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김준곤 설교] 묵시록 시대와 묵시록적 인간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가 -가 +

김준곤
기사입력 2020-03-02

요한계시록 17:1~5, 마가복음 5:1~20, 갈라디아서 5:18~26

▲ 1984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열린 '84세계기도대성회에서 김준곤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뉴스파워



  묵시록에는 말세의 종말과 징상(徵狀)과 괴상한 상징적인 인간들이 등장합니다. 음녀(淫女)가 있고, 붉은 용이 나오고, 반수반인(伴獸伴人)이 나오고, 더러운 귀신들과, 마인(魔人)과 초인, 반신반인(伴神伴人)도 등장합니다.

묵시록적 인간들은 모두 의식적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발광적이며, 그 상황은 원천적으로 영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영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되 악마적이고 야수적인 면도 있지만, 불신앙과 죄악은 악의 꽃을 피우고 심미적이어서 감미로운 포도주 잔처럼 황홀하고, 화사(花蛇)처럼 눈부신 매혹의 문명과 아무리 깨어 있으려 해도 얼굴도 없는 섹스의 신들이 거대한 그의 밤의 베일 속에 있기에 깨어나는 기도마다 취해 버립니다.

묵시록의 시간은 이미 정상 시간이 넘은 25시입니다. 묵시록의 인간은 자기의 종말을 알고 있는 발광인 입니다. 그리고 철저히 비도덕화, 비인간화되어 있습니다. 묵시록의 영은 악령과 귀신들이 성령과 직접 일선에서 맞섭니다. 묵시록의 문화는 음녀의 진노의 포도주입니다. 묵시록의 주제는 심판과 구원입니다. 묵시록은 죽음의 책이고 동시에 생명의 책입니다.

묵시록에서는 인간의 신앙이 덥든지 차든지, 절대적 태도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미지근한 것은 토해 버립니다. 모든 중성적이고 애매하고 미온적인 것, 온갖 위장을 벗겨 버리고, 폭로시키고, 문제를 원천에서 다룹니다.

인간과 문화의 과거는 여러 가지 복수(複數)의 길을 걸어왔지만, 묵시록의 갈 길은 전 인류 앞에 오직 한 길, 단수일 뿐입니다. 묵시록의 인간과 전 인류가 무한한 심연 위에 놓여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외나무다리 앞에 외줄로 섰습니다. 그밖에 미치든다 죽든가의 길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구라파의 영적인 시간이 긴긴 밤으로의 서간, Post 기독교 시간, 미국은 Post를 지나가는 어떤 시간이고, 동양은 전(Pre) 기독교 시간입니다.

하지만 종말의 기압골은 어디나 무겁게 뻗혀 있습니다. 원자핵이 자연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 후로, 묵시록의 자연도 발광을 부립니다. 바다도, 대지도, 대기도, 천체도 저주받아 인류에게 사납습니다. 병든 인간, 병든 대지, 아니 미치는 제3족속, 제3계절은 신음하면서 성령의 구원을 절규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이 깊은 심연에서 주께 부르짖습니다(시 129편).

니체가 만든 초인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들, 공산 당원이나 히피족만이 묵시록적 인간이 아닙니다. 많은 지성인들도 선량한 시민들도 대부분 그 눈을 보면 초점을 잃고 있습니다. 무엇에 취했거나, 약간 돌거나, 귀신 들린 사람들, 혼이 나간 사람들, 적어도 자신이 부재중인 빈 사람들 입니다. 묵시록적 인간의 한 상징을 더 러운 귀신 들린 거라사 청년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막 5:1∼9).


  그의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는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으로 늘 벗고 다녔고, 자기 몸을 돌로 상하게 하고, 늘 소리를 질렀습니다(Sex족).

2. 그는 심히 난폭하고 가공할 광인이었습니다. 고랑과 쇠사슬로 묶었어도 그것을 부수고 끊어 버리며,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었습니다(공산주의자).

3. 그는 집에 거하지 않고, 산과 무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히피, 허무주의자, Post족).

4. 그는 단수인 자아가 아니라 분열된 다수였습니다(분열 인격).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무리가 많음이니이다."

로마의 한 사단(Legion)은 보병 6,000명에 기마(騎馬) 3,000이었습니다. ‘나’가 아니라 우리(분열된 인격 집단)였습니다. 그는 혼란이었습니다. 다수였습니다. 대중 인간이었습니다.

