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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선교대회

성령의 열매냐, 육체의 일이냐

나균용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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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균용
기사입력 2020-01-08

1. 성령의 열매냐, 육체의 일이냐?

▲ 스위스 시골마을의 설원     ©김정효

 

(갈라디아서 5:16-24)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5:19-24)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3:10)라고 하였고, 예수님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7:20)라고 경고하셨다.


본문에서는 열매에 크게 두 종류가 있다고 가르쳐준다
. 곧 첫째는 육체의 열매이고, 다음에는 성령의 열매다. 여기의 육체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싸르크스인데, 영어성경들을 보면 KJVflesh(육체)라고 하였고, Knox역은 earthly nature(세속적 성품), NIVsinful nature(죄의 성품), Jerusalem Bibleself-indulgence(제멋대로의 성품)라고 하였다. 곧 생래(生來)의 성품, 변화 받지 못한 성품이다. 인간의 성품은 성령으로 변화를 받지 못하면 그 질에 있어서는 다 똑같다. 단지 수양을 통하여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 열매라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중요한 두 개의 단어가 등장한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所欲, desire)”이라는 것이고, “육체의 일과 성령의 일이다. 그 후에 육체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가 나온다. 소욕이 있다. 소욕이 일, 또는 행실을 만든다. 그 일이 나중에 열매로 나타난다. 우리가 이 세 가지를 차례로 간단히 살펴보아야 하겠다. 그리고는 우리가 과연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하겠다.

 

1.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어떻게 다른가?

1) 본문 17절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말이 아닌가?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나의 겉사람이 있고, 속사람이 있다. 겉사람의 소원이 있고, 속사람의 소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조용한 시간을 내서 자기가 정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면서 그 소원을 찾아야 한다. 아마 이런 것을 명상(瞑想)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소원이 선하면 선한 사람이고, 그 소원이 악하면 악한 사람이다.

 

2) 바울은 그것을 찾았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7:21-23). 우리 모두에게 선을 행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2: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마음에 두신 소원이 있다. 그러므로 본래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 문제는 하나님이 심어두신 이 선한 소원을 어떻게 이루는가이다.

 

3)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두 개의 생각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6절에서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고 7절에서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다. 갈라디아서 6:8에서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말씀하였다.

 

2. 육체의 일과 성령의 일은 어떻게 다른가?

1)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당신의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선한 소원을 가지고 살면 선한 일을 하게 되고, 악한 소원을 가지고 살면 악한 일을 하게 된다. 하늘에 속한 소원을 가지고 살면 하늘의 사람이 되고, 땅에 속한 소원을 가지고 살면 땅의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의 마음을 잘 살펴서 자기를 진단해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육신이 병든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고치려고 애를 쓰면서도 마음이 병든 것은 고칠 생각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이 병든 것조차도 알지 못하고 살고 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위하여 우리 안에 두신 거룩한 소원이 이루어진다”(2:13).

 

2) 구체적으로 육체의 일들은 어떤 것인가? 본문 19-21절이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당신은 이런 설명에 동의하실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것들이 우리들에게 가득하다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는가?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아직 신앙의 출발선에도 서 있지 않은 사람이다. 인생들은 마땅히 자기의 비참한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3:17). 그렇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로 이 말세 교회의 모습이고, 또한 나의 모습이다. 이 비참한 모습을 깨닫게 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신앙이 시작된다.

 

3) 그러면 그 일들의 결과는 무엇일까?

갈라디아서 6: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하였다. 육체의 소욕은 결국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된다. 일찍이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6:19)라고 경고하셨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행하는 사람들의 결국이 그러하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가 썩어지고 없어지고야 말 것이다.

