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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 가이드]지혜서(I): 욥기(8)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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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기사입력 2019-12-09

 

통독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신구약을 통으로 읽는 것이다. 이 메모는 신구약 1,189장을 4장씩 묶어서 298회분을 게재 할 예정이다. 매 성경 모두(冒頭)에 필요한 연대나 자료를 제시하여 성경 읽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매 장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성경 메모는 단락 별로 제시하였고 지방이나 성읍과 일부분이지만 인명은 간단한 각주로 처리하였다. 본문과 대조하여 읽기 바란다. 단락별로 필요한 경우 적용과 기도를 넣었다. 이 메모에서는 논쟁이나 비판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의 흐름, 맥락, 요의, 함의,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정리 등을 기술하였고 가능한 간단히 처리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적색으로 된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각주(脚註)이다. 성경은 우리의 맛있는 양식이며,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 진다.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     © 김정권


                    
욥 기 29-32장 메모

 

<29 > 욥의 자기변호(1)

 

[욥의 화려했던 과거 회상; 존경받던 시절](29:1-10)

 

  욥은 자신의 화려하였던 과거 생활을 회상한다. 그때에는 영광이 항상 머리 위에 있었고,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젊은이, 늙은이, 유지들, 지도자들이 모두 욥을 존경하고, 욥은 그 성의 장로로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이며 원로 이였다.

 

[욥의 화려했던 과거 회상; 나눔과 섬김을 생활화하던 시절](29:11-17)

 

  빈민, 고아, 과부, 맹인, 지체부자유 등을 돌보며 그들의 후원자이며, 가난한 사람의 돌봄이며, 불의한 자를 척결하는 해결사이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인가? 욥의 과거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의 행동임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오늘도 이런 일을 한 분들에게 고난이 닥치면 그 행위와 당하는 고난의 관계를 연관 지우려한다. 만일 행위 때문에 구원이 이루어졌다면 이런 논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구원은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선한 행위와 고난은 관계가 없다. 오히려 고난이 닥쳐왔을 때 더 의연해질 수 있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다.

 

[욥의 화려했던 과거 회상; 영광과 권위의 시절](29:18-25)

 

  욥의 이야기에 대해 타자(他者)들이 모두 순종하고 수용하였다. 그리고 희망을 품었으며 욥의 이야기나 처사(處事)를 기다리는 모습들이었다. 모든 사람의 갈 길을 결정해 주는 으뜸 자리에 있었다. 욥이 누린 영광과 권위는 그의 물질에서 연유한 바가 크겠지만, 그의 인품 즉 인격적 감화가 컸다고 보인다. 이런 잘나가던 사람에게 닥친 고난은 더 아프고 힘들다.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사람이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끝까지 하나님에게 순종하여 의의 사람임을 보인다.

 

 

<30 > 욥의 자기변호(2); 현재 당하는 고난에 대한 비통

 

[비천한 자들의 비웃음의 대상이 된 욥](30:1-8)

 

  존귀한 욥이 별 볼 일 없는 젊은이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음을 노래한다. 재물이 없어지고 병들면 세상은 그를 멸시한다. 세상인심이 아니겠는가. 욥은 29장에서 자기의 화려하였던 생활을 회상하고 30장에서 추락한 자신의 모습을 묘사함으로 대비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잘 나아갈 때와 달리 지금은 하 찬은 존재들이 멸시하고 있으니 마음으로 더 자괴감(自愧感)을 느낄 것이다.

 

[대적 같이 몰려든 조롱하는 사람들](30:9-15)

 

  이제 욥은 대적들이 놀리고, 침을 뱉고, 굴레 벗은 자들이 되었고, 허물어진 성에 진입한 군대처럼 달려든다고 노래한다. 하나님이 돌보시지 않으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물어져 간다. 욥의 처지를 잘 표출하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다. 이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가져야 할까? 중요한 것은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두렵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도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환란 중에서라도 믿음위에 굳건히 서면 평안하고, 용기가 솟아나며,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욥의 내면세계와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심을 한탄하는 욥](30:16-23)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무너지는 것이다. 문제는 밖에서 왔는데, 무너지는 것은 내면세계이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분명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다. 욥의 내면세계가 붕괴하는 데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응답을 얻지 못한 데서이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도움을 구하는 욥] (30:24-31)

 

  난감한 자리에 처하면 누구나 도움을 청하지 않겠는가? 복 대신에 화가 왔고, 광명 대신에 흑암이 왔다. 이리의 울부짖음은 절규이며 타조의 울음소리는 애처롭다. 욥의 처지를 노래한 것이다. 통곡(痛哭)과 애곡(哀哭) 모두 기가 막힌 고통에서 나오는 울음이다.

