한 일반적 동기

참되고 의로운 하나님의 심판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

찬양의 구체적 동기

하나님이 큰 음녀를 심판하심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름

상징적 존재의 활동

음녀가 음행으로 땅을 더럽힘

어린양의 신부 자신을 준비함

상징적 존재의 행동에 대한 신적인 반응

하나님이 그의 종들의 피를 음녀에게 갚으심

어린양이 그의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허락하심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1-3절의 구조와 6-8절의 구조는 유사한 면과 대비되는 면이 함께 나타난다. 1-3절에서 찬양의 근본적 주제가 음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참되고 의로우심에 대한 찬양이이라면, 6-8절에서는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하여 이 땅이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가 됨과 동시에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이르게 되었음을 찬양하는 것으로 양분되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우리가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는데 도움을 준다.

 

 

III.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의 찬양(19:4-5)

 

4절은 천상의 허다한 무리의 찬양에 이어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의 찬양으로 이어진다.구약을 통틀어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이십사 장로162)와 하나님의 피조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163)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천상의 허다한 무리의 찬양에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한다. ‘아멘은 동의에 대한 공식적 표현이며, 앞에 표현을 내용을 더욱 강화시켜주기 위해 사용된다.

 

한편 아멘 할렐루야는 시 106:48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106:48은 이스라엘을 억압하였던 대적 세력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할지어다 할렐루야로 찬양하는 내용으로 본문의 상황과 유사하다.

 

5절에서는 보좌로부터 나온 음성이 하나님의 종들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찬양할 것을 요청한다. ‘보좌로부터의 음성이 명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그 음성은 찬양할 대상을 명확히 언급한다. 하나님의 바벨론 심판에 대하여 찬양하는 집단은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천상의 허다한 무리이고, 둘째는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며, 세 번째는 5절에서 언급되는 하나님의 종들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 2절에서 종들의 피라는 표현을 고려하면 순교자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본문에서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라는 표현을 고려하면 모든 믿는 자들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IV.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의 찬양(19:4-5)

 

 

6절은 하나님 통치에 대한 찬양이다. 6-10절은 또 내가 들으니라는 표현으로 시작함으로서 1-5절에서의 찬양과 다른 내용이 전개될 것을 암시한다. 1-5절이 큰 도시 음녀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진실성과 정당성을 찬양한 것이라면, 6-10절은 하나님의 통치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대한 찬양을 다루는 것이다.

 

요한이 들은 소리는 허다한 무리의 소리 같기도 했으며, 많은 물소리 같기도 했으며, 큰 뇌성 같기도 했다. 이러한 장엄한 소리는 바벨론을 멸망시키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통치를 시작하신 하나님을 할렐루야로 찬양한다.

 

이러한 찬양의 직접적 이유는 세상나라를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바벨론 심판의 직접적인 결과로 시작되는 것이며,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에 적합한 하나님의 호칭이다.

 

결국 음녀 바벨론이 지배하던 세상 나라(the kingdom of world)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 (the kingdom of our Lord and of his Christ)가 되어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세세토록 다스리게 될 것이다(11:15 참조).

 

 

V. 어린 양 혼인잔치의 찬양(7-8)

 

 

7-8절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대한 찬양이다. 하늘에 허다한 무리들이 6절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찬양하였다면, 7-8절에서는 찬양해야 하는 새로운 이유가 소개되고 있다. 하늘의 허다한 무리들이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양하는 이유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의 때가 이르렀고 어린 양의 아내가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완전한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어린 양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며(5:6 참조), 어린양의 신부로서 교회 외에 다른 존재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의 타당한 근거로서 혼인잔치는 구약에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종종 사용되고 있고(2:19; 54:5-7; 16:7-8), 신약에서도 동일한 상징적 표현이 등장하며(22:1; 2:19-20), 바울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5:32).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셨다. 요한계시록에서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는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구속함을 받은 자들을 의미한다(5:9; 7:14; 14:3-4).또한 그의 아내가 예비하였으니라는 표현은 그의(어린양) 아내가 자신을 준비시켰으니’(his bride has made herself ready; NIV)로 번역할 수 있으며, 교회가 어린양과의 혼인잔치를 위하여 자신을 단장했다는 의미이다(21:2 참조).

 

8a절에서는 신랑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신부에게 결혼예복을 선물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결혼예복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로 묘사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앞부분에서 우리는 천상의 셀 수 없는 무리가 흰옷을 입고 있으며(7:9), 그 옷은 어린양의 피에 씻어 희게 되었음을 확인한 바 있다(7:14). 그리고 19:14에서는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을 수 있는 대상이 승리한 교회임이 분명해진다. 또한 8b절에서는 교회(어린양의 신부)가 세마포를 입을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세마포가 성도의 옳은 행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린양의 신부가 입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음녀가 차려입은 사치와 허영의 옷과는 매우 대조적이다(17:4).