따라서 그 결과는 허무하게 되는 것이다. 평생 온갖 사치와 지극한 영광 가운데서만 살았던 솔로몬 왕이 말년에 자기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탄식한 말을 기억하는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1:2-3)? 인생 그 자체가 허무다. 그래서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고난뿐이요, 허무할 뿐임을 깨달은 석가모니가 그 문제의 답을 찾고자 왕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평생을 방황하면서 수도하지 않았는가? 인생이 허무함을 깨달은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잠시 잠깐 후면 우리는 다 이 세상을 떠난다. 헛된 세상 것들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땅에다 많이 쌓아두려고 욕심을 내지 말자.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욕심을 내지 말자. 그 모두가 헛될 뿐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행하는 것만이 허무하지 않다
. 그것은 참으로 우리의 마음에 벅찬 감격과 기쁨과 보람을 안겨준다. 영원하신 분이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솔로몬도 전도서를 끝내면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12:13-14)라고 하지 않았는가?


육체의 일의 결국은 21절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 교회에 다니고 직분도 받아 봉사도 열심히 하였어도 당신의 마음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당신은 결코 천국의 백성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 주려는 거짓 선생들의 달콤한 말에 속지 말자. 깨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8:13)라고 하신다. 날마다 자기를 죽이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날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과 벅찬 감격을 맛보면서 살게 될 것이다.

 

3. 성령의 열매는 무엇인가?

1) 성령의 일이 계속됨으로 나오는 것들이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그런데 이 열매는 따로따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아홉 가지가 실은 하나다. 열매라는 말이 복수가 아니고 단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 사랑의 열매는 있는데, 오래 참음의 열매는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할 수가 없다. “희락은 있는데 절제를 못한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자기에게 열매가 없음을 변명하려고 하지 말고, 부끄럽게 알아야 한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되어 저주를 자청하는 자는 불행한 사람이다.

 

2) 그 열매의 유익성은 무엇인가?

18절에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라고 하였다.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과 율법 위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은 율법을 다 지켜야 하는 사람이고, 율법 위에 있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그런 설명은 마귀가 제일로 좋아하는 설명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옥에 갈 것인데 마귀가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22:37) 사랑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을 수 있을까?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이나, 율법 위에 있는 사람이나 율법을 지키는 것은 똑같다. 그런데 무엇이 다른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은 의무감에서 율법을 지킨다. 율법을 범하면 지옥에 갈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지킨다. 그러나 율법 위에 있는 사람은 기쁨으로 지킨다. 곧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의 특권인 줄을 알아서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지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율법이 오히려 힘이 된다. 그 율법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다.


그뿐인가
?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은 자기의 힘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니까 너무도 힘이 든다. 그리고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자기가 죄인인 것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어 마음이 괴롭다. 그러나 율법 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의 힘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지킨다. 그러니까 힘이 들지 않는다. 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라는 찬송을 기쁘게 부른다.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다가 욕을 먹어도 기쁘고 매를 맞아도 감사하고, 감옥에 갇혀도 찬송이 터져 나온다. 이것이 복음이다. 율법을 안 지켜도 다 구원시켜주시는 것이 복음이 아니다. 그것은 마귀의 거짓말이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킴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이루는 것이 복음이다.


천국이다. 장차 우리가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도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져서 참된 행복을 맛보며 살게 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천국을 설명하실 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0-21)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라고 설명하였다. 당신의 마음속에 이 천국이 이루어져야 한다. 비록 몸은 이 땅에 있지만, 마음에는 천국이 이루어져야 한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지 않았는가? 주님의 죽으심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다”(5:13-14). 옛날에 영화롭고 찬란했던 미국이 오늘에 와서는 왜 이렇게 어두워졌는가? 곳곳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나고, 깽단과 마약과 동성애자들이 판치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좀도둑들이 얼마나 많아졌는가? 전 국민의 70% 이상이 비만환자들이라고 하지 않는가? 피땀 흘려 낸 세금이 엉뚱한 곳으로 다 탕진되고 있다. 왜 이렇게 어둡고 힘을 잃어가고 있을까? 모두가 교회의 책임이다. 정치가들을 탓할 것이 아니다. 교회가 빛을 잃었다.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다. 목사들이 자장가만 부르고 있지나 않는가? 잠꼬대만 하고 있지나 않는가? 왜 이 백성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바로 전하여 일깨우지 않는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8:11-13). 아모스 선지자의 슬픈 탄식이 들려오지 않는가?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백성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열매가 없는 사람은 씨가 없다는 말이고, 씨가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열매 맺게 하지 못한다. 가나안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서 포도와 석류와 무화과를 가져와서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모세에게 보고하기를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입니다”(14:23,26-27)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의 그리스도의 일꾼들도 하늘나라의 열매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열매가 바로 성령의 열매다. 일꾼 된 사람이 이 열매를 보여주고 먹여줄 때에 백성들이 생명을 얻고 천국을 바라보게 되며, 천국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4. 어떻게 해야 성령의 열매를 맺을까?