Sex에 취하고, 술 취한 사람과, 미친 사람과, 악령 붙잡힌 사람은 공통성이 있습니다. 풍요 사회 미국에는 고등학교, 대학생, 군인들의 7할은 환각제를 피운다고 합니다. 히피들은 “우리는 모두 미쳤다”며 노래를 부릅니다. 불란서의 한 지성인은 자유의 길, 구원의 길은 미치는 길과 죽는 길밖에 없다고 합니다.


3기 환자
  중병 환자의 병은 처음에는 발병 잠복기, 두 번째는 발전기, 세 번째는 극한 위기가 있습니다. 한센병은 몰라 3년, 알게 3년, 터져 3년의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정신사(精神史)의 연륜이 차고 계절을 거듭하는 동안, 인간 영혼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 이 바닥까지 폭로되고 그 불신앙 인간의 병은 그 종말적 3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종말적 인간은 성령에 충만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거라사 청년이든가, 양자택일의 위기에 섰습니다. 참으로 사태는 심각합니다.

사회학자 소로킨 교수도 우리들의 위기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심리적 위기라고 하였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미쳐 가고 있습니다. ‘성령 없는 영혼은 미친다.’라고 말해도 지나진 선언은 아닙니다.


더러운 귀신과, 섹스 귀신과, 니힐 귀신.


  섹스는 현대의 최대 주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건전한 처녀에게도 교회에서도 섹스는 건전한 화제 거리 입니다. 섹스는 현대인의 신화이며 지상 가치입니다.

현대 문화는 곧 섹스 문화입니다. 현대 인간 이론은 섹스 인간론이며 섹스를 위하여, 섹스에 의해서, 섹스 안에서 삶을 희롱하고 있는 것이 현대인입니다. 섹스 귀신이 깊은 밤에 광란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섹스 과잉, 섹스 광태의 원인은 하나님의 사랑의 상실과 영원 상실, 양심 불안에 원인이 있습니다. 인간 정서의 제일 원천이 사랑이며, 섹스는 그 사랑의 신비로운 표현이며, 성육신(成肉身)일 때 참으로 성의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성스러운 원천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께 있는데, 그 사랑에서 인간이 멀리 떠날수록 성은 악마화되고 야수화 되며 광란병을 일으킵니다.

정신 병원의 환자들을 분석해 보면 직접, 간접적인 사랑의 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사랑의 상실에서 실성한 사람은 그 성격에 따라 증상이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청

량리 정신 병원에 있는 환자들의 세 가지 유형을 보면, 첫째는 광포형으로 거라사 청년처럼 소리 지르고 보는 대로 욕하고 때리고 부수고 하며,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묶어 놔도 제어할 사람이 없습니다. 매우 위험한 강력범이며,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공산당이며, 나치즘이며, 전체주의입니다. 그는 상실한 사랑을 무의식 속에서 보복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구애형으로써 아무나 보고 사랑의 원혼처럼 애원하고 온갖 교태와 열정을 다해 누군가에게 무엇엔가에 사랑의 수입을 구합니다.

셋째는 아파디(Aparthy)로써 이는 사랑의 불감증이 되어 상실한 사랑을 보복합니다. 못 견디는 고통을 무관심과 망각으로 처리해 버리려는 무의식적 방어인 것입니다. 사람을 보면 말뚝을 보듯 무표정하고,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없이 하늘과 땅을 보고 사물을 보고, 인간과는 담을 쌓아 버린 말뚝입니다. 말뚝과 말뚝, 돌멩이와 돌멩이가 마주선 금속성의 인간 족속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족속은 히피족만이 아닙니다. 급속도로 지구에는, 인간 불감증족들이 퍼져 가고 있습니다. 그는 허무족입니다. 현대의 니힐은 더러운 귀신이 사는 집입니다. 섹스 귀신은 니힐 속에 살고 니힐은 섹스 귀신을 키웁니다. 그 귀신은 죽음과 무덤 사이에 살고 소리를 지르며 자기 살을 돌로 상하게 하는 자학 증세를 보이는 위험한 괴물입니다.

이런 생물은 생물학계의 이변이며, 하나님이 만들지 않은 것입니다. 허무가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섹스 귀신은 잔인합니다. 사랑의 보복을 위하여 증오와 살인의 화신이 됩니다. 현대인의 예술은 죽음과 허무와 섹스가 주제입니다.


복합 인격과 분열 인격
  ‘네 이름이 무엇이냐 ?’고 물으니 ‘내 이름은 군대니 무리가 많음 이니이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이 귀신 들린 사람은 이름이 없습니다. 자아의 동일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책임감도 죄책도 모릅니다. 그의 마음은 많은 주파망(周波網)에 혼잡된 라디오 수신기와 같이 잡음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는 오늘은 사회주의자의 기분이다가, 내일은 돈벌이에, 모레는 연애에, 그 다음 날은 정치에, 며칠 있으면 신앙에, 일주일후면 허무주의와 수백 마리 잡귀 들린 사람처럼 3중 인격, 백중(百重) 복합 인격으로 날마다 변덕을 부리고 둔갑합니다.

