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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선교대회

[4.15총선 설교]둘이 하나가 되는, 화해와 평화의 길

[교회협 제공] 김종렬 목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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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렬
기사입력 2020-04-04

      

본문 : 에스겔 3715-22/ 에베소서 214-18, 43/ 마태복음 59, 24-25, 2652

▲ 교회협 주관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뉴스파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삼위일체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들과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은혜와 평강이 절실히 요청되는 ’(카이로스)입니다. 그것은 국내외적으로 온 세계가 난리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이 땅에 창궐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온 나라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온 세계가 기아와 질병, 분열과 전쟁 그리고 기후 변화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해와 환경파괴의 심한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 지금 우리는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및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갈등과 분열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정치는 여야의 대립과 이념적으로 국우와 극좌의 분열, 경제는 빈익빈 부익부의 심한 양극화와 노·사간의 갈등, 뿐만 아니라 세대 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동·서간의 지역감정의 골이 깊고 남·북 간의 분열과 대립은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이 민족의 분열과 아픈 상처를 싸매주고 치유해야할 종교와 우리 기독교회가 그 어느 집단보다도 극우와 극좌로 분열괴어 있고, 보수와 진보의 진영 논리에 휩싸여 서로 싸우며 사분오열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더욱 좌절케 하며 심히 부끄럽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같은 모든 현상들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총체적 위기이며, 우리사회의 상처이며, 치유 받아야할 이 민족의 아픔이며 질환입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총체적 위기와 난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고민하고 추구해야할 것은, 우선 우리 사회의 통합을 이루고, 이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회적 통합이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통합을 저해하는 정치권의 여야의 극심한 대립을 극소화시키고, 또한 이념적으로 극우와 극좌의 분열을 통합시키는 일이라 하겠으며, 세대 간과 노·사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경제적으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로 인한 사회계층간의 갈등을 극복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동·서 간 지역감정의 깊은 골을 매우고 남·북 간 민족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하나의 민족공동체로서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추구해야할 시대적 사명이라 하겠습니다.

이 같은 시대적 사명인 우리 사회의 통합과 이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이 시대의 예언자 즉 말씀의 봉사자로 부르심을 받아 지난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온 나는 둘이 하나가 되는, 화해와 평화의 길이란 설교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이 같은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나는 오늘 설교본문을 구약의 말씀 에스겔3715-22절과 서신서의 말씀 에배소서 214-18절과 43절 그리고 복음서의 말씀 마태복음 59절의 말씀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둘이 하나가 되는 화해와 평화의 길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찾아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둘이 하나가 되고 화해와 평화의 길을 찾아보려고 한 것은, 이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또한 이 일을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감당해야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은 에스겔 37장에서 마른 뼈의 환상을 통해서 둘이 하나가 되는 환상(비젼)을 보여줍니다. 에스겔이 본 마른 뼈의 환상에는 두 가지의 실제적인 역사의 배경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 버렸고, 포로로 잡혀 간 유대민족은 좌절에 깊이 빠져 있는 희망도 미래도 없는 죽은 상태에 처해 있는 나라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의 분열은 화해되지 않은 채 민족이 찢어진 상태로 여기 저기 흩어져 살아가는 생명이 없는 마른 뼈의 상태에 직면해 있는 민족이이라는 것입니다.