1) 자기에게 있는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을 대적하고 있음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은 슬피 탄식하지 않았는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 이런 깨달음이 올 때에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할 필요성을 깊이 느끼게 된다. “내가 이렇게 살다가는 틀림없이 지옥에 가겠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2) 성령의 씨를 심어야 한다. 씨를 심지도 않고 열매를 거두겠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러면 성령의 씨는 무엇일까?

회개다. 회개해야 성령이 오신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아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2:38)라고 하지 않았는가? 또한 베드로는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1)라고 하였다.

구약 세대에 제사를 드릴 때에 제물을 제단에 올려놓으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태웠다. 그러나 제물이라고 해서 모두 그렇게 되었던 것은 아니다. 진실한 회개가 있는 제물에 대해서만 그렇게 하셨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다. 참된 회개가 있을 때에 성령의 불이 임한다. 그 사람의 마음에 성령의 씨앗이 뿌려져서 그날로부터 새롭게 변화 받고 새사람으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기도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1:4)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따라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열심히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썼다(1:14). 이렇게 열흘 동안이나 기도하였을 때에 오순절날이 되자 드디어 성령이 강림하셨다. 마침내 그들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예수님을 삼 년이 넘도록 따라다녔던 제자들도 이렇게 오래도록 전심으로 기도하여서 겨우 성령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을 받는 일에 너무도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살지 않은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교회에 나온 것이 벌써 성령을 받은 것이다.”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물론 먼저 성령을 받고서 교회에 나온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극소수다. 대다수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나왔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과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귀가 보내서 교회에 나온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교회에 들어와서는 마귀짓만 열심히 하지 않는가? 빨리 깨달아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4:14에서는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라고 하였다. 곧 기도하면 열매가 맺힌다고 하는 것이다. 영으로 기도하면 영이 열매를 맺고, 마음으로 기도하면 마음이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까 육체가 기도하면 육체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땅에 속한 것을 구하지 말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6:33)라고 하셨다. 위엣 것을 구해야 한다(3:1). 신령한 것을 사모하여 신령한 열매를 맺자.


하나님의 말씀이다. 베드로전서 1:23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그리하여 새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 개신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성경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기독교라는 간판을 가진 교파들은 많지만, 대다수가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대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신교회는 모든 일을 성경에 기초하여 행한다. 성경에 비추어 맞는가 그른가를 살펴본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4:

12).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라고 전제하시고 이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6:63)라고 선언하셨다. 이 말씀이 우리를 살리며, 우리를 영의 사람이 되게 한다.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형통한다.

 

3) 열매가 생기게 되면 더 큰 어려움이 온다. 그 열매를 훔쳐가려고 하는 도둑들이 자꾸 쳐들어오기 때문이다. 열매가 없으면 위험도 없다. 그러나 열매가 맺히게 되면 그 열매를 지켜야 하는 어려움이 온다. 열매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말씀 떠난다는 말은 법을 떠난다는 것이고, 길을 벗어났다는 말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교통법규를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 마귀는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법에서 어긋난 것을 발견하면 즉시로 참소한다(12:10).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성령이 충만하여 좋은 열매가 가득해져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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