그 속에는 돈 귀신, 잡귀신, 죽음 귀신, 허무 귀신, 죄책 귀신이 둥지를 틀고 삽니다. 그는 시장에서, 길바닥에서, 극장에서, 사람의 물결 속에서, 신문과 라디오와 대중 속에서 망령 같은 ‘우리’의 다수가 있을 뿐, 하나님이 부르면 대답할 이름을 가진 ‘나’는 없는 자입니다.

그는 스스로가 소외된 인간입니다. 그는 자기 집에서 살 곳이 없습니다. 집을 나가서 무덤 사이에서 잠을 잡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를 소리를 지르고, 자학을 일삼습니다. 귀신에게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또한 이웃에게도 소외된 인간입니다. 자기가 싫고 자기가 미워 내란 상태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이 싫고 이웃이 미워 이웃과 적대 관계에 놓입니다. 그는 가혹하고 날카롭게 초비판적이 됩니다. 자기 불행은 모두 누군가의 책임이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는 99%가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고발적입니다. 그는 영원한 검사요 경찰입니다. 그리고 살인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 가는 세상에는 많은 경찰과 공포 정치와 독재가 늘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를 제어할 힘이 없습니다. 쇠줄도 고랑도 다 부셔 버리기 때문입 니다.


예수 기피증
  이 거라사 청년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막 5:7∼8). 묵시록 인간들은 예수를 압니다. 그들의 주제는 항상 예수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는 그들에게 최고의 고통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나약해서 악을 범했습니다. 악을 범하고는 개탄했습니다. 현대인은 악을 선이라 예찬하며 힘써 행하는 순수 악인입니다. 옛날에도 무신론이 있었습니다. 그 무신론은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무신론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심미적, 영웅적 무신론자가 많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모두 전 그리스도인(Pre Christian)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몰라서 못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후 그리스도인(Post Christian)입니다. 그리스도를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고의로 모독합니다. 저들은 저들의 종말을 알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불신앙은 악마적입니다.


인간의 종말
  하나님만은 인간의 종말, 역사악의 극한점을 아십니다. 그 저울과 자와 심판 시계는 정확하고 비밀합니다. 어느 도(度)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고, 어느 한도 선에서 노아의 시대를 끝내야 할 것인가를 정하셨던 하나님은 우리 시대의 종말을 정하실 것입니다. 하나님만 아는 인간 위험 수위를 인간은 지금 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영혼이 그 원천에서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만간 종국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
  더러운 귀신에게 예수님이 나오라고 명령했을 때 귀신은 쫓겨나고 그 청년은 제 정신이 들어 옷을 입고 제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 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증거했습니다(막 5:19). ‘더러운 귀신이여 나오라.’

현대인은 그 성정(性情)이 부정하고 귀신같은 힘에 붙잡혀 있습니다. 현대인이 들어야 할 제1계명은 ‘간음하지 말라’ 일지도 모릅니다. 칠흑의 깊은 밤에 더러운 귀신 들린 영혼들이 희롱당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도덕적, 정신적 퇴폐와 발광의 원천에 악령의 세력이 있습니다. 현대악은 신학적 입니다.

성령만이 모랄이요, 사랑이요, 순결이요, 구원입니다. 사모하는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성령의 계절이여 오시옵소서. 말세에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고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신다고(행 2:17) 약속한 대로 성령을 부어 주소서.


성령의 인간과 비 성령의 인간(갈 5:18~26)
  제3의 선택은 없습니다. 성령이냐 더러운 귀신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위기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선인, 악인의 구별은 이미 낡은 것입니다. 순수 도덕적 자연인은 이미 지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신학적이고 묵시록적인 성령인과 악령인만이 남아 있습니다.

묵시록 시대의 말세인에게 정신 문제의 해결책이 넓고 많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이 자유의 길입니다. 논리의 부도 낡은 주제입니다. 성령 충만만이 새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사랑이란 곧 성령을 의미하며, 생명 즉 성령이라고 단언합니다.

지금은 노출 시대입니다. 영(靈)의 시대입니다. ‘성령 충만 하소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그밖에도 길은 없습니다. 인간 혁명, 민족 혁명의 나의 정의는 개인 중생이며, 민족의 복음화입니다.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중생과 복음화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고 오직 주의 성령으로만 됩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71년 7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뉴스파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