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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예배의날

하나님의 말씀이냐, 사람의 계명이냐

나균용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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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균용
기사입력 2020-01-08

2. 하나님의 말씀이냐, 사람의 계명이냐?

(마태복음 15:1-9)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15:8-9)

 

우리 개신교 예배의 가장 큰 특징은 성경 말씀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교나 로마교나 정교회 등의 예배는 말씀 중심이 아니라, 의식 중심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예배가 아주 잘못되어 있음을 질책하셨다. 인간들이 보기에는 매우 엄숙하고 아름답고 은혜로운 예배 같은데, 실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헛된 예배였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면서 모세의 영도 아래 대제사장 아론이 집례하는 가운데 숱하게 많은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신다. 사도행전 7:42이다: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우리가 이런 말씀을 대할 때마다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 하나님이 혹시 나의 예배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씀하시지나 않을까? 만약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어 있었나? 성령도 없고, 진리도 없었다. 단지 형식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인간들은 끊임없이 그러한 오류를 반복하여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깨달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바른 예배를 드려야 한다. 주님이 받아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예배 자체가 헛된 것은 물론이지만, 우리가 점점 더 악해지고 무감각해지고 드디어 동생을 죽인 가인처럼 살인자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옛날 유대인들의 예배가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는 우리의 예배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이 문제는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말한다.

 

1.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는 유대교 지도자들

1)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 외식하는 자가 되고, 따라서 하나님께 헛되어 경배하는 자가 된다. 본문 7절에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라고 하신 말씀이 나온다. 이어서 외식하는 자의 첫째가는 특징을 말씀하셨는데,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다.”고 하는 사실이다.

왜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 세례를 받으면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게 된다”(벧전 3:21).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말은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요, 회개하지 않으면 누가복음 7:30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7:30)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으니, 하나님의 뜻을 모르게 되고,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한다. 결국 심판날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7:23)라는 무서운 선언을 듣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외식하는 자들에 대해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신 말씀은 마태복음 23장에 나타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는 말씀이 무려 일곱 번이나 반복된다. 그 첫째가 13절에 나오는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는 말씀이며, 이어서 둘째는 15절에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로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는 말씀이다. 곧 이들은 구원을 받지도 못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서 자기들은 틀림없이 구원을 받았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구원을 나누어준다고 장담을 하였다. 자기들에게만 구원이 있고, 남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정죄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은 그들에게 구원이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23:33)라고 무섭게 책망하셨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람의 계명을 취하면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동하게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6:1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라고 하셨고, 2절에서는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발을 불지 말라고 하셨다. 또한 5절에서는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고 하셨다. 이들은 사람에게 영광을 받기를 구하는 자들이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5:44)? 그렇다.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자가 된다. 겉으로는 믿는 자인 것 같은데, 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는 말씀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람의 계명을 가르쳐서 외식하는 자가 되면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되고”(23:25), 또한 회칠한 무덤과 같아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게 된다”(23:27-28).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그러므로 예수님은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23:26)라고 책망하셨다.

 

5)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사람에 대한 말씀은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도 잘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외식하는 바리새인을 소개할 때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바리새인은 어떻게 기도했나? 그는 서서 따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하였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의 기도를 비교하시면서 이 세리가 저 바리새인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다.”라고 말씀하셨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람의 계명을 취한 소경들의 가르침

1)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신랄하게 비판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15:4-6)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인간의 당연한 의무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교훈은 분명한 구별을 요구하신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22:21).

 

2) 사람의 교훈이란 곧 소경의 가르침이다. 소경의 가르침이란 자기가 보지도 못하고서 다 본 척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척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소경을 찾아가서 점을 친다. 눈을 뜬 사람이 눈 감은 사람에게 자기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어본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닌가? 또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소경들이 가장 즐겨 쓰는 말은 내가 가만히 보니까 말이야 라는 말이란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당신은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는데, 그 사람들은 우리가 보니까라고 말한다. 대관절 어느 말이 맞는 말일까? 소경은 또한 어느 것이 크고 어느 것이 작은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작은 것을 큰 것이라고 거꾸로 가르친다. 외식하는 자가 되면, 곧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그 자연적인 결과로 이렇게 소경이 된다고 예수님이 일깨워주셨다. 마태복음 23장에 소경이라는 말이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온다. 나는 육신이 소경인 분들을 비하하려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영적인 소경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예수님은 눈을 떴다고 자랑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소경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9:41)라고 무섭게 질타하셨다. 사실 육신의 소경은 큰 문제가 아니다. 영적인 소경이 얼마나 위험하고 저주스러운 것인가?

 

3) 소경의 가르침의 셋째 특징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지만 자기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들은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7:3-5).

눈을 떠야 크고 작은 것을 구별한다. 눈을 떠야 비싸고 싼 것을 구별한다. 눈을 떠야 의인과 악인을 구별한다. 눈을 떠야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한다. 눈을 떠야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한다. 그러나 만일 눈을 뜨지 못하면 그 구별이 거꾸로 될 수밖에 없다.

