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흥해야 할 사람, 쇠해야 할 사람

나균용 목사 설교문

가 -가 +

나균용
기사입력 2020-02-20

 

(요한복음 3:22-30)

26)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만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만 하리라하니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는 말씀은 아주 유명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 말의 배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관복음에서 보면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요한은 곧 감옥에 갇혔고, 순교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함께 일하셨던 기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늘의 본문이 바로 그것이다.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랍비여! 당신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예수라는 사람이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갑니다.”라고 불만 섞인 말을 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기를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라고 하고는 이어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다, 또한 나는 신랑이 아니라 신랑의 친구인 들러리다. 너희는 이 사실을 증언해야 할 사람들이다. 나에게는 이러한 사명을 받은 자로서의 기쁨이 충만하다.”라고 말하고는, 결론적으로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해야 하리라.”라고 말하였다.

▲ 스위스 설원 위의 양 떼들     ©김정효 선교사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자기가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간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오히려 크게 기뻐하였다. 그렇게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자기는 이제 사명을 다 마치고 조용히 사라져야 할 사람이고, 예수님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크게 활동을 하셔야 할 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그것이 불만이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들도 그런 불만이 많다. 그래서 의인이나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한다. 심지어는 헐뜯고 아예 교계에서 매장시키려고도 한다. 그러나 요한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도 자기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웨스트콧(Westcott)이라는 신학자는 이 말을 가리켜 세례 요한의 이 말은 종교적 희생정신으로 충만해 있으며, 그의 임무를 적절하게 마치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흥망성쇠(興亡盛衰)라는 말이 있다. 흥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예수님이다. 쇠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세례 요한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흥하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이 사명을 위하여 충성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그를 소개하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는 헤롯왕을 책망하였고, 그 일로 인해 감옥에 갇혔다가, 목 베임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는 분명 이렇게 쇠해지고 말았다. 그는 오직 예수님을 흥하게 하려는 일념뿐이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려고 할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은 첫째 개역성경에 흥해야 하겠고, 쇠해야 하리라.”라고 번역한 말씀은 흥해야만 하겠고, 쇠해야만 하리라.”라고 해야 옳다는 사실이다. 헬라어로는 데이라는 말인데, 영어로는 ‘must’라는 조동사가 된다. 그는 흥해도 좋고 흥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반드시 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반드시 쇠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헬라어 원어로 볼 때에 흥한다는 말은 능동태 현재분사형이다. 계속해서 흥해야만 한다.”는 것이고, ‘쇠한다는 말은 수동태 현재분사형이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힘에 의하여 나는 계속하여 쇠해져야만 한다.”라는 뜻이다.

 

대통령이 새로 뽑혀서 취임하게 되면 옛 대통령은 쇠해지고, 새 대통령이 흥해져야 한다. 교회에서 담임 목사님이 은퇴하거나 떠나게 되면, 옛 목사님은 쇠해져야 하고, 새 목사님이 흥해져야 한다. 부모가 늙고 병들게 됨으로 쇠해지면, 아들이 흥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후에 일을 맡은 분이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례 요한보다는 예수님이, 예수님보다는 성령님이 그렇게 하셨다. 그런데 인간 세상의 일들은 후에 오신 분이 잘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불평이 나오고, 싸움이 생기고, 점점 더 어지러워진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를 흥하게 하시려고 쇠해지셨을까? 또한 우리도 점점 쇠해지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누구를 흥하게 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제껏 살아왔을까? 나아가 앞으로 우리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누구를 흥하게 하기 원하는가? 우리 인생을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잠깐 잠자는 것처럼 살다가 떠나야 할 인생이 아닌가?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

 

1. 세상의 이치는 쇠하는 사람이 있어야, 흥하는 사람이 있게 되어 있다.

 

1) 장사를 해도 손해 보는 사람이 있어야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도박이다. 돈을 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잃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어리석어서 결국은 돈을 다 잃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혹시나하는 생각을 가지고 도박을 하다가 쪽박을 차기도 한다. 또한 주식이 그러하다. 어느 회사의 주식이 값이 오를지를 먼저 알 수만 있다면 큰 부자가 되겠지만, 돈은 돌고 도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벌게도 되지만, 또한 잃게도 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또 한 가게가 크게 흥하면, 그 옆의 가게는 쇠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이치다. 그러니까 세상은 남이 손해 본 그 위에 나의 이익을 챙기게 되는 것이다.

 

2) 우리 인생이 그러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점점 쇠하여진다. 그러나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더욱 성하여진다. 노인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젊은이가 이어받게 된다. 또한 선생님이 시간과 정성과 정력을 쏟아서 가르칠 때에 학생들은 일취월장 실력이 늘어나고 힘이 강해진다. 선생님과 부모님의 희생이 없다면 자녀들은 바르게 자라나지 못한다. 또 우리는 이런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곧 사람이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따라서 그 방면에 발전이 있지만, 반대로 관심이 없고 노력하지 않는 방면에는 발전이 없고, 오히려 점점 쇠하게 된다.

