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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선교대회

[로마 한평우 목사 칼럼] 긍 휼

로마 한평우 목사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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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기사입력 2019-12-26

 

아주 오랫만에 시골을 방문하게 되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시골로 내려간 동기를 만나보려고 떠난 길이다. 친구는 나를 데리고 장애인 교회를 사역하는 친구를 소개했다. 아마 내가 오면 자신이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약속한 것 같다.

▲ 피카소 생가 앞에서 한평우 목사     ©한평우 목사

 

 

인사가 끝나자 교회 옆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목사님이 사역하는 교회는 전국에서 유일한 장애인 교회라고 한다. 장애인들만을 상대로 하기에 헌금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초면인 내게 스쳐가는 말로 질문 비슷하게 물었다. 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질문이었다.

 

아들 부부가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는데 십일조를 보낸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두고 주변의 목회자들이 논박을 한다고 한다. 옳다, 그르다며.

 

헌금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을 알고 있는 자식이 넉넉치못한 월급 중에서 십일조를 떼어 목회하는 부모님께  보내는데 그걸 진리문제로 힐난하는 동료들.

 

이런 일은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싶다. 과거에도 있었고 후에도 얼마든지 있게 될 일이다. 신앙은 진리의 말씀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데그 내용은 백이면 백이 다 강도가 다르다 싶다.

 

그런데 보통 열심이 신앙 생활하는 자는 그 만큼 높은 수준을 지향하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 일례로 성 프란시스코 수도회는 프란시스가 죽은 후 두 파로 나뉘게 되었다.

 

즉 프란시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고해신부인 레오에게 지도를 요청한 엄격한 파(Observants)와 좀 더 느슨하게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콘벤투알회(Conventuals)이다. 처음에는 수사들의 집이나 수도원을 소유하지 않았다. 바위로 만든 암자나 나무로 만든 오두막 내지 버려진 교회당에서 살았다.

 

그러나 수도회가 놀랍게 성장하게 되자 성 프란시스의 가르침대로 운영하는 데는 너무 커져버렸다. 그래서 느슨한 방향으로 수정했는데 원리 주의자들에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옳고 그름으로 따지기 보다는 자비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 까 싶다.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다.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시는 분이라고도 하셨다.

 

고로 배가고픈 다윗이 무리들과 함께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가 먹을 것을 구하하자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성전에서 물려낸 빵을 주어 먹게 했고(삼상21:6) 이 사건을 예수님께서도 인용하셨다(12:1-7).

 

긍휼이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음으로 충만하신 분이시다. 율법의 전 계명은 613가지다. 그것을 줄이면 십계명이 되고 그것을 더욱 줄이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된다. 한 단어로 줄인 다면 긍휼이요, 자비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도 모르게 바리새인이 되어간다.

 

그 결과 이웃을 비판하고 비난하려고 한다. 먼저 나를 돌아보고 나의 흠결을 찾아야 하는데 말이 다. 바리새인이 2천 년 전에만 있었던 무리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하루 몇 번씩이나 긍휼이 없는 깡마르고 꼬장꼬장한 바리새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저에게 긍휼의 은사를 부어 주사 모든 이웃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그 마음만이 주님의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인 이 성탄절에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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