 

 

<31 > 욥의 자기변호(3)

 

[죄적 상황의 설정과 결백을 주장하는 욥](31:1-8)

 

  욥기 31장을 통해 16가지 죄적 상황을 설정하고 그런 죄를 짓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3 친구들의 정죄는 말도 되지 않는 일임을 확실히 한다. 하나님은 욥의 모든 행동을 헤아려보시고 살피시고 공평한 저울로 다신다. 본문에서는 자신은 거짓을 하지 않았으며, 만일 허탕한 데 뜻을 두었다면 자신의 소출을 타인이 먹을 것이라 독백한다. 욥은 자신의 순전함을 언제(if)--- 그리하였으며(then)--"의 형식으로 진술한다(욥기 31장의 5, 7, 9, 13, 16, 19, 25, 26, 29, 33, 38, 39). 욥은 스스로 범행 사실이 없음을 변론한다.

 

[음란한 일과 종에 대한 대우](31:9-15)

 

  욥은 결코 음란한 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종에 대해서도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대우하였다. 고대 사회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평등성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평등하게 지음을 받았음을 인식하고 있다.

 

[가난한 자와 과부와 고아에 대한 욥의 선행](31:16-23)

 

  욥은 가난한 자, 과부, 고아를 특히 잘 보살핀 것 같다. 나눔과 섬김을 잘 실천한 의인이다. 욥은 이들을 돕는 것 이상 그들의 인권을 잘 지켜준 것 같다.

 

[욥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도덕적 정절](31:24-40)

 

  욥은 일월성신과 같은 우상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선하였으며, 그 집의 종들과 시민으로부터 고소를 당할 일을 하지 않았다. 동방의 의인이란 소문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 아니었다. 그는 의인이요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 3 친구의 정죄는 터무니없는 말이고 친구로서 욥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3 친구의 정죄와 같은 행위는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고난을 겪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이웃들의 모습이다.

 

 

<32 > 엘리후의 등장

 

* 엘리후(; 그는 나의 하나님): 부스(북부 아라비아 지역) 사람,

        바라겟(;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의 아들, 욥과 어떤 관계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주장: 욥의 고난을 교육적 의미가 있음을 역설한 사람이다.

 

[엘리후가 화를 냄](32:1-5)

 

  엘리후는 욥이나 3 친구보다 젊은이이다. 지금까지의 논쟁을 참관한 엘리후는 욥이 의롭다 함에 대해, 3 친구들이 논리가 없는 정죄함을 보고 화를 내면서 그의 논쟁을 시작한다.

 

* 부스(Bus) 아라비아 3 부족 중 한족속이 살던 곳(25:23), 욥을 찾아온 친구(32:2, 6)

   고향이다. 바주(Bazu)로 기록되기도 한다.

 

[엘리후가 3 친구에게](32:6-14)

 

  엘리후는 3 친구의 발언에 대해 실망한 것 같다. 욥을 이길 수 없음을 확인했다. 3 친구가 논리 정연하게 발언하여 욥의 승복을 받았더라면 엘리후가 출연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여 만 부득이 엘리후가 출연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는 나이 들었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엘리후는 자신이 깨닫는 바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엘리후는 자신의 논리를 전개할 전제들을 말한다.

 

[엘리후가 욥에게](32:15-22)

 

  엘리후는 욥에게 할 말이 가득 차 있다고 전제하고 체면 불고하고 직설적으로 발언할 것을 말한다. 남의 잘못을 말하기는 쉬우나 덕을 세우기는 어렵다. 젊은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이다. 충고, 죄에 대한 지적 등은 모두 사람을 구하고 세우기 위한 것이어야지 무너뜨리고, 올무를 씌우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에스더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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