 

3) 그러나 세상과 인생의 이치는 내가 쇠해져도 다른 사람이 흥해진다는 보장이 없다.

내가 쇠해짐으로 내 자녀들이 흥하게 될까? 물론 그런 경우도 많이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선생님이 공들여 가르치고 애를 써도 오히려 탈선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 왜 그렇게 될까? 마귀가 방해하기 때문이요, 우리가 나쁜 씨를 심었기에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죄악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밝고 희망찬 내일을 기대할 수가 없다. 우리 속에 죄가 없어지지 않으면 그 죄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2. 천국의 이치는 쇠함으로 더욱 성해지는 것이다.

 

1) 세례 요한은 쇠하여졌지만 그의 이름은 더욱 성하여졌다.

그는 쇠하여졌지만 예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주셨다. 예수님은 친히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11:11)라고 하셨다. 그러면 그가 얼마나 크다는 말일까? 그는 모세보다도 큰 사람이었다. 그는 다윗 왕보다도 큰 사람이었다. 그는 아브라함보다도 큰 사람이었다. 그는 엘리야나 엘리사보다도 더 큰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이어서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11:12)라고 하심으로,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드디어 새로운 복음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을 천명하셨다. 신약성경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된다. 곧 옛날 사무엘이 사사시대와 왕국시대를 연결하는 경계선에서 다윗 왕을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위대한 인물이었던 것처럼, 세례 요한은 구약의 율법시대와 신약의 복음시대를 연결하는 경계선에서 그리스도를 소개한 위대한 인물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에 대하여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11:11)라고 하셨으니, 그는 천국에 가지 못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지극히 어리석은 말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모든 인류가 총 부활하기까지는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때에는 아직 천국에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 뿐이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사실을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3:13)라고 말씀하심으로 우리에게 밝히 알려주셨다.

 

세례 요한이 자기를 낮추어 쇠하여짐으로 목 베임 받아 죽기까지 하였지만(14:10), 그의 이름과 업적은 성경에 기록되었고, 지난 2,000년간 모든 성도들로부터 가장 큰 존경을 받았다. 나아가 그의 육신은 비록 비참하게 죽었어도, 그의 영혼은 천국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되어 있고, 그는 장차 천국에서 영원토록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

 

2)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쇠하여지셨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은 더욱 성하여지고, 그의 영광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지 않는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2:6-11).

 

예수님의 삶의 정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의 첫째 간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6:9). 곧 자기는 쇠하고 아버지를 성하게 하려고 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길을 알고 계셨다. 그것이 무엇이었나? 십자가였다. 십자가를 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삶은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만을 추구하셨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6:33)라고 하셨고, 주기도문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히브리서 10:9에서는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을 마치시고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실 때에 다 이루었다!”(19:30)라고 선언하셨다.

 

예수님이 이루시려고 하시던 하나님의 뜻은 바로 우리들의 구원이었다(18:14; 6:40).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자신이 먼저 쇠해지셨고, 그가 쇠해지시니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주셨다.

 

3) 성령님의 사역도 자기는 감추고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거룩한 영이시다. 그 영이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신다. 심지어는 우리의 육체에까지도 부어주신다고 하였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시면 우리가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소원이 새로워지며, 삶의 목표가 새롭게 변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데 천국을 바라보는 눈이 열린다.

 

성령의 첫째 사역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분이 무엇을 이루셨는가를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령을 받아야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은 오직 예수님만 알게 해 주시고, 예수님만 높이는 일을 하신다.

 

그러면 성령은 자기는 안 나타내고, 예수님만 높이게 될까?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잘 안다. 자기가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을 하게 되는 비결과 그 원천이 바로 성령이신 것을! 그러므로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존귀하게 여기고, 그 은혜를 더욱 사모하게 된다. 그러나 성령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말로는 예수님만 위해서 산다고 하면서도 성령을 훼방하고 대적하며,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고 멸시한다(12:31).

 

4)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나타났다. 곧 하늘의 이치가 이 땅에 와서 이 땅의 이치를 하늘의 이치로 바꾸어주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부요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가 가난해지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후 8:9).

 

구약 시대에는 양을 잡아 속죄의 제사를 드렸다. 내가 죽어야 할 것을 양을 대신 죽여서 우리의 죄를 사함 받았다. 양은 죽고, 나는 살았다. 이것까지만 하면 세상의 이치다. 나를 위해서 죽은 양은 다시는 살아나는 길이 없었다.

