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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설교]하나님의 집이냐, 우상의 전이냐?

나균용 목사 생활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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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혜
기사입력 2020-01-15

8. 하나님의 집이냐, 우상의 전이냐?

(고린도전서 3:16-17)

▲ 한옥교회 자천교회당      ©김정권 장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말에서 집을 나타내는 글자로 사람을 가리키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다. 예를 들어 집 댁()자를 넣어서, “천안댁, 광주댁, 서울댁이라고 하면 그 지역에서 시집온 여인을 가리킨다. 또한 집 가()자를 넣어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정치가, 사업가, 문학가, 운동가, 작가, 화가등의 말은 모두 그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인을 말한다.

우리말의 존칭 중에 왕을 가리키는 전하(殿下)라는 말의 전(殿) 자는 궁전이라든가 성전이라고 할 때에 쓰는 글자다. 왕세자를 저하(邸下)라고 하였다. 그 때의 저() 자도 저택(邸宅)이라고 할 때에 쓰는 글자로 큰집을 말한다. 대통령을 각하(閣下)라고 하지만, () 자도 누각(樓閣), 전각(殿閣), 종각(鐘閣)이라고 할 때에 쓰는 글자이지만 전하나 저하에 비해 격이 한참 떨어진다. 임금을 뜻하는 폐하(陛下)자도 대궐섬돌을 뜻하는 것으로 역시 집이다. 그러니까 폐하란 섬돌이 있는 큰 궁전 아래에 사는 사람을 뜻한다. 곧 집이 클수록 높은 사람이고 작을수록 낮은 사람이다.

예수님도 자기를 가리켜 집이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2:19에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하셨는데, 21절에서는 설명하기를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2:21)라고 하였다.

고린도후서 5: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안다.”(고후 5:1)고 하였는데 여기의 장막집도 역시 우리의 육체를 가리킨다.

바울은 본문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묻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씀은 본문인 고린도전서 3:16뿐 아니라, 6:19에도 나오고, 고린도후서 6:16에도 나타난다. 누구보다도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강조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성전들이다.

 

1. 하나님의 집이란 어떤 뜻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 집이 내 집이다.라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은 어떤 뜻인가?

 

1)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들이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가 계신다.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를 낳은 부모를 모르는 사람보다도 더 악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은 부모가 없이 자기가 저절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자보다도 훨씬 더 악한 인간들이다. 그래서 시편 14:153:1에서는 단 한 마디로 그런 자들을 일축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러면 그런 자들의 소행은 어떠한가?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을 모르면 다 이렇게 된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제일 잘났다고 자랑을 한다. 빨리 깨달아 어둠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전도서 마지막 장인 12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또한 전도서의 결론으로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12:13-14)라고 하였다.

집마다 크기가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그 안의 구조도 다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다 지으셨지만, 우리가 서로 다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집이다.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고 다른 집을 함부로 비판하고 멸시하면 안 된다.

 

2) 하나님이 사시는 집이라는 뜻이다. 내 집이라고 할 때에도 내가 살고 있으면 참 내 집이지만, 만일 남에게 세를 주어서 내가 살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내 집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하나님의 집이 되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참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집은 아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성전에 찾아오셔서는 장사치들과 환전상(換錢商)들을 다 쫓아내시고 말씀하시기를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였거늘,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라고 무섭게 책망하셨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집에 계신다. 장사꾼들과 강도들이 있는 곳에는 계시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의 우리 교회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사시는 집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라고 간판을 붙여놓았으니까 주님이 계신 것이 아니다. 집이 더러우면 그 집에 들어가 사실 수 없다. 교회에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을 쫓아내야 한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결심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신약에 오면 눈에 보이는 건물보다도 우리 성도 개개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으신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좌정하신다. 그 사실을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이미 7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기를 장차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기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라고 하였다(7:14).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뜻이다. 마침내 하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심으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오셨다. 주님은 열두 제자들을 택하셨는데, 그 첫째가는 목적이 그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었다(3:14). 또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라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그 약속을 이루어주셨다. 이제는 육신을 가지신 하나님이 아니라, 영이 되어서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그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계신다. 그러나 성령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마음에 와 계시지 않는 사람이다. 성령이 없는 사람이 되면 사람들은 육신을 따라서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된다. 유다서 18-19절에 이런 자들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인데,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라고 하였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마음에 찾아오시면 예수님의 경우처럼 제일 먼저 청결케 하시는 일부터 하신다. 마음에 숨은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마음을 거룩하게 만드신다. 악한 것은 모양뿐이 아니라 생각조차도 버리게 만드신다. 마음에 늘 찔림을 주시고 죄를 멀리 하도록 하신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 마음에 거룩한 소원을 넣어주시고,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마음을 주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고 거룩한 일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역사하신다.

