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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냐, 염소냐? (1 )

나균용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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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균용
기사입력 2020-01-08

3. 양이냐, 염소냐? (1)

(마태복음 25:31-40)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의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의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2-34)

 

마태복음 25장에서는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가르쳐 준다. 지혜로운 처녀들이 있는가 하면 미련한 처녀들이 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있고 또한 악하고 게으른 종도 있다. 양이 있는가 하면 염소도 있다. 곧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미련한 처녀들도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악하고 게으른 종도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과 똑같은 미련한 자들이다. 미련한 처녀들을 보자.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하셨는데도 구원을 받았다는 말인가?

또 악하고 게으른 종들을 보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25:30) 하셨는데도 구원을 받았다는 말일까?

그런데 이렇게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염소의 경우에는 감히 구원받았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41절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의 부하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오늘날의 교회들을 보면 정말로 우리는 한심하고 안타까움에 탄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양들을 기르는 교회인가, 염소들을 기르는 교회인가? 교회 안에 양이 많이 있는가, 염소가 많이 있는가? 아니, 당신은 어떠한가?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을 진단해 보아야 하겠다. 이는 결코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 왜 양이 되어야 할까?

 

1)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양이어야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양과 염소의 중간이 되는 어떤 것이 있다고 한다면 또 모르되 그 중간은 없다. 양이 되어야 하나님의 백성이다. 37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양을 의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염소는 무엇일까? 악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악인이라고 생각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결코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가장 의롭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양들을 멸시하고 조롱한다.

 

2) 양은 예수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죄를 지고 간다는 말은 레위기 16장의 속죄제사를 드리는 법에서 나온 말이다. 두 마리의 양을 취하는데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한 양인데 이 양은 먼저 죽임을 당한다. 둘째 양은 아사셀을 위한 양인데 제사하는 사람이 죽은 양의 피를 이 양의 머리에 바르고 죄를 고백한다. 그러면 이 양이 그 죄를 짊어지게 된다. 그런 다음에 그 양을 광야에 내보낸다. 그렇게 함으로 속죄를 이루는 것이다. 이 양은 아사셀 양, 곧 속죄양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신 양이고 동시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광야에 버려진 속죄양이 되셨다. 그런데 레위기 16장에서는 양이라고 하지 않고 염소라고 하였다. 구약에서는 염소를 많이 드렸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염소라는 말을 쓰지 않고 양이라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5:7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유월절 양이라고 하면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이 되셨다고 하였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탈출하여 나오던 밤의 일을 다시 회상해 보자. 하나님이 아홉 번이나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어도 바로는 마음이 강팍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드디어 하나님은 마지막 재앙을 쏟으셨다. 그것은 애급 사람들의 집에 사람 장자는 물론이고, 짐승들의 맏새끼까지도 전부 죽는 무서운 재앙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는 그런 재앙이 오지 않도록 하셨다. 집집마다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놓도록 하셨다. 한밤중에 재앙을 내리는 천사가 집집마다 찾아가게 되었는데, 어린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에서는 껑충 뛰어 넘어갔고, 피가 없는 집에는 다 들어가서 장자들을 쳐 죽였다. 그래서 후일에 이 절기를 이름 짓기를 껑충 뛰어넘었다고 하여 유월절이라 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그때의 일을 상기시키면서 예수님이 바로 그 유월절에 희생되었던 어린양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장자가 죽어야 할 것을 어린양이 대신 죽음으로 장자들은 살아났다. 그러니까 뒤집어서 말한다면, 예수님이 정말로 당신이 죽어야 할 것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장자다. 저 나라에는 장자들의 총회라는 것이 있다(12:23).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바로 깨닫게 될 때에 당신은 저 장자들의 총회에 참석할 권한을 가진 존귀한 사람으로 변화를 받는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한 어린양이시다. 그가 당신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셨다. 마음에 이것을 믿자.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마음에 깊이 느껴 보자. 감격함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자. 그 분은 언제고 당신을 위한 희생의 제물이시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드리려 할 때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어린양이 있어서 이삭 대신에 그 양을 드렸다. 그런데 그 양이 예수님의 상징이 아닌가! 예수님이 양이니, 우리도 양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만일 우리가 염소라면 어떻게 예수님과 어울릴 수 있겠는가?

