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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설교] 하나님을 좋게 하랴, 사람을 좋게 하랴?

나균용 목사의 생활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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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혜
기사입력 2020-01-15

9.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에게 좋게 하랴?

(갈라디아서 1:5-10)

▲ 십자가 묵상의 길 출구.     ©뉴스파워 최창민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9-10)

 

누구를 좋게 할까? 이 말씀을 가지고 네 가지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도 좋게 하고 사람도 좋게 하는 것, 둘째는 하나님은 좋게 하지만 사람은 좋게 하지 않는 것, 셋째는 하나님은 좋게 하지 않고 사람만 좋게 하는 것, 넷째로는 하나님도 좋게 하지 않고 사람도 좋게 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예수님의 경우는 어디에 해당될까?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을 좋게 하는 삶을 사셨다. 그러면 사람을 좋게 하시지는 않았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에게는 좋게 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바울의 경우는 어떨까? 그도 물론 하나님을 좋게 하는 삶을 살았다. 동시에 사람을 좋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예수님이나 바울은 사람들에게 조금도 좋게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오늘에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바울이 쓴 책들을 통하여 큰 은혜를 받고 생명의 길에서 환호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도 좋게, 사람도 좋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까? 구라파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 새 대륙을 찾아 건너왔다. 그들 대다수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남미로 간 사람들은 황금(GOLD)을 찾아서 갔다. 그러나 그들은 황금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도 만나지 못하였다. 한편 북미주로 온 사람들은 주로 개신교도들이었고, 그들은 하나님, (GOD)을 찾아왔다, 곧 신앙의 자유를 찾아왔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도 만났고 황금, 골드(GOLD)도 얻었다. 그래서 오늘엔 남미의 국가들은 많이 뒤떨어진 나라가 되었고 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끊임없는 정변으로 인해 편할 날이 없는 나라들이 되었다. 문제는 어디로 갔느냐, 또는 환경이 어떠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목적으로 하며 사느냐 하는 것이었다.

러시아 천사합창단을 이끌고 이곳에 오셨던 김바울 목사님의 간증은 감동적이다. 그분은 워싱턴에서의 7년 목회와 뉴욕에서 7년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러시아로 가라고 하셨다. 그분은 내 교회를 두고 어떻게 갈 수 있느냐고 하나님께 항의하였다. 그러다가 깨달아진 것은 내가 현대판 요나가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러시아로 가라고 하시는데 나는 왜 미국에 머물러 있겠다고 하는가? 내가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가, 아니면 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가?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가, 아니면 내 뜻을 행하는가? 이 교회가 주님의 교회인가, 나의 교회인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주여! 순종하겠습니다. 제가 러시아로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1991년 러시아로 가셨다. 처음에는 떨렸지만 끊임없이 기도하며 이제까지 왔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다. 그는 예수님께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자기가 꿈에 예수님을 위하여 애를 많이 썼다고 하면서 그 의인에 대하여 결코 해롭게 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을 석방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자기의 눈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라고 아우성치는 유대인들의 거대한 군중들만 무섭게만 보였다. 금방이라고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기세였다. 그는 차마 그들을 거역하지 못했다.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처결하였겠는가? 정말 유대인들의 아우성 소리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

 

1. 주님이 가르치신 복음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

 

1) 성경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볼 때에 항상 거짓이 지배해 왔다.

예레미야 6:148:11에 같은 말씀이 거듭 나온다. 곧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모두 하나님의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는 말씀이다. 또한 에스겔 13:10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16절에서는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본다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라고 밝혀 말씀하신다. 이사야 9:15에서는 하나님이 장차 이스라엘의 머리와 꼬리를 끊어버리시겠다고 하시면서 그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라고 선언하신다.

왜 거짓 선지자들이 이렇게 횡행할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타락 때문이다. 백성들이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한다. 이사야 30:10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여라.”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5:31에서 하나님이 탄식하시기를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라고 하셨다.

신약에 와서도 논조는 동일하다. 주님이 언제 재림하실까? 한 인간에게 심판이 언제 임할까? 데살로니가전서 5:3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라고 경고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평안하다는 소리만 찾아간다. “회개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듣기 싫어하고, “우리는 이미 믿은 고로 모두 구원을 받았다. 할렐루야.”라고 하면 좋아하면서 모여든다. 그러나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경고한다. 그런데 왜 그 엄중하신 말씀이 오늘날의 신자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까?