 

3) 하나님이 소유하시고 관리하시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주인이 그 집을 팔 수도 있고, 구조를 바꿀 수도 있다. 내가 하나님의 집이 되면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따라 모양을 새롭게 바꾸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이라면 하나님이 관리하신다.

그 첫째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대한 해결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6:31-32)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먹기 위해서 태어났는가? 그렇다면 날마다 시간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위해서 걱정도 하고 고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은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다. 마귀의 간계에 속지 말고, 의식주의 문제를 위해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관리하신다. 아무데나 내 마음대로 가도록 버려두지 않으신다. 시편 37:5에서는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겨라.”라고 말씀하신다.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라.”고 하신다. 또한 시편 55:22에서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려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잠언 16:3에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라고 하신다. 베드로전서 5:7에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려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한다. 로마서 12:19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겨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도 주장하신다.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더러운 것이나 악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주시고, 만일 악한 생각이라도 하게 되면 곧 찔림을 주셔서 회개하게 하시고 버리게 하신다. 그리하여 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하신다. 이렇게 될 때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뜻을 깨달아 그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신다.

 

2. 하나님의 집을 잘못되게 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신다.

 

본문 17절에서는 두 가지로 설명하는데. 소극적으로는 더럽히지 말라고 하였고, 적극적으로는 거룩하게 하라고 하였다.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집을 더럽히지 말라는 경고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지 말라는 것인가?

 

1) 첫째는 내 집을 장사꾼들의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성전에 찾아가시니 성전 안에 매매하는 자들이 가득하였다. 환전상들도 많이 있었다. 그래서 채찍으로 노끈을 만드셔서 다 쫓아내지 않으셨다. 오늘의 교회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을까? 성경은 진리다. 성경은 2,000년 전 옛날이야기를 하는 책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러니까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가득하게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세상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의 몸도 세속적 욕심을 위하여 쓰면 안 된다.

 

2)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라”(21:13)고 하신다. 대관절 누가 강도인가?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말씀하시는 가운데 강도에 대해 언급하셨다.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하셨고,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라고 하셨다.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가 누구일까? 구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을 가리키는 말씀일까? 물론 아니다. 그러면 누구일까?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 곧 예수님보다 선배요, 형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님보다 더 잘난 체하는 자들을 말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함부로 비판하고 멸시하면서 자기의 이론을 주장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예수님 당시에도 가득하였고, 오늘날에도 역시 가득하다. 이런 자들이 거짓 선생들이다. 겉으로는 대단한 학자인 척하면서, 교묘한 말로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현혹한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나 사상 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예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 없다. 그들도 입술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찬양한다고 하지만, 실은 자기의 영광을 더 나타내려고 하고,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으며, 우리는 이미 다 구원을 받은 것처럼 말하면서 주님의 구원을 싸구려로 만들고 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는다. 자기 마음대로 엄청난 할인을 해서 팔아먹고 왜곡하여 전한다. 예수님은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8:3)라고 하셨지만, 이 사람들은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니 이미 구원을 다 받았다.”라고 말한다. 어린이같이 되라고 강조하는 일이 없다. 믿으면 다 된다고 말하지만, 참 믿음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신도들의 영혼을 노략질하는 강도들이다.

 

3) 그 뿐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우리 몸이 귀신들이 사는 집이 됨을 경고한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12:43-45)라고 하셨다.

사울 왕도 처음에는 성령이 충만했던 사람이었습.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게 되니 버림받았고, 악신이 들어와 그를 야료하게 만들었다.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될 때에 그 도가 지나치게 되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의 뜻대로 하려고 하면 악신이 들어온다. 더욱이 하나님의 사람을 질투하고 대적하게 되면 악신의 역사가 강해진다. 우리 마음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 한번 믿어서 구원이 절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늘 살펴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죄를 멀리하고 진리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실 것이요(10:37), 또한 당신의 생명도 끝나게 된다. 조금만 더 참고 가면 된다. 그 잠깐을 참지 못하고 다시금 죄 가운데로 빠져들어가야만 하는가?

