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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예배의날

[생활 설교] 부자(富者)냐, 빈자(貧者)냐?

나균용 목사 생활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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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혜
기사입력 2020-01-15

7. 부자(富者), 빈자(貧者)?

(누가복음 16:19-25)

▲ 서울시청 앞 보도에 한 노숙자가 피곤한듯 않아서 졸고 있다.      ©뉴스 파워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일어난다. 부자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지옥에 가게 되었나? 거지 나사로는 무슨 선한 일을 하였기에 천국에 가게 되었나? 부자는 모두 지옥에 가는 것일까? 그리고 거지는 모두 천국에 갈까? 부자도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부른 것을 보면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인 것 같은데, 왜 지옥에 가야 할까? 성경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반드시 복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복을 받아 부자가 되었는데, 부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옥에 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가 과연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도 그 바른 의미를 찾아야 한다. 부자 중에도 천국에 갈 사람도 있고 또한 지옥에 갈 사람이 있으며, 가난한 자 중에도 천국에 갈 사람이 있지만 동시에 지옥에 갈 사람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부자에도 종류가 많다. 일반적으로는 돈이 많은 사람을 말하지만, 지식이 많은 사람, 권세가 큰 사람, 명예와 인기가 많은 사람, 심지어 교회가 큰 사람, 은혜가 많은 사람, 믿음이 큰 사람도 역시 부자다. 그리고 모든 부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자만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말에 불과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우리는 남들의 칭찬이나 자기의 자랑에 도취되어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1. 신약에 나오는 부자 다섯 명을 살펴보자.

 

1) 첫째는 부자 청년이다. 마태복음 19:16-22에 나온다. 이 사람은 돈도 많았지만 율법적으로도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향하여서도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불렀다. 예수님도 그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보셨다. 문제는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오히려 근심하며 갔다고 한 사실이다. 그는 돈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주님께 순종하지 못했고, 따라서 주님을 따르지 못했다. 그가 떠난 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경계하셨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 청년도 하나님을 잘 섬겼다. 그도 하나님을 사랑했고, 늘 감사하였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일깨워주신 대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6:24)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 아니면 재물을 더 사랑하는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그에게는 우상이 된다. 재물은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이지만, 그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둘째나 셋째의 자리에 놓게 된다면 그것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신 말씀을 거스른 것이 된다. 기본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야 말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엄청난 비극이다.

2) 둘째는 어리석은 부자다. 누가복음 12:16-21이다. “한 부자가 농사를 지었는데, 소출이 풍성하였다. 그래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다가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결론지어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라고 하셨다.” 이 부자는 네 가지를 몰랐다.

자기가 오늘밤에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도 다 그렇지 않은가?

자기의 영혼도 밥을 먹고사는 줄로 알았다. 곧 영혼의 양식을 몰랐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산다. 성령을 호흡하며 산다. 그것이 안 되면 우리의 영혼은 죽고 만다.

인생의 행복이 재물에 있는 줄로 알았다. 곧 참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다. 우리가 가난할 때에는 돈만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물이 많은 사람치고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행복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 것과 진정으로 행복한 것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사막길을 여행하는 사람들 앞에 나타난 신기루(蜃氣樓)와 같은 것이다. 신기루는 오아시스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아시스가 아니다. 그것을 따라가다가는 큰 불행과 멸망에 이르게 된다. 우리 조상들도 가르치기를 천석꾼 천 가지 걱정, 만석꾼 만 가지 걱정이라고 하였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많은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시달리고 괴로워하고 있다.

이 부자는 자기가 영적으로, 곧 하나님을 향하여는 가난한 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을 몰랐고, 따라서 하나님께 쌓아놓을 줄을 몰랐다. 자기에게 그토록 많은 재물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전혀 생각할 줄 몰랐다. 그 재물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다.

 

3) 오늘의 성경 본문인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경우를 보자. 부자의 잘못이 무엇일까?

그 첫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였다.”는 것이다. 가끔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서 하루쯤 호화로이 연락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날마다 연락했다는 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사람은 땀 흘려 일할 때에 행복을 얻게 되어 있다. 호화로이 연락할 때에 행복이 오는 것이 아니다. 연락할 때에는 반드시 술이 등장하고 술이 취하게 되면 건전한 판단력을 잃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교만한 말을 하며 하나님을 욕되게 하게 된다. 구약에서는 나발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하였고(삼상 25:10-11 참조), 다니엘서에 나오는 벨사살왕이 그렇게 망령된 짓을 하였다(5:1-9). 나아가 연락하는 자들은 반드시 불치의 병에 걸려서 일찍 죽는다.