예수님은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신랄하게 책망하셨다(23:33). 유대인들에게는 너희 아비는 마귀라.”(8:44)라는 섬뜩한 폭탄선언도 하셨다. 그러니까 미움을 사신 것이 아닌가? 왜 그렇게 은혜롭지 못한 말씀을 하셨을까?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를 향하여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곧 이렇게 거짓 선지자들이 가득하지만 동시에 참 선지자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시대에나, 어느 장소에나 참 선지자들이 있다. 그런데 인간들은 눈이 어두워서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하고 박해한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 가운데 이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자기 형제들에게 가서 이 무서운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을 때에 아브라함은 단호히 거절하면서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16:29)라고 하였다. 곧 그 부자의 형제들 주변에 선지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불행은 선지자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고,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믿지도, 심지어는 듣지도 않는 것이다.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말을 좋아하고 그 말을 따라가지 않는가!

 

2)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특성이 있다. 그 특성을 바로 깨달아야 한다.

그 복음은 성결의 복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이 거룩해야 할 것을 가장 강조하셨다. 먼저 마음의 죄를 깨달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 배불리 먹고 살아야 한다. 나아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성령의 감동과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다. 복음은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다. 요한복음 1: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라고 선언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2:2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어서 4-5절에서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라고 말한다. 전도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요, 그 표현은 성령의 능력이다.

그 복음은 천국과 지옥의 복음이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하여 가장 많이 말씀하셨다. 특히 마태복음에는 천국 비유가 가득하다. 8복이라고 불리는 산상수훈의 첫머리의 말씀은 천국에서 시작하여 천국으로 끝난다. 모두 천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는 문제는 곧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한다. 지옥이 없다면 죽으면 그만이라는 말인데, 솔직히 말하여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치는 공산주의자들의 말과 무엇이 다른가? 공산주의자들도 지상 낙원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지옥이 없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속지 말자. 지옥 심판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가장 행복하다.

그러나 반대로 지옥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사는 자들은 지옥이 없다는 거짓된 교리를 만들어서 그것을 가르침으로 자신들은 위로하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일교가 거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지옥이 없다고 외친다고 해서 있는 지옥이 없어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한 죄부터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천국의 행복이 임한다.

 

3) 복음은 영이다. 영을 형식으로 바꾸면 큰일 난다.

태아는 탯줄을 통하여 엄마로부터 영양을 공급받는다. 그러나 그 태아가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되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탯줄을 자르는 것이다. 더 이상 탯줄에 의지하고 살면 안 된다. 새로운 방법, 곧 젖을 먹는 방법으로 영양을 공급받는다. 더 자라게 되면 젖을 끊고 밥을 먹는다. 나중엔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현미와 백미가 어떻게 다른가? 현미가 좋은 줄 알면서도 왜 백미를 먹을까? 현미는 도정 과정을 거치지 않는데 왜 백미보다 더 비쌀까? 현미는 보관이 어렵다고 한다. 쉽게 변질되기 때문이다. 참 복음도 보관이 어렵다. 쉽게 변질된다.

무엇이든지 순수한 것은 쉽게 변한다. 복음도 그렇다. 18세기에 영국에서 요한 웨슬리가 외쳤던 순수한 성결의 복음은 1 세기를 견디지 못하고 쉽게 변질되어 오늘날 감리교회는 세속화되었다. 이를 볼 때에 예수님이 외치셨고 바울이 강조하였던 순수한 복음이 오늘날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지 않겠는가?

 

2. 주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행해야 한다.

 

1)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입술로만 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이런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말로는 잘 믿으나, 실천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서 2장에서 경고하지 않는가!

마음으로만 믿으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10:10)고 하였으니까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실제에 있어서는 마음으로도 믿지 않는다. 마음으로 믿는다면 마음이 항상 하나님께 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속에 계셔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엔 하나님 대신에 물욕, 음욕, 권세욕, 명예욕이 가득하지 않은가?

주님을 찾는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다. “세례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벧전 3:21).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거듭나서 양심이 살아나야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게 된다.

 

2)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야 천국에 가게 된다.”(7:21)고 하셨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3:35)라고 선언하셨다. 또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4:34)라고 하셨다. 우리도 세상 양식을 사모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을 우리의 양식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 사도 요한은 말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그렇다. 오직 그 사람만이 영원히 남는다. 과연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마태복음 11:25-26에서는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라고 하셨다. 스스로 지혜로운 척하지 말고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18:14에서는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라고 하셨다. 우리가 다 구원받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고, 십자가의 고난도 당하셨다. 구원의 문제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우리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누가복음 22:42에서는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그리고는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셨다. 우리도 세상의 영광을 바라지 말고 그 길을 가야 한다.