 

그런데 신약에 오면 하늘의 이치가 나타난다. 곧 나를 위해서 죽은 그 양이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나 때문에, 그리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아니, 내가 그를 죽임으로 그분은 그렇게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렇게 하심으로 나를 죽음과 지옥 형벌에서 살려내셨다. 그러니까 어린양 예수님은 죽고, 우리는 살았다. 그런데 거기에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왜 그럴까? 유월절의 어린양이요, 속죄제물로서의 어린양이며, 화목제물로서의 어린양으로 죽으신 예수님은 사흘 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 천상천하의 만물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고, 그를 주님, 곧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하셨다.

 

5) 이같이 하나님의 이치는 역설적이다. 자연계의 이치와 똑같다. 내가 먼저 쇠해져야 장차 성해지게 되어 있다. 내가 먼저 죽어야 장차 다시 살게 된다. 이런 이치들을 좀 더 정리해 보자.

내가 먼저 낮아져야 장차 높아지게 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23:12)라고 하셨다.

 

내 식물을 물 위에 던져버려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게 된다(11:1).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잃으면 찾을 것이다(16:25).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부귀와 영광을 바라보지 않고, 저 하늘나라의 영원한 복락과 영광을 바라보면서 살았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이 땅에서는 외국인이요, 나그네로서 살았다(11:13). 그러나 그들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살았다. 믿음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의 끝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11:35-38).

 

우리가 하늘의 이치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저 아름다운 나라를 바라보면서 영의 눈을 뜨고서 살아야 하겠다.

 

3.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쇠해지면, 예수님이 우리를 흥하게 하신다.

 

1) 인생은 어차피 쇠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하여, 또는 무엇을 위하여 쇠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인생의 최대의 과제이고, 우리 삶의 목적이다.

우리는 다 늙어지게 된다. 머지않아 이 세상을 하직해야만 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시 젊어질 수 없고,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아직 죽기 전에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를 위하여 일을 해야 하지 않은가?

 

가장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쇠해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더욱 자기를 성하게 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욱 망하게 되는 자다. 육신이 말을 듣지 않는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 몸에 병이 생기고, 그것이 발목을 잡아 앞으로 달려가지 못하게 만든다. 예전의 친구들도 하나하나 모두 떠나고 만다. 안간힘을 쓰면서 자기를 위해 살아보려고 하지만, 자기로부터 오히려 더욱 큰 실망을 거두게 되니 이 어찌된 일인가! 마침내 더욱 큰 낙심과 좌절을 겪게 되고, 비참하게 일생을 마친다.

 

자기 자녀들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자녀들이 자기의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그들이 자기의 뜻을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들이 자기의 뜻을 따라주기는커녕 오히려 멸시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세대를 산다. 그들은 자기들의 뜻을 따라서 살면서 나의 뜻을 거절한다. 이것을 모두 그들의 잘못이라고만 탓하며 비관하고만 있겠는가?

 

2) 우리도 예수님을 위하여 쇠해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분은 나를 성하게 하시려고 먼저 쇠해지신 분이다. 그가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가 성해졌다. 우리가 이 이치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알아야 한다. 곧 고린도후서 8: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하였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은혜다. 그는 가난하게 되실 뿐만 아니라, 아예 십자가 위에서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가 살아났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분이 쇠해지셨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저절로 성해진 것이 아니요,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고 해서 우리가 저절로 다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쇠해져야 비로소 그분이 우리를 성하게 하신다.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골고다까지 가야 그분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그분의 삶의 목표가 무엇이었나를 깨달아서 우리도 그런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그분의 뜻을 이룰 수 있다. 여기에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분은 나를 구원하시려고 자기의 목숨을 먼저 주신 분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요한일서 3:16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 삶의 목표를 한번 살펴보면서 반성해야 한다. 헛된 세상의 영광을 바라지 말고, 주님을 위해서 자신을 드리고 자신은 쇠해지는 생활을 해야 한다.

 

3) 어떻게 해야 우리가 쇠해질 수 있을까?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허무한 인생살이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헛된 욕심을 가지고 살면 안 된다. 내게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할 수 있는 대로 남에게 베풀어 모두가 풍족하게 사는 생활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그분을 경외해야 한다. 그분의 거룩하신 뜻이 있어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그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 그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목표를 두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2,000년 전에 먼저 오셔서 우리에게 삶의 모범을 보이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깨달아, 그분의 사랑 앞에서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죄악 속에서 태어나서 죄악 중에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일생을 오래 살고 뒤를 돌아보아 지난날들을 회상해보면 과연 무엇을 했다고 자랑할 것이 있을까? “나 행한 것 죄뿐입니다.”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지 않는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거기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성령과 진리의 말씀이 충만하게 되어 그 은혜로 인도함을 받고, 온전히 주님만 따라가는 생활을 이루어야 하겠다. 거기에 행복이 있고, 거기에 천국이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뉴스파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