 

 

V. 천사의 기록 명령(9-10)

 

천사는 요한에게 기록할 것을 명령한다. 요한계시록에서 기록명령은 자주 발견된다(1:11, 19; 14:3; 19:9; 21:5). 기록을 명하는 경우는 두 가지 범주가 있다. 하나는 책 전체나, 편지를 기록하라는 명령이고, 또 하나는 앞에서 언급한 어떤 중요한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 요약하여 기록할 것을 명하는 경우이다. 9절의 경우는 14:1321:5의 경우와 함께 두 번째 범주에 해당한다.178)

 

따라서 요한이 기록해야 하는 것은 7-8절에서 언급한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것이 왜 복이 있다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잔치(supper)’란 매우 친밀한 사이의 식탁교제를 의미한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라는 표현은 3:20에서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복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연합을 의미한다.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끝까지 견디며 이기는 자들에게는 기대하던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편 9절은 7-8절과 혼인 잔치에 대한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7-8절에서는 어린 양의 신부가 교회로 묘사되지만, 9절에서는 믿는 자 개개인이 혼인잔치에 초청 객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현상은 주체가 객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는 신부로서의 주체적 역할을 하게 되며, 또한 초청 객으로서의 객체적 역할을 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 집단 모두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연합을 강조하고 있지만, 전자는 교회공동체에 초점을 맞추고, 후자는 교회공동체의 개별적 구성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므로 7-9절은 구속받은 서로 다른 두 집단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22:17 참조).

 

천사는 이어서 이것이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고 했다(21:5; 22:6 참조). 여기서 이것은 원어 상으로 이것들'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이것들이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정확히 밝히기는 어렵다.

 

이것들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에 대하여 학자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상이한 주장들이 있다. 첫째,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로 보는 견해(P. Hughes, Wall, Thomas), 둘째, ‘혼인잔치로 보는 견해(Ladd, Johnson, Mounce, Beale), 셋째, 17:1-19:9 단락으로 보는 견해(Beasley-Murray, Giesen), 넷째, 요한계시록 전체로 보는 견해(Kiddle, Sweet) 등이 있다.

 

만약 19:9-10이 요한계시록 중에서 바벨론의 멸망을 다루는 특정한 부분(17:1-19:10)에 대한 결론의 의미가 있다면, ‘이것들17:1-19:10의 모든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라고 끝맺음하는 구절은 7-9a절 말씀의 진실성을 공식적으로 확증해주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한편 9절은 14:3과 구조적으로 현저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10절에 요한은 천사의 위엄에 압도되어 그 발아래 엎드려 경배하려 했다. 그러나 천사

는 요한을 제지하며 예수의 증거를 받은 믿음의 형제들 그리고 요한과 같은 위치에 있는 하나님의 종임을 밝힌다. 동시에 천사는 자신에게 경배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경배할 것을 요청한다.

 

이 상황과 유사한 상황이 22:9에서 한번 반복된다. 그렇다면 왜 천사는 요한에게 이러한 것을 요청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 표현 앞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를 통하여 앞에서 천사가 요청한 것에 대한 이유를 뒤의 구절인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가 설명해 준다.

 

대언의 성령은 신구약 성경을 막론하고 예수를 증거하는다.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 구절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 예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라는 구절은 주석가들 사이에 가장 다양하게 해석되어지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 모든 예언의 핵심이다”(Ladd, Morris, Michaels). 둘째, “예수가 주신 증거가 예언의 핵심이다”(Beckwith, Kiddle, Farrer, Kraft, Johnson, Sweet). 셋째, ‘대언의 영에서 성령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Lohmeyer, Caird, Lampe, Krodel, Aune). 넷째, 두 번째와 세 번째를 결합하여, “예수의 증거는 성령 감동받은 예언의 핵심이다”(Swete, Beasley-Murray, Giesen)라고 보았다.

 

본문의 맥락에 따라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예수의 증거를 예수에 관한 증거를 받은 사람과 동일시하고, ‘대언의 영’(the spirit of prophecy)예언자 또는 선지자’(prophetic spirit/soul, prophet)로 보는 것이다.

 

22:9에서 요한의 형제들을 예언자로서 언급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땅에서 믿는 자들은 공히 예언적 역할을 감당하는 동일한 하나님의 종들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에 불과한 천사에게 경배를 하려는 요한의 행위가 제지를 당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결 론: 신학적 해석과 결론

 

본 연구는 요한계시록 191-10절 까지 나타난 최후 승리의 찬양에 관한 분석과 해석이다. 본문은 요한계시록 171절부터 1910절까지 기록된 음녀 바벨론의 환상, 멸망에 따른 어린 양의 최후 승리에 대한 언급 중 마지막 부분을 연구한 것이다.

 

본문에 나타난 최후 승리의 핵심 주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 심판의 진실성과 정당성이다. 둘째, 하나님 통치의 가시적 선포이다. 셋째, 어린 양의 혼인 잔치 때에 대한 선언 등으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한 계시록 19:9-1022:6-9과 언어적 병행을 이룬다. 이러한 언어적 병행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19:9-10은 음녀 바벨론의 멸망을 언급한 17:1-19:10의 결론부에 해당하고, 22:6-9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새 예루살렘을 언급한 21:9-22:9의 결론부에 해당한다. 따라서 17:1-19:1021:9-22:9은 바벨론의 멸망과 새 예루살렘의 구원이라는 요한계시록 전체의 이중적 결론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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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ne, D. E. Revelation 17-22. WBC 52c. Nashville: Thomas Nelson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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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uckham, R. J. The Climax of Prophecy. Studies on the Book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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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le, G. K. The Book of Revelation.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1999.

 Harrington, W. J. Revelation. Sacra Pagina Series Vol. 16. Collegeville: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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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ce, R. H. The Book of Revelation.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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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sborne, G.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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