둘째로 이 부자는 자기가 죽은 후에 지옥에 갈 것을 알지 못했다. 아마 자기는 틀림없이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부자들이 이런 착각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 복 받은 것만 자랑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는 말씀을 늘 마음에 새겨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

셋째로 이 부자는 자기는 지옥에 있으면서도 아브라함의 품안에 있는 나사로를 자기의 종처럼 생각하였다. 그러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24)라고 하였고, 또한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언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27-28)라고 하였다. 세상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나사로가 자기보다 얼마나 더 존귀한 사람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넷째로 이 부자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다면 자기의 형제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곧 자기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가 없었기에 듣지 못했고 알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하나님이 아무런 증거를 주시지 않았을까?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라고 대답하였다(31). 왜 그럴까? 근본적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또는 일시적으로는 깜짝 놀라서 믿는 척하지만, 그 믿음이 계속되지 못하고 쉽게 잊어버리고 배반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사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귀하신 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려내셔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저 무서운 지옥이 있는 것을 일깨워주셨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는 다닌다고 하면서도 지옥을 믿지 않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예 공공연하게 지옥은 없다고 부인하는 자들도 많지 않은가? 그들이 참된 회개를 할까? 그들이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4) 야고보서의 부자를 보자. 야고보서에서는 대표적으로 2장과 5장의 두 곳을 보자.

2:5-7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부자가 가난한 자의 편이 되어 도와줄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오히려 부자가 가난한 자를 더 착취하지 않는가?

5:1-3이다. “들어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그러면 이들의 죄악이 구체적으로는 무엇일까? 4절 이하에서 잘 설명해 준다.

곧 첫째로는 품꾼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소리 지르며 울었다. 자기가 부리는 일꾼들의 눈에서 억울함의 눈물이 흐르게 하였다.

둘째로는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았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하신 말씀은 단지 암송하는 데나 필요한 것이지 실천할 말씀은 되지 않았다. 그 말씀을 외운다고 해서 훌륭한 것이 아니다. 실천해야 한다. 내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로는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고 죽였다.”고 말씀하신다. 부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부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돈 앞에 굽실거리며, 또한 자기에게 아첨하고 칭송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고 그러다 보니 항상 자기를 가장 유능하고 옳은 사람으로 설정해 놓고, 자기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하기를 잘하게 된다. 불신 사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가 가르쳐준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지 모른다. 누가 그렇게 하였을까? 이방인들이었나? 천만의 말씀이다. 스스로 정통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이 그렇게 하였다. 믿음이 크다고 자랑하는 자들이 그런 길을 걸었다. 부자가 될수록 더욱 입을 조심해야 한다. 함부로 아는 척하지 말아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였다. 학문도 신앙도 다 마찬가지다. 항상 설익은 자들이 의인을 정죄하고 비판하다가 스스로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멸망에 떨어지게 된다.

5)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3:17). 역시 착각하고 있다. 자기를 볼 줄 모른다. 자기의 영적 상태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화자찬(自畵自讚)이 대단하다. 이것이 말세 교회의 모습이다. 돈만 좀 많으면 그것으로 다 된 줄로 안다. 예수님은 부자를 외면하셨다. 오히려 가난하고 약하고 병든 사람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을 제자로 삼으로시고 천국 건설의 거룩한 사명을 주셨다. “주여! 나의 모습부터 먼저 바르게 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 이것이 우리의 진실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라고 하였고, 또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6)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 첫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 둘째는 교만하였다. 가진 것이 없는 자를 멸시하였다. 셋째는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다. 넷째는 재물을 많이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의 것이니 자기의 마음대로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다섯째는 자기들은 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니까 문제없이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구원이 재물로 되는 줄로 착각하였다. 여섯째는 의인들을 무시하고 핍박하였다.

 

2. 성경이 말하는 가난한 자란 어떤 사람일까?