 

4) 또한 소경은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거꾸로 하는 것이다. 영어로 고장났다고 하는 말을 “out of order”라고 한다.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모두가 고장난 것이다. 고장난 자동차, 고장난 비행기를 타고 간다고 상상해 보자.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 고장난 믿음을 가지고 천국길을 갈 수 있을까? 파선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겠다고 하는 것처럼,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일인가? 우리는 값싸게 구원을 노래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좀 더 심각하게 자신의 믿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차가 고장 난 것도 모르고 그냥 몰고 가다가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하긴 소경이니까 어디에서 무엇이 고장이 났는지를 도무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눈을 뜨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주님의 경고를 가볍게 듣는 자가 되지 말자. “우리의 마음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주님의 말씀에 주의해야 한다”(벧후 1:19).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5) 오늘날 우리 교회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쳐놓고 인간의 교리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구원의 문제를 보자. 예수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결단코 못 들어간다.”고 하셨으면 정말로 못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설교자들 가운데는 율법을 행하는 것은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직 믿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또 예수님은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8:3)라고 하셨다. 그런데 교회에서 어린이같이 된 사람은 몇 사람이나 있을까? 모두가 어른 노릇만 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말한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다. 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려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려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5:28-30)라고 하셨다. 그러면 세상에 간음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자기의 눈 하나를 빼낸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고, 물론 손 하나를 잘라낸 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는 지옥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떠들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조롱하는 자들도 있고, 동성애자들이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고 하니, 도대체 이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마귀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보자
. 예수님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로부터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의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8:44)라고 하셨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 “마귀는 본래 영광스러운 천사였다.”라고 하지 않는가?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런 말은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런 해괴한 이론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는 그런 거짓말이 정통 교리라는 탈을 쓰고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예를 들자면 한이 있겠는가? 이젠 우리가 깨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 위에 튼튼히 서야 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무슨 문제를 만나거나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를 먼저 생각한다. 문제의 답을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

 

1)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유대인들은 인간의 계명과 교훈을 취했다. 그 결과 제사장들은 성전에 장사꾼들을 가득히 끌어들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다. 또 이르시기를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아라!”하셨다(2:14-16). 마태복음에서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21:14)라고 하였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기도하는 집이 된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어야 내 기도가 응답된다(15:7).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 사람의 계명은 아무리 가득하여도 하나님이 거들떠보지도 않으신다. 먼저 내 마음에서 장사치들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전이다. 곧 기도하는 집이요, 예배하는 집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하는 집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고자 훈련하는 곳이다.

 

4. 오늘의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하게 채우자.

 

1) 먼저 하나님을 찾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는 다니지만, 그 대다수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따라서 예배를 드렸어도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은 없다. 하나님은 못 만나고, 사람들만 많이 만나보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도 조금도 섭섭한 마음도 없고, 무엇인가를 잃은 듯한 아쉬운 마음도 없다. 이렇게 거짓된 예배를 반복하다 보니까,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 안에 무신론자들이 많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을 비웃는다. 그들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도 부인한다. 그들은 오히려 진화론을 주장한다. 우주 만물이 저절로 생겼다고 말한다. 지극히 작은 아메바에서부터 진화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이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더 인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의인은 찾기 힘들다. 믿음의 사람은 찾아보기 힘이 든다.

 

2) 구원을 갈망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천국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갈망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물론 지옥도 믿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 같은 것은 절대로 없다고 단언한다.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겠는가? 우리는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을 비웃고 정죄한다. 이 여자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사람이었고, 지금 있는 남자도 자기의 남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나쁜 여자같이 보였어도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묻는 말은 예배 문제였고, 구원 문제였다.


  당신이 만일 예수님을 만난다면 무엇을 물어보고 싶으신가
? 부자 되는 법인가? 출세하는 법인가? 아마 목사님들은 교회를 부흥시키는 법을 물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이 사마리아 여인보다도 못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사실을 깨닫고 주님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사람들의 첫째가는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구원을 갈망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였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3-14). 구원을 갈망해야 한다. 천로역정에 나오는 기독도처럼 구원을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아오셔서 도와주신다.

 

3) 참된 회개가 일어나야 하겠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부흥회는 처음 사흘 동안은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었고, 후반부 사흘 동안은 힘써 부르짖어 성령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제 건설과 함께 돈을 벌게 되고, 살림이 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교회에서, 부흥회에서도 회개하라는 말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대신에 복을 받아 부자가 되자는 것이 슬로건이 되었다. 물론 부자도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먼저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욕심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말씀은 슬며시 떠난다. 그러니 회개가 일어나지 않는다. 회개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에만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현대 신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 그러니까 죄를 미워하는 마음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도 없다. 대신에 거짓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참된 회개가 없으면 천국이 결코 임하지 않는다
. 회개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회개가 없으면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감격이 생길 수가 없다. 회개가 없으면 귀신들이 모여들어 마음을 더욱 강팍하게 만들고, 세속적 욕심만 가득해지게 만들며, 더욱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만든다.

 

4) 진리가 가득한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오늘의 교회에서는 순수한 진리의 말씀을 찾아보기 힘들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배부르게 해 주셨더니 와글와글 모여들었지만, “내 살을 먹어라, 내 피를 마셔라.”라고 하시니 모두가 썰물처럼 밀려나가 버렸다. 텅 빈 광야, 그 한 복판에서 주님은 쓸쓸하셨다. 겨우 남은 열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얼른 나서서 대답하였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6:67-69). 영생의 말씀! 그렇다. 진리가 여기에 있다. 우리도 이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떡 얻어먹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님이 아니면 아무도 줄 수 없는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한다. 이 진리를 사모해야 한다. 그리고 이 진리를 받아야 한다.

 

5) 성령이 충만한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성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4:23-24)라고 하셨는데, 성령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도 없으니 그 대신에 인간들이 만든 여러 가지의 그럴듯한 교리와 정교한 의식들이 예배를 지배하고 있다.

성령으로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버리고 대신에 사람의 계명을 세워두었다. 그런데 그것이 훨씬 더 좋아 보이고, 편해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말한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후 3:6). “이제는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7:6). 그렇다. 영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 위에 서야 한다. 성령이 없으면 천국이 없고, 성령이 없으면 능력이 없고, 성령이 없으면 은사가 임하지 않고, 성령이 없으면 그 대신에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갈 뿐이다. 여러분 모두가 진리 위에 굳게 서서 힘차게 전진하시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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