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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한평우 목사 교회사 이야기]핍박(1)

로마 한평우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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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목사
기사입력 2020-02-28

 

 

세상에는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중에는 사상가들이나 정치가들이 있고 종교인들도 있습니다.

 

피에몬트의 알프스 산 자락에는 왈도(Peter Waldo,1140-1217)의 후예들이 신앙을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쳤던 흔적들이 고스란이 남아있습니다. 저들은 셀 수 없이 죽어가야 했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 왈도파 신앙인들의 알프스 산맥의 깊은 계곡에 있는 신학교 유적들.     © 한평우 목사

 

 

불란서 리용에서 태어나 장사로 성공을 거둔 왈도는 부요하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허허로움 때문에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타인이 볼 때는 전혀 걱정 없을 것 같은 데 헐떡이고 허전해하는 인생들이 많습니다. 그런자들은 대체적으로 그 허전함을 해결 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으로 술을 가까이 한다 든지 성에 탐닉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허전함은 더욱 상승하게 됩니다.

 

왈도는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다가 수사를 고용하여 라틴어로된 성경을 불어로 번역하게 했습니다. 허전함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적으로 접근했습니다. 당시는 라틴어로된 성서를 자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아주 두려운 일이었고 발각되면 화형에 처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번역을 시킨 것은 허전함을 그 어떤 것으로 채울 수 없었고 더 나아가서 진리를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성경은 라틴어로 쓰여졌고 강론도 라틴어로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고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으로 말미암는다고 했는데(10:17),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신앙생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온통 캄캄할 뿐이었습니다.

▲ 왈도파 신앙인들의 알프스 산맥의 깊은 계곡에 있는 신학교 유적들.     © 한평우 목사

 

 

그래서 왈도는 말씀을 알고자 번역을 의뢰한 것입니다. 그는 드디어 자신의 언어로 번역한 복음서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자국어로 된 성서를 읽게 된것 은 760년이 지난, 로마에서 열린 2차 바티칸 공회 (1962-65)에서 승인됨으로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무려 약 8백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번역된 복음서를 읽어나가던 중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에 크게 도전을 받았습니다. 네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부자 청년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고민하였습니다. 돈은 세상에서 힘이기 때문에, 돈을 포기한다는 것은 막강한 파워를 스스로 내려 놓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부자 청년은 한손에 세상의 돈, 또 한손에는 영생을 붑잡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 까요? 세상에서도 영화를 누리고, 또 천국에도 들어가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로망입니다.

 

부자 청년도 그러고 싶었으나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힘을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왈도는 달랐습니다. 그는 즉시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주님을 쫓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그 결심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 왈도파 신앙인들의 알프스 산맥의 깊은 계곡에 있는 신학교 유적들.     © 한평우 목사

 

아마 그의 얼굴에는 거룩한 광채가 났을 겁니다. 의로운 결단은 표피적으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에게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성직자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랐기 때문입니다.

 

왈도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전함은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진리를 순종하는 삶을 친히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하지만 영적 파워가 있었습니다.

 

진리에 목말라하던 자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큰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왈도는 모인 자들을 훈련시켜 성경대로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전도자로 보냈습니다. 저들은 골짜기의 외딴 집까지 찾아가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것 같은 역사가 일어났습 니다. 그러자 당시 가장 강력했던 교황 이노센트 3세 는 핍박의 칼을 높이 뽑아들었습니다.

 

그러자 저들은 알프스 산맥의 세스트리에레(Sestriere)를 넘어 이태리 땅 피에몬트로 이주했습니다. 일찌기 한니발이 로마를 공격하려고 코끼리 무리를 이끌고 넘었고, 그후 불란서의 영웅 나폴레옹이 넘었던 코스를 이용하였습니다. 다른 곳 보다 비교적 덜 험악한 알프스 산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아녀자나 노약자에게는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주신 은혜 의 믿음을 지키려는 열정으로 그 높은 산을 넘었습니 다. 그렇다면 우리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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