 

3) 예수님은 양들의 선한 목자시다. 물론 목자는 염소도 기르고 먹이고 돌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이 염소의 목자가 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오,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1-15).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리시는 목자시다. 그러니 우리가 양이 되어야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는 고백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4)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으시고는 매번 내 양을 먹여라.”라고 거듭 부탁을 하셨다(21:15-17). 염소를 먹이라고 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의 관심은 당신의 양들에게 있다. 마태복음 2:6에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스라엘과는 육신적으로는 혈통이 다른 민족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 이스라엘이 될 수 있다. 그 비결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5) 우리가 양이 되고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우리에게는 아무 부족함이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23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성도 여러분, 당신에게 부족함이 있는가? 옛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 때에 그들은 부족한 것이 많이 있었다. 양식도 그렇고, 마실 물도 없었고, 의복도 없었고, 물론 집도 없고 쉴 곳도 변변치 못했다. 거기에 종종 전쟁을 치러야 했고, 질병도 자주 찾아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신명기 2:7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행함을 아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 너와 함께 하였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그러면 누가 부족을 느끼고 불평이나 원망을 할까? 그렇다. 염소들이다. 양은 불평을 할 줄을 모른다. 양들은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을 기다릴 줄 안다. 그런데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이 되지 못하고 염소들이었기에 걸핏하면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았다. 그러다가 결국 광야에서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부족함이 있을 수 없다. 만족하면서 살자. 감사하면서 승리하며 행복하게 살자. 보라!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2-3).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의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40:11). 이렇게 하시는데도 부족한가? 근심이나 걱정이 혹시 찾아오더라도 얼른 쫓아내버려야 한다. 마귀는 우리를 불신이나 의심, 낙심과 절망의 구덩이에 빠뜨리려고 발악을 한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날마다, 일마다 승리하자.

 

6) 양이 되면 주님이 안다고 해 주신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10:27). 마지막 날 심판 때에 가장 두려운 말씀은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말씀일 것이다. 마태복음 7:23에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25장에서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서 등불을 켤 수 없는 미련한 처녀들에게 그렇게 선언하신다. 누가복음 13:25-27에는 행악하는 모든 자들에게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라고 하신다.

주님은 누구에게 안다고 하시는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이나, 미련한 처녀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7:21) 살지 않고 자기들이 보기에 좋을 대로 살았다. 그 길이 인간들이 보기에는 바른 것 같았으나 실은 사망의 길이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14:12; 16:25).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16:2; 21:2). 속지 말자. 내가 좋아하는 길을 가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자.

우리가 특히 주의하여야 할 말씀이 있다. 주님이 우리를 아신다고 하신 말씀인 요한복음 10:27이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10:28-29).

누구에게 이런 엄청난 약속을 주셨는가?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들에게 좋도록 이 말씀을 끌어 붙인다. 그러면서 이 말씀이 우리의 구원의 절대 보장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 약속은 양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염소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씀이다. 양이 되자. 아멘.

 

7) 예수님은 양을 전도자로 택하시고 그 양들을 파송하신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10:16). 양과 같이 전폭적으로 주님만 의지하는 사람들이 주님으로부터 파송 받은 사람들이다. 자기의 지혜와 재능으로 일하는 사람은 주님이 보낸 일꾼이 아니다. 그들은 염소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이 훨씬 더 크고 많은 일을 하고, 일도 잘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또 잘하였다고 해서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것은 아니다. 주님은 양을 보내신다. 양이 아닌 사람들은 자기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8) 양이라야 양을 낳을 것이기에 우리는 양이 되어야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의인의 자손은 천대까지 복을 받아 의인이 계속해서 나오지만, 악인의 자손은 3-4대까지 저주받아 멸망한다. 효자의 집안에서 효자가 나온다. 부모가 양이면 자녀들도 양이다. 그러나 부모가 염소면 자녀들도 염소가 된다. 목사가 양이면 신도들이 하나씩 하나씩 모두 양이 된다. 그러나 목사가 염소면 신도들이 하나씩 하나씩 모두 염소로 변한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칙은 결코 변개할 수 없는 진리다. 아무도 자기를 속일 수 없다.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안다. 당신이 진정으로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양이 되어야 한다. 여전히 염소로 있으면서 자기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요 사기 행각이다.