 

3. 하나님의 집은 어떤 집이 되어야 하는가?

 

1)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한다(11:17).

만민을 위해서 기도하는 집이다. 영어성경들은 하나같이 “My house wi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라고 하였다. 곧 만국, 또는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미국에서 살면서도 한국을 위해서는 많이 기도하지만 미국을 위해서 많이 기도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어떻게 만민이나 만국을 위해서 기도하겠는가?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세계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하고, 세계 모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들어야 그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된다.

만민이 와서 기도하는 집이다. 하나님의 집에는 어느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 미국인들의 교회에서는 흑인들을 거절하였다. 특히 보수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죄악이다. 이제는 우리 한국인 목사님들이 미국 교회의 담임이 되어 목회를 하고 있다. 이것은 놀라운 변화다. 옛날에는 여자들이 감히 교회의 직분을 받을 수도 없었다. 지금도 여자들은 집사도 되지 못하는 교회가 있다. 보수적이라고 하는 교회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제는 여자도 목사와 장로가 되고, 교회를 맡아 일하고 있다. 엄청난 변화요, 발전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책임을 맡아 일을 해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의 책임을 맡으면 안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뜻을 더 앞세우기 때문이다. 인종이나 성별이나 나이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 줄 아는 사람이 중요하다. 오늘의 우리 교회들이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은총이 그 위에 임한다. 복된 역사가 일어난다.

마음을 넓혀서 기도하는 집이다. 고린도후서 6:13너희 마음을 넓히라고 명하신다. 그렇다. 우리 마음을 넓혀야 한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오래 믿을수록 또는 정통이다 보수다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마음이 좁아진다는 것이다. 자기의 신앙만이 가장 옳은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아홉 가지 은사를 말하고, 이어서 우리 몸의 지체를 가지고 여러 가지 은사들의 세계를 설명한다. 나아가 결론으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리라.”(고전 12:31)라고 명령한다.

9.11 테러 이후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다.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다. 역대상 4: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하신 말씀을 기초로 해서 복을 받자고 하는 내용의 책인데, 미국 사람들이 그런 말씀을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에서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은 나의 지경을 넓혀달라.”는 기도다. 눈에 보이는 땅을 넓혀달라는 것으로만 이해하지 말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사상을 넓혀달라고 이해해야 한다.

 

2) 하나님께 예배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예배해야 바른 예배가 될까?

성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예배에 대하여 묻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성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성령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3-24).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면 복된 사람이 되지만, 만일 안 받아주시면 당신도 가인 같은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한다.

로마서 12:1에서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나를 제물로 바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고 찬송해야 한다. 에베소서 5:19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3) 하나님의 말씀이 새롭게 발견되는 곳이어야 한다.

옛날 유대 나라의 요시야 왕 십팔 년에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전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였는데,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다. 그 책을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었다”(왕하 22:3,11). 학자들은 이 책을 신명기라고 말한다. 우리의 마음을 수리할 때에 하나님의 율법책이 새롭게 발견된다. 그러나 그냥 방치하면 발견되지 않는다.

얼굴에 쓴 수건을 벗어야 한다. 모세의 얼굴의 광채가 너무도 찬란해서 모세가 얼굴에 수건을 쓰고 백성들과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구약을 읽을 때에 수건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바울은 탄식한다(고후 3:14).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는 해보다 더 밝은 빛으로 인해 눈이 멀었었다. 그러다가 아나니아가 와서 안수하게 되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고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때에 그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 곧 예전에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미움과 분노의 눈으로 보았지만, 이제는 그를 알게 되고 지극한 존경과 감사의 눈으로 그분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의 눈에서 수건이 벗겨지면 우리도 이렇게 변화를 받는다. 오해와 편견도 버리고, 미움도 질투도 버리고, 새로운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어 그 안에 들어가면 거기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복된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2:2-3).

 

4)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어야 한다. 특히 신약시대의 교회는 성령이 오셔야만 한다. 오순절에 성령이 오심으로 비로소 교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요, 이미 교회가 아니다. 성령이 거하시면서 역사하실 때에 비로소 교회는 교회가 된다. 성령의 불이 활활 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 불이 우리의 마음에 비치어 마음을 밝게 하고, 마음을 태워 헌신하게 하며, 마음을 거룩하게 만들어 주님을 닮아가게 해야 한다.

 

 
나균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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