요한복음 6:40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라.” 그렇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믿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본 체험도 없이 입술로만 믿는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다가 바람이라도 불면 모두 떠나가지 않는가? 그러고도 정말 구원을 받은 것일까?

데살로니가전서 4:3에서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라고 하였다. 깨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 히브리서 12:14에서는 거룩함이 없으면 아무도 주님을 만나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거룩한 척하는 것은 쉬울지 모르지만, 거룩해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령으로 거룩해지고,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해져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을 보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얼마나 행복한 생활일까? 당신은 왜 스스로 불행한 생활로 나아가려고만 하는가? 십자가 사랑 안에서 살자.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살자. 행복은 바로 거기에 있다.

베드로전서 3:17에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한다. 선을 행하다가, 의를 행하다가, 복음의 길을 가다가 고난을 받으라고 하신다. 진리의 길을 가노라면 반드시 고난이 찾아온다. 핍박과 고난과 따돌림을 받음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결코 바른 길이 아니다. 예수님이 당하셨던 일들이 우리에게도 임한다. 사도들이 당했던 일들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나타난다. 오히려 감사하면서 그 길을 잘 달려가야 한다.

 

3) 하나님의 뜻은 만물에 나타나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다.

잠언 25:2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라고 말씀하였다. 모든 좋은 것은 다 숨겨져 있다. 전심으로 찾아야지만 찾을 수 있다. 특히 진리의 세계가 그렇다. 가볍게 행하는 사람은 결코 깊은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6:9). 그런데 예수님도 마태복음 13장에서 일곱 가지로 천국을 비유하여 설명하시면도 바로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셨다. 그러면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일까? 그렇지는 않다. 진심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 간절히 진리를 구하는 사람들에게만 눈이 열리고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러므로 이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왕이다. 장차 천년왕국에서 왕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을 설명하실 때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라고 하시고는 이어서 거의 똑같은 말씀으로 다시 설명하셨다.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13:44-46).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 있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은 이렇게 힘든 일이다. 그러나 결단을 하고 주님께 자기를 드린 사람에게는 매우 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 있다. 사도행전 13:22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그가 내 뜻을 다 이룰 것이라.”라고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만 하면 문제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주님을 꼭 붙잡고 살아야 한다.

 

1) 남의 마음을 붙잡는다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가?

어린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아서 그들에게 음식을 팔기 위하여 맥도날드 같은 회사에서는 전문으로 연구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놀이기구를 만들고, 가장 즐겨하는 음식을 만든다.

여자를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은 여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전문으로 연구한다. 그래야 그들의 기호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어려운 일은 여자가 자기 좋아하는 남자의 마음을 붙잡는 일이고, 반대로 남자가 자기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붙잡는 일이 아닌가? 그것이 안 되니까 속이 상하고 안타깝고 분하고, 괴롭고 그러다가 자살도 한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 일엔 많은 실수와 착각이 있다.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주님의 마음을 붙잡는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

 

2)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

말로만 주님을 찬양하고 존경한다고 해서 주님이 높아지시는 것이 아니다. 주기도문의 첫 간구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였다.

미가서 6:8에서 말씀한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된다. 그래서 성령을 보내주셨다. 우리가 성령 받기에 힘쓰고, 그 능력 가운데서 주님의 뜻을 행해야 하겠다.

 

3) 기도에 힘씀으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기도만 하면 다 이루어주시겠노라고 약속도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기도를 하지 못할까?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지 못하면 기도생활을 하지 못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대해 감격하는 마음이 없으면 결코 기도 생활을 하지 못한다. 성령이 없으면 끈질긴 기도를 할 수 없다.

 

4) 주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을 사랑할까? 돈이 많아서 때마다 나에게 선물을 많이 사 주는 사람? 내 앞에 와서 나를 칭찬하는 사람? 남들에게 가서 나를 칭찬하는 사람? 물론 나는 그런 사람들을 다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말을 귀히 알고 잘 듣는 사람이다. 곧 순종하는 사람이다.

주님도 마찬가지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즉시로 순종하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다 깨닫지는 못해도, 깨닫는 대로 작은 것부터 순종하는 생활을 계속하게 될 때에 우리는 은혜 안에서 성장한다. 더 큰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게 된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가 충만하게 받자.

 

나균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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