 

9)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직업은 양을 치는 목자였다. 특히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쓰셨던 위대한 인물들이 모두 목자 출신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물론이고, 모세나 다윗도 목자들이 아니었는가? 그러기에 우리는 양이 되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밤에 이 기쁜 소식을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먼저 전하셨다(2:8-20).

 

2. 어떻게 하면 양이 될 수 있을까?

1) 출생적 양이 있다. 곧 양의 씨를 받아야 양이 된다. 요한일서 3:9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났음이라.”라고 하였다. 그러면 이 씨는 무엇이며, 또한 이 씨를 받은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유대인들은 누구보다도 선민의식이 강한 민족이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무섭게 책망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해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8:39-40).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로 말한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2:28-29). 누가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누가 참된 그리스도의 자손일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닮아야 할까?

첫째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 빌립보서 2:5-8에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하였다. 곧 예수님이 밝혀 말씀하신 대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11:29)이다.

둘째,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다. 예수님이 성전을 청결케 하셨다. 요한복음은 그 사실을 설명할 때에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2:17)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한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고난을 당해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한다.

셋째로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예수님은 높고 높은 보좌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더러운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우리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할 때에 이처럼이라는 말이 얼마큼이나 되는지 상상을 해 보셨는가? 그 사랑을 깊이 깨달아 감격, 또 감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형제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②
그러면 하나님의 씨는 또 무엇일까? 베드로전서 1:23에 설명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씨다. 말씀이 충만한 사람들이 되자.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1:2)고 하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라고도 말씀하셨다.

그 씨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6:63)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으로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신다. 머릿속의 지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야 한다. 성령이 있어야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육신은 땅에 붙이고 살지만, 마음과 영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천국의 시민으로서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간다.


  2)
짐승들도 먹는 음식이 다르고, 사람들도 민족마다 그 음식이 다르다. 음식에 따라 민족성도 달라지고, 음식에 따라 생활양식이 달라진다. 짐승들을 보면 풀을 먹는 짐승들은 대개가 온순한 짐승들이다. 그러나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짐승들은 사나운 짐승들이다. 사람도 초식이나 곡식을 하느냐, 또는 육식을 하느냐에 따라서 성격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정한 물고기와 부정한 물고기, 정한 새와 부정한 새를 갈라놓고, 우리에게 정한 것을 먹으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이다. 우리 인간은 본래 짐승과 다르게 하나님의 생기’(2:7)를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영적 만족이 없으면 참 만족이 없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영적인 것을 모르고 육신적인 것만 추구한다면 그것은 짐승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아니, 오리혀 짐승만도 못한 자들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린양 예수님이 잡수시는 양식을 먹는 사람이 되면 우리도 양이 된다. 그러나 그 양식을 싫어하는 자는 주님의 양이 아니다. 예수님의 양식은 무엇이었는가?



  ①
마태복음 4:4에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더니 수많은 무리가 장사진을 이루며 예수님을 따라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그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얻어먹고 배불렀던 까닭이라고 하셨다. 그들은 육신의 양식을 사모할 줄은 알았어도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은 먹을 줄 몰랐다.

그 후에 예수님이 내 살을 먹어라, 내 피를 마셔라라고 말씀하셨더니, 그 많은 무리가 다 의심이 가득하여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온데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며 주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갔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참된 양이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되 세상 재물을 탐하여서나 세상 영광을 바라고 나오면 안 된다.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사모하여서 나와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진리에 설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먹어야 할 참 양식은 주님의 살이요, 주님의 피다.” 예수님은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6:50-51)라고 말씀하셨다. 나아가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사람 안에 거하느니라”(6:54-56)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양식이 또 있다. 곧 요한복음 4:34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우리도 이것을 우리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기도해서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는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13:22)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당신에게도 그렇게 말씀해 주시기를 축원한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참된 양식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참된 즐거움이요, 만족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충성이다. 이 충성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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