이토록 갈라지고 찢어진 민족, 희망도 없이 절망과 죽음의 상태, 즉 마른 뼈와 같은 상태에 직면해 있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에스겔이 너희는 살리라”(37:5,6,9)는 말씀과 둘이 하나가 되리라”(37:17,19)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희망찬 하나님의 약속이며, 이는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통일에 대한 비젼(환상)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같이 너희가 살리라는 희망찬 하나님의 약속과 둘이 하나가 되리라는 이스라엘의 민족통일에 대한 환상(비젼)은 바로 지금 우리 민족이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언약이며, 이 백성이 보아야하는 환상입니다. 그것은 우리 한 민족이 마른 뼈와 같이 여기 저기 흩어져 뒹굴고 있는 죽은 상태에 처해 있는 모습이며, 남북으로 분단된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만큼 고난의 민족이며 민족분단의 아픔을 가진 슬픈 민족입니다. 우리는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없는 선량한 백성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강대국에 의해 얼마나 많은 침략과 수탈을 당해온 민족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난 36년간 일본의 압제 하에서 고통을 받았으며, 골육상쟁으로 동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피차 살육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룬 뼈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며, 아직도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수백만의 이산가족으로 살아야 하는 참으로 슬프고 아픔을 안고 있는 민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토록 아프고도 슬픈 민족이 살아가는, 이 역사의 한 복판에 서서 이 땅의 우리 예언자들이 에스겔처럼 이 민족에게 너희가 살리라는 희망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남북분단으로 긴 세월동안 고통스럽게 살아온 이 민족이 둘이 하나가 되리라는 민족통일에 대한 환상을 볼 수 있게 하는 말씀의 봉사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둘이 하나가 되는 민족통일에 대한 환상을 에스겔에게 보여주시며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두 가지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는 17절의 말씀,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절의 말씀,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중요한 말씀,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는 말씀과 내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의 말씀에서 우리는 또한 두 가지의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둘이 하나가 되는, 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주체자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 되게 하시는 일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19절의 말씀 내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도구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17절의 말씀,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토록 둘이 하나가 되게 하는 일에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신율적 상호관계 혹은 신율적 상호작용’(Theonome Reziprozität)이라고 합니다. 이를 풀어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 되게 하시는 주체자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협력자로 부르셔서, 즉 우리를 당신의 일꾼(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 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 없이는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고맙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거기에 응답하여 단지 도구로서 즉 하나님의 손에 잡힌 도구(공구)로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율적 상호작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토록 우리로 하여금 둘이 하나가 되는, 화해와 평화의 길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역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크신 사역을 성부 하나님께서 홀로 하시지 않으시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과 함께, 즉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서신서의 본문에서 바울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14-18)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말하면, 성자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즉 하나님과 우리 둘을 하나 되게 하신 화해자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곧 우리가 우리의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었음을 말하며, 하나님과 단절은 곧 죽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 불손종의 아들들 가운데 있었다는 것이고, 이 가운데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서 멸망 곧 죽음의 상태에 있었다는 말입니다(2:1-3). 그런데 이제는 이 같이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곧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고, 이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고, 오로지 그 은혜에 의한 오직 믿음으로말미암아 받게 된 것입니다(2:4-9).

이렇게 서신서의 본문에서 성부 하나님과 우리 둘을 화해시키시고 은혜로 구원받게 하신 성자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증언한 바울은 또한 보혜사 성령께서 둘이 하나 되게 하신 사역을 증언합니다. 그것이 서신서의 본문 에배소서43절 상반절의 말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말씀에 이어서 43절 하반절에서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권고합니다. ‘힘써 지키는 일은 바로 우리들이 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43절은 보혜사 성령이 둘이 하나 되게 하시는 주체자가 된다는 사실과 둘이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우리가 성령의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사실, 신율적 상호작용 혹은 상호관계를 말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구약의 본문 에스겔의 말씀과 서신서의 본문 에베소서의 말씀에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둘이 하나가 되는 화해와 평화를 이룩하시는 주체자가 되신다는 사실과 우리가 감히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에 부르심을 받은 도구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신율적 상호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복음서의 본문 마태복음을 통해서 둘이 하나가 되는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감당해야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설펴볼 차례입니다. 마태는 본문59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화평하게 하는 자’(피스 메이커)라고 하였으며, 524-25절에서 예물을 제단에 드리기 전에 먼저 화해하고’, 또한 고발하는 자와 시비를 가리기 위해 재판관에 가기 전에 급히 사화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음서의 본문2652절에서 마태는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같은 복음서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화해와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대화를 해야 하고, 더 적극적으로는 칼을 칼집에 꽂는 일, 즉 무기를 버리고 폭력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이사야가 예언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2:4)하리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전쟁무기를 평화의 도구로 만들고 더 이상 전쟁연습을 하지 않는, 오늘날 핵무기로 긴장가운데 있는 한반도에서 실천되어야 할 평화운동입니다. 이것이 바로 둘이 하나가되는 화해와 평화의 길을 가기 위해 오늘날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실천해야할 평화운동입니다.

오늘 설교를 시작하는 선두에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지금은 온 세계가 기아와 질병, 분열과 전쟁으로 난리를 겪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국내적으로 지금 우리는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및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갈등과 분열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의 위기는 더욱 심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때야 말로 둘이 하나가 되는 화해와 평화가 요청되는 결정적인 때(카이로스)입니다.

이 결정적인 때에, 오는 415일에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국회의원들의 형태를 보아왔습니다. 우리는 도무지 그들에게 희망을 걸 수 없었습니다. 우리를 실망시키고 좌절케 하는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여야대립으로 극한 싸움을 하였으며, 당리당락의 집단이기주의로 민생을 돌보는 일에 소홀히 하면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4.15총선에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바른 선량들을 뽑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는 기도하고 무엇보다도 둘이 하나가 되는 화해와 평화가 이 땅에 속히 이룩되도록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이번 총선에서 둘이 하나 되게 하고 화해와 평화를 만들기에 힘쓰는 국회의원을 뽑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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