 

가난한 사람의 대표는 거지다. 본문에도 부자와 대조하여 거지 나사로를 등장시켜 설명하셨다. 거지란 한자로는 걸인(乞人)이다. 똑같은 걸인이라도 호걸 걸’()자를 쓰면 뜻은 정반대가 된다. 우리나라 말에는 이렇게 발음은 똑같은데 뜻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방화라고 하면 불이 나지 않도록 예방한다는 뜻도 되고(防火), 반대로 불을 질렀다는 뜻(放火)도 된다. ‘패자라고 하면 싸움이나 시합에서 진 사람’(敗者)도 되고, 정반대로 최고의 승리자(覇者)를 뜻하기도 한다.

걸인이란 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밥 한 술, 돈 한 푼을 비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재미있는 것은 그 빈다는 말이 기도한다는 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걸인은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사람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걸하는 사람도 역시 걸인이다.

 

1)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는 사람이다.

자기의 능력이 부족함을 깨달은 사람이다.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7).

자기의 죄가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자기의 행위로는 도저히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을 깨닫고 주님의 은혜만 간구하는 거지다.

자기에게는 지식이나 지혜가 없는 것을 깨닫고 고민하다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 베푸심을 간구하는 사람이다.

 

2) 청지기 의식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이 잠깐 내게 맡겨주신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만일 관리를 잘하면 상을 받고 큰 칭찬이 있겠지만, 관리를 잘못하면 큰 심판이 있을 것을 알고 최선을 다해 충성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을 맡기신다. 예수님은 이것을 달란트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25:14)라고 하셨다. 여기의 어떤 사람은 주님 자신이고, 그의 종들은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양 무리를 맡기셨다. 예수님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24:45)라고 물으셨다. 부활하신 후에는 베드로에게 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물으시고는 내 양을 먹여라, 내 양을 쳐라라고 부탁하셨다. 그래서 이 말씀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왔던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맡기운 자들을 주장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3)고 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맡기신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긴다.”(22:29)라고 하셨고, 바울은 나는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았고, 베드로는 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았다.”(2:7)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신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보다 나은 것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3:2)이라고 했다. 또한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너희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고 명령하였다.

 

3) 빚진 자라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빚을 졌다는 말을 성경에서는 죄를 지은 것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기도를 영어성경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다는 흠정역(KJV)에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사해 준 것같이 우리의 빚을 사해 주시옵소서.”라고 번역하였다. 우리는 위로는 하나님께 빚을 진 사람들이고, 아래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빚을 진 사람들이다. 나에게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졌고, 또한 영적으로는 우리에게 복음 듣고 구원받기를 갈망하는 많은 불신자, 이방인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이 얼마나 되는가를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실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18:24)로 비교하여 설명하셨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 빚이 100 데나리온이라면, 하나님께 진 빚은 10,000달란트다. 이것은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차이다.

복음을 빚진 자가 있다.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1:14)라고 고백하였다. 나아가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8:12)라고 하였고, 나아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15:27)라고도 말하였다.

4) 종이라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예수님의 사도들은 하나같이 자기를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하였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도들이 쓴 서신들의 첫머리에는 어김없이 자기를 종이라고 표현하는 말씀을 만나게 된다(1:1; 1:1; 1:1; 1; 1:1 ). 그들은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알았다.

그러나 종은 자유가 없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종은 소유도 없다. 종은 자식을 낳아도 내 자식이 아니다. 모두가 주인의 소유일 뿐이다.

종은 주인만 위하여 산다. 갈라디아서 1:10을 보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의 종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 에베소서 6:6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바울이 간곡하게 부탁한다.

 

3.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1) 물질로는 부유해도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5:3). 이런 사람들이 천국에 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주님을 사모하며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2) 물질에 가난해도 믿음에 부유해야 한다. 야고보서 2:5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3)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해야 한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7:21).

4) 항상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오늘이라도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해야 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12:13-14). 전도서의 결론이다.

5) 내 주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왜 그들을 내 주변에 보내셨을까? 내가 무엇을 하여야 그들에게 원망 듣지 않을 것인가? 어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를 생각하면서 복 받는 길을 찾아야 한다.

6) 사람이 교만하면 반드시 의인을 핍박하게 되어 있다. 교만한 자는 이미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기에 항상 인간들의 칭찬과 아첨하는 말을 듣기 원하는데 의인들은 그들을 칭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먼저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나균용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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